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담이라던 국방부와 외교부**
2004년 8월 23일 열린우리당은 정부와 당정협의를 갖고 '용산기지 이전 및 주한미군 재배치 관련 협상 결과'를 보고받았다. 정부는 환경조항 자체가 "미비"했지만 협상의 결과로(협상을 잘한 결과로) 환수부지에 대한 오염치유 비용은 "미측이 부담"키로 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11월 23일 '용산기지이전협정 및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협정에 관한 공청회'가 있었다. 당시 협상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외교통상부 김숙 북미국장은 "반환기지와 공여기지의 환경조사는 한미 양측이 공동으로 하고, 반환기지의 오염치유는 미국이 하게 된다"고 했다. 공청회의 자료와 내용은 현재도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간단하다. 미군 반환기지에 대한 환경오염 치유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면 끝날 일이다.
***사실상 한푼도 못 내겠다는 미국**
그런데도 왜 미국은 반발하는 걸까?
지난 10일 예비역 장성모임인 성우회는 버웰 B. 벨 주한미군 사령관을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 했다. 벨 사령관은 "주한미군 기지의 한국 반환이 (한국 측의) 원상복구 요청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며 "(한미 간) 입장이 달라 일방적인 처리가 강행된다면 동맹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12월 5일 SOFA 환경분과위원회 미군 측 위원장인 대니얼 M. 윌슨 대령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SOFA 제4조에 언급된 것처럼 미군은 원상복원과 비용부담 의무가 없다"고 했다.
미국 측의 입장은 일관된 것으로 보인다. 용산 등 미군기지 이전협상 당시 미측은 단 한번도 환경비용이 자기네 몫이라고 말한 바 없다. 작년 가을 방한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도 한국 측과의 면담 당시 이 부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는 말만 SPI이지 미래 동맹에 대한 얘기는 없는 것 같다. 지난 3월 21일 열린 제7차 한미 SPI 회담은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기지 환경오염 치유비용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 때문이었다.
SPI 회담 당시 몇 년째 한미 외교ㆍ안보ㆍ군사 분야의 미측 협상대표를 도맡고 있는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강한 불만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했다. 나아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최종 협상안을 통보하겠다며 협상의 장을 떠나버렸다. 필자는 아직까지 미측으로부터 서면통보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거슬러 올라가보자. 환경조항이 신설된 것은 맞다. 분명 위헌 시비가 붙었던 1990년 당시 용산기지이전협정에는 환경조항이 없었다. 그러면 신설됐으니 우리 측에게 유리해졌다고 평가해야 하는가?
2003년 11월 1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작성하여 보고한 "용산기지이전 협상 평가결과 보고" 중 일부다.
"금번 협상에서 환경조항의 신설에도 불구하고 SOFA 체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협정을 통해 미측에 실질적 환경치유 부담을 갖도록 규정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우며, 실제 기지이전 시 우리 측이 막대한 환경치유 부담을 떠안게 됨으로써 심각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큼."
필자는 2004년 11월 11일 제250회 국회 본회의 통일ㆍ외교ㆍ안보 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에서 "전략적 유연성"과 함께 "주한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환경오염 치유비용"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다음은 속기록의 일부다.
"결국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는 권리로서 인정할 수도 없고, 그리고 새로 신설된 것도 아니고, 이미 있던 환경 조치 관련 각종 협약이나 이쪽에 의해서 처리된다, 이런 내용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특별히 우리가 환경 조항에 대한 결정적인 그런 신설 조항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정부가 자랑하는 환경조항 신설의 무의미함을 지적했다. 신설이 아니고 단지 이미 존재하는 SOFA 규정을 옮겨놓은 데 불과하며 기존 SOFA 규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환경치유 조항이 무의미함을 질책했던 것이다.
***누구 말이 진실인가?**
진실은 존재할 것이다. 협정 문안과 협정에까지 이르게 된 회의록과 당시 한미 사이에 오간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에 따르면 양 당사국은 용산기지 이전 시 환경조치를 취함에 있어 SOFA와 그 밖의 관련 합의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정하고 있다. 여기서 SOFA에 따른다고 함은 한미 양측 간 서명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2001년 1월), "환경정보 공유 및 접근절차"(2002년 2월), "반환공여지에 대한 환경조사 및 오염치유에 관한 협력절차"(2003년 5월) 등을 말한다.
미측은 SOFA의 환경조항에 따라 환경치유 비용 부담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SOFA의 환경 관련 규정에 포함된다고 언급하고 있는 "환경보호특별양해각서" 및 "2003년 5월 환경절차"에는 환경치유 및 보상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SOFA "환경보호특별양해각서"의 경우 미측은 이를 양국 간의 협정이 아닌 자국의 정책을 기술한 '정치적 선언'으로 보고 있다. 이 각서는 또한 주한미군에 의하여 야기되는 "인간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known, imminent, substantial) 위험"을 초래하는 환경오염에 대해서만 치유ㆍ검토할 것을 규정한다. 주한미군이나 한국 군무원, 카투사들 중 누가 심한 위험을 입은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반박논거다.
"환경정보 공유와 접근절차 합의서"와 "반환공여지에 대한 환경조사 및 오염치유에 관한 협력절차"의 경우, 환경조차절차만 자세히 규정되어 있을 뿐 치유방안에 있어서는 한미SOFA 및 관련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해, 이 규정에 따른 실질적인 환경치유에 대한 보상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환 미군기지의 심각한 환경오염에도 불구하고 미측은 용산기지이전협정 및 관련 합의에 따라 보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건강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라고 판단되는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며 그 기준조차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다른 나라에도 이런 치유사례는 전혀 없었다.
이에 반해 우리 측은 2001년 개정 SOFA 합의의사록 제3조 제2항 "합중국 정부는 자연환경 및 인간건강의 보호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는 조항을 들어 국내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토양환경보전법을 존중하여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측이 한국 수준에 맞도록 환경오염 치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국이 최소한의 근거는 가지고 있다. 서로 유리한 규정을 근거로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필자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애써 문제를 제기했고, 용산협정 상의 환경조항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무의미한 것이니 정확히 하고 넘어가자고 했던 것이다. 보수 언론의 시각으로 표현하면 자주파의 논리였던 셈이다.
필자는 순전히 법률가적인 논리적 일관성의 측면에서 미국 측의 입장이 더 타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식으로 표현하면 "강경반미 자주파"가 갑자기 "강경친미 동맹파"로 커밍아웃한 셈인가? 당시 협상 과정에 대한 직ㆍ간접적 정보, 미국 측이 환경오염 치유비용을 "기타 비용(other expenses)"에 포함시켜 명확히 하자고 했던 별도의 제안, 용산기지 이전비용의 한국 측 전액 부담의 원칙, 간접적으로 확인되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록에 담긴 내용 등을 종합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필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계약 당시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든가 아니면 양해하는 척 했다가 나중에야 문제를 제기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한미동맹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부분 언론은 '미국과의 갈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단순하고도 절대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필자는 한미 간에 계약, 즉 협정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계약 체결의 책임은 우리 측에 있다. 잘못된 계약도 계약인 이상 바람직한 한미동맹을 위해서도 협정, 즉 계약은 지키자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다만 계약의 일부라도 수정 해석할 여지라도 있거든 그것은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상호 해결할 일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협상의 여지는 일부 남아 있다. 하지만 한국 측 비용부담의 원칙을 완전히 뒤엎을 만한 정도는 절대 못된다.
늘 경계하는 말이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참으로 괴롭고 힘든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한미현안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자주파와 동맹파의 이분법적 대립 속에서 무조건 자주파가 된다. 자주파는 다시 온건자주파와 강경자주파로 분류되고, 좀더 강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강경자주파가 돼버리며, 그 강경함(?)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비판의 표적이 된다. 합리적인 비판의 여지가 자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친미파는 용미파로 이해해준다. 용미라는 말,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지만 자주파는 곧 반미파고 반미파는 곧 친북용공좌파가 된다.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국가보안법의 논리다. 북한이 미국을 비판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은 곧 북한과 동일한 주장을 하는 셈이고, 따라서 국가의 기본을 흔들어대는 용공좌파가 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불행한 것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 FTA'를 둘러싸고도 이런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그런 입장이다. 자주 아니면 동맹만이 자리하는 이분법적 세상, 이건 결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다.
지난 2004년부터 우리 정부는 미군환수 기지 환경치유 비용을 미측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동 조항을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대미협상 성과로 홍보했다. 그토록 환경치유 문제의 원활한 타결을 국회와 국민 앞에서 홍보했던 정부의 자신감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왜 이토록 환경오염 치유비용을 놓고 한미 간의 갈등이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당시 협상을 기획ㆍ조정ㆍ결정했던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벨 주한미군 사령관의 우려와 같이 반환기지 환경복구 비용 타결에 있어서 한미 어느 쪽도 일방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계약서인 협정 문안을 기본으로 삼되 한미동맹의 정신을 바탕으로 양보할 것 빨리빨리 양보하고 타결짓자. LPP와 용산기지 이전으로 환수받게 되는 땅을 넘겨받아 환경을 치유하고 땅을 팔고 그것을 재원 삼아 LPP 이전과 평택기지 이전을 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용산협정이 결과적으로 미군기지 재배치는 물론 국토개발계획과 예산, 나아가 한미동맹마저 일정부분 흔들게 될, 그런 상황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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