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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꼰대'일까?

[살림 이야기]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위한 준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불멸의 고전 <그리스인 조르바>(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쓴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간결하면서도 삶의 철학이 담긴 이 문장은 그의 작품 속 '조르바'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기도 하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평생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온 60대의 조르바는 노인이면서 동시에 청년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계산하지 않고 단순하게 세상을 보는 조르바의 일상은 놀라움과 기적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자는 '정언명령(正言命令)'은 노인 조르바를 '꼰대'가 아닌 청년으로 만드는 힘이다.

▲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 <나이듦 수업>(고미숙·정희진·김태형·장회익·남경아·유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프레시안

'꼰대'를 만드는 사회


흔히 꼰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 권위를 앞세워 아랫사람을 짓누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꼰대는 '불통'의 다른 이름이다. 광화문의 세월호 유족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지킴이들 앞에서 막말과 삿대질을 서슴지 않는 '어버이연합'의 노인들은 '꼰대병'이 집단적으로 발흥했을 때 어떤 사회 해악을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삶의 연륜과 지혜로 후세대를 포용하고 이끌어야 할 노인들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 대결의 진원지 노릇을 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리학자 김태형은 책 <나이듦 수업>(고미숙·정희진·김태형·장회익·남경아·유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에서 '꼰대'의 심리사회학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 노인 세대의 삶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기 인생을 긍정적으로 회고하기 어려운 삶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반복적으로 패배해 온 삶을 살아왔습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세대입니다. 노인기까지도요. 자유와 권리를 누린 세대라기보다는 인내하고 머리 숙여 산 세대입니다. (중략) 같은 맥락에서 우리 노인 세대는 지배집단에 대체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 세대가 인간성이 나쁘거나 비겁해서 그런 게 아니고 그만큼 당시 폭압이 심했어요. 그러니까 저항하기보다는 순종하는 쪽이었습니다. 이런 삶은 사람을 조금씩 비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복종심을 키워요. (중략) 마지막으로 한국 노인 세대는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인생 목표가 내 집 마련이나 자식의 출세로 좁혀진 거죠. 세상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고 다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나만 살아남으면 되는 개인주의적 삶 쪽으로 끌려왔습니다."

김태형은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휩싸여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된 한국의 노인들은 '나쁜 분'들이 아니라 '아픈 분'들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자기평가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그걸로 됐다는 '자기 긍정'이야말로 꼰대병 치유의 키워드다.

'징헌 놈의 시상'을 살아온 어르신들

우리 마을 여민동락 노인복지센터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은 꼰대병은 아니지만, 다들 마음의 병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18살에 산 넘고 물 건너 깡촌에 시집을 와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할머니는 센터에서 마련한 영화관 나들이에 소녀처럼 들떴다. 나이 80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극장이라는 곳을 '귀경' 간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눈 뜨면 밭에 나가 하루 죙일 일만 하는디 묵을 것은 없어서 배를 곯고, 전쟁 터지고 나서는 인공을 피해 부뚜막 밑에 숨어 몇날을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이 죽기도 많이 죽었어. 참말로 징헌 놈의 시상을 살았당께"라며 슬쩍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 생의 고단함이 역력하다.

'징헌 놈의 시상'을 질기게 버텨 자식들 길러 낸 노인들의 황혼은 여전히 팍팍하다. 평생을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던 노인들은 성석제의 소설 속 '투명인간'들 같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들. 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노인 자살률은 세계 1위로 OECD 국가 평균 10배다. 김태형의 말처럼 한국의 노인들은 지금 많이 아프다.

'문제'에서 '존재'로, 존엄한 노후를 위해

영화 <인턴>(낸시 마이어스 감독, 2015)에 등장하는 노인은 인생 종반전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30살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이끄는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취직하게 된 70살의 벤(로버트 드 니로 분). 그는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직장 생활의 노하우, 신사적인 매너를 바탕으로 단숨에 젊은 사원들의 '멘토'가 된다. 그에게 인생 종반전은 빈곤과 고독 속에서 보내야 할 불행의 나날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이 만개하는 행복의 나날이다.

▲ 영화 <인턴> 중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정치적으로 소외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빈곤하지 않으며, 적당한 일자리와 문화생활도 보장되는 노년의 삶은 금상첨화일 것이다. <인턴> 속 벤의 인생이야말로 누구나 바라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노인 빈곤과 고독사는 갈수록 느는데, 사회보장체계는 노년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존엄하게 대우하기보다는 부양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신체능력 상실과 관계망 축소 등 노년에 맞이하는 도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그러나 물질적, 문화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인들에게 그 영향은 더 뚜렷하고 해롭게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은 '존재'가 아니라 '문제'로 취급된다.

사회적 존재로서 노인의 정체성을 되찾고 존엄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경제적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빈곤과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규정할 수 없도록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또한 기능적 접근을 넘어서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건강한 '노년의 양식'을 형성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호모 헌드레드' 시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는 개인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다. 젊었을 때부터 '나이듦'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다. 노인의 삶이란 늙었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젊었을 때 예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는다는 것은 미래에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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