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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콧물이 사라진 세상…"내 코를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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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콧물이 사라진 세상…"내 코를 살려줘!"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콧물을 찾아서

여름이 끝나고 가을바람이 불면 불안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이다. 사시사철 막힌 코를 달고 다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 잠시 코가 뚫렸던 사람도 맹맹한 코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그 많은 노란 콧물은 사라지고 맑은 콧물이 흐르는 알레르기만 우리를 괴롭힐까? 소설가 김주영의 옛추억 이야기를 읽다 보면, 콧물에 대한 이야기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김주영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콧물은 우리가 요즘 보는 맑은 것이 아니라 노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싯누런 콧물을 줄곧 인중에 매달고 다녔다.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두 줄기의 콧물이 입술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하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아이들은 훌쩍 숨을 들여 마셨다. 그러면 두 줄기의 콧물은 잽싸게 콧구멍 속으로 퇴각해서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인중에는 두 줄기의 콧물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린 하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콧속으로 들어간 콧물은 어느새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인중을 타고 내린다. 시달리다 못한 아이가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여 옷소매로 인중을 쓱 문지른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의 윗도리 양쪽 소매는 말라붙은 콧물로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지금은 이런 노란 콧물을 거의 보기가 힘들어졌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손수건을 반드시 명찰 근처에 매달던 모습도 사라졌다. 지난 수십 년간 거리 풍경뿐만 아니라 코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 20년간 내가 치료한 환자의 모습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의원을 시작해서 코를 치료한 지 20년이 넘는 동안, 손수건을 들고 학교에 입학했던 환자가 어른이 되어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20년 전만 해도 치료의 대세는 바로 노란 콧물, 즉 축농증을 없애는 것이었다. 옛날에도 비슷했다. <동의보감>에도 노란 콧물을 치료하는 처방이 다수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축농증을 치료하는 외용약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부비동에 있는 콧물을 빨아내는 과체산이다. 과체는 참외의 꼭지를 가리키는 약재 용어다. 참외 꼭지를 비롯한 네 가지의 약물이 들어가는데 코에 넣으면 강력한 배농 작용이 있어서 노란 콧물이 흘러내리면서 축농증 증상이 완화된다. 이 과체산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20년 전에 필자가 환자를 치료하던 경상북도 안강과 포항 사이에는 해병대 초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어서 이 해병대 초소에서 검문을 받아야 포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멋있는 헌병이 버스 승객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앞뒤 자리를 확인하는 모습은 젊은 여성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근엄한 헌병에게 웃음 폭탄을 안겼던 것이 바로 코 밑에 붙인 하얀 반창고였다. 과체산 탓에 쏟아지는 콧물을 막고자 코 밑에 하얀 솜을 넣고 반창고로 고정시킨 환자가, 헌병을 보자마자 "암호명 갑산입니다!" 하고 외쳐서 헌병은 물론이고 버스 안의 사람이 다 웃었다는 것이다.

영천 시장 등에는 과체산을 몰래 만들어서 파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가 콧물을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해 이 과체산을 구했다. 집으로 간 할아버지는 손자가 자는 코에 대고 가루를 불어넣었는데, 양을 조절하는데 실패한 나머지 과체산에 기도가 막혀서 손자가 죽었다. 노란 콧물이 사람을 잡은 것이다.

물론 요즘도 가끔씩 노란 콧물이 흘러내리는 환자가 온다. 이런 환자들 때문에 참외 꼭지를 사다가 과체산을 만들어 보았는데 약효가 예전만 못하다. 참외 꼭지가 중국산이어서 그런가 생각해서, 집에서 먹는 국산 참외 꼭지를 직접 말려서 과체산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약효가 없었다.

왜 그럴까? 요즘은 참외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다보니, 참외 꼭지가 제대로 쓴맛을 내지 못하는 탓이다. 참외 꼭지는 자연 햇빛을 받아야 쓴 맛이 강해지고, 이 쓴 맛을 내는 성분이 배농 작용을 한다. 상당한 파장의 빛을 비닐이 반사, 흡수하니 참외 꼭지가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infovisual.info
이렇게 참외 꼭지의 약효가 예전만 못해도 요즘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란 콧물 때문에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가 20년 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요즘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다. 사실 많은 한의사들이 알레르기성 비염에 나름의 치료 방법을 내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처방이 소청룡탕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에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몇 년 전부터 많은 한의원들이 "비염 전문" 간판을 내걸고 환자를 모은다. 그러나 이 소청룡탕 처방은 반쪽짜리 치료법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알레르기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는 인체의 면역 체계가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인체의 면역 반응을 겉으로 드러나는 생리 현상을 놓고 보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체온을 높여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접근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액을 분비해서 씻어내는 것이다. 전자는 양기와 관계가 있고, 후자는 음기가 관련이 있다.

소청룡탕 류의 처방은 체온을 높여서 콧물을 없애는 식의 양기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소청룡탕으로는 음기를 다스릴 수 없다. 코가 건조해서 생기는 알레르기, 즉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심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소청룡탕이 효과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의 점액이 마르면서 생기는 알레르기는 점액 분비와 관계되는 음기를 다스려야 한다.

그렇다면, 음기는 줄어들면서 점액이 사라지는 현상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음기가 줄어든 것은 곧 반대편인 양기가 과잉된 것이다. 우선 현대인의 식습관이 고추, 마늘, 커피, 인삼, 양파 등 양기를 북돋는 먹을거리에 많이 노출된 탓이 있다. 또 다른 큰 문제는 현대인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다.

몸속의 점액과 알레르기성 비염과의 관계는 또 다른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코가 마르면서 발생하는 비염 때문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는 대개는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아토피성 피부염 역시 점액이 피부에서 분비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면, 이 질환의 정체를 한 번 더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콧물이 사라지면서 알레르기가 유행한다는 견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면역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일본의 타다 도미오의 견해도 이와 유사한다.

"왜 알레르기가 늘었을까? 즉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환경의 변화다. 대기오염과 영양 과다, 스트레스의 증대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황산가스, 오존, 자동차 배기가스 등도 확실히 기도를 자극한다. 그러나 이것이 알레르기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어린이의 코와 목구멍의 감염증이 변화한 것이다. 내가 어려서는 아이들이 늘 노란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소매끝으로 닦고 있어서 소매 끝은 늘 반질반질해 있었다. 노란 콧물에는 녹농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세균이 있었고 그것이 분포하여 면역계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노란 콧물이 사라진 세상은 바로 음기가 소진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등도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노란 콧물이 왜 사라졌을까, 그 대안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한의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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