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김정은 신년사에서 걸리는 딱 한마디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김정은 신년사에서 걸리는 딱 한마디는…

[동아시아와의 인터뷰]<10>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경제의 눈으로 바라본 오늘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현실과 비전은 무엇인가. 남북경협이 주춤한 사이 북·중 경협이 확대되면서 많은 이들의 걱정스런 눈길을 사고 있다. 중국의 길을 따라 북한에 개혁 개방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는 오래되었고, 유라시아를 묶는 거대한 경제공동체의 청사진 또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주제가 되었다. 북한식 '민생경제론'을 들고 나온 김정은 체제의 선택에도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10번째 순서로 북한경제 전문가인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양문수 교수를 만나 북한과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그의 견해를 구해보았다. 그는 남북경협과 한반도 경제통합의 비전을 설명하면서도 그 이면의 제약요인을 꼼꼼한 주석으로 붙이는 냉철함을 보였다. 북한의 시장화 수준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서구적 도식에 따라 그것이 미칠 정치사회적 영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선 국가주의로의 함몰을 지양할 것을 권했다.

양문수 교수는 일본 도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북한 경제에서의 시장과 정부> 외 다수가 있다. 인터뷰는 평화네트워크 이제영 간사와 김유승 인턴이 1월 14일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실을 찾아가 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개성공단 전경 ⓒ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바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라고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은 한국에게 '기회의 땅'인가?

기회의 측면과 도전의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통일에 대해 정치가는 비전으로서 제시하는 데 주력하겠지만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된다. 기회의 측면을 먼저 보자. 우리가 북한경제와 긍정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우리가 동남아나 중국 경제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제적 관계는 크게 보아 무역, 투자,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해외투자를 보자. 하나는 생산기지로써 활용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시장으로서 활용하는 것이 있다. 산출(output)이 있으려면 투입(input)이 있어야 하므로 북한이 생산기지가 되려면 여러 생산요소가 결합이 되어야 한다. 인풋에는 크게 보아 네 가지 범주가 있다. 단순화시키면 노동, 자본, 토지, 기술이다. 북한이 가진 것은 노동과 토지이다. 남쪽은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결합하면 이른바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남한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을 북한에 팔 수 있다고 한다면 남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무역도 마찬가지다. 보통 한반도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생활하는 곳은 사실상의 섬이다. 남한은 북한이라는 존재로 인해 사실상 섬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었고 외국과는 육상이 아닌 해상과 항공을 통해 교류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기회의 제약인데, 북한과의 관계가 해결된다면 육로를 통해서 외국과 물적·인적 교류를 할 수 있다. 육로로 연결되느냐 해로로 연결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얘기할 수 있는데, 우리는 수출 지향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중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내수가 탄탄하다. 남북통합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만큼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도 없다'는 농담을 흔히 듣는데, 일본은 인구가 1억 3천만이나 된다. 어느 정도의 인구가 최소효율단위인지는 경제학적으로 증명은 되지 않지만, 대체로 봐서 1억은 넘어야 규모의 경제가 될 수 있다. 일본에는 문고판 책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기본적인 최소한의 시장규모가 있으니까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회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통합을 통하여 도약할 수 있다.

거꾸로 도전의 측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북한이 기본적으로 남한과 관계를 맺으면서 통합까지 된다고 하면 세 개의 바퀴가 같이 굴러가야 한다. 남북통합이라는 것은 통합(integration), 체제이행(transition), 발전(development)이 맞물려 가야 한다. 이것은 역사의 격변을 요구한다. 북한이 개혁개방 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도 아니고 다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이행과정에서 못살게 되거나 실패한 경험은 무수히 많다.

설령 자본주의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아프리카나 중동처럼 저개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역사적 격변에서 세 과정이 맞물린다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제적 측면도 그렇고 사회적 측면까지 시야를 넓히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을 지향하지 않을 것인가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지향해야 함은 분명하지만 한쪽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와 주어진 과제에 대해 말해달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해 보면, 앞선 두 정부는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에서 교류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교류협력을 우선적으로 해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개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초창기에도 그랬고 결과적으로는 더더욱 교류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안보우선주의란 것이 있었다. 대북 경제정책만 떼어놓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 하나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신뢰'와 '균형'을 말한다. 균형의 요소 중 중요한 것이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이다. 안보와 교류협력 양쪽을 다 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상황에 따라 기준이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사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5·24조치도 그런 맥락에서 평가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지금과 같이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쏘고 국제사회가 제재 국면에 들어가면 안보가 더 중요해진다. 그 속에서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을 얼마만큼 견지할 수 있을 것인지 로켓을 발사하기 이전부터 걱정이 되었고, 쏘고 난 이후에는 더욱 걱정이 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서로가 하나씩 주고받고 같이 행동을 해야 하는데,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신뢰를 구축할 만한 행동을 할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경협에서 핵심적인 현안은 5·24조치 해제이고 두 번째는 금강산관광 재개이다. 이 두 가지도 지금으로선 북한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전제조건화된 양상을 보인다. 이 전제조건을 북한이 할 수 있을지, 할 것인지는 상당히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신뢰와 균형이라는 원론이 현실세계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는 북한이 이른바 '남한 길들이기'나 거친 행동, 거친 언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신뢰가 쌓아가는 것이 무엇일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흔히들 남북관계의 원칙으로서 정경분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가능한 것인가?

▲ 양문수 교수 ⓒ평화네트워크
정경분리라는 단어 자체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다. 정경분리를 가지고 다들 다른 얘기를 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정치와 경제를 영역으로서 구분한다면 천안함 침몰 이후 부과된 5·24 조치처럼 안보적 상황이 위중해서 북한에 경제제재를 했던 것은 전형적인 정경연계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경협 4대 원칙의 첫 번째가 북핵문제의 진전이다. 북핵과 남북경협을 연계하는 것도 정경연계이다. 그래서 정경연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또 다른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 중 하나가 지원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가 경협을 막는 건 안 되고 도와주는 건 된다고 한다면 정경분리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모순이 아닌가. 이것을 정밀하게 보아야 한다. 완전한 정경분리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경제영역에서 보통 '시장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남북경협에 어느 정도 시장의 원리를 적용할 것인가. 민주화가 진전되고 시장화가 진전되면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이 남북경협의 특수성에도 적용되는가의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경제활동이 시장경제에 의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정부가 여기서 판단을 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순수한 경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남북경협이 공공재(public goods)인지에 관한 논쟁도 있다. 금강산관광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그로부터 혜택을 받느냐는 외부성(externality)의 문제이다. 금강산관광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금강산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금강산관광의 혜택을 받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외부성과는 상관이 없다면 금강산관광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논쟁이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지난 대선에서 이슈가 된 바 있다. 남북경협과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2012년 대선을 지난 5년 전의 대선과 비교해 보면 남북경협이 한국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고 그 필요성과 의미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꽤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그것이 경협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국경제의 여건 자체가 워낙 안 좋은 측면도 강하다. 고령화, 잠재성장률 하락 등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인했다. 또 하나는 남북경협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경협을 선도하는 것은 중소기업이고 대기업들은 아직까지 리스크를 고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협력 지원을 통해 정부 재정이 많이 소요된다면 복지와 역관계도 있지 않겠는가?

정부재정이 투입된 만큼 경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성과에 대한 측정과 판단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논란이 된다.

논란이 발생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퍼주기'라는 근원적인 입장 차이가 있다. 북한에 대한 이중적인 관계가 우리 사회에 메우기 힘든 간극이다. 이것은 먼저 '적인가, 동포인가'에서 출발한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전후세대는 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느끼진 않는다. 직접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그야말로 치를 떨 수 있다. 상처들이 남아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근본적으로 포용인가 아닌가는 철학의 문제이다.

남북관계를 형-동생이나 친구사이로 설명할 수 있다. 버릇이 나쁘거나 망나니인 동생이 있다고 치자. 이때 인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을 사용해서 성격을 고치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뜻하게 안아주자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적과 동포의 구분과 별개로 존재한다.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필요한 이치와도 같다고 본다.

또 하나는 통일에 대한 혹은 북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다. 북한이 곧 망한다, 곧 망하진 않더라도 통일이 된다, 통일의 기회가 오면 우리가 잡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통일이 안 되거나 혹은 아주 멀리 간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 세 가지 차원은 현상적으론 비슷하지만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한미동맹을 강화하자는 사람과 여기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이런 근본적인 것들이 중첩되어 있어 토론을 하면 100중에 10~20은 메워지지만 80~90은 안 메워진다. 더 해도 절반 이상은 메우기 힘들다. 역사적 경험과 개인이 갖고 있는 철학이 다르다. 그리고 안보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안보우선이 자기 존재의 기반이 되는 사람들 역시 있다. 이것들이 얽혀있다 보니 해결하기가 어렵다.

북한 내부로 시야로 돌려보자. 김정은 체제 출범 1년이 지났는데 6·28조치를 포함한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 일각에서는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 즉 경제우선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가?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로의 전환은 지나친 비약이다. 다만 알기 쉽게,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는 표현으로는 가능하다. 과거보다는 경제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가가 자원배분 의사결정에 있어서 경제 분야에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는 의미에 국한될 뿐 경제를 전면으로 하기엔 어렵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적 여건이기 때문에 지루하게 반복되고 지속되는 측면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모르지만 김정은 정권은 6·28의 경우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의도는 감지가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는 모르겠고 흐지부지된 것 아닌가하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올해 김정은이 직접 발표한 신년사에 나온 딱 한마디가 걸린다. '경험을 일반화하자'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게 없다는 뜻이다. 실험은 계속하고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한 최종판단은 아직 안 된 것 같고 본격적으로 활성화할 것인지 여부에 관해서도 분명치 않다.

정부정책과 별개로 자생적으로 시장화하는 부분도 있다. 현재 북한의 시장화의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시장화란 시장 메커니즘의 도입을 뜻한다. 길거리에서 보는 장소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시스템으로의 시장이다. 북한의 경우 무역이 발달할수록 시장화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어 있다. 무역과 관련된 제반 활동들, 예를 들어 북한이 최근에 무연탄을 많이 수출했는데 이 또한 시장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시장화란 전반적으로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이는 원리가 곳곳에 침투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다른 나라와 북한의 시장화는 구별되는 면이 있다. 현상적으로 중국과 비교했을 때 좁은 의미의 시장, 장마당이 북한에서는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건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거치면서 농촌에서 시장이 발달했다. 도시와 가까운 농촌이 기본이다. 역사적으로 도시에 시장이 발달한 경우는 일부 원격지 상업 외에는 거의 없다. 또한 북한 시장 물품의 8~90%가 중국산이다. 형태상으로 유통이 우선시하면서 발달되었지 생산력이 발달되면서 시장이 발달된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 가져온 물건을 파는 것이다.

북한은 이처럼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 경제를 해야 하는 현실이 있다. 북한에 있을 때 중앙 정부기관에서 일한 어느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을 때는 계획경제인데 지시를 이행할 때는 시장경제라고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물자들이 없진 않지만 극히 일부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 양문수 교수 ⓒ평화네트워크
예를 들어 상업성이라는 정부기관을 생각해보자. 상업성에도 매년 예산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상업성에 소속된 중앙 혹은 지방단위의 관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예산표가 어떨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당연히 계획경제 방식이다. 국정가격을 통해 월급도 나오고 각종 기관을 운영·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나온다. 종이도 사고 볼펜도 살 돈이 어떤 단위로 계산될 것인가. 당연히 시장가격이 아니라 국정 가격이다. 그런데 그 가격에 물건을 구할 수 있느냐 하면 대개는 못 구한다. 그럼 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기관을 운영유지 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돈과 국가 예산의 괴리가 상상을 초월한다. 몇 십, 몇 백 배 된다. 사실상 계획경제는 허울뿐이다. 아주 일부의 핵심 공장 기업소만 최고지도자가 장악하고 나머지는 자력갱생이다.

잘라서 말하긴 어렵지만 북한의 시장 비중은 대체적으로 50%는 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지만 북한은 20년 넘게 시장화가 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것이 개혁에 대한 압력을 형성한다.

시장화의 정치사회적 영향은 무엇인가. 서구의 자본주의 발달과정을 보면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하면서 체제에 위협이 되거나 혁신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북한의 시장에서 성장한 상인들의 성격은 어떠한가?

권력층의 시선에서 무서운 변화는 주민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못살까 생각을 한다. 집단주의에 균열이 가고 이기주의가 생긴다. 북한의 '돈주(錢主)'라는 계층이 서구 자본주의에서 그러했듯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는데 아직은 미약하다. 북한의 시장화는 제도화의 수준이 낮다. 공식 부문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들이 적기 때문에 권력층들이 제도와 비(非)제도의 관계를 통해 수탈할 개연성이 생겨난다. 불법이 많아서 돈주라 하더라도 당장 잡혀갈 소지가 많고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북한은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정경유착이 일어났다. 돈주와 권력층이 결탁하여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돈주 자체만으로 하나의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생산력의 발달이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말하듯 '북한의 양극화'란 표현은 좀 과도하긴 하지만 북한에서도 소득격차 확대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중산층 비슷한 것도 초보적으로나마 생겨나고 있다. 북한도 인구 2000만이 넘는 명백한 국가인데 단순한 양극화로만 몰아버릴 수는 없다. 곳곳에 균열이 나타나면서도 약간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층도 생겨난다. 아사자도 생겨나지만 중산층도 생겨날 수 있다. 다만 계층으로까진 발전이 안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시장이 발달하면 자본가들이 등장해서 사회변혁을 일으킨다는 일반적 패턴과는 다르다.

북한에게 중국식 모델을 따르라는 조언들이 많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이 가진 대내외적 조건이 다를 것 같다. 중국식 개혁개방이라는 것이 북한이 뒤따를 수 있는 모델인가?

중국식 모델이라 하더라도 포괄범위가 광범위하고 다층적이다. 사회주의 역사에서 중국모델이라는 것은 '특수한' 모델이지만 성공하다 보니 '보편화된' 모델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점진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체제전환인가라는 논란도 있다. 중국과 동유럽이 같이 체제전환을 하던 80년대 말에는 중국모델이 이렇게 잘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일반적인 해석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다. 중국의 성공에는 체제전환의 보편적 요인보다는 중국 특수의 요인이 더 많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것은 논쟁이 끝나지 않은 주제이다. 동유럽 체제전환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른바 신고전파 주류, 워싱턴 컨센서스 그룹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주도했던 것은 성과가 시원치 않고 오히려 거들떠보지 않던 중국이 잘나가는 것에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모든 모델이 다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중국은 사회주의 경험의 표준에서 벗어나 있다. 우선 중국은 계획경제 침투의 수준이 가장 약한 나라였다. 그리고 10억이 넘는 인구는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중국의 농촌 인구도 있다. 어디까지를 중국모델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베트남이 북한 상황에 보다 가깝다. 소국이고 경제성장이 잘되지 않았다. 물자 부족도 문제이지만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중국은 인플레 고민을 안 했다. 평가절하와 달러화(dollarization) 문제도 그렇다. 이것은 베트남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점진적인 모델로서 중국모델이라면 맞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를 수 있다. 동유럽 모델은 어차피 현실적으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시야를 동북아로 넓혀보자. 남북경협이 주춤한 사이에 북·중 경협이 확대되었다. 남북경협과 북·중 경협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인가 아니면 상호경쟁적인가?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다. 구체적인 자료들이 있으면 명확할 텐데 자료들이 많지 않으니 일부 무역데이터만 보고 얘기한다면 아주 일부는 대체 관계가 맞다. 위탁가공교역 같은 것들이 그렇다. 나머지 것들이 경쟁이냐 보완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한두 개 정도 접점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하자원이 아깝다는 얘기는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모두 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인정한다. 다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수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보수는 북·중 경협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진보는 고민하고 있다. 굳건한 한미동맹만 있으면 뭐든지 헤쳐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중국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사회가 가진 근원적인 고통들이 있지만 북한경제와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이 개성공단을 통해서 실험이 다 됐다. '퍼주기' 논리들, 경협에 대한 논란들, 안보지상주의 속에서 기회를 놓친다는 측면이 아쉽게 느껴진다. 중소기업이나 경협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후퇴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과 북한은 남한이 주춤한 사이에 밀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이 중국에 무한정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남한과 관계가 안 좋으면 중국에 달려갈 수밖에 없다.

▲ 지난 2011년 6월 열린 북·중간 황금평 경제특구 착공식 ⓒ연합뉴스

중국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먼저 가져가는 것까지는 그래도 용인할 수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중국에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 땅에 대해 중국이 권리를 갖게 되면 통일이 되고 나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통일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지만 되고 나서도 문제가 된다. 북한에 A라는 지역이 있다고 하면 여기에 최소한 서너 사람이 권리를 가지게 된다. 현재의 북한 주민,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 중국사람 등등이 된다. 어차피 생존이 최대 목적인데 북한은 다급하다 보면 뭐라도 할 수 있다. 좋지 않은 표현이지만 심하게 말하면 이것은 '매혈(賣血)'에 비유할 수 있다.

남-북-러 가스파이프라인을 연결하거나 한반도종단열차를 시베리아횡단열차와 연결하는 등 한반도를 유라시아 경제권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구상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가?

잠재력이야 크다. 유라시아 경제권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경제의 차원들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이런 필요성과 의미는 크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여러 난제들이 있다. 최근의 상황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시베리아철도(TSR)도 옛날만큼 큰 득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새로운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초기단계라고 하니 파이프라인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철도보다는 파이프라인이 우리 사회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고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협력을 하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장기적인 비전을 단기적으로 실현해나가는 데 경제적·비경제적 제약요인들이 있다. 이처럼 약간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있다 하더라도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얘기는 아직도 우리는 외국과 함께 살아가는 것들에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다문화 얘기를 많이 하긴 하지만 여전히 폐쇄적이다. 별로 의식은 못하지만 순혈에 대한 의식이 강한 것 같다. 그 부분이 동아시아 협력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일본우경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장기적인 경기침체다. 한반도 및 동북아 경제협력 확대가 일본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소지는 있는가?

별로 없다. 기본적으로 일본이란 나라가 한반도 및 동북아에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에 있고 이미 세팅이 끝난 상태이다. 일본이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경제적인 것도 없진 않겠지만 이전에 지어준 발전소 등 과거의 추억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북한경제가 일본에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노동력이라든지 저가의 상품을 줄 수 있지만 일본에게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갖기 위해 일본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할 의사는 없겠는가?

북일수교는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하고, 돈이 나오면 그걸 계기로 뭔가 하려는 것이다. 일본에서 북일수교 자금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네콘(Genecon, 종합건설회사)이다. 수교하면 돈을 줘야할 텐데 이때 현금이 아니라 현물로 줄 것이다. 발전소를 개보수하든 도로를 개보수하든 건설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함경북도 같은 경우엔 일본이 동북 3성으로 가는 게이트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청진·나진, 희귀금속 정도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일본은 어차피 돈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일본경제 자체가 다른 나라와의 연관성을 통해 득을 보는 구조를 이미 확립했고 북한은 일본과 경제력 격차가 크다. 북한이 우리나라와도 격차가 크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붙어 있고 같은 민족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언어가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따지면 남한기업이 북한에 들어가는 건 해외투자이지만 언어상의 문제가 전혀 없다. 일종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차이는 있겠지만 문화적 동질감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조언이 있다면.

오늘날 전반적으로 동아시아가 보수화되는 분위기다.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소박한 경제학도의 입장에서도 소망하는 것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행동 단위에 있어서 중앙정부가 100퍼센트 중심이 되어선 안 된다. 지방정부, 개별 기업, NGO 등 각 단위들이 개별적으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국가가 모든 걸 결정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토분쟁이라는 것도 국가주의에서 못 벗어난 사례이다. 국가주의에 함몰되어 있으면 결국 모두가 다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