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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경화, 과도한 음모론…실용적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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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우경화, 과도한 음모론…실용적 접근해야"

[동아시아와의 인터뷰]<6> 도쿄대 기미야 타다시 교수

작년 말 아베 신조 내각의 출범은 일본의 우경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제 국제사회, 특히 동아시아에서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이 거대한 흐름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떠한 파장을 남길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일관계로 시야를 좁혀보자. 독도 영유권 분쟁과 종군위안부 논란은 불과 몇 달 전 한일 양국을 다시금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한일 양국 간 미결의 난제로서 위력을 보여준 바 있다.

2013년 오늘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맞대고 사는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서로를 마주할 것인가? 도쿄대 현대한국연구센터 기미야 타다시(木宮正史) 교수는 신중하고도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그는 한국 내에서 일본의 우경화 논의가 다소 확대 해석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본 정부가 변화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또한 한국정부의 우선 과제로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꼽으면서 과거의 대북관을 넘어서서 자신감과 긴 호흡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국익에 기초한 실용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미야 타다시 교수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1980년대 고려대 박사과정 재학 중 한국의 민주화라는 격동기를 경험하면서 한국의 정치경제와 현대사에 대해 이해를 심화시킨 한반도 전문가이다. 한국어 저서로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공저, 2008), <일본의 대북한 인식과 한일관계>(2007) 등이 있으며, 다수의 한국어 및 일본어 논문을 남겼다.

인터뷰는 2012년 11월 21일 평화네트워크 이제영 간사와 일본의 피스데포 김마리아 활동가가 도쿄대 캠퍼스에서 진행하였으며, 최근 이메일을 통해 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후 일부 내용을 추가했다. 다음은 기미야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기미야 타다시 도쿄대 교수 ⓒ평화네트워크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하고 나섰던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단명으로 끝났고, 오히려 이후에는 일본 내 우경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중국이나 한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

얼마 전까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고 강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2010년에 중국과 일본의 지위가 역전됐고, 앞으로 일본이 이를 만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한 국력에 있어서 과거에는 꽤 차이를 보였던 한일관계가 최근에는 완전히 균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상당 부분 대등화, 균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일본 사회 내에는 '일본이 주변국들에 비해서 약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초조함이 있다. 이에 일본이 잘 대응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일본 정치 자체가 현재 너무 불안정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강력한 정치적 지도를 바라고 있으며, 중국이나 한국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길 바라고 있다.

우경화라는 말 자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예컨대 안보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우경화인지, 역사 인식에 있어서 '자학사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우경화인지 여러 측면이 존재한다. 역사 인식이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태도와 같은 부분들은 어느 정도 우경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모든 면에서 한마디로 우경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경화' 개념을 포함하든 그렇지 않든,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가?

방향 자체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지만, 일본 사회가 불안정하고 유동화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예컨대 중국의 태도를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과연 우경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이 한미동맹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한국의 우경화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항상 군사 대국화, 우경화되어 간다고 주장한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기준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과연 한국은 우경화되어 있지 않나'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 쪽에서는 일본이 우경화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일본 우경화 논의는 확대 해석된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일본의 과거를 바탕으로 일본의 미래를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 내에는 일본에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군사 대국화나 우경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 같은 해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가 주도권을 갖고 그것을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그랬듯이, 누군가가 그랜드 디자인을 갖고 행동한다기보다 사실상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일본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국가안보나 역할론을 내세워 변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주변국이 느끼는 위기감이나 우려가 불필요하다고 보는가?

걱정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지금의 일본은 변화의 한계나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있고, 그렇기에 주변 국가들도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일본의 기존 정책이나 제도가 최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집단적 자위권 문제만 해도 한국에서 자주 비판하는데, 사실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는 헌법에 따라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헌법 해석을 바꿈으로써 집단적 자위권을 갖겠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가진 한국이 일본에 대해 우경화나 군사 대국화라고 보는 것은 한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제는 일본이 헌법의 제약 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이것에서 벗어나는 여러 가지 정책이나 행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등 좀 더 표면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주위에 위협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는 역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다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이다. 현실적으로 그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일본 내에서는 일본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일본의 군사 대국화나 우경화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일본의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만 해도, 외부에서는 우경화된 사람으로 생각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군사 대국화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안보적 측면에서 좀 더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역사를 좀 더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구도를 보면 과거를 반성하는 사람들은 주로 대외적으로 자제하는 자세를 보이고, 반성이 없는 사람일수록 적극적으로 군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평화헌법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를 유지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민당과 차이가 있는가?

헌법 문제에 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존재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그러한 대립 축을 설정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는 있겠지만, 진지하게 개정을 반대하는 사람이 대다수는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오카다 카츠야(岡田克也) 씨가 "일본의 외교는 '코치카이(宏池会)'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코치카이'라는 것은 자민당 내 하나의 파벌이었다. 과거에 주류였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오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등 자민당 내 리버럴한 비둘기파들이 주축이 되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총재 역시 '코치카이' 출신이다.

이들은 군사적인 부담은 되도록 미국에 맡겨서 자국의 부담은 줄이고,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경제발전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카다 카츠야 역시 이런 주장을 했는데, 이들은 개헌론에 반대한다. 반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전 총리 혹은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상 같은 경우는 자신의 안보관이 아베 신조와 비슷하며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까지는 아니라도 해석을 달리하자는 얘기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진행될 가능성은?

집단적 자위권 해석은 헌법을 개정할 필요 없이 가능하고, 야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집단적 자위권 해석의 문제에 관해서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미국이 동맹관계 강화 등을 위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바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일본 역시 이에 응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등 동북아시아 내에서는 평화헌법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가. 지금까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가?

먼저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의 평화헌법을 과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한편으로는 일본이 항상 우경화, 군사 대국화를 노리고 있다고 하지 않나. 이런 맥락에서 일본의 헌법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일본 평화헌법이 일본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좀 더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일본 평화헌법의 정신이 과연 동아시아라는 환경 속에서 얼마만큼 현실성을 가진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한국에 대해서 일본의 평화헌법과 비슷한 것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나. 한국은 특히나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또 다른 예로 징병제를 없애자고 하기에도 어렵다. 또한 일본보다 훨씬 강한 군사대국인 중국이 있고, 북한 핵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평화헌법의 의미와 역할 등을 높이 평가해 준다면, 일본에서도 헌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비판할 때 유명한 말로 '일국 평화주의자' 즉, 일본만 생각하고 있는 평화주의자라는 표현이 있다. 즉 위태로운 안보 환경 속에서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헌법만 지키면 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시절에 일본을 이렇게 비판하곤 했다. 한국은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반공 자유주의 진영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그렇다면 일본은 한국의 경제 협력 등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데 일본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당시 일본군에서는 일본 보수파들, 자민당 정권의 사람들은 한국을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본의 당시 야당이었던 일본 사회당은 한국을 도우면 안 되고, 한반도의 남북 대립구도 속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북한과의 관계도 좀 더 진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화헌법은 존재 자체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이를 활용해서 동아시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하겠는가?

개인적으로 일본이 평화헌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일본의 평화헌법을 있는 그대로 엄격하게 따르면 일본은 비무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해석에 따라서 일본 정부는 자위대를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된 것이 아닌가.

일부 호헌론자들은 평화헌법을 근거로 엄격한 비무장 중립을 주장하는데, 그러한 입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어서 군사력에 힘입어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일본에 대한 공격에 맞서 최소한의 자위를 위한 군대 보유 등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대외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또 한 가지, 집단적 자위권의 문제가 어려운 것은 미·일 안보조약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 미국이 공격을 받는다면 일본 헌법에 따라 일본의 자위대는 미국을 도와주지 못한다. 집단적 자위권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단, 유엔과 같은 기구를 통해 일본의 자위대가 군사행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넘어가 최근 한일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독도와 과거사 문제 등에 관해 듣고 싶다. 먼저 한국인들에게 독도 영유권 분쟁이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 있어 독도란 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본이 집요하게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먼저 원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영토라는 것은 역시 주권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켜야 하는 존재이다. 또한 일본의 경우는 (러시아와 갈등에 있는)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인해 영토에 있어서 피해를 입어왔다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영토 문제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일본인들 중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최근에 일본 정부나 언론을 통해 시마네현(島根縣)의 다케시마라는 것을 들어서, 일본 사람들도 이 섬이 시마네현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게 됐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다케시마라는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많았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집요하게 영유권을 주장해온 것은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일본 국민들은 한국처럼 그렇게 집요하게 영유권을 주장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지금까지 별다른 행보가 없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다케시마를 방문했고, 일본은 이 사건을 '다케시마 상륙'이라 부를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내 다케시마 문제가 이슈화된 것은 이러한 한국의 움직임에 자극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 먼저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대한 제안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하셨고 한국 정부에 대한 제안으로는 너무 이 문제를 부각시키지 말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라고 조언하신 바 있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좀 대담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셨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것들을 제안할 수 있을까?

앞서 밝혔듯이 한국 정부의 입장은 독도문제가 역사문제라는 것이고, 역사문제의 중심에 종군위안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한국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일본 스스로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제1037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가한 김복동 할머니(88)가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며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이재호)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물론 일본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한국 정부도 동의했으므로 한국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함께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과거 아시아여성기금과 비슷한 기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이 기구가 실패하고만 이유는 일본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서 한국 쪽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예산을 내놓고, 한국 정부와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고, 그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기금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 본다.

실질적인 배상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역시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본이 한일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주장을 상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다시 살리자고 제안해 주셨는데,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1965년에 모든 문제를 청구권협정에 따라서 완전히 해결했다는 데 당시 한국의 박정희 정부도 동의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의 정부, 그리고 기업이라든가 민간이 함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아시아여성기금은 민간기금이지 않았는가. 한국 쪽에서도 포스코 같은 기업은 이미 이런 구상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일본의 기업들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또한 한국 쪽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잘못되었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려고 한다면 당시 협상의 한 주체였던 박정희 정권이 잘못했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한편으로 한일청구권협정의 잘못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하고 그의 딸인 박근혜도 인기가 높다. 물론 박정희와 박근혜는 별개의 인격이기 때문에 둘을 연관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보지만, 역시 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두 개의 판결이 있었다. 2011년 8월의 헌법재판소 판결과, 2012년 5월의 대법원 판결이다. 저는 지난 8월의 헌재 판결에 대해서는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일단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협상 책임이 있는데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위헌이므로 협상에 나서라고 한 것은 아주 당연한 판결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번 5월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 논리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관은 100퍼센트 올바르고 일본의 역사관은 잘못됐다고 하는 것 같은데, 대법원이 과연 양국 역사관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올바르고 잘못됐는지 그렇게 판단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최근 일본에서 고노(河野)담화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고노 담화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 당시 식민지 지배라는 구조 속에서 한국을 포함한 약소국의 종군위안부에게 일본제국이 잘못된 일을 했고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은 강제성 유무를 떠나서 해야 하는 일인데, '강제성이 있다, 없다'는 협소한 의미에서의 문제만 쟁점화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일본의 이미지에도 매우 좋지 않을 뿐더러, 한일 관계에서도 아주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65년 이후에 일본 정부가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잘못을 인정해왔고, 담화를 통해 축적해온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라고 본다.

최근 일본과 중국 관계 역시 심상치 않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제가 말씀드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한국의 입장에서 중·일 관계가 잘 안 되면 한국이 어부지리로 뭔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일 관계만 너무 좋아서 한국이 그 사이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나쁜 일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중·일 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라 본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중·일 관계의 안정화가 한국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토대로 일본이나 중국 중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것은 피하면서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동북아의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를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것과 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짚어달라. 또한 그것이 대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 기미야 타다시 도쿄대 교수 ⓒ평화네트워크
한국이 가장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북한 문제라고 본다. 이것이 한국에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북한에 대해서 한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협력을 통해야 한국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방향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이 협력해서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의 협력이 가능하겠는가. 또한 과거에 일본과 북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 일본에도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일본에 득이 될 수 있는가?

북·일 관계 개선이 일본에 이익이 되는 이유에 대해 먼저 말하겠다.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북·일 간의 긴장을 이용함으로써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북한과의 긴장관계를 가지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 문제의 핵심은 한반도의 긴장 격화에 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일본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인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다는 것은 핵 문제 등으로 일본의 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긴장 격화는 일본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란 당사국인 남북한에 물론 중요한 사안이겠지만,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6개국 중에서 이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국가 중 하나가 일본이라고 본다. 과거 한국의 불만은 일본이 남북한 사이에서 양다리외교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남북 간 격차가 커지면서 이런 우려가 의미 없어졌고, 한국도 기본적으로 북·일 관계 개선을 비판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긴장 완화라는 것은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상대적이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관해서는, 현재 일본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거의 잃었지만 아직 북·일 수교가 남아있다. 예컨대 북·미 수교의 경우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북·일 수교의 경우, 일본이 기본적으로 북한과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고 북한에도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매우 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북·일 관계를 생각할 때 경제협력을 하나의 우선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때 북·일 경제협력은 한국의 대북정책의 방향과 일치하도록 하여, 북·일과 남북 경제협력 간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북한에 대해서 신뢰를 가져야 하는데, 북·일 경제협력과 남북 경제협력 추진이 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여 북한에 대해서 경제적 신뢰성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은 북한 체제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소프트랜딩(연착륙) 등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지금은 북·일 사이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이 도와주는 것은 좋은데, 북한도 중국에 너무 의존하는 것을 좋게만 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러 나라 사이에서 자율성과 이익을 챙기려는 북한에 있어, 일본과의 협력은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북한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이해가 가고, 한국에서도 북한을 '북방경제론'이라고 해서 북한을 경제적 블루오션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일본의 안보와 외교를 위해서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통해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일본이 북한을 부분적으로나마 컨트롤하여 북한이 일본에 있어서 위태로운 결정들을 선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 상태의 북한은 일본의 기업들에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이 변화할 때 경제적 이익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북한도 이 상태로 몇 십 년을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현재는 대북관계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이 거의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이지만,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북·미 관계도 개선이 된다면, 이것이 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고 6자회담이나 북·일 수교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올 여지도 생길 수 있다고 보시는가?

그렇다. 물론 순서의 문제이겠지만, 가장 해결이 어렵다고 하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해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북한과 교류를 심화시키는 것이 납치 문제 해결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유연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 북·일 수교,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의 해결은 어떤 순서로 진행이 가능하겠는가?

어려운 문제다. 일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납치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수교협상 등은 절대로 안 된다는 여론이 강했는데, 최근에는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협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교협상을 한다면, 일본은 협상하는 것이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일본 측의 납치문제 해결 요구에 대해서 '납치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답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특정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수교협상에 임한다면, 일본 여론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의 국내 여론을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북핵문제이다. 북·일 수교는 경제협력이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했는데,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하지 않는다면 일본 국내 여론은 그런 북한과 경제협력을 한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고 나서 수교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일단 북한의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 권리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로 들어와야 한다.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에 관해서는, 일본의 경제협력과 북한의 군사적 수단으로서의 핵 포기를 교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북한은 핵 문제가 북·일 관계의 문제이기보다 북·미 관계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 관계의 결과에 따라서 북한이 핵의 군사적 이용을 포기한다면 일본으로서는 아주 쉽게 장애요소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안 되면 '일본의 경제협력과 북한의 핵의 군사적 이용의 포기 간의 교환 가능성도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하다.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 사안에 있어서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의 대립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때야 한다고 보시는가?

한국의 선택지는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의 대북정책밖에 없다고 본다. 이명박 정권처럼 북한의 양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사실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았는가. 또한 외부에서 보면서, 한국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좀 더 자신 있고 여유 있게 북한을 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특히 '퍼주기'라든가, 대북 상호주의나 강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의 남북관계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남북 간 격차는 너무나 클뿐더러, 북한이 군사력을 이용해 한반도를 통일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의 주도적 통일에 흡수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북한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같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내놓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도 궁극적으로는 흡수통일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흡수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북한은 이를 경계해서 한국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이런 경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고 줄 수 있는 것은 주면서, 남북한 관계의 틀 속에 북한을 편입시키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김대중 정권의 정책이 가진 장점이었다고 본다. 물론 아무리 한국이 노력해도 북한이 제대로 답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한국이 너무나 조급하게 북한의 양보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북한을 안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있었던 일들을 볼 때, 북한은 남북협력을 차단할 것이고,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역시 한중관계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완충지대로서 현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고,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주고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회생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가장 손해를 보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 문제에 한국이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주도권을 완전히 잃은 현 상황이 아쉽다.

한국 차기 정부에 한일관계를 포함하여 정책적으로 조언해 주실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첫 번째는 '통합'이다. 한국에는 '남남갈등'이란 말이 있지 않나. 밖에서 볼 때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완전히 다른 것처럼 대립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을 위해서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정치라는 것은 역시 '통합'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한국의 정치는 너무 분열이 심하다.

또한 한일관계에 관해서는, 일단 어느 지도자가 한국 정부를 대표하게 되든 선택할 수 있는 대외정책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미정책이나 대중정책에 비하면 대일정책에 관해서는 한국이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본다. 단지 항상 한국 정부에 바랐던 것은, 일본의 여론을 한국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동원할 수 있는 사고나 정책이다.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의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정책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본다.

물론 때에 따라 강경정책도 필요하겠지만, 유화정책과 병행해 나가면서 일본의 국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의 '다케시마 상륙'은 아무리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세 변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역시 역효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따라서 일본 여론을 우경화 일변도로 보기보다는 한국 정부나 사회가 뭔가 행동을 보여주면 일본 여론도 영향을 받아 인식을 바꾸고, 한국은 한일관계와 관련해 희망하는 방향으로 일본의 여론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예컨대 한류를 일본에 확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함으로써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 않나. 물론 한류가 한일관계에 있어서 긍정적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졌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 덧붙여 이렇게 여론을 고려하는 자세는 일본정부의 대한(對韓)정책에 있어서도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이 일본에 반드시 친근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일본을 좀 더 이용할 수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북정책과 같이 지금까지 일본을 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활용하지 못했다. 외교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서로가 자기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지 않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 역시 그렇게 봐야 한다고 본다.

일본 역시 국익을 위해 한국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요구에 답할 필요가 있다. 역사문제에 이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일본 스스로가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 역사를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한국에 보여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한국을 이용하기 위해서, 혹은 한국이 일본을 도와주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의 과거 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를 진지하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하지 못했는데, 긍정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지난해 12월 26일 총리에 지명된 아베신조 자민당 총재가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곧 일본 총선이 실시되는데, 총선 이후 일본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이 인터뷰는 지난 해 12월 16일의 일본 총선 전에 이뤄졌음: 편집자)

과반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자민당 출신 정권과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일본의 경제나 외교를 생각했을 때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일본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일 동맹을 강화시키고 한국도 이에 더욱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그렇게 생각할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물론 미국 오바마 정권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본과 공동으로 중국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미일의 관계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냉전적인 사고이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나 북·일 관계 등도 중요한 것이다. 중국 대 한·미·일이라는 대립적이고 현실성이 없는 도식으로 외교를 생각하지 말고, 유연한 전방위 외교를 통해 어느 나라와의 관계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카드로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일동맹을 강화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말씀인가?

그것만 가지고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를 평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단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중국 공산당 엘리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인적 교류 부분 역시 긴밀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중국과 일본을 두고 일본 편만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도 유연한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아베 신조 내각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베 정부가 역사인식 문제에 관해서 강경한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켜 아베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설정한 경제회생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국익을 설정함으로써 역사인식을 둘러싼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약을 임시 수정해 적어도 올해는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주최 행사로 격상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타당한 선택이다. 또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나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 본다.

어차피 역사인식을 둘러싼 문제,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터무니없이 강경한 입장에 집착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본으로서는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군사안보 정책에 대해서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정부는 어떤 과제를 우선해야 할지 잘 생각해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 평화네트워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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