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공사현장을 지키느라 종일 끼니를 거른 65세 김모(여) 씨는 입술이 다 부르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쟁쟁했다. 그는 다음날 새벽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바닥에 돗자리만 덜렁 깔고 누워 "경찰과 한국전력 측 사람들이 내려갈 때까지 나도 안 내려간다"고 말했다.
한전은 2일부터 경상남도 밀양 765킬로볼트(kv)송전탑 공사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종양 경남경찰청장이 "1일부터 20개 중대 2000여 명을 송전탑 현장 5개 지점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밀양은 공사 재개 하루 전부터 쑥대밭이 됐다. 반대 주민들은 경찰이 온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무 준비도 없이 공사현장으로 뛰어갔다.
지난 5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중지됐다가 126일 만에 재개된 공사인 만큼 한전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검·경도 공안대책지역협의회를 열어 "공사 진행을 방해하려고 현장 점거를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반대 주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주민의 안전을 위해 경찰을 투입했다는 한전의 발표에 대해 주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 1일 오후 8시께, 부북면 위양리에 위치한 126번 공사현장에서 마을로 가는 통로를 경찰이 막아섰다. 이에 주민들이 저항하며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개처럼 이불로 둘둘 말아 병원으로 강제이송"
1일 오후 8시, 부북면 위양리에 위치한 126번 공사현장을 찾았다. 플래시가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김 씨를 포함한 20여 명의 주민들이 맨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이들의 바로 맞은 편에는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주민이 조금만 발걸음을 움직여도 금세 대오를 정비하며 경계했다. 영락없이 주민을 감시하러 나온 모양새였다.
부북면 여수마을 김영자(여·57) 씨는 "아침 9시에 126번 현장으로 들어가려 했더니 경찰이 마을에서 126번 현장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못 지나가게 했다"며 "그래서 30분 동안 산길을 뚫고 오느라 가시에 얼굴을 할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5시께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강제 이송됐다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갑자기 억지로 들어다가 이불로 둘둘 싸서 응급차에 태웠다"며 "어릴 때 숨넘어갈 뻔한 기억이 있어서 이불을 얼굴까지 못 덮는데 구급차 안에서 이불로 나를 아예 묶어놔서 죽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주민은 "요새는 개도 이렇게 취급 안 하는데"라며 씁쓸해했다.
주민들이 김 씨를 강제 이송한 것에 대해 따지자 경찰은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괜찮으신지 확인하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주민들은 "아프지도 않은 사람을 개처럼 끌고 가놓고 위해주는 척 변명하지 말라"고 크게 반발했다.
마을로 내려가려는 주민을 경찰이 막아서자 한 차례 충돌이 일기도 했다. 여수마을 주민 이재묵(남·75) 씨는 손자뻘인 경찰에게 "대체 왜 집도 못 가게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이 씨를 방패로 막아서며 밀어내자 한 주민은 "저 양반도 그렇고 전부 칠십 팔십 다 된 사람들인데 이렇게 추운 날 길바닥에서 살 수 있겠느냐"며 "분하고 억울해서 몸이 벌벌 떨린다"고 울먹였다.
결국 현장을 방문한 정의당 김제남,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경찰에게 길을 터주라고 요구해 경찰이 이에 응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주민 9명, 쇠사슬로 몸 연결하고 단식
2일 오전 단장면 바드리마을의 89번 공사현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주민 9명이 이날 오전 6시부터 쇠사슬로 몸을 묶어 연결한 채 공사현장 입구를 지켰다.
주민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동화전마을 주민 김 모(여·54) 씨는 "소변을 보러 갈 때도 남자 경찰 두세 명이 붙어서 따라온다"며 "나이가 들어도 여자인데, 대소변을 볼 때도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니 너무 수치심이 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평화롭게 살다가 국책사업으로 노숙 투쟁을 하게 된 심경은 어떨까. 단장면 용회마을에 사는 구미현(여·63) 씨는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한전 사장의 대국민 호소문을 보는데,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에게만 '내년 여름에 전력 대란 없게 하겠다'며 굽실굽실 대더라"며 "도시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주민의 삶을 통째로 짓밟는 일이 벌어졌으면 대규모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송전탑 주변 지역 주민들은 평생을 바쳐 일군 모든 것을 잃었다. 정부는 지난달 11일 송전탑 주면 지역 주민들에게 가구당 평균 400만 원의 보상금을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단 돈 400만 원과 일생을 바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선옥(여·47) 씨가 그 예다. 그는 23살에 동화전마을에 신혼집을 차린 뒤 지금까지 쭉 대추, 깻잎 등의 농사를 지으며 땅을 일궜다. 송전탑이 들어오기 전, 이 소중한 땅의 시세는 약 3억 원이었다. 그러나 현재 땅 값이 얼마인지는 가늠할 수도 없다. 765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면서, 완전히 가치 없는 땅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원래 농부는 땅을 담보로 대출받아서 농사를 짓고 대출금을 갚은 뒤에 다시 대출받는 식으로 매년 먹고사는데 이젠 은행이 대출도 해주지 않는다"며 "그래놓고 400만 원을 받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격분했다. 그는 "심지어 송전탑과의 거리에 따라 보상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400만 원도 못 받는 사람이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 2일 오전 단장면 바드리마을의 89번 공사현장에서 9명의 주민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어 연결했다. 한 주민이 "경찰과 한전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나라가 우리를 짐승 취급"
주민들은 나라로부터 삶을 송두리째 뺏겼다는 점에서,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장면 동화전마을 주민 손 모(여·59) 씨는 기약 없이 노숙하는 자신의 처지를 가리켜 "나라가 우리를 완전히 짐승 취급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중화(송전선로를 땅에 묻는 방식)도 안된다고 하고 사람 없는 곳에 송전탑을 세우는 것도 안된다고 하면 우리더러 죽으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남편은 지금 아래쪽에서 현장을 지키고 있느라 지금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얼굴만 마주 보면 서로 살기 싫단 말밖에 안 한다"고 털어놨다. 타지에 나가 사는 자녀들은 매일같이 밀양 송전탑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며 '엄마 때문에 우리가 피 말라 죽는다. 우리 좀 생각해달라'고 호소한다. 온 가족의 일상생활이 송전탑 하나로 망가진 셈이다.
89번 현장을 지키는 이들 9명은 단식을 결의하고 앞으로 물만 마시며 현장을 지킬 예정이다.
밀양 송전탑, 왜 문제인가 정부와 한전은 '전력수급'을 명분으로 이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한다. 한전도 언급했듯이 밀양 주민 대부분은 70~80대 고령의 농민이다. 반대 주민들은 '왜 전국에서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이들이 전력수급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구미현 씨는 "'밀양의 발전을 위해서 양보하라'거나 '전력수급을 위해 참으라'는 말을 들으면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 2000년부터 신고리 3호기가 생산하는 전력을 영남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울주, 기장, 양산, 창녕, 밀양 등 5개 지역에 161기의 송전탑을 건설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밀양을 제외한 다른 네 지역은 주민과의 합의하에 송전탑 건설을 완료했지만 밀양은 약 10년째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100미터 높이에 24시간 내내 소음을 일으키는 765킬로볼트 송전탑이 들어서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실제로 밀양 지역은 학교나 거주지에 근처에 들어서는 송전탑이 유난히 많아 주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다. 밀양 송전탑의 필요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와 한전은 밀양 송전탑이 없으면 전력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납품 비리 사건으로 원전 23기 중 절반이 가동을 중단한 올여름에도, 우려했던 대규모 정전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또 신고리 3호기의 전력량은 전체 전력의 1.7퍼센트(2013년 하계기준)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지중화 방식, 우회선로 건설 등의 대안을 제시했으나 정부는 비용과 시간상의 이유로 이를 모두 거절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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