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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를 '불바다' 만든 건 北이 아니라…

[프레시안 books] 김종대의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서해는 확실히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9월 25일 필자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진짜안보' 방송을 마치고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웃으면서 한 말이다. 그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해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소식을 듣고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명했다.

"해군 출신인 최윤희 내정자가 서해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합참의 무능으로 서해에서 우리 장병이 희생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지."

김 편집장은 지난 3년여 동안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도 서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인물이다. 그만큼 해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으로 기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서해였다.

동시에 김 편집장은 최 내정자가 합참 근무 경험이 부족하고 육군의 강한 견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합참의장직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도 내비쳤다. 어쨌든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을 합참의장으로 발탁한 것이 '국방부는 육방부', '합참은 제2의 육군본부'라는 오명을 딛고 육·해·공군의 균형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청이 비결"

▲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김종대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군사안보 전문 잡지인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을 맡고 있는 김종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군사전문가로 꼽힌다. 그의 이력 자체가 범상치 않다. 김 편집장은 1980년 말부터 평화군축 운동으로 군사안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해, 8년간의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 청와대와 국방부로 이어진 5년간의 공직 생활을 거쳐 2007년 군사전문 잡지를 창간해 편집장으로 일해 왔다. 20여 년간 재야-국회-정부-언론을 거치면서 그가 쌓아온 전문성과 균형 잡힌 시각, 그리고 넓고도 촘촘한 인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최근에 쓴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메디치미디어 펴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책은 "장성 35명의 증언으로 재구성하다"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장 지휘관들을 비롯한 다수의 군인과 전문가의 생생한 목소리로 다섯 차례의 서해 무력 사건을 다뤘다. 그래서 궁금했다. '진보 인사로, 때때로 종북 인사로도 거론되는 김종대가 어떻게 보수적인, 그것도 입이 무거운 군 장성들로부터 이토록 속 깊은 내막을 들을 수 있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제일 중요한 비결은 경청하는 자세다. 존중하는 자세로 끝까지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때로는 공감을 표하고 때로는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는 질문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얘기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평화의 바다가 어쩌다 전쟁의 바다로?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종대 편집장은 "한때는 가장 안전했던", "유엔 사령관이 남북 간의 분쟁을 막고자 설정한 안보선"인 북방한계선(NLL)이 어쩌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쟁의 바다"가 되고 "남북 충돌을 불러오는 분쟁선"이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남북관계가 아니라 남한 내부의 정치에 있었다는 것이 김 편집장의 진단이다.

이 책의 백미는 "다섯 번의 교전, 다섯 개의 의문"에 있다. 정부의 발표나 기존 언론 보도와는 다른 진실이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1차 서해교전 직전 남북 해군이 똑같이 "절대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전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2차 교전 직전에 평택 지휘관은 우리 함정에게 "북 함정과 3킬로미터 거리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150미터까지 근접했다가 공격을 당한 건 또 뭔가?

천안함이 "북 잠수정에 의한 모든 공격 조건을 충족시켜 주기라도" 하듯, 북한의 위협이 중첩된 최접적 수역에서 그것도 최저속도로 기동한 이유는 뭔가? "북의 화력도발이 예상된다"는 정보 보고를 무시하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연평도에서 사격 훈련을 강행하다가 북의 포탄 세례를 받은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그리고 "(북한은) 서북 해역에서 지상포와 잠수정을 동원하면 전술적으로 유리한데 왜 자꾸 경비정을 통해 도발한 것인가?"

저자는 관계자들과의 심층 인터뷰와 교차 검증을 통해 이런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불편한 진실이 바로 합참을 비롯한 군 수뇌부의 무능, 각군 간 의사소통의 부실과 암투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정치적 고려 역시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면서 "다섯 차례의 교전"으로 얼룩진 '서해전쟁'에 대한 잠정적 결론을 이렇게 내린다.

"우리의 단순한 생각과 달리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남북한 정치권력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어서 정부 의지의 충돌이라는 국가적 관점이나 현실주의적 관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자율신경처럼 자체적으로 움직이려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민을 선동하고 흥분시키는 국내 여론의 더 치명적인 자기 파괴 작용," "불필요하게 영해 문제를 유발시키고 NLL에 대한 과도한 역사 해석을 남발"하는 정치사회적 풍토, "관료 집단이 정치적 목적으로 서해 문제를 접근하는 경우" 등이 맞물리면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교전사태에 "우리 전투원들을 사지에 몰아넣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아쉬운 대목들

아쉬운 대목들도 더러 발견된다.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NLL에 대한 재조명이 선택적으로만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NLL 인근 수역이 "평화의 바다"에서 199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전쟁의 바다"로 변질되고 그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인 사유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작 NLL이 품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보다 정확히 파헤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기실 NLL를 둘러싼 남북한의 무력 갈등은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도 빈번하게 있었다. 이에 따라 NLL 문제는 이미 1970년대 초반에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핵심적인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었다. NLL를 해상분계선으로 간주하려던 박정희 정권과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닉슨 행정부의 갈등은 박정희 정권이 왜 NLL를 영해선으로 선포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이다. 저자가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 등을 참고해 이런 부분들까지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또 하나,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한 대목은 천안함 부분이다. 이 책에는 천안함 침몰 전후의 군 수뇌부의 안이함과 합동 작전 전문가 없는 합참의 무능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에 비해 천안함 침몰 원인의 진실을 추적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오히려 천안함 "피격,", "폭침"과 같이 북한의 소행임을 단정하는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김종대 편집장 역시 정부의 조사 발표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북한의 소행을 전제로 기술되어 있다. 나는 그 이유를 물어봤다. "천안함의 진실까지 가는 건 힘들었다. 나의 한계일수도 있지만, 나 역시 큰 벽을 느꼈다. 이건 나에게,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프레시안

'진짜' 안보와 평화를 원하거든 이 책을 읽자!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은 공식적인 문헌과 1차 자료를 분석해서 쓴 '정사(正史)'라기보다는 사건 당사들의 진술을 토대로 쓰인 '야사(野史)'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서해 문제에 대해 내가 접한 그 어떤 글보다도 풍부한 정보와 진실의 내막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또한 사건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 그동안 은폐되었던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들춰내고 있다. 소설 같은 문체로, 때로는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흥미를 끈다.

이 책에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민감한 내용도 많다. 이에 따라 명예를 중시한다는 전·현직 군 장성들의 반발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 "항의도 많이 받고 섭섭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필자의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많지. 그 땐 이렇게 말하곤 해. '당신들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준 이유가 뭐였나요? 군사적 합리성이 붕괴되면 우리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다는 충심에서 해준 말씀 아니었던가요? 저 역시 마찬가지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거고, 그러기 위해선 따질 건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불편하다고 진실을 묻어버리면 똑 같은 일이 반복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모두들 수긍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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