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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나간 적십자사…헌혈자 몫 수십억 예산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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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나간 적십자사…헌혈자 몫 수십억 예산 '꿀꺽'

'돈 없다' 핑계 대며 바이러스 오염 혈액 유통은 '방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여러 번 헌혈에 참여한 시민에게 건강검진권을 사주는 등 혜택을 주겠다며 환자에게 공급되는 피의 가격만 올려놓고, 이렇게 조성된 21억 원의 예산을 엉뚱한 데 쓴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환자는 혈액 1백㎖당 7만2830원(400㎖ 전혈 기준)을 주고 피를 공급받는다(본인 부담 : 20%).

헌혈자 건강 검진 예산 수십억 원은 어디로

지난 2007년 3월 1일, 적십자사는 환자가 수혈을 받을 때 피 값으로 내야 하는 돈, 즉 혈액수가를 400㎖ 전혈 기준 4만4520원에서 7만2830원으로 무려 2만8310원이나 파격적으로 인상했다. 혈액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80%, 환자가 20%를 부담하도록 돼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인상분은 고스란히 시민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할 돈이다.

적십자사는 이렇게 혈액수가를 파격적으로 올리면서 몇 가지 인상 이유를 들었다. 특히 적십자사는 "일반 시민의 헌혈을 장려하고자 1인당 7만 원의 건강검진권을 구입해 연 5회 이상 헌혈자에게 주겠다며 21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상분 2만8310원 속에는 이 21억 원을 조성하는 항목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18일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확인한 결과, 2007년 3월 1일 혈액수가 인상 이후 건강검진권은 구입되지 않았다.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교육홍보실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2007~8년간 5회 이상 헌혈할 한 등록헌혈자를 상대로 건강검진권을 구입한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건강검진권 구입 명목 등을 내세워 2007년 혈액수가를 인상한 것은 맞지만 혈액수가 자체가 원가보다 낮게 책정돼 있다 보니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적십자사 교육홍보실의 해명을 보면, 실제로 2007년 한 해 동안 적십자사가 등록헌혈자 관리를 위해 쓴 돈은 고작 12억7000만 원에 불과했다.

2007년 혈액수가를 인상할 때는 건강검진권 구입(21억 원), 다회 헌혈자 관리(12억1000만 원), 문화상품권 구입(5억 원) 등 헌혈자 관리를 위해 총 46억2000만 원이 인상 요인으로 언급돼 있었다. 애초 헌혈자를 위해 쓰겠다며 혈액수가를 인상해놓고서 상당수 금액이 제 용도로 쓰이지 않은 것이다.

혈액백 교체하겠다던 54억 원도 사라져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지난 국정 감사 때,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이애주 의원(한나라당)은 "적십자사가 혈액백을 교체한다는 명목을 2005년 혈액수가 인상의 이유로 내세워놓고서 정작 지난 4년간 한 번도 혈액백을 교체하지 않았다"며 "이런 사정 때문에 4년간 적십자사는 총 54억9000만 원의 추가 수입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적십자사는 이런 지적을 받고서 지난 11월 10일부터 19일까지 8일간 적십자사 감사 부서에서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할 경우 부 차원의 추가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54억9000만 원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집행 여부, 내역을 중점 조사할 예정이다.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헌혈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분으로 환자에게 공급되는 혈액 가격을 올린 뒤, 그렇게 조성한 수십억 원은 엉뚱한 데 사용했다. ⓒ뉴시스

45억 원 없어서 바이러스 오염 혈액 유통?

이렇게 연간 수십억 원이 애초 조성 목적대로 쓰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적십자사는 또 다른 혈액수가 인상을 준비 중이다. 이애주 의원실이 입수한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지난 2월 26일 작성한 문건('HTLV-Ⅰ/ Ⅱ 항체 선별 검사 시범 실시 결과 보고서')을 살펴보면, 적십자사는 새로운 바이러스 검사를 이유로 또 다른 혈액수가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적십자사가 2007년 12월 3일부터 2008년 1월 31일까지 헌혈 혈액 35만3001건을 대상으로 백혈병, 신경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HTLV 검사를 실시한 결과 총 33건의 HTLV 양성을 발견했다. 적십자사는 "연간 약 160~200명의 HTLV 감염자가 지역, 연령에 상관없이 발견될 것이라고 추정된다"며 HTLV 검사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적십자사는 "특히 HTLV는 감염이 되어도 장기간 아무런 증상이 없고 자신이 감염돼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헌혈 전에) 문진을 통해서 이를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며 "감염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HTLV 검사를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적십자사가 산출한 연간 HTLV 검사 비용은 약 45억 원이다.

이런 적십자사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현재 적십자사는 매년 최소한 수십 건의 HTLV 양성 혈액을 피가 필요한 환자에게 그대로 공급하고 있다. 연간 수십억 원을 애초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45억 원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위험한' 바이러스 오염 혈액을 그대로 유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적십자사에서 근무했던 한 의사는 "혈액 사업을 돈벌이로 보는 적십자사의 구태가 지난 수년간 변화가 없다는 증거"라며 "보건복지가족부는 적십자사 감사를 혈액백뿐만 아니라 혈액수가 인상 내역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 목적대로 쓰이지 않은 예산은 다 환수해, HTLV 검사와 같은 꼭 필요한 용도에 쓰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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