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에 저임금 하청 노동자가 투입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첫째, 노동자의 목숨값보다 안전 시설 확충(안전 점검 인원 확충) 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안전 펜스 하나, 안전 요원 한명 증대하는 값보다 노동자 목숨 값이 싸게 먹히니, 하청 노동자를 위험한 일에 계속 투입한다. 그게 돈이 된다.
사고가 나서 노동자가 죽었다? 별 문제 없다. 원청은 하청에 책임을 미루면 되고, 하청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후, 또 다시 저임금 외주 노동자를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 자리엔 산 사람을 채워 넣으면 되니까. 위험한 일이 늘어나면? '위험 관리'는 값 싸게 '민영화' 하면 된다. 새로운 하청업체는 새로운 청년노동자를 구할 것이다. 그런 노동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 주니까. '위험의 외주화'가 '죽음의 순환고리'를 이루는 원리이고 시스템이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가 "발전 산업의 민영화·외주화 정책 이후 촉발된 위험의 외주화가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진짜 원인"이라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산업 현장의 이슈로 떠올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싸움에 돌입한다고 20일 선언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노총 한전산업개발노조는 이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조위 발표 결과의 핵심은 원하청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고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며 "산업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죽음의 외주화의 상징이 된 발전소에서부터 위험의 외주화 중단, 노무비 착복 근절, 직접고용 등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참석했다. 김 씨는 "제 아들이 업무 수칙을 너무 잘 지켰는데도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을 때 정말 기가 막혔다"며 "제 상식으로는 수칙을 잘 지키면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죽었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고 김용균 특조위의 조사 결과 발표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김 씨는 "그간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구체적인 조사가 없어 의문이 들었는데 이번 조사로 잘못된 민영화로 비정규직이 만들어졌고, 반값도 안 되는 노무비 지급으로 (용역) 회사가 나머지 이익을 착복한 것을 알게 됐고, 사망 사고 감점 지표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한 것을 알게 됐다"며 "현대판 노예제도에 내 자식이 당했다는 것에 큰 분노로 몸서리가 쳐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정부는 자회사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자회사는 또 다른 하청일 뿐이고 이 구조(간접고용을 유지하는 구조)에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며 "제대로 안전하게 바꾸려면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발전소를) 재공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지, 왜 우리가 그간 방관하며 살 수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바람직한 한국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어제 특조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조위 활동이 끝나는 9월을 넘어 권고안이 현장에서 어떻게 이행될지 점검하고 감시하는 것을 특조위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밝혔다"며 "특조위는 동시에 특조위의 권한을 넘어 시민사회와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면서 위험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오늘은 당사자인 노동자가 더는 위험에 내몰리지 않고 빼앗긴 권리를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밝히는 첫 자리다"라며 "이제 김용균 재단으로 전환하는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와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과 차별을 끊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전했다.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진짜 원인은 개인 부주의 아닌 위험의 외주화"
19일 고 김용균 사망 사고 조사 결과 발표에서 특조위는 "김용균은 작업지시, 업무수칙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발전 공기업의 경쟁을 촉발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발전 산업의 민영화·외주화 정책을 고 김용균 사망 사고의 진짜 원인으로 지목했다.
발전 산업의 민영화·외주화는 2001년 전력사업 구조개편 정책에 따른 한국전력공사 분사에서 시작됐다. 해당 정책으로 한전의 발전사업은 5개 화력발전사와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나뉘었다. 이후 발전사들은 기술경쟁 도입과 비용 감소를 위해 사업을 민간에 개방하고 발전 정비 사업과 연료·환경 설비 운전 사업을 외주화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발전 산업의 민영화·외주화 정책은 "발전사 경쟁 과정에서 관리비가 늘고, 전기생산 직접 인력도 감소"하는 등 애초 목표였던 발전 공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실현하지 못했고, 부작용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야기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를 보면, 외주화 이후 발전회사는 직접 업무 지시로 인한 불법 파견 시비를 피하고자 하청 노동자에 대한 업무 지시를 서류와 매뉴얼 등을 통한 소극적 방식으로 수행했다. 노동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필요한 지시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 과정도 복잡해졌다. 원·하청 구조 아래서 긴급한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현장 노동자는 하청 업체 상황실에 연락해야 한다. 상황실은 다시 원청에 연락해 대처 방안을 묻는다. 위험에 대한 대처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특조위는 이 역시 불법 파견 논란을 피하기 위한 운영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불법 파견'에 눈감은 정부 당국, '불법 파견'을 피하려는 행정적 '꼼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위험 요소가 되레 늘어나게 된다. 이는 언제든 '인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직접 위험을 직면하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요구 전달은 가로막혔다. 특조위는 "원청과 하청 간 의사소통은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이고 하방적으로 이루어진다"며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는 소통과 개선의 흐름은 봉쇄됐다"고 설명했다.
원·하청 간 수직적이고 신분제적인 구조는 ‘죽음값’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노동자가 사망하면 발전소의 경영실적 평가점수가 깎인다. 원청 노동자가 숨질 경우 12의 계수를 곱한다. 하청노동자가 숨질 경우의 계수는 4다.
한편, 외주화로 인해 하청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는 악화됐다. 특조위는 "발전 산업 민영화·외주화 정책에 의해 운전 및 정비 사업에 진입한 민간업체는 미숙한 상태의 청년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여 임금을 낮추고 이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며 "설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숙련도가 중요한데 3년 단위 단기 도급계약을 통해 노동자를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하청 노동자 저임금의 원인 중 하나로 하청업체의 임금 착복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특조위는 "건강보험료 납부실적을 토대로 인건비 지급액을 역산한 금액과 노무비 계약금액 중 정산금액을 비교한 결과 협력사가 지급받은 노무비 중 실제 노동자에게 지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47~61%에 불과하다"며 "현재의 도급비 구조가 하청 노동자에게는 저임금을, 협력사에는 과도한 이윤을 안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위험 저임금' 구조는 '위험의 외주화'를 고착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희생당하는 노동자는 고위험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다.
실제 하청 노동자의 사고 위험은 원청 노동자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특조위에 따르면, 하청 노동자의 작업 관련 사고 및 중독 위험은 원청인 발전회사 노동자의 5.6~6.4배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1명 증가하면 연간 작업 관련 손상이 0.75회 늘어난다.
특조위는 발전 산업 분야 위험의 외주화 개선을 위한 권고안으로 정비·운영 업무의 민영화·외주화 철회를 제시했다. 정부와 국회에는 도급 승인 업무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사업주의 산안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련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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