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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교복’은 진정으로 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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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교복’은 진정으로 편한가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2. '복장의 자유'야말로 편함의 전제 조건

학교에 다니며 교복을 입고 생활해봤다면 교복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 것이다.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대부분은 '양복', '슈트' 스타일의 교복을 채택하고 있다. 교복은 와이셔츠, 바지 또는 치마, 그리고 (보통 '마이'라 부르는) 재킷과 넥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교복은 대부분 재킷을 입으면 팔이 잘 안 올라가기 일쑤이며, 정전기도 잘 일어나는 너무나 불편한 옷이다. 안 그래도 많은 학교가 단열과 냉난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 교복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기까지 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여학생 교복이 너무 몸에 딱 붙고 작은 사이즈로 나와서 활동하기도 불편하고 숨 쉬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 결과, 2018년 7월 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부에 '편한 교복'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여러 학교에서는 교복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일어났다. 교육청들도 '편한 교복', '생활 교복', '생활복' 등의 이름으로 개선된 교복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후드티와 면티셔츠 같은 일상생활에서 곧잘 입는 형태의, 통풍이나 보온도 더 나은 교복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편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편한 교복' 논의는 학생들의 편의성을 우선하여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아진 부분이 있다. 양복 스타일의 교복을 입는 것이 학생답고 단정한 모습이라고 여겨왔던 기성세대의 편견을 넘어,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또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바지, 치마를 비롯해 각기 다른 교복을 지정하면서 '남자다운 옷과 외모', '여자다운 옷과 외모'를 나누고 강요해온 것도 탈피할 기회이다. 여학생들이 몸매와 사이즈에 신경 쓰게 만들었던 작은 사이즈로 나오고 몸에 딱 붙는 교복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여학생들이 받는 두 가지 압박

하지만 교복의 스타일이 후드티 등으로 바뀐다고 해서 정말로 학생들이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1학년 때는 화장도 하나도 하지 않았고 교복도 줄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교사의 허락 없이 엘리베이터에 타곤 했고 수업 중에 집중도 잘하지 않곤 했다. 그럼에도 옷차림 때문에 '학생다운 모범생'이라고 여겨졌다. 반면 2학년 때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줄인 교복을 입자 어른들, 교사들은 나를 '불량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1학년 때와 같은 행동을 하다가 걸려도 더 많이 혼나곤 했다. 틴트를 진하게 바른 날이면 교사들로부터 "술집 여자 같다", "쥐 잡아먹었냐"라는 말을 들었다.

특히 여학생들이 외모에 대해 받는 압박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장을 하고 몸매를 관리하고 딱 붙는 옷을 입으라고 한다. 사회의 미적 기준에 맞추어 꾸밀 것을 요구받는다. 주로 대중매체나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받게 되는 문화적인 압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꾸미지 말고 학교 규칙대로만 입고 최대한 자기표현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학교와 어른의 지시에 순종하고 연애나 외모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하고, 공부에만 전념하라는 것이다. 주로 학교나 어른들에 의해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받게 되는 압박이다.


둘 중 어느 쪽의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지는지는 지역마다 학교마다 개인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일각에서는 용의복장규제가 완화되니까 여학생들의 화장이나 딱 붙는 옷 입기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성차별적 외모주의나 화장·의류 기업들의 마케팅에 휩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용의복장을 단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하지만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규칙 때문에 오히려 규칙을 위반하는 옷과 화장이 더 자유롭고 멋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청순'해 보이는 메이크업 등이 '소녀다움', '학생다움'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학생들에게 '허용되는' 꾸밈 방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 두 가지 압박은 서로 얽혀서 작용하고 있기에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다. 학교가 성차별, 외모주의, 마케팅을 강제로 차단시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사회 문제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고 대응할 힘을 기르고 발휘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정말로 편해지려면

'편한 교복' 논의가 사회와 학교에서 쉽게 받아들여진 데는 학생들이 '학생다움'을 지키며, 꾸미지 말고 공부나 해야 한다는 통념이 작용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편한 교복' 검토를 지시하며 했다는 발언은 "아이들이 교복을 받으면 더 수선해서 몸에 딱 맞는 식으로 입는다"였다. 학생들이 교복을 고쳐서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 문제라는 소리다. 복장규제와 외모주의 등에 대해 제기된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여학생들이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지적만이 남아버린 듯해 아쉽다.

'편한 교복' 논의는 분명 과거의 교복보다는 나아진 것이고 학생들의 편안한 생활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후드티나 생활복 같은 다른 스타일의 교복을 도입하는 것이 여러 문제들의 해법이 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한다. 후드티 교복을 입더라도 여학생들은 몸매나 외모를 평가당할 것이고 그 와중에 어느 정도는 꾸미고 성적 매력을 갖추라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다가 학생답지 못하고 불량하다고, 단속당하고 처벌받고, '술집 여자 같다'는 등의 모욕을 당할 것이다.

애초에 '편한 옷'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편하다는 것은 각자의 몸 상태나 그날그날의 체감, 하는 활동과 여건, 취향과 개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형태의 획일적인 교복과 용의복장규제는 개인의 감각과 자유를 제한하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이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편한 교복'을 만들고자 한다면,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학교장이 학생의 용의복장 등에 대한 규칙을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 학교장의 재량으로 교복이나 복장을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고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마저 그저 '노력'해야 할 일로만 규정되어 있어서 정작 그 옷을 입고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 '교복', 즉 '제복'을 강제하는 방식 자체가 편하지 않다. 왜 학생은 '정해진 옷차림', '똑같은 용의복장'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왜 '편한 교복' 논의에서도 '교복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가? '복장의 자유'야말로 편함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여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복 스타일을 바꾸는 것 이상의 고민과 변화이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권리와 외모주의나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앞서 지적한, 여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편안함'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작은 변화인 '편한 교복'에 대한 고민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권리, 그리고 성별과 외모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에 대해 더 깊은 논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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