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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무조건 '비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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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무조건 '비정상'일까?

[프레시안 books] 찰스 페로의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올해는 장마가 길어지면서 많은 비가 내렸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짙은 구름이 깔리면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어대기도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건물 옥상에 있는 피뢰침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웠다. 저게 내 목숨을 살린다고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현대 사회, 특히 도시에서 안전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근대 초만 해도 도시는 더러움의 상징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주기적인 전염병으로 죽어나갔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각종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복지 국가의 등장과 함께 안전 관리가 정부의 중요한 의무이자 통치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안전 관련 사회 제도들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과 같은 자연 재해에 많이 둔감하게 되었다. 물론, 도시민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로 여전히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안전해졌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더 안전해졌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적지 않은 여론 조사 결과는 과거보다 현재가 더 위험해졌다는 대답이 많다는 다소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나는 이 현상이 무척 흥미로워서, 그 이유를 추적해본 적이 있는데, 의외로 다양한 설명들이 있었다. 가령,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이나 '히드라 효과'에 근거한 설명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자는 국민 총생산(GNP)과 환경 운동의 상관관계처럼 사람들의 욕구가 생활수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주장에 기댄 것으로, 과거보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안전에 대한 요구가 더 커졌고, 그에 따라 세상이 더 위험해졌다고 느낀다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자장면의 양에만 관심을 갖다가 이제는 그 속에 든 MSG의 유해 여부에 관심을 갖는다는 식이다.

'히드라 효과'는 목을 잘라내면 더 많은 머리가 생겨나는 그리스 신화의 괴물 히드라처럼,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염병이나 자연재해처럼 커다란 위험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과정에서 사소한 위험이 생겨나서 얼핏 보기에는 더 많은 위험이 생겨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이다. 백신을 통해 전염병 예방에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었지만 백신으로 인한 위험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는 식이다.

이런 설명들은 모두 과거에 비해 현대가 안전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여러 이유로(특히, 언론의 무책임한 선정성이나 시민들의 무관심과 무지) 더 위험해졌다고 잘못 느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과거보다 현재가 더 위험해진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위험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과거의 위험과 현대의 위험은 그 성격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들은 현대 위험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기술 위험'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위험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술 실패(오작동)에 따른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방송을 통해 접하는 많은 위험은 천재지변보다는 사건과 사고로 인한 것이 훨씬 더 많고, 그 대부분의 사건 사고에는 기술(인공물)이 관련되어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자연재해의 경우에도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른 시설물이나 장치에 영향을 미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쓰나미의 영향을 받은 대형 참사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기술 위험'이 빈번해진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으로 '기술권'(techno-sphere)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이 개념은 '생물권'에서 가져온 것으로,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장이브 고피가 기술의 '준생물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각종 기술 인프라(시스템)로 둘러 싸여 있는 도시를 일종의 '기술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다시 잠들 때까지 땅(흙)을 거의 밟지 않고 지내는 우리의 도시의 삶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약간의 상상을 보태면, 기술권을 이루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기술 인프라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번개와 천둥이 아무리 요란해도, 비바람이 세차게 내려도, 심지어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도, 기술 인프라로 안전의 요새가 구축된 도시에 사는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천재지변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한결 그 무서움이 덜해졌다.

자연재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우리 도시민은 여러모로 안전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더 안전해진 것일까? 과거에 우리를 괴롭히던 전염병이나 자연재해로부터는 확실히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1990년대는 '대형 사고의 1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표적 사고만 꼽아 봐도, 아사아나항공 비행기 추락 사고(66명 사망), 성수대교 붕괴(32명),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101명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502명), 대한항공 비행기 괌 추락 사고(225명 사망) 등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대구 지하철 참사, 삼성1호-허베이스피릿 호 기름 유출 사고, 구미 불산 가스 누출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 사고의 공통된 특징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었던 기술 인프라의 실패(오작동)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과거에는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위험에 주로 노출되어 있었다면, 현대로 올수록 기술권의 구축을 통해 외부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졌지만, 기술권 내부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위험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에 더 큰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술권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우리의 공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다소 감정적인 것으로, 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이냐,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반응이다. 이 반응은 기술 문명의 혜택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두 번째는 기술 인프라(시스템) 자체는 충분히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관리만 보장된다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술혁신학자와 공학자는 대부분의 기술 시스템에는 경험을 통한 학습이나 실패를 통한 학습 효과가 나타난다고 본다. 핵공학자는 핵발전소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화되는 경향이 있고, 그에 따라 사고도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조직학자는 '안전 문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관리 조직을 통해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반론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다. 이런 식이다.

"우리는 이미 기술권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고(굳이 기술권을 벗어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기술 시스템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충분히 관리(통제)해낼 수 있고, 설령 일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문제는 기술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운영자, 또는 관리 체계에 있다."

정리하면, 충분히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리(통제)만 이루어진다면 기술 시스템의 안전은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기술 시스템 자체는 완벽하거나 완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학적 믿음은 얼마나 유효할까? 만약 이런 전제가 흔들린다면 과연 우리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찰스 페로 지음, 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이치코리아
기술 시스템 자체의 사고, 즉 시스템 사고를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찰스 페로가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에서 내놓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라는 개념은 획기적이고 충격적이다. 무엇보다도 사고는 '비정상' 상태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정상'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의지와 준비, 노력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대형 사고가 항상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기술 시스템을 근간으로 한 현대 문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페로가 루소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자"거나 소로처럼 "시민 불복종"을 외치고 월든의 운둔 생활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기술 시스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충분한 현실적 고려를 통해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만 취하자는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상 사고' 개념을 가장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내용으로는 다음의 구절을 들 수 있다고 본다.

"(정상 사고는) 일부 시스템(특히, 고위험 기술 시스템)에서 대형 사고를 피할 길은 없다고 본다. 전적으로 완벽한 것이란 없는 법이고, 만약 조직이 선형적이라기보다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고',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기보다 '팽팽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사소한 오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팽팽한 연계에 따라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서 거대한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할지라도,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고 팽팽하게 연계된 특징을 지닌 시스템은 결국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복잡한 상호 작용(complex interaction)"과 "팽팽한 연계(tight coupling)"를 특징으로 하는 고위험 기술 시스템(high-risk technological systems)의 사고는 예방될 수 있는가? 만약, 예방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바로 이 책의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페로는 정상 사고의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끔씩 접하는 머피의 법칙을 재치 있게 이용하고 있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의 머리글에 있는 "어느 하루"의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중요한 면접을 앞둔 한 사람이 겪게 되는 불운의 연속을 통해 시스템 사고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커피포트의 과열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시발점으로 작용하여 자동차 키를 안에 넣은 채 문을 잠그고, 마침 열쇠는 친구에게 빌려준 상태이고, 옆집의 자동차를 이용하려는데 하필 정비에 들어가고, 버스를 이용하려고 하니 파업 때문에 택시조차 잡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그 사람은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 면접을 늦춰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에는 전혀 관련이 없음직한 문제들이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한꺼번에 연결되면서 면접이라는 대사를 그르치게 만들었다. 또한, 사고를 대비해서 마련해 둔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손쓸 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되고 말았다. 긴밀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요소들이 매우 복잡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시스템의 경우에는 어떨까?

페로가 '정상 사고' 개념을 처음 생각하게 된 계기는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TMI) 핵발전소 사고를 연구하면서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스리마일 섬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는데, 그 결과는 보고서로 제출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페로도 조직사회학자로서 연구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 자신이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 스리마일 섬 사고는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에 따르면 5등급(최고 등급인 7등급에는 현재, 체르노빌 사고와 후쿠시마 사고가 있다)에 해당하는 대형 사고였지만, 특별한 이상 징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소한 기계 장치의 오작동이 원인이 되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이런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정상 사고'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페로의 시각은 우리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실제로 스리마일 섬 사고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도 운영자의 대응 미숙을 사고의 주요한 이유로 꼽았고, 설계와 기계 장치의 문제도 안전장치를 강화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여기서 우리는 시스템 사고의 핵심에 좀 더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고가 일어난 후에 되돌아보면, 어떤 문제들이 있었으며, 왜 문제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사고가 진행되는 그 순간에는 그런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만약 파악할 수 있었다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복잡한 시스템일수록 더 큰데, 왜 그런 것일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안전장치를 더 설치하면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는 상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소는 기술 시스템 중에서 가장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핵공학자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자신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런 안전장치가 스리마일 섬 사고에서는 오히려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고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안전장치가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핵발전소처럼 많은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팽팽하게 연계되기 쉬운 시스템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스템과 하부 시스템 간의 상호 작용을 충분히 파악하기 힘든 까닭에 사고가 진행될 때 대응 매뉴얼이 항상 충분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다. 더욱이, 안전장치는 복잡성을 키우고 팽팽한 연계를 촉진하는 효과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문제를 악화시킬 소지도 있다.

페로는 사고 조사를 통해, 스리마일 섬 사고는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요인으로 발생한 사고이고, 이런 점에서 시스템 사고이자 정상 사고라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런데, 사고의 원인을 운영자의 대응 미숙에 두고 안전 교육을 강화하거나 안전장치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셈이다.

결론적으로, 스리마일 섬 사고는 복잡한 상호 작용과 팽팽한 연계를 지닌 핵발전소와 같은 고위험 기술 시스템의 경우에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2011년 핵발전소 폭발과 대지진, 쓰나미 참사를 맞이한 일본 후쿠시마 인근 지역이 폐허가 되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핵발전소 이외에 다른 고위험 기술시스템의 경우에는 어떤가? 페로는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조사하여 보고하는 방식으로 현대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 기술 인프라(시스템)에 해당하는 석유화학 공장, 항공기와 항공로, 해상 사고, 댐과 광산, 우주선, 핵무기 관리, DNA 재조합 등의 시스템 사고와 예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에서 많은 위험들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용하게도 사고를 당하지 않고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가령, 석유화학 공장의 경우에는 구미 불산 누출 사건이나 여수 석유화학 단지의 사고들이 생각나고, 항공기와 관련해서는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의 샌프란시스코 착륙 사고, 해상 사고는 삼성1호-허베이스피릿 호 기름 유출 사고 등이 떠오른다.

이런 사건들의 경우 완전한 의미의 정상 사고라고 하기는 힘들 정도로 관리 소홀이나 부적절한 대응, 제도적 미비 등이 문제가 되었지만, 페로가 지적한대로, 기술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제쳐두고 운영자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묻는 경향도 없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사고 처리의 사회적 기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에 따르면, 모든 위험에는 책임과 그에 따른 비난이 뒤따른다. 이런 관점에서 사고의 원인을 기술 시스템 그 자체에 두면 책임 소지가 불분명해지면서 비난의 대상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비난이 사람이나 조직에 가해지는 것은 위험을 사회적으로 처리하는 한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시스템 사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만약 시스템 사고, 즉 정상 사고가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면 그에 대한 올바른 대비책을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진단이 잘못되었는데 올바른 해결책이 제시될 리 만무하지 않은가?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자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독일은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 활발한 나라로 유명했는데, 약해지던 반핵 운동이 다시 전국을 휩쓸었다. 이 운동은 선거에도 영향을 미쳐서, 집권 여당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반핵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당이 승리하는 이변이 연출된 것이다.

이에 앙겔라 메르켈 연방총리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국민 여론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향후 독일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핵발전소 안전과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이름을 가진 이 위원회는 치열한 내부 토론과 대국민 TV 토론을 거쳐 <독일의 에너지 전환 : 미래를 위한 집합적 프로젝트>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보고서는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는데, 무엇보다도 발상의 전환이 눈에 띈다.

핵발전소의 안전 여부를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는 자세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핵발전소가 안전한데 굳이 비싼 사회적 비용을 들이면서 대안을 찾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안전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와 증거는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는 확률적 위험 평가(PRA)라는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핵발전소의 안전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류는 이미 세 번에 걸쳐서 엄청난 핵발전소 재앙을 경험한 바가 있다는 사실이다. 논리적으로, 우리는 핵발전소는 매우 안전하지만 사고를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안전 여부를 근거로 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 안전 여부 자체가 평행선을 달리는 논란거리이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접근 방식은 대안이 존재하며, 그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가에 두어져 있었다. 만약 핵발전소보다 더 큰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고, 현실적 어려움은 있지만 그 가능성만 충분하다면 굳이 위험할 수도 있는 핵발전소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어쨌든, 핵발전소의 안전을 100퍼센트 보장할 수 없고, 한 번 사고가 나면 회복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서의 상당 부분은 대안의 현실화 가능성과 그런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집합 프로젝트(collective project)'에 두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보고서는 사회적 합리성이 거둔 훌륭한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독일의 사례를 소개한 것은 정상 사고의 해결책으로 페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전문가의 판단에 기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전문가는 절대적 합리성(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하여 위험을 평가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한 까닭에 세부적인 데는 강하지만 맥락을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약할 수 있다. 또 이런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기법도 정량화와 수치화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특정한 편향을 띠게 된다.

더욱이, 위험과 사고와 관련된 분야는 '규제 과학'의 분야로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실험 과학'과는 또 다르게 증거의 정확성과 신뢰성에서 뒤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꼴이다. 사회적 합리성은 이런 부작용을 완화해주고, 나아가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앞서 소개한 독일의 위원회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페로는 사회적 합리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고위험 기술 시스템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우리가 갖출 필요가 있음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만 보였던 핵발전소 폐쇄가 독일에서 비로소 가능성을 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페로의 희망이 헛된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페로는 핵발전소와 핵무기처럼 그 위험이 너무 크지만 대가는 적은 기술 시스템의 경우에는 폐쇄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반면에, 해상 운송, DNA 재조합과 같은 경우에는 위험이 크기는 하지만 대가도 적지 않기 때문에 더 엄격한 규제를 통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수용해야 하고, 비행, 화학 공장, 댐, 채굴, 우주탐사 등은 보완을 통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페로의 정상 사고라는 개념은 나온 지 20년이 넘은 비교적 새롭지 않은 개념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저런 기회에 많이 사용되었던 개념인데, 이번에 번역을 통해 전국에 소개될 수 있는 또 한 번의 소중한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사건마다 불평만 털어놓았던 우리의 문제의식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하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근본적이고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미덕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다양한 사고의 전말을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준다. 일반 독자들은 물론 정책 입안자와 위험 연구자, 안전 관리자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추신. 이 책의 후기에는 1984년 이후 일어난 대형 사고들 중에서 보팔 유니언카바이드 가스유출 사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 챌린저호 폭발 사고 등을 다루고 있다. 또 사고의 근본적 예방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정상 사고와 대척점에 위치한 고신뢰 조직(high-reliability organizations)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미래의 시스템 사고를 예언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정상 사고의 접근이 틀렸기를 바라지만 내 경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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