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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독트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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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독트린,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니…

[정욱식의 북핵이야기]<21>미국과 닮은 북한, 이젠 파키스탄 모델로?

현재 5~1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은 9개의 핵보유국 가운데 그 능력은 가장 약하다. 그러나 '서울 불바다', '워싱턴 불바다'와 같은 위협적인 발언을 통해 핵무기 사용 의지는 가장 강하게 비치려고 한다. 핵 억제력이 능력과 의지를 통해 확보된다고 할 때, 북한은 부족한 능력을 과도한 의지를 통해 상쇄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할까?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에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 사용 독트린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한 전략이고, 또 하나는 비핵국가를 상대로 한 전략이다. 핵보유간의 독트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정책을 채택하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즉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에 조건을 다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전자와 관련해 북한은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는 북한은 먼저 핵무기를 사용해 다른 핵보유국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핵보유국이 핵무기는 물론이고 비핵무기로 북한을 공격해오더라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핵무기 사용 권한을 최고사령관, 즉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유 권한으로 명시한 것도 눈에 띈다.

▲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지난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후자와 관련해서 북한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일종의 '조건부' 소극적 안전보장이다. 이는 핵보유국인 미국의 동맹국들이자 비핵국가들인 한국과 일본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은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 외무성은 2013년 3월 7일 한미 연합훈련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맹비난하면서 "미국이 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피려고 하는 이상 우리 혁명무력은 나라의 최고 리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침략자들의 본거지들에 대한 핵선제타격 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중국과는 멀고 미국과는 가깝다

그렇다면 이러한 북한의 핵 독트린을 다른 핵보유국들과 비교하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현재 북한을 제외한 핵보유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공식 인정한 5대 핵보유국들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인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NPT 비회원국들이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가운데 북한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나라는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이다. 2012년 현재 240개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한 중국은 1964년 핵실험 성공 이후 자국의 핵전력은 "완전히 방어적인 목적"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중국은 핵보유국들 가운데 핵무기 선제 사용 불사용 및 무조건적인 소극적 안전보장을 공약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어떤 경우이든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내 일각에서는 공세적인 방향으로 핵 사용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사일방어체제(MD)를 앞세워 아시아-태평양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는 미국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핵 전략이 중국과 가장 거리가 멀다면, 가장 가까운 나라는 적대국인 미국이다. 북한의 조건부 소극적 안전보장은 "비핵국가가 핵보유국과 연합해 공격하지 않는 한 미국은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전통적인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미국 역시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도 핵선제공격 전략 유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행정부 역시 큰 차이는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4월 발표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에서 핵 사용에 대한 크게 두 가지 입장을 밝혔다. 먼저 핵무기 사용 불사용 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사활적인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극단적인 환경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또한 "핵보유국들과 NPT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나라들이 미국이나 동맹·우방국들에 재래식 및 생화학 무기 공격을 가하려는 것을 억제하는 데 있어서, 좁은 범위 내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남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보다 핵무기 사용 조건과 환경을 엄격히 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 채택은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 안전보장에도 여전히 조건을 달았다. "미국은 NPT 회원국이고 이 조약상의 의무를 준수하는 비핵국가들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NPR 보고서는 "NPT 회원국으로서 이 조약상의 의무를 완전히 준수할 때 안보적 이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비핵국가들로 하여금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미국 등 관련국들과 협력할 것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미국 핵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NPT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NPT에서 탈퇴해 핵무기를 만든 북한과 대표적인 NPT 위반 국가로 지목받고 있는 이란은 미국의 핵선제공격 대상으로 남게 된다. 이를 뒷받침 하듯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4월 5일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북한과 이란을 "예외국들(outliers)"라고 부르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소극적 안전보장에서 제외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한편 미국과 함께 양대 핵보유국인 러시아는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 제공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적대국이 핵무기나 다른 대량살상무기 사용 시"와 "재래식 무기 사용을 포함한 적대국의 공격으로 인해 국가의 존망이 위협받을 때"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명시해놓고 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 미국 주도의 MD 확대, 미국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핵 전략이라고 러시아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혈맹으로 불리는 영국의 핵 전략은 미국과 대동소이하고, 프랑스는 모든 종류의 무력 공격에 대해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해 공식적인 핵보유국들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핵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로 분류된다. 특히 프랑스는 핵보유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00~2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자신의 핵보유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를 고수하고 있어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가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의도적 모호성(deliberate ambiguity)"만으로는 적대국에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스라엘의 핵무기 능력과 유사시 사용 의지를 보다 분명히 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아시아에서 첨예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독트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세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인도 정부는 핵실험 이듬해인 1999년에 핵무기 선제 불사용 정책을 공식 채택했다. 이는 경쟁국인 중국과 대단히 흡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공세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핵국가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도 핵보유국에 대해서는 선제 불사용 정책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파키스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도는 최근 '지대지 탄도미사일-전략 폭격기-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로 이어지는 핵 삼중점(nuclear triad)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를 '존재론적인 위협', 즉 자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적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가장 공격적인 핵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1998년 핵실험 직후 "우리는 보복 공격의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인도의 재래식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발표해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핵 전략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핵무기를 인도와의 재래식 전력의 격차를 상쇄할 수 있는 '이퀄라이저'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파키스탄의 전술 핵무기 개발·배치에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전용' 핵무기를 가져야 인도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할 수 있고, 억제가 실패하면 인도군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핵 독트린은 미국과 가장 유사하고 중국과 가장 큰 차이가 난다. 또한 파키스탄 모델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북한 역시 핵무기를 한미동맹에 대한 군사력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이퀄라이저'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 대포를 비롯한 전술 핵무기 보유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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