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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설(元旦)과 살(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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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설(元旦)과 살(歲)

오늘은 진짜 설날이다. 설날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도 신정과 구정이 있고, 과거에는 동지를 시작으로 본 적도 있다. 섣달그믐에는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한다. 눈썹이 하얗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는 ‘묵은세배’를 드리기 위해 어른들께 인사하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다. 중국에서는 잠을 자면 제석 귀신이 잡아먹는다고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밤을 새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네 풍습이다.

설날이 되면 예로부터 설빔을 입는다. ‘설빔’은 ‘설비음’의 준말이다. 즉 ‘설’과 ‘비음’의 합성어다. ‘비음’은 ‘빌음’에서 비롯되었다. 어근은 ‘빌(빋)’인데, 명절이나 잔치 때 몸을 치장하는 일 또는 그 옷을 가리킨다. 명절빔, 잔치빔과 같이 쓰였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주로 옷을 ‘빔’이라고 해 왔다. 가난하던 시절에 ‘새 옷’을 입는 것은 정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깨끗하게 빨아서 입기도 했다. 그래서 치장하는 일도 ‘설빔’이고, 새 옷도 ‘설빔’이다.(男女老少皆着新套衣服曰歲庇廕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설빔이라고 한다.<洌陽歲時記, 正月>) 그러므로 설빔은 ‘꼭 새 옷을 입는다는 것보다는 새롭게 꾸민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본다. ‘빗다’에는 ‘꾸미다’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설에 꾸미는 것이 설빔이다. 머리를 꾸미는 것이 ‘머리를 빗는 것’이다. 여자가 머리를 빗는 것은 아름답게 꾸민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설’을 지나서 한 ‘살’을 더 먹은 것인가, 아니면 한 살 더 먹어서 슬퍼서 서러워 ‘설’인가? 예전부터 말도 많았던 것인데, 오늘은 그 의미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옛 문헌을 보면 ‘살과 설’이 별 구분 없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리어든(설이어든) 가을에 ~~~”<삼강행실도, 6>, “그 아기 닐굽 설 머거 아비 보라 니거지라”<월인석보8>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단(元旦)이라는 의미와 나이(세(歲))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설의 본 뜻에는 태양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햇살’의 ‘살’이 바로 그것이다. 나이를 세는 단위의 ‘살’은 ‘설>살’로 변형된 것이다. 원래는 ‘햇살’처럼 해의 의미였는데, 해가 바뀌면서 나이를 먹기 때문에 의미확장이 일어난 것으로 본다. ‘설’이 ‘살’로 변하는 것은 모음의 변이로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즉 우리말은 모음을 살짝 바꿔 의미를 확장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낡다>늙다’(늙은 것은 낡은 것과 비슷하다), ‘남다>넘다’(남으면 넘게 된다) 등이 모음을 바꿔서 의미의 변형을 꾀한 것들이다.

나이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말에서 나이를 일컫는 용어를 일별해 보자. 우선 15세는 지학(志學), 20세 약관(弱冠), 30세 이립(而立), 40세 불혹(不惑), 50세 지명(知命=지천명), 60세 이순(耳順), 70세 종심(從心)혹은 고희(古稀)라고 한다. 다음으로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한자어로 나이를 말할 때 다음과 같다. 16세(여: 파과(破瓜=2×八), 41세 망오(望五), 77세 희수(喜壽), 80세 팔순(八旬, 中壽중수), 88세 미수(米壽), 90세 구순(九旬), 91세 망백(望百), 99 백수(白壽), 100세 상수(上壽)라고 한다. 누군가 “백수(白壽)를 왜 흰 백(白)자를 쓰느냐?”고 하였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참으로 해학이 넘치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흔히 쓰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좋은 우리말 나이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온살(정초에 태어나서 꽉 차게 먹는 나이)이 있다. 정월 초에 태어난 사람은 1년을 꽉 채우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반면에 ‘앰한나이’가 있다. 연말에 태어나서 바로 한 살 더 먹은 나이를 말한다. 남의 나이(환갑이 지난 뒤의 나이, 대체로 80 이상을 이름), 꽃나이(여자의 한창 젊은 나이), 방년(芳年=방령芳齡:20세 전후의 한창 나이), 묘령妙齡=묘년妙年:(여자 나이 스무 살 전후), 연배年輩( 비슷한 또래의 나이, 일정한 정도에 이른 나이), 동년배(나이가 같은 또래), 한동갑(同甲,甲長, 육십갑자가 같다는 뜻으로 같은 나이), 어깨동갑 혹은 자치동갑(자칫하면 동갑이 될 뻔한 한 살 차이), 띠동갑(띠가 같은 사람, 12년 차이 동갑)<최종희, 열공우리말 참조> 등과 같이 나이를 표현하는 말이 다양하다.

설이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 나이를 먹으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말도 나이에 맞게 가려서 쓰면 좋겠다. 외국에서는 친구라는 개념을 폭 넓게 쓰는데, 우리나라는 나이로 인한 다툼이 지나치게 많다. 흔히 “민증(주민등록증)까자.”고 한다. 그러면 호적나이, 집나이 만나이 등 이것저것 다 나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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