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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30채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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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30채나 있다

[초록發光] 핵폐기물, 답이 없다

평생을 시민과학자로 활동하신 고(故)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은 핵폐기물의 원초적인 처리 불가능성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는 유명한 비유로 표현했다. 사용후핵연료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의 반감기를 고려하면 10만년 이상을 격리해서 스스로 방사능이 줄어들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매년 750톤 가량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진통 끝에 겨우 경주에 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지어는 놓았지만, 고준위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방식조차 결정된 게 없다. 이런 사정이니 핵폐기물 문제는 핵발전 산업에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찬핵진영에게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마저 괴담이자 선동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저장수조에 보관되고 있으니 '간이 정화조' 정도는 갖추고 있으며, 파이로프로세싱, 토륨원전, 스마트원전 등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줄이거나 기존 핵발전소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들이 개발 중이기 때문에 핵폐기물이 답이 없다는 선동은 근거가 없다는 주장마저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핵발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간과할 뿐 아니라 현실과도 거리가 멀다. 핵폐기물은 똥, 그것도 아주 특별한 똥이다. 생명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내뿜는 똥이며, 저장고에 넣어 둔다고 미생물이나 다른 어떤 화학물질이 그 똥의 방사능을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니 '정화조'라는 표현 자체가 허구일뿐더러, 그 똥이 저장수조의 용량을 넘치고 있다는 상황도 애써 보지 않으려는 말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그 자체로 핵폐기물을 없애주지는 않을뿐더러 막대한 에너지와 화학물질 활용, 군사무기 시비 등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기술이다. 토륨원전과 스마트원전 역시 기술 자체가 언제 실용화될지도 불분명하고 재생가능에너지원과 비교할 때 경제성마저 확보될지 의심스럽기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건설될 것으로 보이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은 핀란드어로 은둔자라는 의미인 '온칼로'다. 2004년부터 건설되고 있는 이 시설은 폭 5미터, 높이 6.5미터의 터널이 거대한 암반을 뚫고 지하 500미터 까지 지그재그 형태로 5km나 이어진다. 경주의 저준위 방폐장하고는 토목공학적 기준으로 보아도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시설이 가능한 입지를 찾기 쉽지 않고 처분 방식의 안정성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계 30여개 핵발전 국가 중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가동하고 있는 나라가 아직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설령 온칼로와 같은 시설이 완공된다 하더라도, 핵폐기물 처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이 제기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봉인은 인류의 나이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천문학적 시간 동안 해제되지 않고 남을 수 있을까? 지난 100년 사이에 두 차례 세계대전을 벌인 인류사회가 또다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다면?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같은 온갖 예기치 않은 변화에도 건재할까? 이 시대의 주요 언어와 온갖 이미지를 이용해 경고를 남긴다한들, 먼 미래의 인류는 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감독의 나래이션처럼 "먼 훗날 당신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은 지난 정부 시절이던 2013년에 이미 한 차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했지만 위원 선정의 편향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위원회 활동을 종료하며 내놓은 권고안도 논란을 낳았다. 2051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여 운영해야 하며, 이를 위해 처분시설 부지 혹은 부지조건과 유사한 지역에 지하연구소의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하고, 건설과정에 착수하여 2030년부터는 실증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정부가 마련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계획에 대해 관련 지역에서는 강하게 반발했고, 중간저장 시설의 성격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남겼다.

현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다시 공론화에 붙이고자 하는 이유가 그것이지만, 정부는 재공론화의 시점과 방식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만큼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반증일 텐데,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사용후핵연료의 상황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핵발전소가 더 많은 핵폐기물을 생산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 역시 직시하지 않으면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을 표방했음에도, 지금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하여 화장실 없는 아파트 4채가 더 지어지고 있고 신고리 4호기는 핵연료를 장전하고 있다. 이 모두가 가동되면 언젠가 혹은 조만간 영구격리 처분해야 할 방사능 아파트가 한국에는 도합 30채가 될 것이다. 핵발전소라는 아파트에 방사능 똥이 넘치고 있다. 이것은 선동과 괴담인가, 아니면 9시 뉴스를 통해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팩트인가? 문득 한국의 유권자 중 "화장실 없는 아파트" 표현을 아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하다.

마침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를 앞둔 3월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누구든 시민선언에 참여할 수 있다. (☞관련 링크 바로 가기 : 핵폐기물 답이없다 시민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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