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실을 놓고 한의학 전통에서도 '외과 수술이 없지는 않았다'며 화타까지 들먹이는 반응을 보았다. (화타의 외과 수술 전통이 왜 동양 의학의 전통 안에서 사라졌는지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언급하겠다.) 한의학자로서 이런 식의 반응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민영익을 살린 외과 수술은 분명히 한의학의 큰 공백을 채운 기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알렌이 민영익을 살린 사건이 '한의학이 서양 의학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라는 평가에도 동의할 수 없다. 자, '의학사 산책'에서 미처 언급하지 않았던 뒷얘기를 살펴보자. 알렌의 외과 수술 덕에 위기를 넘긴 민영익은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했다. 수술로 봉합한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 알렌의 수술로 목숨을 건진 민영익은 봉합 부위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고생했다. 그는 한의사의 권유대로 개고기를 섭취함으로써 완치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결과는 예상대로다. 개고기 복용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아물지 않았던 봉합 부위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민영익의 전반적인 몸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민영익을 지켜본 알렌의 반응은 어땠을까? 내색은 안 했지만 알렌 역시 개고기를 이용한 식이요법의 효과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사실 한의학 체계 안에서 이런 식이요법은 당연한 처방이었다. <본초봉원>은 이런 처방을 적고 있다. "상처로 인한 패창이 낫지 않아 멀건 물이 흘러나오면 매일 개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 서양 의학과 한의학이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둘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멋지게 협연을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알렌도 있었지만, 장금이도 있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개고기 얘기를 좀 더 해보자. 개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털이 잘 자라는 데다, 몸에 열까지 많아서 더운 여름에 헉헉거리면서 '죽을 지경'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반면에 겨울에는 눈이 오면 꼬리를 흔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즉, 개는 여름에는 내부로 열이 집중되고, 겨울에는 외부로 열을 방출한다.
여름이 되면 사람은 더운 날씨 탓에 땀을 흘리는데, 이 때 수분이 증발하면서 몸의 열을 빼앗는다. 바깥의 더운 날씨와 달리 속은 차가워지는 것이다. 내부에 열이 가득한 개의 고기는 바로 이렇게 속이 차고 허약해진 사람에게 열의 근원을 보충해줄 수 있다. 개고기가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개고기의 효능과 금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성이 따뜻하고 짜고 신맛이 있어 오장을 편히 하고 혈맥이 잘 통하게 하고 장위를 든든하게 한다. 또한 골수를 가득 차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더워지게 하며, 양도를 일으키고 기력을 더한다. 피를 버리면 약효가 전혀 없다. 누런 색깔의 개가 상품이다." "양기를 돕는 효능은 모구육(牡狗肉) 즉 수캐의 고기라야 효험을 볼 수 있다." "성질이 따뜻하고 양을 기르므로 비위가 허하고 차가운 질병을 치료한다. 구워 먹게 되면 갈증이 항진된다."
경상북도 북부의 양반 가문에서는 개고기를 '유자(儒者)의 음식'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사위가 오면 닭을 잡기보다 보신탕을 대접한 데서 음식에 대한 한의학적 식견을 엿볼 수 있다. 양기가 극도로 허한 사람이 개의 물건을 복용하면 효과가 크다는 민간의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보신탕 집 주인의 단골손님에 대한 배려도 이런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밖에 편도염이나 인후염이 왔을 때도 민간에서는 뜨거운 개장국 복용을 권했다. 개기름은 식혀도 굳지 않고, 윤활성이 좋아서 목의 염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혹 편도염을 앓는 이라면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필자도 만성 편도염을 앓는 환자에게 보신탕을 권해 좋은 효험을 경험한 적이 많다.
세계화는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중 큰 타격을 받는 것이 바로 개를 먹는 문화다. 앞으로 여러 가지 요인 (예를 들면 동물 보호와 같은 가치의 확산과 더불어서) 개를 먹는 식문화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약효까지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의학이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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