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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때리기' <조선>,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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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때리기' <조선>,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전문가 분석] <조선> '채동욱 혼외아들' 보도의 문제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논란 등으로 정국이 시끌시끌하던 때였다. 핵폭탄 같은 이슈들을 뒤로하고, <조선>은 이날 1면에 '채동욱 검찰총장 婚外(혼외) 아들 숨겼다'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올렸다.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다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이날 포털 사이트에는 '채동욱'과 '혼외 아들'이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됐다. 첫 보도가 나온 6일부터 '내연 여성'의 편지 내용이 보도된 11일까지 약 일주일 사이,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여부는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연 공익에 부합한 보도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 9월 6일 자 <조선일보> 1면. ⓒ프레시안

"도대체 왜 신문 1면에 '혼외 아들' 얘기가… 뜬금없다"

학계·언론계의 전문가들은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같은 의혹 제기 자체가 대대적으로 나온 데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사에 대한 판단은 언론사 편집자의 몫"이라면서도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매우 뜬금없는 보도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내용이 신문 1면에 오르내릴 정도로 공적인 문제였는지를 묻는다면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인이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업무와 관련된 공적 영역의 문제가 아닌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전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결국 초점은 공인의 혼외 자녀 문제가 공적 문제에 해당하는지, 개인의 사생활 문제에 해당하는지 여부로 모인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의 사생활 문제에 대한 평가는 들쭉날쭉한 경향이 있다"며 "어떤 때는 공인의 사생활까지도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공인이기에 사생활 역시 공적 성격이 있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언론도 각 사마다 입장을 달리한다. '사생활 관리'를 공직자의 의무로 보는 곳도 있는가 하면,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보는 곳도 있다.

<조선>은 이번 보도를 통해 전자 쪽에 손을 들었다.

"일반 국민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돼야 한다. 언론 역시 그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총장은 사생활 보호 원칙을 내세워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를 피할 수 있는 사인(私人)이 아니다. 국가의 수사권을 통해 수백만 공직자의 기강(紀綱) 문란과 이탈을 단죄하고 온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공직자다.… 지금은 '대한민국 보통 사람의 상식'을 토대로 의문스러운 상황"(사설, '검찰총장의 처신과 판단', 2013년 9월 11일)

그러나 4년 전 <조선>의 입장은 달랐다.

"프랑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도 공직자의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공직자의 사생활 소문이 황색 인터넷에 오르거나 선거 때 상대방 비방 루머를 퍼뜨리는 식의 '반칙'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공공 영역에선 사생활 문제가 보호돼왔다. 몇몇 전직 대통령의 혼외자 문제도 있었지만, 주류 언론이나 정치권은 '침묵의 신사협정'으로 지켜 주었다."(태평로,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 2009년 11월 19일)

▲ 2009년 11월 19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라는 제목의 사내칼럼. ⓒ프레시안

4년 전에는 '공직자의 사생활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를 앞세우더니, 이제는 '공직자의 문란한 사생활을 단죄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며 말을 바꿨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오락가락한 보도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사생활의 범위를 어디로 둘지의 문제는 특정한 룰이 있다기보단 사회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로 말할 사안은 아니"라면서도 "다만 관련 이슈를 보도하는 언론에서만큼은 일관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만약 공직자는 사생활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다면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 기준을 세웠다면 모든 공직자에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그 기준이 일관성 없이 적용된다면, '내 편은 되고 네 편은 안 된다'는 식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채동욱 스캔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음모'뿐"

보도 태도도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의 내밀한 부분을 건드리면서도,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현재로선 보도의 사실 여부를 판가름하기 쉽지 않다. 채 총장 측이 보도 내용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실이라고 믿을 정도로 <조선>이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했는지를 따졌을 때,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해당 보도를 보면,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의혹을 마치 사실인 양 단정 짓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띈다. "본지 취재 결과 채 총장은 대검찰청 마약과장으로 근무하던 2002년 7월, Y(54)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채 총장과 Y씨 주변에는 채 총장이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던 1999년 무렵 Y씨와 처음 만났다고 알려져 있다"는 식이다.

심 교수는 "6일 이후 나온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에서 정보원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설득력도 부족한 느낌을 주고 있다"며 "사안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보도가 나간 후 다른 매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도 진실성 관련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대부분 정치적 배경 또는 음모 등 기사의 본질과는 무관한 내용들이 무성할 뿐"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조선>은 채 총장을 향해 "사실이라면 당당하게 유전자 검사에 응하라"며 사실 입증을 떠넘겼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이같은 보도 행태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을 내보낸 다음 나머지는 여론에 맡겨 마녀사냥을 당해서 내려오면 좋고 아니면 흠집 내기 정도로 만족하는 식의 몹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채동욱은 공인이지만, '혼외 아들'은 공인이 아니다"

<조선>이 보도 완장을 찬 채 휘두르는 폭력은 채 총장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혼외 자식'으로 불리는 채군에 대한 취재는 도를 넘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조선일보> 9월 9일 자 사회면. ⓒ프레시안

<조선>은 6일 자 첫 보도에서 '내연 여성'의 집 위치와 사진, 학교 관계자의 이야기를 실었다. 9일에는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돼 있었다'며 채군의 학생기록부 기재사항을 공개했다. 이어 "채군이 '우리 아빠는 검사'라고 자랑했고, (총장이 된 이후인) 4~5월에는 '우리 아빠가 검찰총장이 됐다'고도 자랑했다"는 채군의 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실었다.

채군과 그 주변에 대한 압박 취재는 아동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기사는 문제 된 아이가 학교에 적어낸 서류의 내용과 그 아이가 친구들한테 했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제 11살이라는 아이의 인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걸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금 변호사는 "기사에 등장하는 '학교 관계자'가 학생의 개인 신상 기록을 거리낌 없이 발설하는 것도 경악스럽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쓰는 '정론지' <조선일보>의 행태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설령 채군이 실제 채 총장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본인이 '공인'은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 사생활이 노출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는 "채 총장에 대한 사생활 침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문제가 '혼외 아들'에게로 갔을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당 아동에 대한 사생활 침해를 해도 될 아무런 정당성과 공익성이 없다"며 "<조선일보> 주장처럼 '떳떳하면 왜 유전자 검사를 안 하느냐'며 다그칠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 혼외 자녀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채동욱 검찰총장(가운데). ⓒ연합뉴스

"<조선>, 언론의 책임 다하고 있나?"

아동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조선>이 '채동욱 때리기'에 올인하는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채 총장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위해 미리 비판적 여론을 조성해놓으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윤 소장은 "사실은 이런 기사 자체를 내보내는 게 다분히 의도적이다. <조선>은 본인 입맛에 맞는 인사들은 감싸고 안 맞으면 어떤 식으로든 쳐내 왔다"며 "채 총장이 이번에 국정원에 대해 '정치개입이 맞다'고 하자 친여당 성향인 <조선일보>가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채 총장이 '괘씸죄'에 걸려들었다는 얘기다. 김 교수 역시 "확증은 없지만 검찰을 어떤 식으로든지 공격해서 취약하게 만들어 놓으려고 하는 시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의 '채동욱 때리기' 보도는 결국 현재 표출된 정치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해석이 나온다.

심 교수는 "새 정부 출범 후 6개월여 지난 시점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 정국을 지나 이석기 내란음모 정국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사회는 정작 중요한 이슈는 간과된 채 소모적이며 갈등적인 이슈만 부각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관점에서 채동욱 검찰총장 보도는 우리 사회 갈등을 더 고착화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언론을 통한 의혹보도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뿐, 공익적 성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는 "구독자 수가 가장 많다고 하는 <조선일보>가 1면에서 이러한 보도를 하는 게 언론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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