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저가 말하는 핵심 주장은 이 책의 영어판 부제(How Our Greatest Invention Makes Us Richer, Smarter, Greener, Healthier, and Happier)에 있다. 즉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도시가 인류를 더 부유하고 영리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있으며, 거기다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장 최근에 나온 도시 예찬론의 집대성이다.
현재 선진국 인구의 대부분과,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도시에서 살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 나머지 개발도상국에서도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인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도시화의 진전과 함께 도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인구가 수백만이 넘는 대도시가 증가하고 있고, 인구 수천만 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권도 세계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도시화 및 도시 규모 확대 현상을 걱정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글레이저는 오히려 도시화 현상을 인류 번영과 행복의 열쇠라고 여긴다.
지금으로부터 200~300년 전 쯤 서구에서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가 막 시작되던 때부터 도시화 현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했고, 이러한 시각 차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에베네저 하워드 등은 도시화의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면서 그 대안으로 자연 회귀나 소규모 전원도시를 주창했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르 코르뷔지에, 제인 제이콥스 등은 대도시 생활을 찬미하고 대도시에 걸 맞는 공간 형태를 제안했다. 이 책 <도시의 승리>를 통해 글레이저는 도시화 및 대도시 옹호론 계보의 젊은 선봉장이 되었다.
▲ <도시의 승리>(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이진원 옮김, 해냄출판사 펴냄). ⓒ해냄출판사 |
고층 건물로 가득 찬 대도시가 숲 속에 둘러싸인 전원 주거지보다 더 환경 친화적이라는 글레이저의 주장은 우리 대부분의 상식을 뒤집는 주장이다. 저자의 탄탄한 경제학적 논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통계 자료, 거기에 저자의 재치와 유머가 있는 문체가 더해져서 이 책에 담겨있는 많은 내용들이 대중들에게 큰 설득력을 가진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참으로 많지만, 핵심 주장과 그 정책적 시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먼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은 이 책의 제목처럼 도시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도시가 승리하는 이유는 도시가 혁신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있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지식의 공동 생산이라는 협력 작업이 가능한 곳이다. 가난한 사람도 농촌에서는 얻지 못할 기회를 도시에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는 규제 정책이나 이민 반대 정책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둘째, 소기업들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고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도시들은 번창하지만, 반대로 단일 산업에만 편중되어 있고 교육 수준이 낮은 비숙련자들이 많은 도시들은 쇠퇴한다. 따라서 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 글레이저의 용어로 인적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양질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도시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쇠퇴하고 있는 도시에서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건물이나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셋째, 도시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교외 지역으로 나지막하게 확산되는 저밀도 교외 지역보다, 높은 고층 건물로 구성된 고밀도 도시가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원활하게 하여 도시의 활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더 환경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외화를 촉진하는 정책보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고 고층화를 촉진하는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
넷째, 성장하는 도시에서는 개발을 억제하지 말고, 쇠퇴하는 도시에서는 인위적인 부양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도시의 흥망성쇠에 괜히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굳이 개입하려면 쇠퇴하는 도시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정책을 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는 정책은 좋은 정책이지만, 가난한 장소를 지원하는 정책은 나쁜 정책이다.
글레이저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옳은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도시들이 그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기본적으로 시장 경제를 중시하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도시 정책에서 공공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제학자이다. 무조건 자유 시장의 원리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입장이 다르다.
그렇다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자도 아니다. 미국적 기준으로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온건한 보수주의자에 속한다. (그러나 만약 글레이저가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아마 진보 진영에 속할 것이다. 워낙 우편향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좌파나 빨갱이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자유로운 시장만으로는 결코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시에서 불필요한 규제나 장소에 대한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레이저의 많은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장주의자의 입장에서, 콘크리트에 대한 투자 대신,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함을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이 책의 가치가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글레이저는 기본적으로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경제학자이다. 식수 공급, 위생, 대중교통, 치안 등의 영역에서는 공공의 적극적 개입을 인정하지만, 나머지 도시 정책 영역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기초한 자유 시장 원리를 옹호한다. 그래서 공공이 행하는 토지, 건축, 환경 규제 등을 비판한다.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이 부분에 있다.
특히 가난한 장소에 투자하지 말라는 글레이저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른바 '장소의 번영' 대 '사람의 번영' 논쟁이 진행된 바 있다. 가난한 장소를 돕지 말고 대신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4대강 사업 같은 토건주의가 판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 거주 장소와 쉽게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경제, 사회, 인간관계는 거주 장소와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거주 장소를 포기하고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낙후 지역이나 쇠퇴 지역을 방치하자는 주장은 그 곳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 상당수를 방치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또 도시들의 지나친 흥망성쇠를 용인하는 것은 쇠퇴 지역에 이미 투자된 하부 구조가 사용되지 않음에도, 성장 지역에 신규 하부 구조를 새로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이 사람에 대한 지원을 주장해 왔는데 비해, 진보주의자들은 장소에 대한 지원이 사람에 대한 지원과 동시에 병행되어야 함을 주장해 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도시의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것, 그래서 교외 지역은 도시에 속하는 것인지 아닌지가 불확실하다는 등 몇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내용들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해도 되는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꼭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에서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장은 미국 도시들에 대한 연구나 실증 자료에 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적 맥락에서 나온 이 책의 논리와 주장이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글레이저의 권위에 기대어 미국과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이 상이한 우리나라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서울의 재개발 재건축 적극 추진론자, 지역 균형 발전 반대론자, 수도권 환경 규제 반대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견강부회하는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워싱턴에, 금융 자본은 뉴욕에, 가장 좋은 대학은 보스턴이나 그보다 더 작은 도시들에, 그리고 로스엔젤리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나름대로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여러 대도시들이 공존하면서 도시 간 공평한 경쟁이 가능한 미국에서 파생된 글레이저의 주장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권력이 모두 서울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곤란하다.
또 녹지 속에 듬성듬성 세워진 미국의 저밀도 도시에서 고밀도를 촉진해야 한다는 글레이저의 주장이, 그렇지 않아도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로 지어져 가뜩이나 고밀도인 우리의 대도시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저소득층 저층 주거지를 중산층을 위한 고밀도 아파트로 재개발하자는 주장으로 맥락 없이 연결되어서도 곤란하다.
국토 면적, 인구 밀도, 도시 간 계층 구조, 도시 내부 건축 밀도, 공공 예산 배분 구조, 복지 전달 체계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국에서 나온 주장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경청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모방하거나 수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글레이저의 말대로 성공한 도시들은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항상 다양한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무척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두꺼운 책이지만,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의 셀 수 없이 많은 도시 문제들의 해법이 이 책 한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왕이면 이 책에 담긴 많은 주장들의 시시비비를 하나하나 가려본다는 태도로 꼼꼼하게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글레이저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은 많은 공부거리를 던져줄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의 주장에 무언가 허전함과 거부감을 느낀다면 다음 세 권의 책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의 저자가 속한 대도시 옹호론 계보의 대선배이지만, 뉴욕에서 재개발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노전사(老戰士) 제인 제이콥스가 지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유강은 옮김, 그린비 펴냄), 이 책의 저자 글레이저와 다른 이념적 입장을 가진 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은 <슬럼, 지구를 뒤덮다>(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 및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엮은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유강은 옮김, 아카이브 펴냄)를 함께 읽는다면, 이 책에 담긴 주장이 놓여 있는 정치경제적 위치, 이 책 주장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