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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아동 투표권'도 도입하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아동 투표권'은 어떨까?

안철수 후보가 정치 개혁의 구체적 방안으로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를 꺼냈을 때 참 기발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기발하다는 것은 상식과 통념을 벗어난다는 뜻이다. 보통 상황에서는 상식에 어긋나는 제안이 효과를 일으키기 힘들다. 제안자 본인의 위신만 떨어뜨릴 뿐, 진지한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기 쉽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제안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득권의 반발'이 아니다. 상식 차원에서 이 제안의 문제점과 비현실성을 지적한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안 후보의 이 '몰상식'한 제안이 여론의 큰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 때문에 전문가들은 또 정치에 대한 지나친 불신이 '정치의 실종'을 가져왔다고 걱정한다. 상식 차원의 걱정이다.

세상만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있다.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이 상황을 놓고 걱정만 하기보다 고무적인 면도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사회 통합성의 약화를 걱정하는 한편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역구를 50석 가량 줄이고 그만큼 비례 대표를 늘리자는 문재인 후보의 국회 개혁 방안을 놓고 "너무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논평을 봤다. 그렇다. 너무 상식적인 방안이다. 상식적이고 실현 가능하다는 것은 신뢰성을 뒷받침해 주는 미덕이다. 그러나 국민 여론이 정치계와 정치학계의 상식과 겉돌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보다 과감한 자세가 필요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원 정수 줄이는 데 반대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제안이 유력 후보에게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반갑다. 한국 정치계의 '상식' 중에 21세기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 있는지 폭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방 공간의 역사를 세밀히 살펴보는 '해방일기' 작업을 하는 중,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지만 '장래의 상식'으로 생각해볼 만한 문제 하나가 떠올랐다. 아동 투표권 문제다.

1947년 5월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보통선거법'을 통과시켰는데, 투표권을 만 25세 이상으로 규정한 점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민주당(한민당)과 이승만 추종 세력 등 극우 세력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젊은이들의 투표를 싫어하는 세력은 그때도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다가 아동 투표권을 제창하는 '데미니 운동'이 근년 활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떠오른 생각을 1947년 5월 30일자 일기에 적은 것이 있다.

5월 14일자 일기에서 선거권 연령 문제를 언급할 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것이 있다. 미성년자라 해서 선거권을 주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일일까, 갓난아이까지 모두 선거권을 주고 미성년자는 보호자(부모)가 대신 행사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 생각이 몇 해 전부터 널리 검토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후 알게 되었다.

<Wikipedia>의 'Demeny voting' 조에 이 움직임이 소개되어 있다. 미성년자에게도 선거권을 주자는 것은 인구학자 폴 데미니가 1986년에 발표한 의견인데 여기에 '데미니 투표권'이란 이름을 붙여 제창하는 운동이 2000년대 들어 확산되고 있다. 미성년자의 투표권을 부모가 절반씩 대신 행사하게 하자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아동투표권(Kinderwahlrecht)이란 이름으로 2003년 이 원칙의 도입이 투표에 붙여졌다가 부결된 일이 있고 헝가리에서는 연립 정권이 도입을 한 때 고려했다고 한다.

사회의 노령화에 따른 선거의 노령화 때문에 이 원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특히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간다. 2011년 3월 히도츠바시 대학 세대 간 연구소에서 이를 주제로 학술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선거의 노령화는 정책의 선택에 있어서 기성세대가 혜택을 누리고 사회의 빚을 늘리는 방향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젊은 층의 선거권에 더 비중이 커야 선출된 입법 기관과 행정 기관이 사회의 장래를 더 많이 생각하는 정책 노선을 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미니 투표권이 환영받는 것이다. 아동 투표권이 실현될 경우 정치에서 환경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고 청소년층의 참여 의식이 자라날 것이라고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 아동 투표권 도입은 미성년자를 자녀로 둔 30대와 40대의 선거권을 대폭 늘려주는 결과가 될 것이니, 그 연령층에게 인기 없는 정당의 '결사반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아동 투표권이 실행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갓난아이의 부모들이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아이의 장래를 위한 선택을 생각하는 모습. 초등학생의 부모들이 아이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해주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들어갈 때 민주주의의 모습이 더 완벽해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은 인권의 핵심 요소다. 어린이들의 참정권이 배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성 세대가 단기간의 혜택을 제시하는 후보들을 선택해서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망치고 국가와 사회의 빚을 늘리게 하는 것은 정의로운 길도 아니고 사회의 발전을 바라보는 길도 아니다.

법적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 미성년 유권자의 경우, 다른 모든 행위를 대신해주는 보호자가 투표 행위도 대신해줄 수 있지 않은가. 직접 투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참정권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간접 투표라서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성년 유권자의 직접 투표보다 투표의 효과를 줄여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보호자의 대리 투표 한 표는 직접 투표의 절반이나 3분의 2에 해당하는 것으로.

몰상식한 제안임을 인정한다. 주변에 개혁 좋아하고 진보 좋아하는 사람들 많지만 이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상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미성년이라 해서 참정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상식일까?

상식을 벗어난 김에 대의 정치의 '대표성'에 관한 생각 하나 더. 대한민국 국회가 사람만을 대표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국토와 자연을 대표하는 역할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

한국에서 선거구 획정의 유일한 척도가 인구다. 인구 많은 선거구는 너무 적게 대표되고 인구 적은 선거구는 너무 많이 대표된다고 하는 것은 대표의 대상을 사람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도시 한 구의 주민이 산간 지역 몇 개 군보다 더 많은 대표를 국회에 보내는 것이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선거구의 면적도(해안을 낀 선거구의 경우 해안선의 길이도) 획정 기준에 포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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