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국내 스페인 문학의 권위자, 민용태 교수입니다. 민용태 교수는 1943년 전남 화순 출생으로 68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문학과를 졸업했고 1975년에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스페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8년 <<창작과 비평>>에 시 <밤으로의 작업>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고 1979년부터 30년간 한국외국어대와 고려대 서어서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월 정년퇴임 했습니다. 서어서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아시아 서어서문학회 부회장, 국제 스페인어교수협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어 시집 『시간의 손』 『시비시』 『ㅅ과 ㅈ 사이』, 나무 나비나라 스페인어 시집 A Cuerpo Limpio(맨몸으로), Tierra azul (푸른 대지), Isla (섬) 등을 펴냈습니다. 이 밖에 『서양문학 속의 동양』『서·중남미 문학론』『로르까에서 네루다까지』『서양 문학 속의 동양을 찾아서』등 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스페인 '마차도 시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박인규 : 처음 뵙는데 그동안 예전에 tv에서 많이 뵈어서 처음 뵙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민용태 : 예. 반갑습니다.
박인규 :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민용태 : 뭐 똑같죠 숨쉬고 사는 거
박인규 : 지난 2월에 정년퇴임하셨어요. 30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다가 대학을 떠나시게 되니까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민용태 : 감회라기보다는 어색하다는 느낌이 많습니다. 갑자기,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노인대접을 받는 것 같은 조금 어색한 그런 느낌입니다.
박인규 : 아직 은퇴할 나이가 아닌데.
아, 정년퇴임식장에도 안 가셨다던데 그런 것 때문에 안 가신 겁니까?
민용태 : 쑥스러워서 그렇죠. 그렇습니다 사실은, 이게 참 오래된 제도거든요. 65세 정년이. 40대에 구조조정으로 쉬고 계신 분도 있으니까 좀 쑥스러운 말이지만,
박인규 : 오륙도란 말도 있으니까.
민용태 : 예. 그럼요. 우리 사회가 지금 실직으로 고통하는 분들이 더 많고. 내 제자들도 지금 강사로 교수 못하는 애들도 많은데 쑥스럽지만, 또 제 입장으로 본다면 미국이나 일본은 정년제도가 없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80, 90에도 건강하시면 다...
민용태 : 제 제일 친한 친구가 한국에 옵니다만, 콜롬비아 대학교의 필립 실버라는 교수는 70세까지 했어요. 왜 인문과학은 연구를 많이 할수록 더 여물어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체육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실상 또 아직 건강하고 해서 조금 서운해요. 그런데 수업을 해요. 그러니까 뭐 달라진 건 없습니다.
박인규 : 하긴 제가 뵙기에도 한 50대로밖에 안 보입니다.
민용태 : 아이고 고맙습니다.
박인규 : 수업은 계속 하고 계시고요.
민용태 : 네. 그러니까 생각을 해보세요. 인간 수명이 30년이 늘었습니다. 해방 이후. 그런데 정년은 똑같아요. 그거 참 생물학적으로도 안 맞는 얘기죠.
박인규 : 민교수께서는 1975년도에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요, 그때만 해도 스페인으로 유학 가시는 분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민용태 : 선배 분들이 세 분인가 네 분인가 계셨죠. 이미 했고요. 뭐 대단한 것은 없었고, 다만 내가 요즘 학위 얘길 한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스페인 국가문학박사라는 문학박사입니다.
박인규 : 유럽은 복잡하더라고요 박사학위가
민용태 : 스페인이 굉장히 여러 가지 시스템입니다. 스페인 국가문학박사가 아시아에서는 저 혼자밖에 없는 이유는, 스페인 정부에서 아주 혹독한 시험이라는 것을 보게 했어요.
박인규 : 어떤 시험을 봅니까?
민용태 : 왜냐면 외국에서 공부했거나, 예를 들자면 중남미학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하면 전과목 종합테스트. 아주 살인적 제도를 만들었어요.
박인규 : 논문만 쓰는 게 아니고
민용태 : 그러니까, 천여 명 중에, 한 2천 명 중에 1차 합격이 7명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2차 시험, 3차 시험까지 있거든요. 나는 2차 시험에서 떨어졌어요 물론. 그런데 다행히 1차 시험을 인정해주고 유지시켰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해에 내가 통과했거든요. 그게 지금은 그 제도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혹독한 제도를 통과한 유일한, 아시아에서.
박인규 : 예전에는 스페인어라기보다는 서반아어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68년도에 서반아어과를 졸업하셨죠? 스페인어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민용태 : 사실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스페인문학을 한 겁니다. 고등학교 때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어요. 학원문학상이 있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원문학상에 내서 제 6회 때, '달'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탔어요.
박인규 :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좀 보이셨군요?
민용태 : 예. 그래서 제 평생 소원은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외국어대학에서 스페인어 무료 공개강좌를 했었어요. YMCA에서. 그런데 친한 친구 전승구라는 친구가 있는데 걔가 거길 가자고 해요. 난 갈 생각도 없었고. 가서 보니까 뭐 스페인어는 발음이 쉽다 그 정도였고, 한 시간 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돈키호테가 스페인문학이다. 그걸 알았어요. 돈키호테는 우리가 만화를 통해서 읽었던 거고. 그런데 그게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학교에 와서 생물시간이었어요. 잡종강세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이질적일수록 영리하다는 거죠. 그래서 제 1대에서는 어머니의 아버지의 우성을 가진 자식이, 잡종강세. 그때 내가 스페인어를 전공하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왜냐면 내가 그때 독문학과를 가려고 했거든요. 독일어를 배우고, 그래서 독일시도 배우고, 산 너머 먼 곳에... 카를 부세의 시를 읊으면서, 독문학을 한다고 했던 내가, 독일은 많이 알려졌어요. 카를 부스뿐만 아니라 릴케, 전부 다. 안 해. 그럼 잡종강세를 받들어야 돼 내가. 그러니까 한국문학과 전연 접합한 일이 없었던 스페인문학
박인규 : 새로운 걸 배워보자.
민용태 : 그래서 택하게 돼서 1차도 안 보고 2차로. 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로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외국어대학이 2차였는데 1차대학 시험을 안 보시고, 바로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
민용태 : 어떤 면에서 요즘 얘기하는 소신지원의 전형 되겠습니.
박인규 : 우리 보통 일반 사람들은 스페인 하면 투우와 정열의 나라, 이런 식으로 알고 있는데 스페인문학도 그런 특징이 있나요? 정열적입니까?
민용태 : 정열적이라고 하는 건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왜냐면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문학이 바로 투우와 플라멩코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나온 작가들이 천재적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뭐
박인규 : 세르반테스도 그쪽인가요?
민용태 : 세르반테스는 그쪽은 아니었지만 그쪽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세비지아 쪽이라고. 원래 그 분은 중부에서 태어났는데요, 마드리드 근방. 그런데, 연구가들이 너무 재밌어하는 거죠. 어디서 태어났느냐는 거죠. 참 말이 많았는데요, 그 분은 스스로가 세비지아 사람인 것 같은 공감대를 많이 가졌던 사람입니다. 집시여인이라든가 우리 카르멘, 이런 모델들이거든요. 그런 작품을 많이 쓴 걸 봐도 무척 안달루시아 쪽, 아까 플라멩코가 나온 그쪽에 굉장히 젖어있는 걸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박인규 : 선생님 말씀하시는 걸 보면 굉장히 정열적이신데 그러고 보면 스페인문학과 맞으신 것 같아요.
민용태 :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외대 있을 때 그런 얘길 많이 하죠. 교수실 앉아서 문 딱 열고 들어오면 무슨 과 전공인가를 맞히기. 뭘 모르는 교수라도, 다 맞아요. 히히 웃고 얼굴만 웃고 오면 그건 일본어과입니다. 그런데 딱 폼 재고 딱 하게 되면 국문과라든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권위주의. 그런데 거기서 손을 이렇게 한다거나 하면 중국어과입니다. 그런데 실실 웃고 노래하면서 오면 이탈리아과나 스페인어과입니다. 그래서 전공을 하다 보면 기질이 붙어요. 태어나길 우리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스페인말을 많이 하다 보면 스페인 사람처럼 돼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박인규 : 처음에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신 게 돈키호테가 스페인문학이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는데요, 그 뒤로 40년 동안 돈키호테를 짝사랑했다, 그런 말씀도 하셨고
민용태 : 그렇죠. 긴 세월이었고 그게 더 깊어졌던 게, 인연이라고 한다면 내가 박사학위 프란시스코 인두라인 박사가 바로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그쪽에선 별로 정을 못 느꼈는데, 내가 79년에, 12년 스페인에 있다가 귀국했는데 한국에 오면서부터 답답한 상황이었어요. 독재. 유일한 위안이 그래도 베개맡에 돈키호테를 읽다가 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원래 가졌던 사랑이지만,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번역이 하나도 없었어요. 전부 일본에서 번역한, 오화섭씨가 번역한, 상당히 잘 된 겁니다만 아무래도 중역이니까. 아니면 일본에서 번역하는데 이름을 빌려준 책이 더러 있었고요 한국 교수들이. 말하자면 하나도 번역이 안 됐다는 얘기죠.
박인규 : 민교수님이 처음으로 완역을 하신 거군요. 원본에서부터
민용태 : 그렇죠. 주석까지 합쳐서 완역을 했는데. 그런데 우리 이 나라 사람들은 돈키호테를 엄청 좋아했어요. 이승만 박사도 4.19로 물러나면서 나는 돈키호테였어. 멋있게. 최남선 선생, 옛날 번역이 더 멋있었던 것 같아요. 돈기호. 완전히 우리 이름. 산쵸 판자를, 범복. 얼마나 재밌어요? 엄청 우리 민족이 사실은 돈키호테를 사랑하는 데가 있었어요.
박인규 : 완역하신 게 2005년인가로 기억하는데요, 그때가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이라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화제가 된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가 알기로 돈키호테는 약간 꿈을 좇는, 헛된 꿈을 좇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민용태 :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박인규 : 유럽문학에선 인간을 햄릿형, 돈키호테형이다, 분류하기도 한다는데
민용태 : 사실상 돈키호테가 성서 이후 세계인이 제일 많이 읽은 책으로 알려진 이유도, 다각적 시각을 가능케 하는 재밌는 소설이라는 데 있죠. 누구에게나, 세르반테스 자신도 서문에서 이미 그랬죠. 심심한 사람은 읽고 웃고, 또 진지한 사람은 삶의 깊이를 생각하고. 그리고 예술 하는 사람은 예술의 다각적, 모든 사람에게 이해할 수 있는... 누구나 읽어도 또 어떻게 얘기해도 소화해낼 수 있는. 세계인 누가 읽어도 재밌고 첫째. 진지한 사람이 읽으면 굉장히 사람을 깊게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는, 그런 책이기 때문에 아마 그 책이 그토록 오랫동안 감동을 준 그런 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은 책이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민용태 : 오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오늘 한국사회가 돈키호테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꿈을 좇는 사람, 이런 의미인가요?
민용태 : 그것도 맞습니다. 또 이상을 좇는 사람,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위선을 파괴하는 사람.
박인규 : 가식 없는 사람, 솔직한 사람
민용태 :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한국사회에 필요하다는 얘기는 뭐냐면
박인규 : 한국 사회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민용태 : 그렇죠. 지금은 우리 정치계를 봐도 위선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위선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우리 문화코드죠, 사회가. 돈키호테가 나올 사람이 아니죠. 사실 50 남짓 해서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사람입니다. 책만 많이 읽고 이러는데요, 어느날 문득 오늘 이 썩어빠진 사회가, 양심 없는 사회가, 중요한 얘깁니다.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기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지성으로 바뀌는 겁니다. 시골에 앉아서 책만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이 사회를 직접 개혁하는 사람으로 나서겠다는 겁니다. 우스꽝스러운 얘기죠 사실, 노망이죠 노망. 그러나 기사, 기사는 창으로 사람을 때리고 이런 거 아닙니까? 그 기사가 되겠다고 나선 겁니다.
박인규 : 많이 알려진 게, 풍차에 덤벼들기도 하고...
민용태 : 그렇죠. 그러니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짓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신범입니다. 돈키호테는. 그렇잖아요? 소신으로 행동에 옮기는. 그러니 행동하는 지성이죠. 그래서 이 사회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자비와 양심이라고 봅니다. 기사가 뭐하느냐, 자비와 양심을 모르는 자를 공격하는 겁니다.
박인규 : 이 사회에 돈키호테가 필요하다
민용태 : 왜 필요하냐면 우리 사회는 양심이라는 걸 잃어버린 지 오래 됐거든요. 또 진정으로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계속 우리 정치도 자기 파 싸움만 해대고 있는 걸 보면. 그렇잖아요? 돈키호테 같은 분이 와서 너무나 놀래키면서 또 웃기면서, 끝내는 웃기거든요. 그러면서 스스로의 슬픔으로. 돈키호테가 미친놈이 아니라 내가 미친놈이었구나를 느끼게 하는 그런 신선한 자극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박인규 : 저도 아직 돈키호테를 제대로 못 읽어봤는데 선생님 만난 김에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민용태 : 참 감동적인 대목 하나 말씀드릴까요? 미쳐가지고 돌아다니니까 엄청 얻어맞았어요. 나중에 양떼한테, 완전히 인간의 몰골이 아니게 됐는데. 동네 사람이, 옆집 사람이 지나가다가 보니까 이 사람이 다시 돈키호테... 오, 만토아 백작님, 어떻게 왕림하셨습니까. 한심스럽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람아, 나 만토아 백작도 아니고 자네도 돈키호테가 아니여. 우리 앞집에 사는 착한 알론소 영감 아닌가, 정신차리소. 이러니까 딱 대답이, 이게 명언이야. 난 내가 누군 줄 아네. 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난 내가 누군 줄 알아. 그러나 나는 세계의 가장 영웅적인, 프랑스의 12영웅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또 알고 있네. 돈키호테는 두 가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박인규 : 자기가 누군지 알지만
민용태 : 그렇죠. 사실을, 현실을 압니다. 그런데 꿈을 갖고 있는 것. 또 이 꿈을 버릴 수 없는 것. 말하자면 가장 위대한 영웅이 돼서, 이 사회가 정말 정의로운 사회여야 되고 양심있는 사회여야 되고 모두가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 그것에 대한 여망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야. 어때요?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죠?
박인규 : 자기를 제대로 알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 말씀 듣고 보니 정말 돈키호테가 많이 필요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민용태 : 그렇죠.
박인규 : 요즘 영어를 배워야 된다. 영어몰입교육을 하자. 영어 광풍이다 이런 얘기가 많아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데요, 요즘 사실 인문학보다는 실용 위주다 보니까 스페인문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예전만큼 많은지 어떤지. 일부에서는 스페인어, 독문학, 불문학 이런 것들이 갈수록 위축되지 않나, 이런 우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민용태 : 실용이라는 건 우리가 두 가지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면과 깊이. 겉으로 편리하다. 그러나 오래 우릴 행복하게 한다. 실용이라는 걸, 프래그머티즘이라는 걸 겉으로만 해석해선 안 됩니다. 둘 다 있어야 되죠. 오래 써보니까 너무 행복해. 어, 편리하네. 간단하죠? 깊은, 질적 실용이라고 한다면 영어몰입교육은 낭패, 큰일 날 일입니다. 또 인문과학 위기? 큰일 날 일입니다. 왜냐면 인문과학이 인성의 뿌리고 창조력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박인규 : 어떤 의미에서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실용의 진짜 뿌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민용태 : 그렇죠. 우리가 CF 하나를 해도 컨셉 컨셉 그러잖아요. 그게 창조적 머리를 요구하는 때가 어느 때보다 지금입니다.
박인규 :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제대로 된 실용이 안 나온다.
민용태 : 그렇죠. 미국의 IT산업의 거두, 거부가 뭡니까? 창의력입니다. 그것이 돈이 됩니다. 오늘날은 창의력이 돈이 되고 꿈이 돈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인문과학 위기라니요. 아니, 외국어몰입교육 왜 합니까? 필리핀이 잘 삽니까? 외국어, 영어 잘 한다고 잘 산다는 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엄청난 오해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반박하려고 하는 것은 짧은 효과주의입니다. 이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짧은 효과주의는 양심이 없고 깊이가 없습니다. 양심이라는 건 바로 사랑과 믿음입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 이게 선비입니다. 그런 선비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 힘있게, 그 아름다움, 아니면 어떤 꿈, 그걸 믿고 사랑하고 그걸 삶의 뿌리로 살아야 참으로 창조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이거든요. 인성.
박인규 :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 시대다, 외국어 능력이 경쟁력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해야 된다.
민용태 : 그래도 효과주의는 아니죠.
박인규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용태 : 외국어를 잘 하면 효과가 난다.
박인규 : 그렇게 보고 있죠.
민용태 : 그런데 외국어를 누가 합니까? 내가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건 인성이 먼저입니다. 외국어는 못해도 됩니다. 그런데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양반정신이 있습니다. 귀족정신이 있어요. 졸부정신으로 귀족정신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항상. 그래서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도 향그러운 외국어를 해야 됩니다. 외국어를 나불나불하는 건 말쟁이입니다. 나는 늘 자랑스럽게 얘기해요. 대한민국 교수 중에서 제일 외국어를 잘 하는 1% 안에 드는 사람입니다. 권위자입니다. 왜, 스페인어 시인이니까요.
박인규 : 지금 그 말씀은 우리나라에서의 외국어교육이 인성교육은 외면한 채, 말하자면 아주 좁은 의미의 말하는 능력만 가르치고 있다.
민용태 :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이죠. 그런데 그런 건 불필요한 외국어입니다. 외국어는 사람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달입니다. 인성의 향기가 사람하고 말하고 싶게 만듭니다. 외국어의 전달이라는 건 어텐션, 관심입니니다. 귀 안 기울이면 안 들리고 말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죠? 사람이 사람스럽고 매력적이고 관심있게 되어야, 아니면 인간적 품성이 보여야 외국어의 전달이 가능한 겁니다. 이걸 놓쳐버리고 말쟁이를 만들겠다. 얼마나 위선적 구도입니까. 한국인 학생들을 놓고 한국말을 잘하는 한국 선생이 영어로 강의를 해야 된다는 슬픈 상황, 이건 위선입니다. 왜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나의 뜻과 생각과 지식을 참으로 전달하고 싶구나 하는 마음의 이반입니다. 외국인을 데려다놓고 외국어로 강의하게 하는 게 당연하고. 아니면 우리가 외국어를 하면 외국 나가서, 특히 초등학교 4,5학년, 중학교 1학년, 아주 이상적인 외국어 몰입교육의 시기라고 생각하면 보내세요. 외국으로, 그것도 좋은 데로 보내세요. 영국 어디 시골로 보내세요. 돈도 싸고. 아무 외국어나 배우는 거 아닙니다. 그거 가지고 어떻게 외교관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말이죠.
박인규 : 인성교육이 우선이지만 꼭 자녀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면 한 초등학교 4학년 지나서
민용태 : 4학년 이후 중학교 1학년까지,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면 자연히 성정해요 사람도. 그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박인규 : 알겠습니다. 정년퇴임하시지만 강의는 계속 하신다고 들었고요,
민용태 : 선택과목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동안 책도 많이 내셨지만 올해도 책이 많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만
민용태 : 글쎄 어떻게 되는지 전에 책은 줬지만 출판사에서 밀려서 올해 책이 다섯 권이 나옵니다.
박인규 : 많이 나오네요.
민용태 : '스페인 중세 황금세기 문학'이라는 게 나오는데요, 한 700페이지짜립니다.
박인규 : 연구서군요.
민용태 : 연구서지만 대학원 교재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말하자면 우리화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우리말 시인이 먼저고, 그리고 스페인 시인이고, 번역을 하면서 번역이라는 건, 문학성이 상실되는 번역은 번역이 아닙니다. 우리말로 나오면 우리말 시가 돼야 한다. 저쪽 시를 번역한다면. 그런 면에서 무척 애정을 갖고 만들었던 책이고, 우리 후학들에게 참으로 읽을 수 있는, 다 연구된 겁니다. 연구서라고 얘기해도 상관 없는. 양쪽. 대중성과 일반성, 그리고 심도있는 연구. 표절이 아닌 책은 어떤 것인가 하는 걸 신경썼고, 거기 바로 그 얘기를 아까 말씀드린 말이 나옵니다. 외국문학을 왜 하는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겁니다. 내가 미국사람 되기 위해서 영어 배우는 게 아닙니다. 나를, 왜 외국말을 배우느냐. 외국문학은 나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입니다. 거울이라는 건 살이 아니에요. 숨 안 쉬어요.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스페인 문학은 사실. 나는 한국인이고, 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 비춰볼 때 내 얼굴이 보입니다. 한국민족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가 보이죠.
박인규 : 스페인문학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나를 본다.
민용태 : 그렇죠. 내 속에서, 자꾸만 얘기하면 우물 안 개구리입니다 쉬운 말로.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남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내 얼굴을 비춰본다. 둘째, 창이야. 아, 인간이 이렇게 생각하고 문학을, 이렇게 예술을 할 수 있구나. 그래서 외국문학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내 얼굴 비춰보기의 거울이며 다른 세계... 인간은 다 똑같으니까, 다르게 생각하고 살 수도 있구나. 창이라고 얘기했던 겁니다.
박인규 : 멕시코에서도 책이 나온다고 아까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민용태 : 예. 책 두 개가, 스페인 시집이 한 다섯 권 됩니다. 시선집이 멕시코에서 나오고, 스페인에서는 새로운 시집. '빈은 11살이라'는 시집이 이번에 나옵니다. 은퇴하니까 복도 쏟아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박인규 : 정년퇴임 하신 후로 더 활동이 왕성하신 것 같습니다.
민용태 : 예. 활동이 왕성한 것은 운동을 많이 하고, 시간이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제가 신선운동을 하니까, 단전호흡도 하고 운동 많이 합니다. 시간이 생기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본업으로 돌아가는 거죠. 시인. 그래서 알았는지, 내가 세상을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세상의 친구들. 헛된 친구들을 사귀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 나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한 곳에서만 나올 줄 알았거든요. 멕시코에 있는 교수... 둘세 마리아 수니가라는, 교수이면서 작가인 그 분에게 시선집을 하나 보냈고, 스페인에 내 친구 시인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나는 그 중에서 하나쯤 나오겠지. 둘 다 나온다는 겁니다. 하하하
박인규 : 여러 모로 올해는 아주 기분 좋은 한 해가 되시겠군요.
민용태 : 아, 기분 좋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시도 많이 쓰시겠습니다만, 앞으로의 활동계획 같은 걸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민용태 : 활동이야 뭐, 그 일입니다. 시 쓰고 번역하고 강의하고
박인규 : 노익장이란 말도 있긴 합니다만, 앞으로도 많은 활동 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민용태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지난달 정년퇴임을 한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민용태 교수를 초대해, 지난 30년 동안 강단에서의 활동과 스페인 문학에 대한 열정을 되돌아보고 효율적인 외국어 교육에 대한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