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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설탕' 팔다 '내란 음모'로 엮인 기막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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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설탕' 팔다 '내란 음모'로 엮인 기막힌 사연

[초록發光] '착한 무역'을 넘어서

다음달 1일부터 남양주에서 열릴 '2013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 대회'에 나에겐 좀 각별한 외국인 벗이 발표자 중 한 명으로 참여를 한다. 그녀의 이름은 루스 살리토. 뭐 아직은 특별히 유명할 것은 없는 필리피나이다.

하지만 지난 6월 이후 이 여성을 돕기 위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한국의 공정 무역 진영 한 구석에서 조용히 진행된 적이 있다. 오늘은 그녀가 올해 겪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공정 무역이 착한 무역 그 이상이 되어야 할 필요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루스는 1990년 이래로 필리핀의 파나이 주(관광지로 유명한 보라카이가 이 섬의 일부이다)의 일로일로 시와 인근의 오톤 군을 기반으로 유기농 흑설탕 마스코바도를 생산, 공정 무역 상품으로 전 세계 11개 파트너 조직과 거래하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2008년부터 아이쿱 생협이 이들의 파트너로 마스코바도를 거래해 왔다.

루스는 1991년 PFTC (파나이공정무역센터, Panay Fair Trade Center)라는 조직을 만들고 대표로 일해 오다가 2001년부터는 파나이공정무역재단(FTFP, Fair Trade Foundation Panay)이라는 유관 조직을 만들어 그 곳의 대표로 일해 왔다. 이는 일종의 조직적 분화로, 센터는 무역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재단은 사회 서비스와 주민 (여성) 교육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1980년대 이래로 일로일로에서 KABALKAN이란 여성 조직의 대표로 활동해 왔던 그녀로서는 본래의 역할인 사회 사업가이자 지역 운동가로 되돌아 간 것이라 하겠다.

현재 루스는 반란죄(rebellion) 명목으로 기소된 상태이다. 말하자면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셈이다. 그녀에게 닥친 일의 전모는 이러하다. 2012년 3월 26일 일로일로 외곽 투벙간이란 곳에서 필리핀 정규군이 미등록 총기를 휴대한 괴한들에 의해 공격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 없이 12명의 군인이 다친 이 사건에 대해 군과 경찰은 필리핀인민군(New People's Army, 공산계의 분리주의 전선의 민병대)의 소행으로 규정했고, 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작년 9월 루스는 지역의 인권 단체로부터 일로일로 지역 NPA 배후 인물 15명의 명단이 공개되었는데, 그 중 당신의 이름이 있다는 제보를 처음으로 받았다고 한다. 당장 지역의 인권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사를 찾아갔지만 지역 검찰은 아직까지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신이 진짜 연루자면 조만간 기소장이 갈 것이라는 말만 듣고 되돌아 왔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 루스는 일상을 그대로 영위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1월엔 유럽 쪽 공정 무역 파트너들의 초청을 받아 공정 무역 생산자 대표로 이탈리아의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출국하는 과정에서도 그 어떤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4월 30일 그녀는 반란죄 명목의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으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으려면 20만 페소(한화로 약 580만 원)를 법원에 공탁하라는 법원의 문서를 받게 되었다.

PFTC는 이 사건을, 2005년 당시 대표였던 로메오 카팔라 사건과 연장선에서 바라본다. 당시 로메오는 정당한 사유 없이 체포되어 한 달간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로메오의 경우에 정확한 구금 사유도 밝혀지지 않은 채 한 달간 살인자와 약물 중독자들이 뒤섞인 교도소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냈고, 그가 언제쯤이나 풀려날지 무사하기는 한 것인지 정보는 차단되었다. 이런 전사로 인해 PFTC는 곧바로 유럽의 파트너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들의 도움으로 루스는 보석금을 내고 현재는 감옥 밖에서 언제 끝날 지도 모를 법정 싸움을 준비 중에 있다.

다음은 현지 조사 과정에서 일로일로의 한 호텔에서 2시간 남짓 나눈 대화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인터뷰는 일로일로의 미드타운 호텔에서 6월 5일(수) 현지 시각 오전 10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 루스 살리토. ⓒ엄은희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메일로 이야기 한 그대로이다. 반란죄로 기소되었다. 다행히 이탈리아 공정 무역 기구 CTM의 도움으로 구속은 면했다.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를 법정 싸움을 해야만 한다."

- 당신의 사건은 2005년 로메오 사건과 같은 것인가?

"본질적으로 같다. 정확하게 PFTC를 만들고 난 후부터 우리는 계속 타깃이 되어 왔다. 우리는 공정 무역'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출발은 농민 운동, 여성 운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공정 무역에 집중하기보다 민중 조직적 성격을 함께 갖고자 했다. 공정 무역이 필리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공정 무역은 그 모든 문제에 비해서는 여전히 작은 부분일 뿐이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토지 개혁, 농민 운동, 여성의 임파워먼트도 함께 신경 쓰는 사람이다.

게다가 로메오 사건이 다가 아니다. 2007년에도 지역의 농민 운동 단체의 남녀 대표가 한 순간에 행방불명된 사건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PFTC의 생산자 조합 중 하나인 KAMADA의 전직 대표였다.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렴풋이 언젠가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갑작스럽다."


필리핀은 전직 대통령 아로요(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GMA) 치하에서 엄청난 정치적 살해(political killing)가 자행되었다. 2001년 아로요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10여 년 동안 살해되거나 행방불명이 된 수가 공식적으로 1200명에 달한다. 좌파 정치인과 운동가 외에도 다수의 인권 운동가와 언론인들이 죽거나 구금되어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아로요 때의 정치적 살해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 영웅 니노이와 전 대통령 아키노의 아들인 뇨이뇨이 아키노의 시대가 아닌가?

"필리핀에서 정치적 살해는 아직 진행 중이다. 국제적 기준에서는 금지되었다. 뇨이뇨이는 국제적 수준에 맞춘다고 하고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 중이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사건들이 여전히 많다."

- 당신은 왜 이런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나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로메오 사건 때, 내가 PFTC의 위원장이었다. (참고로, PFTC는 생산자 대표와 경영 대표로 구성된 7인의 위원회가 있고, 이 조직이 공식적인 최고 기구이다.) 당시 라디오나 지역신문을 상대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거리에서 직접 행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중연설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래디컬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나는 절대 노출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 내가 타깃이 되었는지 나 역시 너무 궁금하다.

나는 진짜 실망하고 있다. 나의 정부에 대해, 정부는 군대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검사는 그저 스쳐가는 것이고. 배후는 군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걸리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최근 파나이 섬에서는 하라우(Jalaur) 강에 다목적 댐을 짓는 것이 큰 이슈이다. 이 강은 파나이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일로일로 시의 식수와 농업용수가 다 여기서 온다. 그런데 이 댐의 건설지에 활성단층이 있다고 환경 단체들이 말한다. 원주민들이 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댐 보호를 명목으로 군사화가 진행 것이다. PFTC의 생산지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 댐 건설에 한국 공적개발원조(ODA)가 연루되어 있다. 최근 나는 댐 건설에 관해 몇 차례의 토론회와 주민 간담회를 조직하는 일에 가담한 적이 있다. 그럼 점에서 나는 댐 반대 집단(anti-dam group)의 일원이다. 하지만 이것에 반란죄를 적용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 명단에 있는 15명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 중 한 명을 두 번 정도 만난 적이 있다. 그도 일로일로의 운동가이다. 잘 알지는 못한다. 나는 좌파 정당과 연관된 사람도 아니다."

- 요새 재단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하나?

"CTM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 정부에서 소규모 펀드를 받았다. 그것으로 4개 바랑가이에서 홍수에 대비한 훈련 워크숍을 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홍수와 같은 재난에 대비할 방법을 모른다. 대책 없이 당하고 만다. 그래서 이들을 교육하고 재난 상황에서 마을 단위로 대응하는 법을 훈련 중이다. 미국 교회를 통해 헌 옷과 학용품 등이 와서 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미행이 붙을 것을 염려해, 1시간 반 남짓 내가 머물던 호텔에서 루스와 인터뷰를 한 후 한국의 파트너인 아이쿱 생협 조합원과 한국의 공정 무역 단체들에게 보내는 5분 남짓의 동영상을 촬영해 왔다. 촬영 마지막에 눈물을 비치기 시작한 이 50대의 활동가는 나를 앞에 두고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감옥 가는 것이 두려웠을까? (물론 필리핀의 감옥이란 공간의 악몽. 정말 죽어나가도 모르는 그런 공간이라 한다.) 하지만 그녀를 울게 만든 진짜 이유는 자신의 30년의 활동을 부정당한 절망 때문이었으며, 그래도 놓고 싶지 않은 자국(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파나이 섬의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그녀의 삶이 송두리 채 부정당하는 그런 것이 그녀를 더 아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현재 루스가 처한 이 상황이, 인터뷰 영상에서 루스도 말하듯, 우리 사회에 하나의 도전이길 바란다. 공정 무역 상품 소비지 여기 한국에서, "공정 무역=착한 무역"의 프레임 너머를 이제는 봐야 한다. 선하고 가난한 생산자가 공정 무역 네트워크에 연결되기까지 그 생산자들을 조직화하는 사람과 조직이 당연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루스의 상황이 증언하듯, 종종 그 사람과 조직들은 생산국의 맥락에서 '반란죄' 명목으로 기소될 수 있을 만큼 위험을 무릅써야 가능한 그런 것이다.

그래서 공정 무역은 거래에 앞서 운동이어야 한다. 만남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맺음에 대한 윤리적 사고의 결과여야 한다. 공정 무역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상 메시지 촬영 후 그녀가 남긴 말을 좀 더 전달해 본다. (☞바로 보기)

- 좋은 메시지를 한국의 파트너와 시민들에게 보내주어서 고맙다. 더 할 말은 없나?

"우리는 정말 지난 20~30년 동안 파나이 주민의 발전을 위해 일해 왔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점점 더 계속해서 가난해져 가고 있다. 고통의 바닥선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우리의 여성들은 계속해서 떠나고 있다. 그녀들은 해외로, 마닐라로 가정부가 되기 위해 떠나고 있다.

정부는 그녀들을 그저 달러벌이로 만들고 있다. 필리핀은 가난한가? 아니 정부는, 공무원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 우리는 광물도 많고, 자원도 많고, 직업을 만들면 우리의 여성들은 이곳에서 가족의 붕괴 없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나라의 산업 구조가 정말로 우리 사람들을 위한 구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우리가 받은 결과가 이것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러나 걱정보다 나는 희망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가 추상적인 수준에서 더 깊어졌으면 한다. 우리의 관계가 더욱 지속되기 위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임파워먼트는 한 단계 깊어져야 한다.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 우리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더 다가와 달라.

공정 무역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한 것을 넘어서 진정한 변화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공정 무역을 시작할 때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공정 무역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 왜 파나이 섬에서 이 일을 하려고 하는지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그들을 돕지만 궁극적으로, 자조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겁먹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밤 기도한다. 적절한 시기에 나를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 이것이 나의 케이스가 생겨나고 나서 처음으로 가진 직접 인터뷰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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