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세 명의 필자가 담당하던 '삶은경제'가 이동기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 지부장의 특별 기고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지부장은 지난 보수 정권은 물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지속되는 금융 시장의 갖가지 위기를 큰 틀에서 짚고, 정부가 금융 시장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의 연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집자.
① 바보야, 문제는 금융위원회야! : 애완견이 된 워치독
② 공매도 : 고빈도 매매(HFT)와 증권거래세의 함정
③ 대체거래소(ATS), 투기자본의 저수지?
④ 공매도, 삼성증권 배당 사태, 그리고 예탁제도
⑤ 분식 프레임에 갇힌 삼바, 공시와 상장관리는요?
⑥ 코스닥 잔혹 사, 개미 홀로코스트
⑦ 대한민국 자본시장, 다시 기본으로!
우리나라 주식투자인구는 대략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점령했다. 공매도, 삼성증권, 삼바, 상장폐지 등등. 미중 무역 분쟁과 산업 구조조정으로 맥 풀린 증시에는 설상가상. 투심(投心)이 들끓는 건 당연하다. 정부의 진단과 대책이 명쾌하지 않으니, 또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의 줄임말)" 탓이 된다. 진범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오히려 정부평가에서 1등을 하고, 대통령 격려금까지 받아 정치권 영입 1순위가 되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에 치여 응급실에 실려 온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과(국토부, 고용부), 내과(기재부, 공정위)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예쁘게 봉합부터 한 성형외과(금융위)가 고액성과급을 챙긴 셈이다.
가계부채 억제, 대출 금리·카드수수료 인하,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환상곡까지, 하나같이 인허가와 감독권이란 쌍칼을 들고 일찍부터 잘 길들여온 금융기관 팔 비틀어 짜낸 억지 성과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들의 현란한 수사와 분식에 넘어 갔다. 알고도 묵인하는 지도 모르겠다. 건강에 안 좋아도 에너지드링크는 이 분야밖에 없으니까. 이로써 금융감독 체제 개편은 물 건너가고, 오히려 해체될 조직이 정부를 장악했다. 이제 한국경제는 꼬리(금융)에 휘둘리는 몸통(실물)이 될 것이다. 2008년 운 좋게 비켜나간 금융위기가 다시 올까 두렵다.
금융관료들은 여전히 7~80년대 관치의 향수에 빠져있다. 기업을 강제로 상장시켜 공급을 늘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수요를 떠받쳤다. 기업에는 당근(세제혜택)과 채찍(세무조사), 투자자에겐 공모주 특혜만 주면 끝. 마치 건틀릿을 착용한 타노스처럼 무소불위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양상은 달라졌다.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며 더는 등 떠 밀 기업이 사라졌고, 완전 개방된 자본시장은 외국 자본의 놀이터가 됐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증시의 현 주소는 어떤가. 공급의 50% 이상이 10대 그룹(삼성 20%), 수요의 40% 이상이 외국인이다(코스피 시가총액 기준). 공급과 수요 모두 과점인 구조에서, 더는 관치 약발이 먹힐 리 없다. too big to control.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관치는 질주했다. '관'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치'에 몰두한다. 내성이 생긴 코스피에 약발이 안 먹히면, 덩치 작은 코스닥에 임상시험하면 된다. 부작용이 생기면 개인 책임으로 돌리고, 효과는 과대 포장한다. 정권이 바뀌자 '창조' 금융을 '혁신' 금융으로 간판만 바꿔달았다. 공매도, 삼바 문제도 마찬가지. 자본시장 규율 문제를 플레이어들의 도덕적 해이로 몰고 갔다. 투자자 보호는? 금융위가 공중 분해돼 세종시에 처박히지 않으려면 '금융 산업 진흥'에 올 인해야 한다. 그러다 인보사처럼 문제가 생기면? 그건 식약처 얘기고, 자고로 금융이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서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워! 살아남은 자가 강한자라고 했던가? IMF 외환위기의 주범이 구조조정에 앞장섰고, 카드대란·저축은행 사태의 원흉이 소방수가 됐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와 닮은꼴이다.
실물경제 규모를 넘어선 금융이 버블이다. 더구나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다. 삼성전자가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외국인이 팔아댄다. 반대로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사들이면 원화가치가 올라 삼성전자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 증시가 박스권에 갇힌 원인 중 하나다. 중국은 이를 반면교사 삼아 끝까지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 우리 자본시장을 하나의 기업으로 보면 대주주는 환율과 경기예측, 산업 등 모든 측면에서 더 많은 정보와 투자기법을 보유한 거대 외국자본(갑)이다.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자(을)도 따라가기 바쁜데, 개미(병)의 백전백패는 당연하다. 금융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다. 그런데 금융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외국자본은 통제할 수 없으니(치외법권), '을'의 규제를 풀어주는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통합법과 대형 IB육성 등 지난 10년의 정책방향이 그러했다. 그 결과는? 갑은 을, 을은 병을 털어먹는 먹이사슬만 공고해졌다. 브레이크(투자자 보호)에서 발을 떼고 엑셀러레이터(금융산업 발전)만 밟아 댄 금융위에 로드킬 당한 개미만 수백만이다.
필자는 앞으로 우리 자본시장의 해저드를 구조적 시각에서 다시 조명하려 한다. 산업에 무용한 '생산적 금융' 자본에 포획된 '포용적 금융'의 실상을 파헤쳐 볼 작정이다. 정관계, 업계와 언론에 자욱한 정책 환상을 걷어내고 적확한 처방을 모색하는 데 조금이나 보탬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지난 20여 년 간 수백 번도 넘게 접해온 내 이웃의 "노후자금, 전세금, 다 날렸어. 이제 어떡하지?"란 탄식을 조금이라도 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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