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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강남식 교육'의 포로로 삼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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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강남식 교육'의 포로로 삼을 건가?

[기고] 서울 송파구 혁신학교 논란 유감

최근 송파구 1만 세대 재개발 아파트 대단지에 신설되는 학교를 둘러싸고 혁신학교 찬반논란이 첨예해지고 있다. 교육감이 입주자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폭행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혁신학교는 지금 전국에 1500개를 넘어서고 있다. 1만 여 학교의 13%를 웃도는 비율이다. 공부를 안 시키는 학교, 학력저하 유발학교, 전교조 학교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9년 간 혁신학교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이들 주장의 핵심은 혁신학교 교육방식이 현재의 입시제도에 불리하다는 것과 학부모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요구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모 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함께 가라는 부모와 앞서 가라는 학부모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세상은 전쟁 같은 경쟁이 심화될 뿐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아이를 루저로 만들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자유로울 부모는 많지 않다. 게다가 그 학군 좋다는 강남 가까이 온 게 아닌가. 그러니 강남식 교육을 누릴 기회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강남식 교육이란 무엇일까. 강남 학교들만의 특별한 교육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서울은 물론 전국 모든 학교들은 같은 교과서로 같은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 때의 강남식 교육이란 결국 학교가 아니라 학교 밖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유명학원 밀집과 이른바 입시 최적화된 족집게 과외에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것. 혁신학교는 현행 입시제도의 틀 안에 있지만 지식 암기나 문제풀이 식 교육에서 벗어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게다가 교육내용과 방법상의 혁신 뿐 아니라 평가혁신을 위한 고민과 실천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지식암기와 문제풀이에 최적화된 기존 학원들과는 궁합이 맞을 리 없다. 입시전문 학원들이 몰려와야 아이들 입시준비하기도 좋고 집값도 덩달아 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일석이조의 기회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혁신학교 주변 집값이나 전세 값이 1억 원 이상 올랐다는 기사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통과 협력, 주체적 삶의 태도, 비판적 사고력 등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는 시대에 더 이상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지식 암기와 지식습득 양으로 승부하던 시대가 끝나고 있는데 아직도 입시제도는 그 방향을 바꾸지 못했으니 혁신학교 교육에 동의가 되도 여전히 기존 교육방법과 절연하기는 쉽지 않은 게 부모 맘일 수 있다. 그러나 입시에 성공해 서울대에 들어간들 세상변화 흐름은 예전과 달라져 '서울대=성공보장’ 등식이 성립하지 않고 있다. 이미 서울대 박사가 되도 4명 중 1명은 백수인 상황이 된 지 오래다.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강남식 교육 신화는 현실에 의해 낡은 것임이 입증되고 있다. 옳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리적 관점에서도 혁신학교 교육은 확대될 수밖에 없고 확대되어야 한다.

더불어 '혁신학교=학력저하' 프레임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왜곡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교육과정평가원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동안 연구들이 분석대상으로 한 학교와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국의', '공식적' 성취도 평가결과를 근거로 한 연구라는 점에서 혁신학교를 학력저하 학교로 낙인찍는 왜곡과 선동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러니 혁신학교가 입시에 불리하다는 주장도 올바르지 않다. 특히 혁신학교 출신들이 대학 가서 자기주도적인 진짜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고, 실제로 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떤 교육이 더 필요한 지는 분명하다.

전교조학교라는 인식에서 혁신학교를 극구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전교조를 해충에 비유한 박근혜식 인식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잠자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사진을 보아도 자기 자식만은 엎어진 아이가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라 믿고 싶은 게 부모 맘이다. 자해놀이와 자해 인증샷 올리기가 유행하고 드러난 수만 7만 여명에 이르는 여학생이 자해를 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도 눈앞에 닥친 현실로 확인되기 전에는 내 아이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얘기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게 부모다. 그러니 극소수 성적 좋은 아이들 중심의 학교교육을 모든 아이들의 자존감과 성장 중심의 학교로 바꾸자는 전교조의 주장과 노력은 공부 안 시키고 선생 편하자는 얘기로 들리고 뭔가 불순한 의도를 숨긴 것으로 오해된다. 자신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상상도 안 되고 믿을 수도 없다. 해충에 갉아 먹힐 것 같은 공포가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가 모두 혁신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교조가 지향하는 교육은 아이들을 고통에서 건져 올리자는 교육이다. 자기 자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 제대로 성장하게 해주겠다는 것을 극구 거부하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학부모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 비민주성에 대한 주장은 또 어떤가. 서울에서 혁신학교 지정을 둘러싼 학부모와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두 군데가 전부였다. 그것도 한 곳은 혁신학교가 되면 학급당 학생 수가 적어 내신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반대했던 경우다. 이 얼마나 비교육적 관점인가. 이 경우는 그래도 혁신학교 지정 철회까지 가지는 않았다. 지정철회까지 갔던 유일한 한 곳은 강남의 사립 고등학교 뿐이다. 최근 혁신학교 지정을 두고 일부 학부모 반대가 논란이 된 경우가 있지만 60% 이상 다수 학부모가 동의하여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혁신학교 지정이 된 학교다. 이 학교는 소수 혁신학교 반대 학부모들이 무리하게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경우다. 신설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경우에 문제가 된 학교는 이번 송파구 학교가 처음이다. 이것을 마치 혁신학교에 대한 학부모 반대가 심한데도 교육청의 일방적 정책 밀어붙이기의 일반적 사례로 거론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합리적 대화와 소통 자세를 갖지 않으면 그것은 실질을 담보하지 않는 형식적 민주주의에 그칠 수 있다. 마치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내용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해 역사를 30년 전으로 되돌렸던 지난 10년처럼 말이다. 혁신학교는 자사고나 특목고 같이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특수한 학교유형이 아니다. 교육정상화를 위해 일반학교 혁신정책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극복해야 할 기존 체제나 관행이 없어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신설학교야말로 혁신교육을 실천하기엔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신설학교 혁신학교 지정은 바람직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문용린교육감은 학부모들의 가열 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설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기도 했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입시레이스를 위한 장기프로젝트에 돌입해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초·중학교는 기본 소양교육 단계라는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초·중학교가 의무교육인 이유는 바로 초·중학교 교육이 한 인간이자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양교육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세금으로 초·중학교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 단계 교육에 관해서도 다양한 견해와 철학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시민교육과 소양교육에서는 학교선택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교육을 더 공평하게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이런 관점에 선다면 오히려 혁신학교 교육을 더 많이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에 부합한다.

교직 생활 중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행복을 가장 크게 느꼈던 시기이고 교육적 결과로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눈으로 확인했던 시간이 4년간의 혁신학교 근무시기였다. 그런 사람으로서 혁신학교 지정을 둘러싼 최근 논의를 보니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다.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이들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서 일 텐데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헌신으로 본인들 자식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나서겠다는 교사들과 정책추진자들을 뿌리치는 것을 보면서 2018년 마무리를 하게 되니 참으로 씁쓸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사람이 교육감으로 당선되던 현실이었으니 그리 낯설고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는 것이고 어쩌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들의 의견을 집단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도 민주주의 발전과정의 진화를 보여주는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혁신학교와 혁신교육 주체들은 너무 상처받지도,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고 이번 사태를 혁신학교를 더욱 다지고 발전시키는 기회로 삼을 일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좀 더 많은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배움이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지난 1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혁신학교 지정 반대 시위를 하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정 주민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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