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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의 터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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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감옥 '가자'의 터널을 가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가자의 오늘] 목숨 걸 일이 너무나 많아진 가자지구의 생명줄, 라파 터널

지난해 11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1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폭격의 잔해가 가자지구를 뒤덮었다. 수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계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점점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가자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김태언 활동가는 지난 1월부터 가자지구를 찾아 현지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있다. 터널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가기 힘든 가자지구의 생존 법칙부터 외지인이든 현지인이든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가자에는 다양한 삶들이 펼쳐져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2007년부터 팔레스타인 평화 활동을 벌여온 김태언 활동가가 전하는 현지 소식을 연재한다. <편집자>

2005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한 이후, 기존 집권 최대 정당인 파타는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하마스와 싸웠다. 서로 다른 당을 지지하는 형제끼리 총구를 겨눌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내전 이후 가자지역은 하마스의 손에 넘어갔고, 하마스의 정치 성향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가는 모든 국경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가자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차단했다.

유일하게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도 이스라엘과 협력해 가자의 숨통을 죄어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9년에는 이스라엘이 감행한 대규모 공격으로 1400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작년 11월에는 첫 번째 공습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일주일간 170여 명이 사망하고 1500명이 다쳤다. 봉쇄 상황에서 이뤄진 대규모의 공격은 재앙과도 같았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가자 사람들은 이집트 접경 도시인 라파에 있는 터널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시작했다.

지상 최대 감옥, 가자를 가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두 달, 가자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친절한 사람들과 활발하게 뛰어노는 아이들, 전력난에 건물마다 굉음을 내는 발전기를 돌린다는 점만 빼면 주변 그 어느 나라와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가자에도 대형 마트가 제법 있었고, 대부분의 상점에서 물건의 절반 이상은 이집트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의 국경도시 라파 시내 ⓒ김태언

2011년 무바라크가 권좌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이집트는 상업적 물자가 가자로 통행하는 것은 허가하지 않았다. 라파 국경이 오직 사전 허가된 인원에 대해서만 통행을 허가하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가자 상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이집트산 물건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이집트와 가자 사이에는 상업 교류가 존재하지 않았고, 라파 국경은 오직 제한된 인원의 통행만을 위해 이용됐다. 정황으로 봤을 때 가자지구 내 모든 이집트 물자는 터널을 통한 것이라 볼 수 있었지만,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라파의 터널로 직접 가서 터널 주인을 만났다.

라파 현지인을 통해 짓다 만 듯한 콘크리트 건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집 내부는 외관과 달리 카펫, 쿠션 등으로 한껏 치장돼 있었고 거기에는 4명의 터널 주인이 앉아 있었다. 담배를 곁들인 진한 터키식 커피를 함께 마시며 이들에게 터널에 관해서 물어봤다.

가자의 첫 터널은 약 20년 전, 불법 무기 등을 조달하기 위해 처음으로 건설되었다. 터널은 비교적 최근까지 한두 개 정도로 그 수가 매우 적었고, 그나마도 불법이었다. 2006년 하마스가 가자에서 권력을 쥔 후,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삶이 매우 피폐해진 사람들이 자구책으로 고안해 낸 것이 터널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하마스는 터널 파는 것을 합법화했고 한두 개에 불과했던 터널은 2007년 이후 불과 5년 사이에 1000여 개로 불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 폭격 등으로 인해 사용 가능한 터널이 500여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최근엔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증가하고 터널 밀집으로 인한 토양 침식으로 터널이 붕괴하는 것 때문에 하마스는 새로운 터널 건설을 금지하고 오직 기존 터널의 개보수만 허락하고 있었다.

터널 착공에서 운영까지

터널은 크게 하마스용 터널과 민간 터널의 두 가지로 나뉜다. 하마스용 터널의 용도와 그 위치를 알고 있는 민간인은 아무도 없다. 다만 민간용 터널은 국경지대에 밀집해 있으며 건설자재, 식자재, 의약품, 연료, 민간통과 등 그 용도가 각각 특화되어 있었다. 터널 주인은 터널을 파기 위해 하마스에 1만 셰켈(Shekel, 한화 270만 원)을 지불하여 허가증을 얻고, 터널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며, 하마스는 터널별로 통과시키는 물자의 종류와 수량에 따라 세금을 다르게 징수한다.

터널은 너비, 높이 50cm의 조그만 터널부터 차량이 통과할 정도로 큰 터널까지 다양했다. 민간통과용 터널은 약 11개로 170cm의 성인이 넉넉하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민간통과용 터널 또한 물자 통과와 마찬가지로 하마스의 사전 허가를 받은 인원만 통과할 수 있고, 그 비용은 왕복 100~150셰켈(한화 2만7000~40000원)만 내면 된다. 이전에는 훨씬 비쌌으나 지금은 많이 저렴해졌다고 했다. 주로 이집트에서 오는 사람보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로 나가려는 사람이 많다. 하루 평균 150명 정도가 터널을 통과하는데 그 숫자는 여름에 더 많다. 2011년 무르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팔레스타인인의 이집트 통행 절차를 완화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18~40세의 남성들은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비자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훨씬 저렴하고 통행 절차가 덜 까다로운 터널을 선호한다.

터널을 뚫으려는 사람은 하마스에서 허가증을 취득한 후 위치를 정해, 수직으로 약 15~30m가량 뚫는다. 그리고 무작정 이집트를 향해 파다가 집이 있는 곳을 찾는다. 이집트 라파 쪽의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한 후, 터널을 그 집으로 연결하는 수직 터널을 뚫는다. 라파는 본래 하나의 팔레스타인 도시로 1967년 전쟁 후 둘로 갈라졌기 때문에 동족인 팔레스타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터널을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터널 운영에 따른 수입이 발생한다는 점은 이집트 집주인이 거절하지 않는 부수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집트 쪽 터널 주인은 터널 물자 구입 및 보관을 책임지고 있다. 가자지구 쪽 터널 주인이 필요 물량에 따라 품목과 그 수량을 이집트 주인에게 주문하면 해당 물품을 구입하여 터널 밑 창고로 내려보낸다. 그러면 터널 안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가 그 물자를 가자 쪽으로 끌어온다. 이집트 쪽 터널 주인은 그 대가로 수익의 절반을 보장받는다.

▲ 이집트와 라파 사이의 물자를 이동시키는 터널 ⓒ김태언

가자 봉쇄의 또 다른 희생자, 터널 노동자

터널을 뚫는 작업은 만만치가 않다. 별다른 안전 장치가 없고, 이미 1000여 개에 달하는 터널이 지반을 교차 통과하고 있어 붕괴 위험 또한 크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 많이 올 때는 지반이 물러져 붕괴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린 탓에 터널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숨졌다.

터널 착공과 운영에 동원되는 노동력은 대부분 19세 미만의 어린이들과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데 일자리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터널 노동자로 일하는 것이다. 터널 노동자는 하루 3교대로, 8시간씩 지하 15~30미터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한다. 2007년 이전 터널이 많지 않았을 때에는 하루 임금이 미화 100달러(한화 11만 원) 정도로 꽤 괜찮은 금액이었지만, 지금은 하루 60~70셰켈(한화 1만7000~1만9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옮긴 물량이 많을 때 이야기다.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약 1000명 이상의 터널 노동자가 터널 붕괴로 인해 사망할 정도로 일은 고되고 위험하나, 이들에겐 별다른 대안이 없다. 인터뷰를 하고 있던 터널 주인 2명의 가족도 터널에서 일하다가 터널이 붕괴해 죽었다고 했다. 14세, 16세짜리 아이들이 각각 4일, 15일 동안 지하 30미터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죽었다.

2만 원을 벌기 위해 그들이 먹는 것은

터널 주인에 따르면 터널을 방문하기 위해 사전에 터널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일단 터널이 있는 지역으로 향했다. 터널 지역은 주변이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고 경비가 삼엄했다. 밤에도 큰 트럭이 물자를 싣고 들락날락했다.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트럭 운전사는 통행증을 경비에게 건넸다. 취재 요청에 처음에는 '통행증 없이 안 된다'며 완강하게 버티던 군인이 전화를 이곳저곳 해보더니 카메라를 두고 가는 조건으로 통행을 허락했다.

들어가 보니 황량한 지역에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이 드문드문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터널로 가보니 지름 1미터의 우물 같이 생긴 곳에서 전동 도르래를 타고 일꾼이 막 나왔다. 터널 일꾼과 물자 모두 같은 방식으로 안전장치 하나 없는 도르래를 통해 오르내렸고, 쌓아놓은 물건은 트럭이 싣고 갔다. 터널에서 막 나온 일꾼은 쌀쌀한 밤바람이 부는데도 끊임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고 눈이 붉게 충혈돼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횡설수설했다.

동행했던 현지인은 터널 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에 이들이 '트라마돌'이라는 약을 먹고 일한다고 귀띔했다. 이 약을 먹으면 각성 상태가 되고 공포감과 고통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트라마돌은 마약 대용으로 쓰일 만큼 강력한 진통제다. 이들은 하루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약을 먹고 목숨을 걸고 일을 하고 있었다.

터널에서 갓 나온 젊은 청년은 1주일 뒤 있을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터널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으로 인해 가자에는 목숨을 걸 일이 너무나 많아졌고, 이에 따른 희생은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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