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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정치 칼럼은 그만! '진'을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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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정치 칼럼은 그만! '진'을 읽는 이유!

[프레시안 books] 하워드 진의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김민웅 옮김, 일상이상 펴냄)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시사평론 모음이다. 1980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0년까지 30년에 걸쳐 <프로그레시브>에 실었던 글 서른세 편을 모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워드 진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진면목 세 가지가 페이지마다 거듭 나타나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한 번 더 느꼈다.

우선 역사가가 쓰는 시사적 글이 갖는 시간적 지평의 차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시사적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다. 언론 활동이 활자 매체에 그치지 않고 인터넷, 모바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로 번지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엄청나게 많은 견해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말의 홍수 속에서 나는 간혹 이처럼 거대한 양의 의견들이 얼마나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회의에 잠기곤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단 1년 전에 발표된 시사 칼럼 중에 오늘의 눈으로 보아 탁견이라고 인정될 만한 글이 얼마나 될까? 정권의 새빨간 거짓말에 동조하거나 곡학아세로 자신을 팔아 몇 달만 지나도 쓰레기가 되는 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주요 언론에 보도된 시사 논평 중 시간이 흘러도 살아남은 문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걸러내어 "최고의 시사평론가들" 그리고 "최악의 시사평론가들"을 뽑아 후자를 여론의 시장에서 도태시키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주위에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30년 뒤에 읽어도 그 혜안이 번득이는 글을 쓸 수 있는 하워드 진 같은 필자는 "동시대의 예언자"로 불러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하워드 진 지음, 김민웅 옮김, 일상이상 펴냄). ⓒ일상이상
하워드 진은 자신이 설파하는 주장들이 동시대인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곳곳에서 그런 표현이 등장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 시점에서의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있을 때, 그는 "아, 흥을 깨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자면 그건 이렇습니다" 하고 정중하지만 신랄-정확하게 동시대의 문제를 짚어낸다. 좀 길지만 하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이제는 낡아버린 체제이고,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뿐이라는 점을 각성시켜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해결책을 찾으려 해도 결국에는 처참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울 필요가 있다. (…) 여러 개혁 조처 위에서 자본주의는 풍요와 경제-문화적 질병증세가 공존하는 역사를 거쳐 왔다."

얼핏 들으면 2008년 월가 추락 이후에 쓴 글처럼 들린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논리처럼 익숙하게 들리지 않은가?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동구권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만만세 소리가 드높고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까지 나오던 (따라서 절대 다수의 지식인조차도 자본주의의 필연적 승리를 받아들이던) 1990년 11월에 쓴 글이다. 역사적 통찰이란 이런 걸 이르는 말이다.

"부시 세력, 몰락이 예견된다" 이런 꼭지도 있다. 부시 정권 말기에 쓴 글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직후 네오콘들이 기고만장의 극치에서 천하를 호령하고 있던 시점에 쓴 글이다. 대부분의 여론도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때였다. 그런데도 이런 예견을 하는 근거로 시민들의 각성을 꼽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여론의 변화란 애초에는 정부의 정책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 여긴 낮은 수준의 불만에서 비롯된다. 그러다가 정부 정책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분노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발언하며 조직하고 행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두 번째로 확인한 하워드 진의 덕목은 그의 글쓰기 방식이다. 이 때문에 그를 단순히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치적 진보에 더해 평이하고 솔직한 문체로 지혜와 통찰을 전달하는 현인으로서의 무게감 때문이다. 일찍이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직접 뛰어들었던 토머스 페인은 좋은 글의 덕목으로 "지적이되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문장"을 꼽은 적이 있다.

하워드 진의 글쓰기가 페인의 좋은 글쓰기에 가장 근접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문장을 미국과 세계 체제에 관한 탁월한 지식인 김민웅이 빼어난 전달력으로 번역해 놓았으니 책의 가치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난삽하고 자기 과시적이며 자의식이 결여된 문장을 진보와 학식의 상징인 것처럼 구사하는 관행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대중과 분리시키는지도 모른 채), 하워드 진의 글쓰기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글쓰기가 진보적 글쓰기의 밑절미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민중의 친구로서 저술 활동을 펼친 지식인으로서의 하워드 진의 진면모가 이 책의 전반을 흐르고 있다. "선거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꼭지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지만, 이 역시 현 시점 한국인에게도 예언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워드 진에 따르면 선거란 "외양만 그럴듯한 사지선다형 문제로, 존경받는 교사라면 이런 식의 문제를 학생들에게 내주진 않을" 그럴 선택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적인 사람들마저도 이 대통령 선거에 매몰되어 있다. (…) 현실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언론이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조차도 언론이 쏟아내는 보도에 사로잡히고 만다. (…) 이른바 진보적 매체의 경우에도 대통령 후보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건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이 있다. 하워드 진이 극단적인 입장에서 선거 무용론을 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는 분명 중요하다. 그리고 후보 간 차이도 확실히 있다. 더 좋은 후보, 더 나쁜 후보가 분명 존재한다. 정당 간 정책의 색깔, 결, 진정성, 의지, 실현가능성에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좀 더 나은 후보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뽑기만 하면 만사형통일까?

후보들 간의 차이란 "시민들의 권력이 강력해져서, 백악관의 주인에게 그 힘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울 정도가 되어야 의미가 있게" 된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후보와 보수적 후보가 있고, 각성된 시민과 무관심한 시민이 있다고 칠 때, 각성된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 후보를 향해 끊임없이 압력을 넣을 수 있을 때에만 선거가 진정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각성된 시민들임은 두말 할 여지도 없다. 우리가 스스로 진보-개혁적 유권자라는 착각에 빠져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한, 각성된 시민으로서의 권력 행사는 요원하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직장과 마을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의 시민들을 교육하고 깨우치며 조직하는 일 (…) 어떻게 해서든지 열정적으로 시민 운동을 성장시켜 이것이 어떤 결정적 위력을 발휘하는 수준까지 가게 해서, 누가 권력을 쥐게 된다 하더라도 전쟁과 사회 정의의 정책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도록 압박을 가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는 이처럼 2012년 대선을 앞둔 한국 국민에게도 긴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시대를 초월해서 정치권력과 시민 권력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중적 기능을 하는 현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책의 서문은 이 책을 읽기 위해 "노란 형광펜과 빨간 펜"을 미리 준비하라고 권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줄긋고 숙고하고 기억하고 주변에 권할 일이다.

모든 독자들이 본서를 두 권씩 구입해서 한 권은 본인이 소장하고, 또 한 권은 아끼는 이웃에게 선물로 돌리면 좋겠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가 저소득층 가정을 위해 쓰이는 책이니 더욱 그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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