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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타도"와 '썩은' 지식 사이…교수직을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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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타도"와 '썩은' 지식 사이…교수직을 버리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여정에서 한번쯤은 헤어나기 힘든 좌절을 맛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무엇을 얻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의 전후 사상가로 손꼽히는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1927~2003) 역시 이러한 경험을 한 인물이다. 후지타는 자신이 겪은 시련의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여러 편의 저서와 평론으로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71년 호세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부터 쓰기 시작한 평론 10편을 모아 1982년에 <정신사적 고찰>(한국어판 조성은 옮김, 돌베개 펴냄, 2013)이란 책으로 엮어서 출판하였다.

▲ <정신사적 고찰>(후지타 쇼조 지음, 조성은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후지타는 1927년에 시코쿠의 에히메 현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들 형제자매 가운데 1명의 누나는 어린나이에 요절했으며, 2명의 형 가운데 큰형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오키나와에서 전사했고 작은 형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후 역시 전사하였다. 후지타 본인도 중학교를 졸업한 후 45년 2월에 소집되어 육군예과사관학교 을종생도로 입대하여 훈련을 받던 도중에 일본의 패배로 인한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순간 후지타 역시 많은 동년배들의 회고와 같이 조만간 자신도 전사하리라는 불안감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후지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겪은 전중 체험이 중요한 모티브이기도 하다.

패전 이후 후지타는 고향으로 돌아가 우선 식량 확보를 위한 농사일에 종사하다가 1947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후지타의 제자인 이이다 타이조에 의하면, 후지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루야마 마사오의 논문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를 읽고 도쿄대학에 진학하여 마루야마 문하에 들어가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후지타의 간략한 개인사를 보더라도,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근간인 천황제를 비판한 마루야마의 글이 그에게 얼마나 강렬한 충격을 주었을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후지타는 1950년에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마루야마가 주관하는 세미나에는 3학년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문학부 역사학 연구실에서 활동하였다. 3학년이 되던 1952년에 드디어 마루야마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들어가 문하생이 되었으며 53년에 졸업과 동시에 호세대학 법학부 조수(助手)로 채용된 이후 전임강사, 조교수를 거치면서 일본정치사를 강의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후지타 사상 형성의 원점은 일본을 뒤덮은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낳은 천황제 국가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 구조를 대상화하여 근본에서부터 파괴할 수 있는 논리를 발견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운동을 통해 만들어낸 민주주의=인민주권 이념, 인류 보편적 가치, 물신숭배에서의 해방, 보통 인간의 회복 등등의 논의로 나타났다. 즉 후지타 사상의 기본적인 요소는, 인민주권의 원리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운동을 통해 이러한 가치의식을 사회 속에 침투시키고 이를 구조화하여 결국 승리를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적 노력은 그의 초기 저작인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한국어판 김석근 옮김, 논형 펴냄, 2009)와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최종길 옮김, 논형 펴냄, 2007)에 잘 나타나있다.

▲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후지타 쇼조 지음, 김석근 옮김, 논형 펴냄). ⓒ논형
후지타가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1950년은 냉전이 심화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에서도 좌파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있던 시기였다. 역으로 말하면, 패전으로 인하여 국가 지배의 주도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던 전전의 지배집단이 여러 가지 혼란을 거치면서 드디어 정치의 전면에 재등장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대학을 다닌 후지타 역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한 때는 일본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한편 후지타가 대학을 사직한 70년대는 고도성장의 결실이 일본 전역에 확대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 상황이 연출되는 시기였다.

후지타가 영국에 유학중이던 68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본 전국의 대학에서 이른바 대학분쟁이 격화되었으며 특히 69년 4월에는 일본공산당에 반대하는 좌파 학생을 중심으로 전학련이 결성되어 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후지타가 재직하고 있던 호세대학에서도 67년부터 분쟁이 격화되어 학생들 간의 집단 충돌, 이에 대한 대학본부의 학생처분, 처분에 반발한 학생들의 총장 감금, 경찰 투입과 학생 체포 등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총장이 사임하고 새로운 총장이 부임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귀국한 후지타는 법학부 교수회 주임에 임명되고 실질적으로는 총장보좌 역할을 하면서 학생들의 투쟁에 맞서 각종 설명회 개최, 바리케이드 해제, 수업 재개를 위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70년 8월, 호세대학 내에서 일어난 학생 운동 단체들 간의 집단 린치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하여 학교 측은 폭력의 일소와 대학 자치를 위한 3원칙을 제시하고 사건 처리에 분주하였는데 여기서도 후지타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도성장의 그늘 아래서 지식인의 지적 퇴폐와 사이비 지식인의 양산이 진척되고 있는 가운데, 후지타는 대학이라는 허구적이고 특권적인 제도 속에서 교수로서 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71년 3월에 병을 이유로 대학을 떠난다. 전문가로서 누리는 사회적인 명예와 부를 거부하고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존재하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고찰하려는 행동은 어떤 면에서 모든 권위와 권력을 부정한 전공투의 자기부정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후 80년 4월에 호세대학으로 돌아올 때가지 후지타는 출판사 근무, 육체노동, 대학의 시간강사, 각종 세미나의 강사, 신문·잡지 등에 기고한 원고 수입으로 어려운 경제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나 후지타는 스스로가 택한 시련의 시기를 통해 새로운 정신운동을 시작하였다. 즉 그는 안보투쟁의 패배와 고도성장에 의한 일본 사회의 변화 과정을 일관하여 재음미함으로써, 주체적인 독립정신이 탈각된 절망적 상황을 돌파하려고 하였다. 근 10년간에 이르는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정신사적 고찰>이다.

▲ <精神史的考察>(藤田省三,平凡社). ⓒ平凡社
후지타는 이 책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생활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재음미에서 시작하여 이러한 원초적인 것들에 대한 탐구가 결국 현재적 상황으로 이어지는 지평을 탐구하고 있다. 즉 원초적인 것 속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것의 회복 혹은 그 본질적인 씨앗을 현실 속에서 완전히 발아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 붕괴와 재생, 몰락과 탄생이라는 혼돈의 상황에서는 의도와는 다른 비극적인 결과도 있을 수 있으며 예상하지 못한 운명과 만날 수도 있는데, 여기서 후지타는 정신사적인 고찰을 통하여 절망적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을 찾고자 한다.

결국 후지타는 이 책에서 일본 역사에 존재하는 붕괴의 순간이나 혼돈의 상황을 생산적인 측면에서 재음미하여 역사의 갈림길에서 묻혀버린 가치와 가능성을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 어울리는 것으로 발굴하려고 한다. 이처럼 사물이 가지는 양면성 혹은 이중성을 추적하는 후지타의 사유 방식은 초기 저작에서 보여준 일본의 전통 사회가 가진 이중성에 대한 고찰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전쟁 경험을 가진 후지타가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천황제를 무너트리기 위한 길을 모색하던 가운데 그 노력의 주체 중 일부였던 학생 운동의 극한적인 몰락을 목도하면서 스스로 대학교수직을 사임한 심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한 한국 사회는 구체제를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던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주장과는 달리 어느 순간 학교라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양면적 모습에서 오는 진지한 자기 갈등을 살펴야한다. 이러한 정신적 시련 속에서 자신의 사상적 일관성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진진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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