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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탈원전'을 미국이 가로막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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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의 '탈원전'을 미국이 가로막는 이유

[동아시아와의 인터뷰] <7>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피스데포 특별 고문

"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친구다."

다음 차례에 소개할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우메바야시 히로미치(梅林宏道) 피스데포 특별 고문을 지칭해 한 말이다. 우메바야시 고문은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평화 운동가이자 이론가이다. 그의 각별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37년생인 우메바야시 고문은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강단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학자였다. 그러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할 과학에 대해 짙은 회의감도 품고 있었다. 과학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목도하고는 '인간으로서 과학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회 참여로 방향을 모색했다.


우메바야시의 본격적인 사회 참여는 1970년대 초반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의 직장이 있었던 가나가와 현(神奈川県)에는 미국 육군의 보급 시설이 있었는데 이 시설의 용도는 전차를 수리해 베트남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평범한 시민이 전차를 세운다'라는 모임을 결성해 반전운동에 뛰어들었다. 1976년에는 '한일연대·가나가와 현 민중회의' 결성에 참가해 당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독재 정권을 지지·지원하는 것을 막는 게 핵심 목표였다. 그는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와 배움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에 들어 반핵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순항미사일인 토마호크를 일본에 배치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고, 1985년에는 아시아-태평양 8개국의 반핵운동가 네트워크인 '태평양 군비철폐운동'을 설립했다. 그는 핵무기와 군축 문제에 대한 조사 활동을 개시하면서 '시민의 손에 의한 평화를 위한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1990년 '평화자료 협동조합'(이후 피스데포)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후 1998년 피스데포를 정식으로 발족시켜 10년 동안 이 단체의 대표로 일했다. 이후 특별 고문으로 1선에서 후퇴한 우메바야시는 현재 나가사키대 핵무기폐기연구센터 소장을 맡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강원도 DMZ 평화상 특별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일본평화학회 평화상도 받았다. 인터뷰는 2012년 11월 22일 이제영 평화네트워크 간사와 김마리아 피스데포 간사가 우메바야시를 만나 진행됐고, 이후 이메일을 통해 보완했다.


▲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피스데포 특별 고문 ⓒ평화네트워크

선생님의 이력 가운데 눈길을 끈 부분이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경험이다. 그 경험에 대해서 말씀해달라.

지원이라기보다는 연대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당시 연대운동의 기본적인 입장은 일본 정부의 개입을 저지한다는 것이었다.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은 '우리는 일본 정부에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민중은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화를 쟁취하려고 했기에 우리들은 당시 한국의 군사정권을 도우려는 일본의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를 비롯한 일본인들은 많은 것을 배웠다. 당시 일본에서는 민주주의의 의미가 이미 퇴색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본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인생을 내던져 그것을 쟁취한 것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새롭게 인식시켜줬고 민주주의에 다시 한 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당시 일본의 진보세력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해야 할 대학이 그 역할을 상실해버렸다고 비판하며 교육을 부정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학자, 언론인, 작가 등 지식인이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빈곤과 가혹한 노동 속에서도 배움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았던 전태일의 사례를 통해 '배움'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배움'을 부정하는 운동이 과연 옮은지에 대해 반문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피스데포를 창립하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피스데포를 준비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피스데포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반드시 완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 일본의 시민운동 내에서는 정확하고 독자적인 정보 획득과 활용을 위한 기초나 시스템이 없었는데 미국과 유럽의 NGO 활동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것은 미국의 정보공개법 등을 통해 스스로 찾아낸 정보로 운동을 돕고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군기지 관련 자료는 미군 관련 사건 사고가 있거나 기지 반대 운동이 있을 때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미군 측 발표를 정리한 것밖에 없었다. 시민운동 또한 신문에 의존한 채 어떠한 이론 무장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피스데포가 미국의 정보공개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발굴하고 개척하면서 활동해 간다면 시민운동의 새로운 정보 거점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근 현안에 대해 묻고 싶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참사 이후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 사회는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년 가까이 지나고 있는 현재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11을 계기로 일본 시민사회에서 대규모 '금요 탈원전 집회'와 같이 예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변화가 일본의 정치 중심부에까지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즉, 오늘의 일본 사회를 진단하려면 3.11 하나만을 볼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다른 요소들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3.11이 일어나기 전인 2009년에 일본에선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됐다. 전후(戰後) 일본 사회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이 제대로 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3.11이 일어나고 말았다. '3.11이 낳은 시민사회의 새로운 움직임이 어떻게 하면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정권 교체 후의 일본 정치, 그리고 시민사회의 변화'라는 단순한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기존의 관료가 주도하던 방식이 아니라 정치가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가 막 탄생하려던 그 당시,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정치가 과연 어떤 새로운 것을 나오게 할 수 있을까'였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3.11이라는 큰 사고까지 얽히게 되면서 매우 복잡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지금도 여전히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탈원전'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둘지 입장을 확실하게 하지 않고 있다. 즉, 3.11이라는 사건 하나만으로 일본 정치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보다는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이후의 흐름이 일본 정치 상황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정권은 기본적으로는 실패했고, 그 대안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의 틈을 타서 우경화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시민사회 내부에는 우경화될 소지도 있지만 반면 좋은 쪽으로 방향을 돌릴 소지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현재 드러나는 상황을 보면, 민주당 정권의 실패 이후에 매우 우익적 또는 국가중심적인 지도자가 두각을 나타내려 하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은 상황을 시민사회가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중요한 것은 '큰 관점에서 본 정치적 상황과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이라는 두 가지 요소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례로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총리는 정권 초기에 후텐마 해병대 기지를 최소한 오키나와 밖으로, 가능하다면 일본 국외로 이전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또한 외교에서도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취하려는 시도를 했다. 초창기에 좋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는 리더십이 너무 약했고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민주당의 다음 총리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로 가면서 정책은 후퇴일로를 걷고 말았다. 이처럼 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결국에는 자민당과 비슷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즉, '약한 리더십'이 현상적으로 우익 세력의 발언권을 강화시킨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3·11 이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탈원전 후보가 승리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들었다. 일본 시민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은 과연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본인이 기억하는 범위에서 지방선거의 한 예를 들고자 한다. 가고시마(鹿兒島)현에 있는 한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의 투표 결과를 보면, 원자력발전소를 중심으로 반경 100km 이내의 주민들에게는 진지한 사고의 변화가 일어난 반면, 100km 밖의 주민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즉, 시민의식의 변화라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원자로 건물의 처참한 모습 ⓒAP=연합뉴스

요즘 미디어를 보면 다가오는 총선과 관련해서, '투표할 때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여론조사들이 많이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원전'에 대한 응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이 경기 회복, 연금, 복지 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로 볼 때, 에너지 정책 및 원전 문제는 매우 낮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원전 문제가 이번 선거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제가 아내와 함께 여론조사를 보면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원전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지금까지 원전 정책을 만들어 온 자민당 정권이 범한 거대한 잘못에 대해 제대로 규탄하지도 않은 채, 다음 정치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정권 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새롭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고 만 것이다.

노다 정권이 2030년대까지 '원전 제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미국에서 불편한 심기를 보인 바 있다. 일본의 탈원전 정책에서 미국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는가?

일본의 탈원전 정책을 가로막는 미국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왜냐하면 미국의 원전 기술은 거의 모두 일본 기업이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시바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과, 히타치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Westing House)와 연계되어 있다. 미국은 과거에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전에 관한 최첨단 기술은 실질적으로 일본이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도 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약 30년 만에 새로운 원전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일본이 원전을 멈춘다면 일본의 원전 관련 기업도 멈추게 되는데, 이는 미국으로 원전 건설 및 기술 수출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걸 의미하고 그 결과 미국의 경제 정책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이와 같이 밀접한 연관성 때문에 일본의 탈원전 정책에 끼치는 미국의 압력은 상당히 크다.

선생님께서는 군축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전 문제와 군축 문제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보시는가?

커다란 관점에서 원전과 군축은 두 개의 다른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원전은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에 속한다. 그리고 군축은 무력에 의지하지 않는 안전보장이라는 면에서 좁은 의미의 '평화 문제'에 속한다. 또한 대안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로 원전은 다른 에너지로부터, 군축은 평화적인 다른 수단으로부터 각각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 둘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에너지와 평화'라고 하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에너지와 평화가 연결되는 지점에는 여러 레벨이 있다. 예를 들어, 해양 및 지하자원 확보를 위해 하나의 섬을 둘러싸고 관련국들이 욕심을 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자원 확보가 국가 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영유권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치닫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즉, 자원 및 에너지 문제와 군축 문제는 무력에 의존하지 않는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또 다른 예는 에너지 개발이 동시에 군비 개발로 연결되는 경우인데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원전과 핵무기다. 즉, 에너지 개발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다 보면 그것이 동시에 핵무기 개발의 잠재적인 가능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전과 평화 문제가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 일본 정권 하의 평화군축 정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더불어 차기 정권 하의 전망은 어떠한가?

본인은 오랫동안 시민사회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적인 방법'을 줄곧 추구해 왔다. 그러나 정치 현실을 생각할 때 마냥 환상만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2009년 정권 교체가 일어났을 때, 민주당 정권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평화군축 정책을 실행할 수 있을지 예상해 보았다. 그 결과, 적어도 민주당이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동시에 평화군축 정책을 구축해 가는 선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국 민주당은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초기의 민주당 정권이 변화에 도전했던 시도 자체를 평가하지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노력이나 시도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에는, 미래에 더 나쁜 것밖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서 평가하고 강조함으로 인해 미래에 더 나쁜 것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일본 시민사회가 감당해야 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는가?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우경화라는 말을 흔히들 쓰는데, 일본에는 두 종류의 우경화가 있다. 하나는 국수주의(Nationalism)적 우경화이고 다른 하나는 친미주의적 우경화이다. 우선 국수주의자들은 개헌을 통해 무장하여 군사적으로 강한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핵무장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친미주의자들은 미국을 추종하며 대미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일본의 안보를 보장해 준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입장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민주당이 정권 교체 당시, 중국과 관계에 비중을 높여가면서도 미국과 관계를 유지하되, 다만 대미 의존도를 점차 줄여가겠다는 입장을 제시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총선 이후를 전망하건대, 어찌 됐든 이 두 종류의 우경화가 혼재된 상태로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비록 국수주의와 친미주의 세력들 간에 내부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양 세력의 인물들이 합세해서 하나의 정권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오바마 정권 내에도 '일본이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미국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는 게 미국에 유익하다'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을 잘 활용한다면, 예상되는 차기 정권 내의 친미주의자들이 미국 일변도가 아닌 방향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여지를 어떻게 하면 확대시킬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현행 헌법 사수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보수 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차기 정권에서 평화헌법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우선 민주당은 헌법 사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헌법 9조는 유지하되 환경 등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는 의미의 개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을 뿐이며 이번 총선에서도 특별히 기존 입장을 바꿀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는다. 또한 일본 외부에서 볼 때는 민주당이 보수 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한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일본 국내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하는 곳은 없다. 민주당이 스스로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바라는 바이지만, 민주당 내에는 우익적인 입장도 꽤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차기 정권에서 개헌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헌법을 바꾸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여러 움직임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참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되는 현 제도를 '과반수 찬성 통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총선에서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하면 헌법 개악이 수월하도록 절차를 바꾸는 데 손을 댈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렇게 쉽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의제로는 삼을 것이다. 또한 주변국들이 분명 강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개헌까지는 못 갈 것이다. 다만 차기 정권이 헌법 개악을 위한 절차를 어느 수준까지 바꾸어 놓을지가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평화헌법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가지며 향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일본이 또다시 군사 강국이 되지 않도록 보장해 주는 게 바로 평화헌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동북아 지역에 있어서는 역내 국가들을 안심시켜 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동북아 국가들은 일본에 대해 경계심이 큰데 반해 세계적으로는 '일본은 평화헌법을 가진 국가'라는 이미지가 널리 정착되어 있다. 이처럼 평화헌법은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평화와 떼어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적인 조류는 '군축'이다. 미국을 보더라도 전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에는 경제력이 충분치 못하다. '재정 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국방비 역시 강제적으로 삭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중국의 경우는 늦은 군사력 근대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군사비 감축 논의가 계속 우세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일본은 평화헌법을 가진 국가라고 표방하면서 매년 예산의 1%를 방위비에 할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인 조류 가운데서 일본이 향후 군사비를 늘리고 군비를 증강하게 된다면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에 속할 것이며 많은 비난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헌법을 유지하는 것이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시킨다는 차원에서 국익으로 이어진다는 사고를 잘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이 강해 보인다. 특히 미·일 동맹의 강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이미 중국의 부상은 미·일 동맹에도 많은 변화를 낳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군사적 대두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서 군사적으로 중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해전(Air-Sea Battle)이라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 개념이 나왔는데, 이는 사실상 중국을 대상으로 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자위대도 미국의 공해전 개념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동북아 비핵지대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동북아 비핵지대 실현에 있어서 중국의 부상은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나는 1996년 5월 동북아의 역사와 조건을 고려해 '3+3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동북아의 비핵국가인 한국, 북한, 일본 3개국이 비핵지대를 형성하고, 주변 3개 핵보유국, 즉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소극적 안전보장(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을 조약 형태로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여러 조건과 환경은 바뀌었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유효하다고 본다.

중국의 부상은 동북아 비핵지대 실현에 영향을 주는 주된 요인이 아니다.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의 핵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도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6자회담이나 비핵지대 구상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북아 비핵지대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은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3+3안'은 일본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실현을 어렵게 하는 일본의 국내외적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

▲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피스데포 특별 고문 ⓒ평화네트워크
우선 일본 정부의 '약한 리더십'이 가장 큰 요인이다. 다음으로 동북아 비핵지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거로서 '북한이 먼저 비핵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의 책임이 가장 크다'라는 주장 역시 저해 요인이다. 그러나 동북아 비핵지대 창설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냐는 논의는 애초부터 적절치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리가 제대로 침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리더십의 부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른 차원의 저해 요인으로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할 때면 언제나 납치 문제가 뒤따라온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은 납치 문제에 대한 좋은 대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3+3'안은 6자회담 참가국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안을 6자회담과 어떤 방식으로 조화시켜 실현되게 만들 것인가?

본인이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일본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6자회담에 동북아 비핵지대 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난관을 뛰어넘을 만한 강한 리더십이 그리 쉽게 나올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동북아 비핵지대는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세계가 주목하는 문제인 만큼 일본이 아닌 외부의 주도에 의해 추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납치 문제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자신들의 리더십이 아닌 미국의 리더십에 얹혀서 간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의 부담을 줄이는 기능도 하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 시작한 게 동북아 비핵지대에 대한 미국의 모턴 핼퍼린(Morton Halperin)의 제안을 일본 내에 전하는 일이다. 핼퍼린은 존슨 행정부부터 클린턴 행정부 때까지 외교·안보 부서를 두루 걸친 외교 베테랑이다. 그를 일본에 초청해서 일본 정치인 및 관료를 대상으로 그의 제안을 소개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려면 3+3안이 6자회담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다만 과거를 보면 6자회담이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3+3안이 단순히 의제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6자회담이 실패할 때마다 3+3안 역시 실패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핼퍼린은 6자회담을 통해 3+3안을 실현시킬 것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바로 이 약점을 보완하고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6가지 항목도 제시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결, 감시 및 검증을 수행할 수 있는 상임이사회 구성, 상호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할 것, 원자력 및 다른 에너지 수요에 대한 지원, 대북 제재의 종결, 비핵지대 창설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3+3안에서 향후 추가·보완을 구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나를 들자면 몽골을 포함해서 '4+3안'을 추진하는 방안이다. 현재 유엔도 공인한 비핵지대 국가인 몽골이 동북아 비핵지대에 참가하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몽골 정부 관계자와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몽골 측에서 매우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보였다. 대만은 역시 중국의 동의가 없으면 힘들다. 중국이 동의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일 중국이 대만의 참여에 대해 저항할 경우에는 전체적인 동북아 비핵지대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북핵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동북아 비핵지대가 북핵 문제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를 설립하기 위해서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순서를 따지기보다 함께 진행해가야 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비핵지대 조약인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의 비핵지대 조약(틀라텔롤코 조약)을 일례로 들면, 당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핵무장 가능성을 지닌 국가로 비핵지대를 설립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가 최대의 문제였던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제2, 제3의 쿠바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비핵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핵무기 개발을 그만두기 전에 이미 비핵지대가 설립되었다. 이후 두 나라도 비핵지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제가 없어지고 난 후가 아니라, 그에 앞서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을 먼저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핵문제 또한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지역 전체의 비핵화 환경을 먼저 조성하면서 6자회담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해가는 형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프로세스로 해결해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민간시설만을 사찰, 검증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세계에서 군부가 보유한 핵을 검증한 전례는 미-소 간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밖에 없다.

한 나라의 군부가 가지고 있는 핵을 외부에서 검증한 전례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북한에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군 소유의 핵을 검증하는 것은 매우 시간이 걸리는 문제로 '비핵지대'라는 전체적인 틀이 먼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군부가 소유하고 있는 핵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한 조건, 즉 '비핵지대' 구상이 먼저 실현되어야 한다. '북한부터'라는 발상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 전체를 비핵화하는 가운데 북한도 핵을 포기토록 한다는 발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핵지대 창설 추진은 미국과 맺은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히려 일반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시켜 나갈지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에 대한 설득은 비교적 간단할 것이라고 본다. 일본과 한국의 여론은 핵우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예전에 클린턴 정권의 정책 조언자와 비핵지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일본 정부가 그렇게 할 의향이 있다면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자신들의 안보를 스스로 확보하는 방법으로서 비핵지대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길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일반 시민의 대부분이 미국의 핵우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비핵지대를 제안한다고 해서 갑자기 핵우산이 없어지진 않는다. 특히 우리들이 제안하는 '3+3'안의 비핵지대가 설립될 때는 미국도 동의할 것이고 합의 내용 안에 '비핵지대에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히 '비핵우산'이 생겨나게 된다. 핵우산이 아닌 비핵우산 아래에서 안보가 유지되는 것이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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