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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69ㆍ끝>

글을 마치며

― 허상(虛像)은 자아(自我)에 달라붙으려 한다.
다만 자아는 허상의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에. ―


1.

이제 길고도 길었던 부여의 역사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유달리 다사다난했던 2008년 말을 보내고 또 2009년을 맞으면서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도 많은 성원이 있었던 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열도쥬신의 역사를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동안 세기를 넘어 끝없이 계속되었던 반도(한국)와 열도(일본)간의 논쟁과 설전들의 대상이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해명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만약 해명이 안 되었다고 보시는 해당 분야의 한·중·일 제도권 내의 전문 연구자들이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공식적인 토론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텐지·텐무 관계 등 일본 자체만의 쟁점인 부분을 해명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한일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수많은 기록들이 있어도 해독하기가 어렵고 수수께끼와 같은 부분에서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일의 역사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만으로는 실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생을 걸고 연구를 해도 다 하지 못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논문들이나 서적들이나 심지어 원사료들 조차도 '동굴우상'과 '종족우상'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채로 걸러내는 일은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반도쥬신(한국)이 소중화주의 근성에 빠져 역사를 왜곡·날조한다면, 열도쥬신은 소중화주의뿐만 아니라 유아독존식 사관으로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의 행태는 쥬신의 미래를 한없이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소중화주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반도(한국)는 자기비하(自己卑下)에 빠져있고, 열도(일본)는 과대망상(誇大妄想)에 빠져있습니다. 이 점을 서로 고치지 않고서는 쥬신의 미래는 없습니다. 소중화주의 근성을 버리는 것이 쥬신의 역사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합니다.

2.

지난 세월 동안 반도와 열도는 쌍방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열도에서는 반도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하고 반도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열도를 비하하는 것이 무슨 교양처럼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반도에서는 열도의 역사가 기록에도 없는 온조의 백제가 건설해 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왜가 치른 전쟁도 백제가 한 것이고, 일본의 고급문물은 모두 백제가 전해주었고, 한반도를 지원한 왜의 군대는 모두 용병이고, 필리핀도 백제의 식민지였고 나아가 불가리아도 한국계이고 연개소문도 일본의 천황, 고조선은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대제국이라는 식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류의 글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에 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는 또 한없이 저자세로 눈치를 봅니다. 공한증(恐漢症)이 도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반도쥬신와 열도쥬신의 끝없는 반목(反目) 속에서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두움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약간이라도 잘못하면 '마녀사냥'에 걸려들기가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람들은 침묵하는 것, 이것이 열도에서는 이른 바 '중세의 지혜'라고 합니다. 열도에서 나온 학술 서적들은 대체로 이 중세의 지혜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지요.

이에 비하여 반도에서는 제대로 연구도 안하고서 열도에 대해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보는 식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설득해내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열도 학계를 설득해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역사연구의 수준은 반도의 사학계가 훨씬 더 뒤떨어집니다. 반도 사학계는 『일본서기』를 위서(僞書)라고 비난하면서도 『삼국사기』의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두 서적 모두 문제가 있어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입니다.

왜 우리는 냉정하게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았을까요? 사학계에 발을 담은 적도 없는 제가 보니 금방 보이는 일들을 왜 그 수많은 사학자들이 보지 못했는 지 알 수가 없군요.

반도와 한강 중심의 잘못된 패러다임은 버리면 될 일입니다. 그것을 깁고 또 기워서 너덜거려 이제는 입을 수조차 없는 걸레조각을 가지고 옷이라고 우기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관련된 제민족, 제국가와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를 제대로 추적하는 것이 역사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되어야할 시점입니다.

3.

고등학교 시절 이후 저는 "왜 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답답해서 유난히 길었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떤 관념이 우리를 사로잡아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충고했습니다.

"대학을 가면 나아질거야. 대학 가서 네가 해 봐."

답답했던 공부를 겨우 마치고 대학에 들어와서 큰 기대를 했는데 대학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신의 해방을 위해 긴 세월을 마르크스(Karl Marx)에 침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역시 닫힌 세계에 갇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론은 항상 현실을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어 답답했습니다.

누군가 계속 우리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설명하는데도 그것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 정신의 고향'을 찾아서 가야할 때라고 생각했지만 그 길은 요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닫힌 세계를 강요하는 유학(儒學)이라는 낡은 정신을 '우리의 것'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이 제게는 견딜 수 없는 고독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전통의 학문이고 우리 자신의 본질이라면 우리에게 고향은 없는 셈이었습니다. 철저히 인간의 존재와 사고를 유린하고 가부장적인 질서와 닫힌 세계를 강요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지만 찾아갈 '마음의 고향' 또한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네"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 잠시나마도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생명의 나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배우는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내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 모두는
수만 나비의 시간이었으니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어디로 가는가 구름들이여.
[노태맹(2008) ]

▲ [그림 ①] 쥬신의 새, 어디로 가는가 ?

정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현실적인 생존의 목표때문이라고 해도 '적어도 우리가 누군지는 알아야겠다'라는 것이 바로 제가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긴세월이 흘러 다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나라'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우리 자신에 대한 뿌리는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제 개인적인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학문적 고립이나 전공의 문제는 더 이상 질곡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진실에 대하여 좀더 즉자적(卽自的)이고 실존적(實存的) 접근이 필요해졌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분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분석 대상이 되는 주제를 모두 분석하고 해명하기보다는 수수께끼들의 고리를 찾아 그 고리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해 드린 분석은 모든 사건들의 가진 인과성(因果性) 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소설(小說)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한일고대사라는 큰 적을 만나서 선적(線的)으로 방어를 해서 격퇴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거점(據點)을 선정하고 그 거점을 중심으로 적을 공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건에 대한 인과적이고 통일적이며 일관된 해석 방식은 분명히 거부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잘 짜여진 소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마음이 있으니 그에 따른 형상과 법이 생기는 법(心生卽種種法生)"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허상(虛像)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모두 형상(形相)이고 그것은 또한 허상입니다. 깨달음이란 무색무취하고 깨달은 자는 결국 이 모든 형상에 자유로운 사람을 말합니다.

사물을 바라볼 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될 것을 이것은 이 관점에서 보면 안되고 그것은 저 관점에 맞지 않아서 안되고 하다보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허상을 자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 허상(虛像)은 자아(自我)에 달라붙으려 한다.
다만 자아는 허상의 유일한 안식처이기 때문에. ―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소중화(小中華)라는 자아(自我)는 없습니다. 이 자아를 없앨 때만이 새로운 쥬신의 아트만[眞自我 : Atman]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열도쥬신이나 반도쥬신이나 소중화(小中華)라는 가짜 자아[가아(假我)]를 없애지 않고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시도가 바로 『대쥬신을 찾아서』였습니다.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는 『대쥬신을 찾아서』의 각론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몽골쥬신에 대한 연구는 이미 국제학술대회에서 영문(英文)으로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여러분들에게 널리 공개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만주 쥬신의 역사를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하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대쥬신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총론과 각론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 [그림 ②] 2009 새해 아침 태양신을 맞으며(한국 동해 양양)

5.

저는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를 통하여 그 동안 한·일 양국간의 문제가 되었던 대부분의 사안들에 대해 해명한 것으로 봅니다. 제가 고증하고 분석한 주요 사안에 대하여 오류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에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앞으로 제가 해명한 한일고대사와 관련하여 한국, 중국, 일본 등 어느 나라의 사학자들과도 공식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공개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연구한 사안들이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과서에 반영되어 쥬신의 관계사가 양국에 공통과목으로 가르쳐지는 날까지 제가 해온 일들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소중화의 늪에 빠진 사람들과의 투쟁도 소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를 위해 아내인 웹디자이너 김현주(金賢珠)는 그래픽 작업과 동시에 원고 검토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물론 시원찮은 그림들은 제 작품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특히 아내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텐무 천황의 비밀을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물론 텐무 천황의 비밀이 이 글을 통해 다 파헤쳐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조교를 두지 않는 제게 아내는 긴 세월 동안 조교와 개인 비서 역할을 해왔습니다. 늘 바쁜 저를 위해 제 홈페이지(www.ebiz114.net)를 관리하고 유지해왔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그 동안 『새로 쓰는 한일 고대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제게 용기를 북돋워주신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하여 매서운 질정(叱正)을 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언젠가 연구가 되는대로 '만주 쥬신'의 이야기로 다시 여러분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쥬신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009년 2월
쥬신 연구가 淸鏡 金 雲 會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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