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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상처만 남긴 노무현 정부와 삼성과의 동맹"

진보정치연구소 "삼성의 국가운영 프로젝트 1단계는 실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삼성특검법'이 23일 한나라당의 '제동'으로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23일 어렵사리 본회의를 통과해도 역사상 첫 '삼성특검'이 실제 꾸려질지 여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노 대통령은 앞서 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법(공수처법)을 들고 나와 공수처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특검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납득하기 힘든 공수처법을 연계시킨 배경으로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정부와 삼성의 '밀월관계'를 주목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론', '동북아 중심국가론' 등 노무현 정부의 핵심 국정 아젠다가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2002년 대선에서 소액후원자들의 희망돼지저금통 모금으로 7억6000만 원을 모았던 노무현 후보에게 삼성이 대선자금으로 최측근인 안희정 씨를 통해 전달한 돈만 30억 원이었다.

안희정, 이광재 등 핵심 측근들이 노 대통령과 삼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낙마하긴 했지만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명했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는 삼성에 돈, 아이디어, 사람 등을 빚져가며 운영됐다.

마지막까지 '삼성특검'을 막아서며 삼성을 감싸는 듯한 노무현 정부가 지난 5년간 삼성과 '동맹관계'을 통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삼성의 국가운영 프로젝트 1단계는 실패"
▲ 지난 3월 '투명사회협약 대국민보고대회'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노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 ⓒ뉴시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소장 조승수)는 22일 발표한 '삼성공화국과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라는 보고서를 통해 "얻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노무현 정부는 삼성의 국정보고서에 대한 수용과 의존을 강화했지만, 정치적으로 안정적 기반을 얻은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헤게모니의 자원을 갖게 된 것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개혁을 표방했던 노무현 정부의 삼성과의 동맹은 기존 지지기반을 취약하게 한 반면, 보수세력 등 기득권에서 새로운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엇던 것도 아니었다. '민주정부'가 서민의 이익이나 관심을 대변하기보다 재벌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삼았으나, 노무현 정부는 보수언론과 싸움을 포함해 집권 기간 내내 보수세력과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다.

연구소는 이처럼 정권 차원에서는 실익이 크지 않은 삼성 재벌과의 '동맹'에 노무현 정부가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집권세력인 민주파들의 이론적 취약함과 대안 부족을 지적했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삼성도 노무현 정부와 '동맹'을 통해 얻은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이 기업경영이나 경제의 차원을 넘어서고자 하면서 갖게 된 위력은 대단해 보였지만 삼성이 정치담론의 영역에서 중요 행위자 중의 하나가 되는 순간 전혀 예기치 못한 반대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

연구소는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도 정부 정책 나아가 사회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은 강력하게 나타났지만, 반대로 어느 때보다도 삼성과 그 지배집단이 잃은 것이 많았던 것도 노무현 정부"라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삼성이 국정담론의 적극적 조직자 역할을 통해 정부의 국정담론을 이끌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모든 삼성 관련 문제가 쉽게 여론화되고 대중적 비판의 조직화에 쉽게 노출되면서 반대의 조직화를 자극했다는 것"이라며 "삼성의 국가운영 프로젝트의 1단계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05년 이건희 회장이 고려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식을 고대 학생들이 집단으로 제지하고 나선 것은 삼성에 대한 반감이 어느정도 대중적으로 퍼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삼성, 이제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국정아젠다 셋팅?

그렇다면 과연 삼성이 국정담론의 조직자로서의 '정치적 역할'을 포기할까? 이 보고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 강력한 인적네트워크 등 물적 기반을 갖고 있는 삼성의 입장에서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지배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 따라서 삼성은 국정담론을 조직하는 역할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난 2005년 열린우리당 워크샵에 제출한 '매력국가론'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공개적인 방식은 기피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차기 정부의 기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선과정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삼성의 슬로건을 노무현 정부에 이어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의 '국민성공시대'라는 구호도 삼성 계열사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구체적인 정책 차원에서도 이 후보는 삼성의 오랜 숙원인 '삼성은행 설립'이 현실화될 수도 있는 '금산분리정책의 철폐'를 주요 경제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삼성은 상당한 부작용을 낳았지만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데올로기적 장악에 성공하면서 단순한 재벌 이상의 '권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성의 주장은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시되고 있으며, 삼성의 이익이 마치 사회 전체의 이익인 양 여겨지며, 법 위에 군림한 채 삼성이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표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상으로 신자유주의를 기본 기조로 한 '한국형 변형 신자유주의'의 안착을 도모하고 있는 삼성은 민주주의의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보정치연구소는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실장)의 '양심 고백'을 계기로 그간 성공적으로 은폐됐던 삼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드러난 각종 삼성의 불법행위에 대한 의혹에 대해 사상 첫 '삼성특검'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열렸다.

하지만 현 집권세력인 노무현 정권과 차기 집권 가능성이 큰 한나라당이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일찌기 노 대통령이 제안한 현 정권과 한나라당의 '대연정'이 '위기에 빠진 삼성'을 구하기 위해 성사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2일 경제학자 113명은 '삼성특검'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이 정부는 삼성 재벌의 비리와 불법을 척결하여 삼성으로 넘어간 권력과 민주정부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절호의 기회를 상실했다"고 비난했다.
삼성의 힘의 원천은?

진보정치연구소가 이날 발표한 100쪽 분량의 보고서는 삼성이 현재 한국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는 가를 자세히 분석한 것이다. 이 보고서 전문은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htttp://ppi.re.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삼성이 행사하는 지배력의 원천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 막강한 경제력

한국 사회는 산업자본 형성기부터 소수 대기업집단에 의존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전체 산업부문을 문어발식으로 지배하는 재벌체제가 형성되었다. 한국 재벌체제는 IMF 경제위기의 격변을 거치면서 삼성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재벌 중의 재벌로 삼성공화국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의 10대 그룹 내 매출비중은 30%에 이르며, 순이익은 35%로 더욱 비중이 크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수출 22%, 국세의 8~10%, 시가총액의 23%에 이른다. 1980년 이후 100대 기업의 집중도는 점차 완화되는 추세, 그러나 삼성그룹은 매우 급속히 확장 중에 있다.

1987~2002년까지 30대 기업집단의 자산집중도(GDP 대비)는 55.1%에서 54.9%로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5.8%에서 10.5%로 거의 2배 급증했다. 또한 매출액 집중도(GDP 대비)도 30대 기업집단이 66%에서 65%로 변화가 거의 없으나, 삼성그룹만 10.9%에서 15.8%로 증가했다. (김상조, "삼성관련보도 어떻게 경제의제를 왜곡하나", 토론문, 2005. 7. 12).

5대 그룹을 비교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2001년 삼성의 자산, 부채, 자본, 이익이 5대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30~40%에서 2004년 모두 50%를 넘는다. 자산 51.3%, 부채 50.7%, 자본 53.2%, 당기순이익 58.3%). (자료: 금융감독원, "자산규모 5조원 이상 23개 기업집단 재무제표 분석")

2)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 망

삼성의 지배력은 단순히 경제력만으로 구축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사회 지배력에서는 얼마나 강한 인적 네트워크('사람들의 관계망')를 형성하고 있는가도 아주 중요하다. 삼성은 평소 정계와 관계, 검찰, 법원,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을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식 인적 네트워크는 현대건설식과 자주 비교된다. 사건이 터졌을 때 찾아내는 것이 현대건설식이라면, 삼성식은 평소에 꾸준히 길을 닦아두는 방식을 말한다. 한마디로 격이 다른 것이며, 그 관리의 수준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삼성에 잘 보인 엘리트들은 승진도 순탄하다. 삼성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 삼성의 도움을 받아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일종의 '삼성 장학생')이 어떤 처신을 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정계, 관계, 법조계, 학계, 언론계 등에 대해 자금 지원, 골프와 술집 접대 등을 통해 인맥을 구축하고, 그 인맥 구축 실적을 승진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전략이 우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삼성이 국내 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하는 산업을 영위하고(전자산업), 거대한 자금줄(삼성생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 망은 곧바로 삼성의 막강한 정보력으로 연결된다.

정통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주미대사를 지낸 홍석현 등은 모두 직접적인 삼성의 인물이다. 검찰국장 홍석조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친 동생이다. 수년 전 재경부 국장 시절 한 토론회에서 "삼성생명의 계약자 돈으로 삼성 총수의 의결권을 늘리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강력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재경부 차관 박병원이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금감위에서 삼성과 대결했던 이동걸 부위원장은 결국 밀려났고, 그 후 금감위는 삼성의 여러 불법과 편법을 덮어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 부처에 대한 삼성의 로비는 검사와 판사, 국회의원들에 대한 로비에 비해 한 수 위라고 한다. 삼성의 대 정부 로비는 재정경제부, 금융감독당국, 공정거래위원회 등 핵심 경제부처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감독원 안에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즉 내부 직원들에게는 진학반과 취업반 두 가지 타입이 있다는 것이다. 진학반은 윗선과 삼성에 잘 보여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고, 취업반은 평소 삼성에 잘 보였다가 기관을 그만 두면 삼성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런 풍토에서 정부의 법 집행이 삼성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삼성의 행태는 당연히 무리가 따르고 왜곡을 부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엘리트들에 대한 삼성의 관리는 결국 그들의 타락과 부패로 이어진다. 국가적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내적 모순은 어느 시점에서인가는 반드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면,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는 엄청날 것이다.

'이상호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이건희(삼성) 게이트'는 단순한 정경유착의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막대한 돈(금력)을 이용해서 거의 무소불위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립한 삼성재벌의 대한민국 장악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삼성재벌은 정치, 행정, 사법, 학계, 문화예술, 사회운동 곳곳에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놓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파워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전직 고위 관료나 법조인, 명망있는 학계 인사들이었다. 이를 통해 '삼성의 인력으로 국무회의도 운영할 수 있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단지 과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다음 3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삼성그룹의 이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책 사안에 대한 로비스트의 기능이다.―삼성그룹의 자동차 산업 진출 결정, 생보사 상장방안 논의,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논의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위기시, 특히 불법행위 혐의와 관련된 법률적 위험에 대한 '방패막이'의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재용씨 승계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배임혐의 고발·소송사건,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의 핵심 지배구조 연결고리에서 야기된 금융법 위반 혐의 등을 꼽을 수 있다. 셋째, 일상생활 영역에서 삼성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모델 내지 유일한 모델로 포장하고 이를 대변하는 기능이 있다. 이른바 '강소국론', '국민소득 2만불론', '위기경영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현안의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통로로 이용되는 관계나 법조계의 인적 네트워크와는 달리 언론과 학계 네트워크의 경우, 삼성재벌에 우호적인 사회적 여론이나 담론을 조성하는 통로로 동원되고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삼성이 경제와 경영 영역을 넘어,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까지 장악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3) 이데올로기의 장악과 지배담론의 창출

삼성은 과거 독재시절의 육사처럼 자기네들이 최고 엘리트로서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교만한 생각을 갖고 있고,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우리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담론을 만들어가려고 해 왔다. 이를 위해 우선 삼성은 전경련을 통해 보수적인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유통해 왔다. 전경련은 '삼경련'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삼성의 외곽조직인 셈이고, 전경련 업무의 80% 정도가 삼성 관련 업무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각종 현안에 대한 즉각적인(그러나 깊이나 엄밀성에선 문제가 있는) 보고서를 일반인, 전문가, 재계, 정계와 관계 등에 살포하여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확산하고 있다. 여러 재벌경제연구소 중 삼성의 실력은 압도적이다. 여타 연구소는 경제정책에 한정된 연구를 하는 것이고,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 외에 사회·정치적 영역까지 포괄하여 연구하는 일종의 국가적 아젠다를 다루는 연구소라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도 삼성의 이데올로기 장악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과 <중앙일보>는 일종의 특수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지분 분포를 볼 때(홍석현 36.79%, 제일제당 및 삼성계열사 33%, 유민문화재단 19.99%), 1999년 중앙일보의 삼성 계열 분리는 표면상의 독립에 불과한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경우 삼성과 적극적인 관계를 구축하였고, 인수위 시절에 삼성경제연구소의 아이디어를 갖고 와서 내놓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다. '2만 달러 시대'가 대표적으로, 그것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마련한 것이다. 한편 '동북아 허브'란 개념은 대통령의 말을 삼성과 관료가 어떻게 경제적 측면으로 가져가는지, 즉 정치권력이 제기한 개념을 대자본이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가 균형발전'이란 의제도 '경제자유구역'과 '기업도시'로 가져갔다. 또 중소기업 발전이란 개념을 대자본이 주도하는 '클러스터'라는 개념으로 바꿔나가는 등 이와 관련한 많은 예들이 있다.

4) 삼성의 언론 지배

기업광고를 얻지 않고서는 언론기업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해질 정도로 광고의존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14개 주요 방송, 신문사 광고매출액 가운데 삼성그룹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 이것은 굳이 기업의 압력이 아니더라도 언론매체가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는 물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의미). 이런 상황에서 언론 사주는 그 자체가 기업가이므로 친기업적 보도를 선호하고 그렇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삭제의 압력을 넣게 된다.

언론사주 및 간부는 기업가와 실제로 사적(결혼 등을 통해서-혼맥), 공적 연결망을 갖고 있으므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사설, 칼럼을 쓰는 언론사 간부, 학자 지식인들을 매수함으로써 정치지향성을 갖는 지식인, 지식사회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열망을 가진 지식인들은 이들 언론기업의 가장 좋은 포섭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오늘날 평기자들은 언론고시를 통해 입문을 한 엘리트로, 기본적으로 친기업 의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개인의 능력 발휘를 통해서 입신출세의 길을 걸어가는 데는 대단히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으나, 정론직필이라는 언론의 사명감이나 기자의 본분,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 역사의식 등에 있어서는 과거 기자들보다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 대체로 출신성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이들은 자발적인 친자본 성향을 갖고 있으며, 기업의 촌지와 향응의 유혹을 거절할 정도의 소신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동이나 노동운동의 세계는 딴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2006년 6월 21일 <시사저널>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금창태 사장의 경우,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과 관련된 3쪽 분량의 기사를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편집국장이 사표를 제출하자 다음날 바로 수리하였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번 사건을 '삼성의 로비에 경영진이 굴복한 <시사저널> 편집권 유린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한겨레>의 건설노동자 격려 및 산별노조 건설 관련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 게재 거부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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