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레오폴트 랑케는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본래 어떠했나"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즈음 랑케의 고전적인 사실주의 담론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해 다소 밀려났지만, 역사가에게는 여전히 역사 탐구의 근본 원칙이다. 특히 허구가 사실을 이기고 있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역사가들은 포스트모던 이론에 편승하지 말고 오히려 랑케의 '고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책의 탄생>(뤼시앵 페브르·앙리 장 마르탱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 돌베개 펴냄)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이 반세기 전에 태어났음에도 오늘날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는 이유는 이론이나 해석에 치중한 책이 아니라 사실에 충실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사회를 변화시켰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15세기 말까지 출판된 책(소위 말하는 '인큐내뷸라(incunabula)')이 약 2000만 권이고, 16세기에 생산된 책이 약 2억 권인데, 이 많은 책들이 유럽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사회를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저자들은 책이 하나의 "효소"였다고 비유적으로 말하지만, 로버트 단턴 같은 역사가는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실들'은 일반화된 개념이나 이론을 좋아하는 철학자나 사회과학자들에게는 잡다한 사실들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역사가들에게는 소중하고 흥미로운 사실들이다. 특히,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이 유럽과 유럽 바깥 지역으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지리적 추적과 어떤 종류의 책들이 생산되었고 계층적으로 소유되었는지에 대한 계량적 분석은 이 책이 '책의 역사'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책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손색이 없다. 책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사실적이고 계량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는 근대 초 유럽의 서적문화 및 문화 전반에 대해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동시대 다른 지역의 문화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출판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에서는 100년경부터 종이를 사용했지만, 서양에서는 12세기경에야 비로소 종이가 등장했으니, 동양보다 1000년 이상이나 늦은 셈이다! 금속활자인쇄술 역시 동양이 앞섰다.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15세기 중엽에 시작되었으나, 저자들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11세기 중엽에, 조선에서는 13세기 전반에 시작되었다. 특히 저자들은 태종이 1403년에 서적의 출판을 위해 내린 계몽적인 칙령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출판 분야에서도 동양의 우위는 지속되지 못했다. '직지'에 대한 우리의 자랑은 여기까지이다. 중국문화권에서는 무엇보다도 그 많은 한자를 활자로 만드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는 시험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대부분의 책들은 목판인쇄술로 생산되었다. 서양은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자본주의적으로 대량생산한 데 반해 조선은 목판인쇄술이나 필사를 이용해 수공업적으로 책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렀다.
조선의 책 생산이 저조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서양에서는 시장 판매를 위해 책을 생산한 반면 조선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민중을 교화할 목적으로 <삼강행실도> 같은 윤리서적을 찍어 필요한 곳에 배포했으며, 양반 집안은 가문의 영광을 과시할 목적으로 문집을 만들어 보관했다. 서양에서는 출판업자들과 서적상들이 시장 논리에 입각해 돈이 되는 책들을 골라 출판했지만, 조선에서는 국가가 서적 생산을 독점했다. 책은 양반의 상징이기 때문에 책을 판매하는 것은 저속한 행위로 여겨졌으며 금기시 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중국, 조선, 일본 가운데 조선에만 서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송대에 이미 민간 출판사와 서점이 존재했으며, 조선의 유학자들이 야만적이라고 무시했던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 민간 출판사와 서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에도 시대를 '서물(書物)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다. 서양에서 책은 중세를 붕괴시키고 근대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지만, 조선의 책은 중세적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도구였다. 한 마디로 서양에서 책은 변화의 원동력이었지만 조선에서 책은 체제유지용이었다 (강명관의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천년의상상 펴냄)).
책의 탄생을 주도한 힘은 '수요'다. 구텐베르크가 15세기 중엽에 가서야 활판인쇄술을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서적 출판이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활판인쇄술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목판인쇄술이 사용되고 있었고, 금속활자의 경우에도 메달, 화폐, 도장 등을 통해 그 원리가 알려져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공은 이러한 원리를 인쇄에 적용시키고 인쇄 실무적인 난점을 극복한 데 있다. 15세기 중엽에 구텐베르크처럼 활판인쇄술을 발명하기 위해 노력한 기술자들이 많았다는 사실도 당시에 책에 대한 '수요'가 많았음을 알려준다. 수요는 공급을 낳았고, 공급은 다시 수요를 창출하여, 최종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책의 역사는 뤼시앵 페브르와 앙리 장 마르탱의 '책의 사회사'를 넘어 '책의 문화사'로 진화하고 있다. 책의 생산, 유통, 소유를 계량적으로 확인하는 정도를 넘어, 실제로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떻게 읽었나 하는 문제가 역사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같은 책이라고 해도 독자마다 다르게 읽기 때문에, 예컨대 마르크스의 책을 읽는다고 모두 자동적으로 혁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책읽기'이다. 달리 말하면 독자가 저자의 책을 읽고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나'(전유)이다.
<책의 탄생>은 유익한 사실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예컨대, 서양에서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가 아니라 헌옷가지를 재활용했으며 그 때문에 헌옷가지를 수집하는 사업이 벌이가 좋았다는 이야기, 구텐베르크의 재정후원자 요한 푸스트가 구텐베르크를 토사구팽한 이야기, 인쇄노동자들은 첨단지식산업 종사자로서의 자부심을 과시하기 위해 칼을 차고 있었다는 이야기, 가격혁명기에 인쇄노동자들이 파업한 이야기, 근대 초의 저자들은 원고료가 아니라 증정본을 받았으며 그것을 후원자들에게 헌정하여 금일봉을 받았다는 이야기, 중세의 가장 흥미로운 지리학 서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장 드 망드빌이 쓴 거짓 견문기보다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이야기, 오늘날에도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도서시장은 신간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펴냈다는 이야기 등은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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