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배달 산업'은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며 연간 20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노동자들의 희생이 감춰져 있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 공동취재팀은 지난 수개월간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이 겪는 사건사고와 안전실태를 취재했다. 특히 지난해 4월 배달 중 숨진 18살 김은범 군의 죽음을 통해, 청년 라이더들이 처한 비참한 노동현실과 비정상적인 법체계를 고발한다. '프레시안X뉴스타파' 공동기획 '배달 죽음'은 4차례에 거쳐 연재된다. 매편의 ①번 기사는 주요 취재내용을, ②번 기사는 취재기를 담고 있다. (☞ : '배달 죽음' 다큐 바로가기 클릭) 편집자
2-① 손 놓은 노동청...법 밖에 있는 '라이더'
2-② 영세 가게에서 배달하다 죽으면 노동자가 아니다?
가로등 불빛조차 아득하게 보이는 어둠이었다. 폭 3미터의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은 인적은 고사하고 불빛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도로 중앙선조차 볼 수 없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따금 헤드라이트를 매달은 차들이 육중한 진동을 울리며 지나가야 여기가 도로임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온통 암흑이었다.
제주도 아봉로 신성여고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도로. 급커브 구간이다. 제한속도는 시속 60km. 가로등이 있어도 짙게 깔린 어둠을 거둬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열여덟 살 은범이는 족발을 배달하고 돌아오던 길에 마주 오던 차량과 부딪쳐 사망했다. 운전미숙으로 어두운 커브길에서 미끄러졌고, 그대로 중앙선을 넘어갔다.
맞은편에서 오던 운전수는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한 은범이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대로 은범이, 그리고 그를 태운 오토바이와 부딪혔다. 은범이가 사망에 이른 직접적인 이유다.
하지만 사소한 사건 하나에도 여러 원인과 이유가 씨줄과 날줄로 복잡하게 뒤섞여 있기 마련. 은범이가 죽은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은범이는 오토바이 면허가 없었지만 족발집 사장은 개의치 않고 은범이에게 배달을 시켰다. 족발집 사장이 도로교통법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검찰은 은범이를 고용한 사업주와 관련, 경찰이 넘긴 두 가지 기소의견 중 도로교통법 위반( 고용주 의무 위반)만을 약식기소하고 업무상과실치사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 결과 사업주는 벌금 3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은범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 입장에서는 답답한 결과였다. 경찰청은 '2017년 이륜차 안전관리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배달 종업원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용하기도 했다. 제주지방경찰청 민경화 교통조사계장은 오토바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지금 청소년들이 오토바이 운전에 많이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사고는 일반 차량보다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사망사고 비율도 높죠. 그런데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는 사고 관련한 처벌이 약한 게 현실입니다. 면허가 없으면 사업주는 운전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매우 엄정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길시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 그래야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토바이 관련한 감독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은 미약합니다. 법 적용도 어렵고, 설사 적용된다 해도 처벌이 약한 게 현실입니다. 주목할 점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나 아동들을 보호하는 법이나 그들이 범죄나 위험에 노출되게 할 경우 가중처벌하는 법률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에서만은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은범 군 사건이 아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은범이의 어머니 장수미 씨는 30만 원 벌금형에 분노했다. 아들 목숨 값이 30만 원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장 씨는 아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벌금형 선고가 내려진 사건이었다.
"그 사장은 (족발집에서) 업종을 변경해서 여전히 장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내 아들은 죽었는데... (울음) '이 집에서 일하던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현수막을 만들어 그 가게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알까요? 내 아들이 그 집에서 일하다 죽은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그 집에서 음식을 먹을 거잖아요. 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가 죽었는데, 처벌받은 사람이 없어요. (울음)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요. 그런데, 법이 그렇다고 합디다. 법이... 이게 대체 무슨 법인가요."
은범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은 노동청
우리는 장수미 씨를 만난 뒤, 다른 방향에서 의문이 들었다.
'오토바이 배달사고도 산업재해 사망사고인데, 노동부는 왜 이 사건을 산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기지 않았을까.'
족발집 사장도 은범이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업주는 자신에게 부여된 안전조치 의무, 즉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 2항에 위반되는 일을 했다. 이를 어길 시, 최대 징역 7년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된 법이다.
사실, 산안법에 명시된 조항대로 처벌받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중한 처벌이라고 해도 집행유예가 고작이다. 은범이에게 배달을 시킨 사업주가 산안법에 적용받았으면, 벌금형 정도는 받았으리라 생각한 이유다.
곧바로 관할기관인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제주근로개선지도센터(이하 제주센터)에 은범이 사건을 조사했는지 문의했다. 까칠한 답변이 돌아왔다. "조사 내용이 있으나 답변을 줄 수 없다"며 "정 알고 싶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했다. 취재 차원에서 연락한 것인데, 공식 절차를 밟으라는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보공개를 신청한 뒤 2주가 지났을까.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던 제주센터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답변을 거부했다. 청구한 자료가 '부존재' 자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처리한 내역이 있는데 어떻게 그게 부존재 자료냐"고 묻자 이번에는 "검찰에 송치한 자료이기 때문에 노동청에는 자료가 없고 검찰에 있다"고 말했다.
담당자가 끝내 '부존재 자료'라고 주장하길래, "그럼 자료는 됐고 구두로라도 처리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자 "오늘 안에 전화 드리겠다"고 한 담당자는 그 후로 단 한번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정보공개청구창으로 '정보 부존재' 처리가 내려졌다.
수사자료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노동청이 해야 할 의무를 다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달라는 것인데, 게다가 검찰에서는 이미 약식기소로 사건이 끝난 지가 한참인데 '수사자료' 운운하며 정보를 줄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감추려 할까. 국회를 통해 취지를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부탁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받은 자료는 예상대로였다. 노동청은 은범 군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보통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즉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조사를 진행한다. 산안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죄의 경중을 따져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기거나 사업주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산안법 위반 관련 조사는 노동청 근로감독관만이 할 수 있다. 경찰과 동일한 권한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부는 은범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던 걸까.
"(조사를 하려면) 산안법 위반이 있는지 보는데, (오토바이 사망사고의) '사건개요'를 보면 '신호위반' 사항으로 사망한 건이 대부분이에요. 도로교통법 위반인 것이죠. 그렇다 보니 따로 나가서 조사하는 경우가 드물 수밖에 없어요. 사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숫자가 1년에 2000건이 넘어요. 이것을 일일이 다 나가서 조사한다는 건, 행정력에 한계가 있어요. 산안법 위반 여부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나가서 조사를 하는 이유예요."
노동부 산재예방과 관계자는 행정력의 한계를 이유로 들었다. 하루에 5명 꼴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는 한국이다. 약 300명 정도 되는 산업재해 담당 근로감독관이 이를 다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도 이러한 흐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오토바이 배달 사고, 즉 '사업장 외 교통사고' 건은 근로감독관이 조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명시돼 있다. 은범이 사건도 이 '집무규정'에 따라 노동부는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를 근거로 수많은 오토바이배달 사망사고는 산안법 위반 여부를 조사도 하기 전에, 단순 교통사고로 정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게 아니다
은범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은범이가 족발집에서 한 달에 받기로 한 돈은 150만 원이었다.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 퇴근했고, 주6일 동안 일했다.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주말에는 무조건 일해야 했고, 평일 하루를 쉬었다. 일이 많으면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월급은 한 달 150만 원 고정급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은범이가 일했던 2018년 당시 최저임금은 7530원이었다.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나오는 주휴수당과 밤 10시 이후 근무하면 나오는 야간수당, 일요일에 일하면 나오는 휴일수당 등을 다 계산하면, 은범이가 받아야 하는 월 급여는 대략 226만 원이 넘는다.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해도 약 70여만 원을 사업주는 주지 않으려 했던 셈이다.
근로기준법을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을 고용해서 '임금 따먹기'하는 악덕 사업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뒤늦게 알게 됐다. 근로기준법에 예외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무지의 소치였다.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11조를 보면, 은범이가 일했던 '4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적용 기준에서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해고도 사업주 마음대로 해도 되고, 1년에 휴가를 하루도 안 줘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연장·야간·휴일 노동을 하면 줘야 하는 '통상임금의 50%'를 안 줘도 됐다.
그나마 주휴수당은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열악하기 그지없는 현실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제주에서 은범이 사건을 취재하고 서울에서 만난 유성규 노무사의 이야기가 가슴을 찔렀다.
"사실은 영세 사업장(4인 이하)이라고 해서 근로기준법 등도 예외 조항으로 둬요. 영세사업장 힘드니깐 살려야 된다는 취지죠. 그런데 반대로 말하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계층이라든가, 취약계층이라고 볼 수 있어요. (취업)진입장벽이 다른 곳보다 낮은 편이라서 자연히 그쪽으로 몰리는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매일 출퇴근하면서 만나는 분들이 누구인가요?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 서빙보는 분들,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주시는 분들, 음식 배달하시는 분들…
우리가 접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계세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는 대규모 제조업 공장 노동자분들은 사실 우리가 만날 일이 거의 없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매일 만나는 분들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해요. 우리 사회에서는 그분들을 논외의 존재, 유령 같은 사람처럼 취급되고 있어요. 이게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우리가 먹고 마시는 삶의 모두 영역에 은범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삶을 제대로 톹아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보인다고 했던가. 은범이 사망사고가 그랬다.
* <뉴스타파>와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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