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 3파전을 벌이던 선거판은 노무현과 정몽준이 단일화에 합의, 양자 대결로 재편됐다. 노무현과 이회창은 박빙의 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대중은 기뻤다. 비록 당적은 없었지만 엄연한 여당의 승리였다. 12월 23일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이 청와대로 찾아왔다. 노무현은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2003년 새해가 밝았다.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대중은 주변 정리에 나섰다. 우선 동교동계를 해체하겠다고 천명했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동교동계'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아태평화재단도 연세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재단의 건물 신축과 운영 등에 대한 잡음이 일고 야당은 정치자금 조성의 온상이라고 공격했다. 그대로 끌고 갈 수 없었다. 김대중 사상과 정책의 산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세대 측은 아태재단을 인수하여 '김대중도서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시아 최초로 대통령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 탄생했다.
임기 말에 다시 악재가 튀어나왔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1월 10일 성명을 발표했다.
"NPT 탈퇴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압살 책동과 그에 추종한 국제원자력기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응당한 자위적 조치이다."
김대중은 낙담했다.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에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선택했다. 다시 임동원을 찾았다. 특사 임동원 일행은 마지막 북행길에 올랐다. 눈 오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스산한 행로였다. 김대중은 국방위원장 김정일 앞으로 친서를 보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핵 의혹을 해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정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임동원은 사흘을 기다리다 남으로 돌아왔다. 다시 미국은 네오콘이, 북한 또한 강경파가 득세할 것이 뻔했다. 김대중은 김정일과 부시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김대중의 권력은 서산에 걸려있었다. 실로 노루꼬리처럼 작았다.
다시 '대북 송금사건'이 터졌다. 야당은 "현대상선이 4억 달러를 불법 대출받아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보냈다. 그 배후에는 청와대가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이를 중계했다. 노무현 당선자 측에서도 검찰수사가 불가피하다며 "김대중 정권이 털고 가라"고 압박했다. 김대중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2월 14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 과정에서 이미 북한 당국과 많은 접촉이 있던 현대 측의 협조를 받았습니다. 현대는 대북 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개 사업권을 얻었습니다. 정부는 그것이 평화와 국가 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정부는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김대중은 여야 정치인에게 "국익을 위해 각별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주기 바라며, 여러분의 결정에 남북관계의 미래와 민족과 국가의 큰 이해가 걸려 있다"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현대의 대북 송금은 북한과의 '7대 경협사업'에 대한 현대가 30년간 독점권을 행사하는 대가로 5억 달러를 지불한 것이지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의 공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침내 특별검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2월 10일 공동정부에서 여당 대표를 지낸 민주당과 자민련 인사들을 초청해서 만찬을 했다. 아내 이희호가 처음으로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많습니다. 남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편이지만 저도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항상 밤잠을 설쳐가면서 나라와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해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프레시안(손문상) |
청와대 출입기자 일동이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을 새긴 기념패를 보내왔다.
'지난 5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은 절망의 IMF 외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건져냈습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은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월드컵은 온 국민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대통령님을 우리 모두는 사랑합니다.'
돌아보니 숨 가쁜 날들이었다. 둘러보니 여러 업적들이 쌓여있었다. 외화 위기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끌어냈다. 한반도 주변 4대국과 선린의 외교망을 설치했다. 4대 부문을 개혁하여 경제 체질을 바꾸었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어 굶주림을 추방했다.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고,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제주 4·3사건진상규명특별법 등을 제정했다. 2700만 명의 인터넷 인구를 지닌 IT강국을 건설했고, 그렇게 해서 전자정부를 완성했다. 또 거센 반대에도 4대 보험을 완성시켰다. 시위 현장에서는 최루탄과 폭력이 사라졌다. 취임 당시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1200 달러가 넘었다. 과거 50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246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는 무려 600억 달러의 자본을 유치했다. 온 국민의 열기를 뭉쳐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이뤘다. 그리고 가장 귀한 상,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래도 아쉬운 것들이 있었다. 지역감정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기승을 부렸다. 또 학연(學緣) 또한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학연을 없애라고 그렇게 일렀어도 끼리끼리 눈을 깜박거리며 똘똘 뭉쳐 있었다.
김대중의 임기 말은 참담했다. 자식들과 측근들의 비리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지지자들도 속이 타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김대중이 무척 안쓰러웠다. 이제 김대중을 평가는 역사만이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정치를 떠나 평범한 할아버지로 살아가기를 바랐다. 남은 생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할아버지 김대중'이란 칼럼을 썼다.
'이제 떠나야 한다. 그가 늘 목마르게 불렀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역사가 대답해줄 것이다.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그에게 다시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외환위기 극복, 햇볕정책, 정보기술(IT) 강국 건설, 월드컵 4강 등 그가 임기 내 이룬 것들을 마치 자신의 공인 양 자랑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실정에 대해서도 변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누구처럼 자신이 권력이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비루한 구걸이며 측은한 파닥거림일 뿐이다.
나라를 위해 무언가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당신의 시대는 갔다. 여러 가지를 버릴 때가 되었다. 버리면 가볍다. 당신이 눈물로 쌓았던 '아태재단'도 속절없이 무너졌지 않은가. 남아있는 전(前) 대통령의 삶에 부디 때가 묻지 않기를 바란다. 성공한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명예도 바래고 권좌도 늙는다. 당신의 역할도 끝났다. 이제는 할아버지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 하의도나 아니면 마포에서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제는 '비범'을 버리고 평범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용기와 정의를 샘솟게 만든 이 땅의 지극히 평화롭고,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 곁에 머무르며 진정으로 가난해졌으면 좋겠다.
지난날은 숨 가빴지만 때가 되었다. 당신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꽃을 돌보고 책을 읽으며, 이웃에게는 인생경험을 얘기하고, 손자들에게는 옛날얘기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년을 그려본다. 김대중을 알고, 그를 연호했던 지난날이 눈물겨웠는데… 아, 정말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2월 24일 그날이 왔다. 김대중은 '위대한 국민에의 헌사'라는 퇴임인사를 했다.
"일생 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저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국가로 성장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그러할 자격이 있습니다. 경제 대국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 간의 평화적 통일도 언젠가는 실현시키고 말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같이 단결합시다. 내일의 희망을 간직하고 열심히 나아갑시다. 큰 대의를 위해 협력합시다."
오후 5시 청와대를 나왔다. 시민들이 몰려나와 연도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동교동 골목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젊은이들이 김대중을 연호했다. 인터넷 팬클럽 'DJ 로드' 회원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대통령님 수고하셨습니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김대중은 그들을 향해 골목에서 즉석 연설을 했다. 대통령 김대중이 사저로 들어섰다. 언론들이 아방궁이라는 대대적으로 보도한 집이라 김대중 자신도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아방궁은 아니었다. 여전히 좁았다. 침실은 침대 하나로 꽉 찼다.
다음 날 아침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했다. 김대중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비서들이 마음을 졸이며 이를 지켜봤다. 이미 김대중의 몸에는 큰 병이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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