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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한발 더 나아가려면…

[창비주간논평] 민주주의와 정당의 역할

예상 밖이다. 민주통합당의 대표선출 선거인단에 참여하는 시민수가 65만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만 있고 혁신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까? 반은 의심에, 반은 놀라움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선은 한국노총, YMCA, 정봉주 팬클럽, 노무현재단, 백만 민란, FTA무효화 국민행동, 세금혁명당 등의 사회단체들과 새로운 대항미디어 '나꼼수' 등이 적극 개입한 결과다. 정치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그 힘을 깨달은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개별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의미를 축소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첫번째 요건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인 점을 감안하면 '조직'의 참여는 해가 아니라 득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이른바 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다양한 결사체들의 존재와 참여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된다. 이 사실은 토크빌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조직 네트워크가 옅어지고 개인으로 고립되면 참여가 줄어들며, 그 질도 수동적 참여로 떨어진다. 그 결과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는 개인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로 전락하고 만다. 긴즈버그의 지적이다. 개인민주주의에서는 이슈그룹이 시민 없는 시민단체로서 미디어와 의회를 활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과잉표출하게 된다. 이때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여론조사다.

한 예를 살펴보자. 1947년 뉴딜체제의 핵심법안인 노동관계법 개정이 이슈로 떠올랐다. 파업권의 제한 등을 담은 개정법(Taft-Hartley Act)으로 손해를 보는 노동조합이 낙선운동 위협을 하며 강력히 저항했다. 의회에서는 머뭇거렸지만, 이때 돌파구를 열어준 것이 여론조사였다. 이 법에 대한 찬반을 다음 선거의 준거로 삼지 않겠다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하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그러자 의원들이 용기를 내 법안처리에 나서 이 법을 통과시켰다. 여론조사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갖는 노동자가 아니라 고립된 개인의 의사로 파편화된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갖는 여론조사가 우리 정치에서 극성을 부렸던 것을 기억하면 조직의 참여는 대단히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모바일 투표 시연 장면 ⓒ연합뉴스

기성 정당의 대담한 정치기획이 필요한 때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정당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고 단언했다. 정당의 중요성을 표현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일차적 이해에 머무는 것이다. 사실상 정당의 이끌어 가는(leading) 역할을 지적하는 말로 읽는 것이 좀더 깊이있는 해석일 것이다. 정당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고 정립하는 기능을 한다. 동시에 대안을 모색하고 선택해서 간명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계도기능도 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은 대중을 추수하면서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모순적인 이중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그간 우리 정당은 대중을 계도하는 기획에서 매우 무능했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정당 대 시민의 대립구도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현정부에 대한 분노에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이 겹쳐 시민후보가 만들어졌고 마침내 서울시장에 오르기까지 했다. 사실 한나라당은 보수, 특히 반북보수와 시장보수의 이해를 잘 대변해왔다. 반면 지금 민주통합당이나 이 당의 전신에 해당하는 정당들은 지지층의 이해를 잘 대변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성 정당이 아니라 밖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시민'이 정당을 대체하는 것으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직접민주주의 또는 운동정치의 영역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정당을 빼놓고 복지 등 당면한 제반이슈를 풀어나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민의 변화 열망이나 불만을 수렴할 수 있는 기성 정당의 대담한 기획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민주통합당이 정당대표를 선출하면서 전례 없이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은 적절한 정치기획이다. 이 열린 공간에 대규모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정당은 재탄생의 기회를 잡게 됐다. 이렇게 되면 이상한 연고나 지대 제공으로 인한 계파정치,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금권정치가 효용성을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이 필터링 없이 직접 대중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므로 민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또 20~30대 당원이 극히 드문 노쇠한 정당구조도 흔들리게 될 것이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인터넷·스마트폰 접수(62.7%)와 모바일 투표 신청(88.4%)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참여비용이 줄어들면 스마트폰-SNS로 무장한 20~30대의 정치·선거참여는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경선은 싸르토리가 말한 그대로, 현실의 민주주의(real democracy)는 참여민주주의로서만 가능하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명제를 구현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통합당 경선, 발전적 정당모델 수립의 계기가 되기를

당직 선출에 시민의 참여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풀어야 할 고민이 적지 않다. 과거 2002년에 있었던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은 그후 대중적 열망을 수렴하는 제도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번 경선 역시 정치 이벤트로 생각해 단기효과만 누리고 방치될 우려도 적지 않다. 당도 조직인 이상 너와 나를 가르는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어질 경우 과연 어떤 정당모델로 존재할 수 있을까?

멤버십을 갖는 구성원이 없다면 정당이 정체성을 담보하는 정치조직으로서 유효성과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식 정당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지만, 미국의 정당이 빈곤문제나 사회·경제적 약자를 다루는 데 얼마나 무능한지 생각하면 자칫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좀더 진전된 정치기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다른 난제는 역시 인기투표, 변형된 여론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인지도에 기반한 싸구려 대중성에 따라 순위가 매겨져선 안된다. 시민사회의 대중적 기반에 접속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진정한 대중성을 구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검증·선택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참여가 없으면 심의가 애당초 불가능하지만, 참여만으로 심의민주주의가 보장되진 않는다. 그러려면 역시 정당의 노력이 중요하다. 투표 참여자들이 충분히 후보간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해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게다가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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