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교육위원회의 문턱은 역시 높았다. 오사카에 이어 에히메현에 있는 이마바리시 교육위원장을 만나 요청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약속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방문했건만, 교육위원장은커녕 교과서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과장조차 만날 수 없었다. 이마바리시 교육위원장이 의회 중이어서 모두 자리에 없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담당과장의 지시를 받은 담당자는 한사코 사무실 문 앞에서 요청서를 받겠다고 고집했다.
의자 하나 준비되지 않은 사무실 문 앞에서 일본시민단체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요청서를 전달하겠다고 온 한국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일본 시민단체의 요구와 과장의 지시라며 다른 곳을 갈 수 없다는 담당자와의 실랑이였다. 전날 오사카부 교육위원회와 오사카시 교육위원회를 방문하여 정중하게 요청서를 전달한 필자로는 이같은 이마바리시의 무례한 행동이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교육위원회는 한일 우호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서를 사무실 앞에서 받겠다고 한사코 고집했다. ⓒ양미강 |
에히메현은 2001년과 2005년 한일간의 문제가 된 우익교과서 후쇼샤 교과서를 계속 채택해온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에히메현의 이마다 교육장은 새역모계를 지지하는 확신파이며, 이마바리시 교육위원장 역시 전쟁 중에나 사용했던 교육칙어를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보수파의 대부로 불리운다.
그러니 새역모 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의 갈등도 뿌리깊다. 2001년 에히메현에서 후쇼샤 교과서가 채택되면서 에히메현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교과서소송을 전개하면서 교과서 소송지원단을 꾸려왔다. 이른바 전쟁을 찬미하는 '위험한' 후쇼샤 교과서를 채택한 에히메현 교육위원회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지난 10년간 후쇼샤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교과서 소송이 3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른바 '에히메 교과서소송'이라고 부르는 이 재판은 에히메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 약 30여명이 모여서 지원하고 있다.
에히메 교과서 소송을 담당해온 오쿠무라 에츠오씨는 지난 교과서 소송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물론 에히메 교과서 소송이 재판부의 원고부적격 판단으로 인해 2심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패소했지만 그만큼 교과서 소송을 통해 얻는 성과가 많았다는 것이다. 우선 교과서 채택심사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시민들이 교과서 채택과정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소송을 통해 채택과정의 정보공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보공개가 되니 당연히 교과서 채택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위원들의 발언을 파악하기 용이해서, 대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점은 일본 시민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교과서 채택에 있어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에히메 재판부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반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마바리시의 무례한 행동은 시민그룹의 소송운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파악하고 있다.이마바리시 교육위원회는 교과서 소송의 피고로 대응해왔기에 한국의 요청서 전달은 그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에히메 교과서 소송은 새로운 라운드로 진입할 예정이다. 소송의 당사자인 이마바리시 교육위원회와 에히메 교과서 소송단의 법정 싸움은 교육위원회라는 국가의 공권력을 대표하는 그룹과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풀뿌리 그룹간의 법정 투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 2001년 에히메현에서 후쇼샤 교과서가 채택되면서 에히메현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교과서소송을 전개하면서 교과서 소송지원단을 꾸려왔다. ⓒ양미강 |
2011년 올해 에히메 교과서 소송단은 신발끈을 동여매고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에히메현 교육위원회의 태도가 예년과 달라지지 않았기에 후쇼샤와 같은 우익교과서를 채택할 것이 예상되므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달 이어지는 학습회와 강연회, 심포지엄 등 빼곡하게 있는 일정을 보니 그들이 갖고 있는 긴장감의 정도를 전해져온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교과서 소송을 통해 국가의 역사인식을 문제삼아온 교과서소송단의 지치지 않은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도 그들의 파이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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