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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을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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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을 깨라"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김성식 "한나라당, 임계점에 도달했다"

김성식 국회의원을 만났다. 국회 백봉신사상 4년 연속 수상, 동료 국회의원이 뽑은 의정 활동 1위, 국회 보좌진이 뽑은 가장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법률 소비자연맹 주관 국회헌정대상 종합 1위를 차지하는 등 한나라당뿐 아니라 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일 잘하는 정책통으로 손꼽히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 "정치 의병이 되겠다는 각오로 허허벌판으로 나갑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지금 어떤 마음으로 그 허허벌판에 서 있을까?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국회를 도구화하려는 청와대를 향해 반대표를 던지고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 매우 피곤했다. 나의 내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억누름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긴급조치 시대 속을 살았던 저항의 DNA가 있는 것 같다. 청와대가 해달라고 하니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국회의원의 임무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유인 김성식과는 맞지 않다." 긴급조치 시대를 살면서도 무뎌지지 않았던 자유를 향한 그의 예민한 촉수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빨간불을 켜며 그에게 경고를 했나 보다.

그래서 물었다. 막상 허허벌판으로 나오니 외롭지 않느냐고. 마음에 맞는 동지들과 함께 새로운 둥지를 만들 생각은 없냐고. 그러자 "나는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살려고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정당에 기웃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정당을 벗어나 수도권에서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하나가 죽어서 정치의 새로운 싹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내 자신의 미래와 별개로 우리 정치가 진화하기를 바란다. 반복적인 응징성 몰표로는 과거에 대한 심판은 가능하지만, 정치적 진화를 축적할 수는 없다.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최종 종결자는 국민이다. 국민들께서 우리 정치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가려보는 흐름도 만들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허허벌판이 아닌 국민의 마음 위에 서려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그의 사무실엔 하얀 칠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그가 만들었던, 혹은 만들고 있는 정책들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에 정기 국회 때 제정법인 '협동조합법'을 대표 발의하여 통과시켰는데, 숱한 고비 속에 마무리하고 나서 희열을 느꼈다. 추가감세 철회와 고용을 줄이는 기업에 대해서 세금혜택을 주지 않게 하는 법도 3년 만에 해냈다. 또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혜택을 못 받던 사람들 중에 상당수를 혜택받게 했다."


▲ 김성식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정치란, 이러한 수많은 해법을 간추려서 국민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자 토론과 절충을 거쳐 다수의 차선의 길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정책인 것이다. 정책은 책상을 떠나면 동시에 정치의 영역이다.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나마 세상에서 억눌린 쪽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막힌 쪽이 보다 더 많이 기회를 얻게 되고, 힘이 없는 쪽이 힘을 얻고, 반면에 힘센 쪽이 절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 · 정치적 권력이 정의 관점에서 제한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해왔다." 21세기 정책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정치싸움보다는 입법 등 정책생산을 중시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을 조금 실감했다.

"정치를 하면서 주권자는 국민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일하라고 위임해주는 4년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떤 때는 3D업종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아! 참! 이 의병 살리고 싶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가 아닌 허허벌판에서 살아 돌아온 김 상사 보고 싶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근래에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화두는 나는 현재 우리 정치의 모습과는 어떤 다른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밖에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주파하기(웃음), 그동안 읽었던 동서양의 역사책들 다시 뒤지기 등을 하고 있다.

정치인 김성식, 그리고 한국 정치

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 후에 줄곤 '여당 속에 야당'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최근엔 한나라당의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다 결국 탈당했다.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한나라당에서 조금 더 버티며 한나라당의 변화를 견인할 수는 없었나?

나와 한나라당은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한나라당은 이미 당의 존폐에 대해 국민이 질문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혁명적 변화가 필요했고 리모델링 정도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타성을 쇄신하는 것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지난 4년은 MB정부의 국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조금이라도 변화하도록 계속해서 부딪쳐 온 과정이었다. 몇 차례의 쇄신의 노력이 일부의 성과에 그치면서 나 자신도 임계점에 도달했었다. 한나라당과 한국 정치의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에서 쇄신파라는 그럴듯한 별명을 얻긴 얻었지만, 그 또한 타성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나라당이 신당 수준의 재창당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 낡은 보수는 건강한 보수가 자라나는데 방해물, 혹은 건강한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치적인 꽃을 피우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또한, 대답이 없는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해라, 국정 기조를 바꿔라, 인사 제대로 해라' 해봐야 더 이상 답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홍준표 대표의 사퇴를 전후로 신당 수준의 재창당을 요구하며 쇄신을 위한 마지막 발버둥을 쳤는데 다 잘 안됐다. 문제의 의원총회 때 평소에 발언을 많이 하지 않았던 분들까지 나서 부역하듯이 억지 말씀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당 안에서 더 이상 아웅다웅하다가는 저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정치도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내가 탈당을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탈당의 대전제는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한다. 국회의원 빼지를 단 4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치열하지는 못했다. 주춤거리기도 하고 비틀거리기도 했다. 국민의 비난을 받는 한나라당의 모습에 대해 나 자신도 책임이 있고 죄송한 마음으로 반성도 했다. 현 대통령의 국정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 국민의 쇄신요구는 높은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지지부진함, 계파싸움과 기득권 논리, 실력자들 눈치를 보고 자신의 자율적인 생각과 정반대되는 언행을 하는 불행한 모습들이 나를 결심으로 내몰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나의 내면인 것 같다. 나 스스로 반복적으로 쇄신을 제기하면서 타성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무엇 하나라도 내려놓고 싸울 진정한 정치개혁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탈당까지 이르게 되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야당의원보다 더 야당스러운 모습을 보며, '김성식 의원이 왜 한나라당에 있지?'라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한나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프레시안(최형락)
약간의 업보 같은 거다. 나는 민주화 운동을 했고, 이후 이 운동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화 운동은 국민의 분노를 키우는 것인데,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를 통해 분노를 조화로운 변화의 에너지로 바꾸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변화하려는 민주화 운동 세력들의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에 1997년 '3김 정치'로 대표되는 지역주의, 보스주의 정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정치과제였다. 나는 고 제정구 선배님 등과 더불어 '꼬마' 민주당이 이회창의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될 때 함께 따라나선 것이다. 즉 한나라당은 나의 새로운 정치적 둥지이자 개혁대상이었다. 기왕 들어왔으니, 기존의 보수 주류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정치 전체가 크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수의 혁신을 위해 나름 노력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비대위 정책쇄신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 위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나는 보수다'라고 찍는 정당은 오늘날 변화하는 세계에서 존재가 불가능하다"며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수정을 좀 해야 하며, 보수 같은 이념적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고 본다"라고 했고, 실제로 비대위에서 한나라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빼자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줄곤 새로운 보수, 사회와 소통하는 보수에 대해 이야기해 온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의 보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다. 최근 보수 용어 논쟁은 이 두 가지를 구별해서 봐야 하는 문제이다. 후자는 깨뜨려야 하는 것이지 간직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 라는 관점에서 보면, 건강한 의미에서의 보수가 있다고 본다.

'보수'라는 용어를 넣고 빼자는 논란 자체는 포인트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득권에 집착하고 자기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보수는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고 조화롭게 만들어나가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존재의 의미가 없다. 지금 보수를 앞세운다고 해서 국민이 그것을 참된 자유민주주의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보수가 기득권에 연연해 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용어로 상징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정치 기술적인 의미에서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더 풍요롭게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관점 속에서 보수 논쟁을 녹여 내야 하는 것이지, 계파적 이익을 지키려고 보수를 빼지 말자고 하거나 그 용어는 빼면서 실질적인 쇄신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국민들과는 거리가 먼 논란일 뿐이다.

마음과 비전이 맞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당을 만들 생각은 없나?

지금은 내게 창당을 할 능력도 없고 국민들로부터 그러한 위임을 받을 만한 신뢰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나의 도리는 낡은 정치의 종결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살려고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정당에 기웃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정당을 벗어나 수도권에서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하나가 죽어서 정치의 새로운 싹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지금은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서로 싸우는 정치판 자체를 개혁하는 의병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뿐이다. 지금은 무소속 정치 의병이다.

"21세기 정책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정치싸움보다는 입법 등 정책생산을 중시하려고 했습니다"라고 쓴 글을 보았다. 실제로 국회 백봉신사상 4년 연속 수상, 동료 국회의원이 뽑은 의정 활동 1위, 국회 보좌진이 뽑은 가장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법률 소비자연맹 주관 국회헌정대상 종합 1위를 차지하는 등 의정 활동에 있어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일에만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데, 하루에 잠은 몇 시간 자나? 그리고 무엇이 본인으로 하여금 그렇게 정책 디자인에 매달리게 하나?

정치를 하면서 주권자는 국민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일하라고 위임해주는 4년 비정규직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어떤 현안에 대해서 해법은 국민의 수만큼 많은데, 정치는 이것을 몇 가지로 간추려 주는 역할이다. 가령, 사교육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민 모두가 한마디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란, 이러한 수많은 해법을 간추려서 국민들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자 토론과 절충을 거쳐 다수의 차선의 길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정책인 것이다. 정책은 책상을 떠나면 동시에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가가 교수나 정책 전문가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책을 잘 결정해내고 잘 시행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그리고 정책과 연관된 일은 내가 재미있어한다. 날밤 새우기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뛰어다녔다.

이번에 정기 국회 때 제정법인 '협동조합법'을 대표 발의하여 통과시켰는데, 숱한 고비 속에 마무리하고 나서 희열을 느꼈다. 금융리스크를 줄여보고자 추진했으나, 3년 동안 청와대에서 막아서 실현되지 않던 '한국은행법 개정'도 결국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고 마지막까지 싸운 후에야 통과가 되었다. 추가감세 철회와 고용을 줄이는 기업에 대해서 세금혜택을 주지 않게 하는 법도 3년 만에 해냈다. 또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여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혜택을 못 받던 사람들 중에 상당수를 혜택받게 했다.

정책을 통해 점진적으로나마 세상에서 억눌린 쪽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막힌 쪽이 보다 더 많이 기회를 얻게 되고, 힘이 없는 쪽이 힘을 얻고, 반면에 힘센 쪽이 절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권력이 정의 관점에서 제한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양쪽이 적대시하지 않도록 일했다.

정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그리고 그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사람, 명언 혹은 다른 특별한 것들이 있었다면?

ⓒ프레시안(최형락)
여야가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에 얽매여서 패싸움을 일삼는 정치 구조가 가장 힘들었다. 국회에 있는 목욕탕에서 만나면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의정 단상에 여야라는 자리로 앉기만 하면 그때부터 반사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국익과 민생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표가 되는지 궁리하며 상대방에 딱지 붙이기를 한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과 현 정부는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면서 정권을 시작했다. 야당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대선에서 왜 550만 표 차이로 졌는지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은 채 새로운 민간독재라고 공격했다. 모두 정치를 앙상하게 만들 뿐이었다.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국회를 도구화하려는 청와대를 향해 반대표를 던지고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 매우 피곤했다. 나는 미디어법 때 방송신문겸용 법안에 대해 반대 뜻의 기권표를 던졌다. 금산분리완화와 4대강 관련 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힘센 권력자를 뒷받침하고자 하는 계파들은 오로지 실력자의 포지션만 생각하지 정치가 해야 될 역할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그 실력자한테 도움이 안 되는 데 말이다.

또 하나는 시간의 한계다. 국회의원이란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참 바쁜 게 사실이다. 어떤 때는 3D업종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의 정치인들은 돈도 많이 받아먹고 사람도 심었다던데 요즘의 정치인들은 말 한마디로도 신상털기를 당해야 한다.(웃음) 물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생기지만.

어려운 고비마다 힘을 얻었던 것은 국회에 들어오면서 만들었던 초선 의원들의 모임이었다. 낡은 보수와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정치를 해보고자 하는 모임이었는데 이것이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었다. 만일 이 '민본21'이 없었다면 나의 정치 쇄신을 위한 노력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입법과정 속에서 효과적인 협업도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역구의 주민들이 참 고맙다. 내가 속한 관악갑 지역구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이른바 야당 텃밭이다. 특히 서울대를 지나는 지하철 2호선이 있어 젊은 학생과 직장인층이 두터운 지역이라 여당 의원으로는 어려운 지역구이다. 이곳에서 두 번째로 낙선했을 때 선거 직후 관악구 전체 새마을 바자회가 있었는데 정말 가기 싫더라. 어쩔 수 없이 면피성 낙선인사를 하러 갔는데 지금껏 야당을 지지하던 부녀회 회원들께서 뜻밖에 나에게 낙담하마지 말라고 용기를 주시니 감사했다. "이번 탄핵 바람 때문에 당신을 못 찍었지만, 당신을 미워한 것은 아니다. 사람만 봐서는 당신이 참 서민적이고 마음씨도 좋은데, 아무쪼록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그러면서 떡볶이와 부침개를 만들던 손으로 나를 많이 안아주셨다. 그 덕에 양복이 얼룩덜룩해졌지만 주민들이 주시는 사랑에 뭉클하고 행복함을 맛보았다. '내가 열심히 하면 이분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주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콘크리트와 같은 흑백논리의 선거판 속에서 사람을 봐주는 온기를 느꼈다. 때로는 피곤하고 정치적 판단이 어려워 가닥을 잡지 못할 때 이분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 때 기권했다. 특별히 당의 지침을 따르지 않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과 자신의 평소 소신이 서로 충돌할 때 결정 기준은 무엇인가? 더불어 기준을 가진 것과 별개로 소신을 지킬 용기는 어디서 나오나?

나의 내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억누름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긴급조치 시대 속을 살았던 저항의 DNA가 있는 것 같다. 청와대가 해달라고 하니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국회의원의 임무에 어긋날뿐만 아니라 자유인 김성식과는 맞지 않다. 그래서 소신을 지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나름대로 소신투표를 많이 했었다. 나로서는 이런 과정이 보람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다 소신껏 일한 것은 아니고 어떤 경우에는 타협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타협을 국민들이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념 있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한미FTA의 경우는 이 협정이 지난 정부에서 맺어진 사항이고 결정적인 이익균형이 허물어졌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국민적 검증 하에서 토론한 다음 정상적으로 비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청와대나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이 협정을 빠른 시일 내로 밀어붙이려고 하고, 야당은 아예 몸싸움을 당론으로 결정했는데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당내 쇄신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인 검증과 토론을 전제로 여야의 표결로 한미FTA 비준안이 처리되길 바랐다. 정태근 의원은 단식까지 했다. 논란이 된 ISD 조항은 재협상의 길을 열어 해결하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한미FTA를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 밀어붙이기식이었던 대통령의 국정을 쇄신하는 실천적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 당시 나는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면서, 국회의장이 개회를 하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여 의장과 한나라당에게는 직권상정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야당에게는 단상점거는 그만하고 본회의장에서 몇 박 며칠이라도 TV 생중계 속에 쟁점에 대해 충분히 토론한 다음 표결하자는 발언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개회 이전에 최루탄이 터지는 바람에 국회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나의 마지막 시도 자체가 무산되었다. 결국, 그날 그렇게 표결하는 것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기권표를 던졌다.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적대적 공존 상태야말로 정치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핵심 이유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 둘 간의 적대적 공존 상태란 무엇인가? 그리고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는 어떤 면에선 샴쌍둥이처럼 매우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정치를 하면서 이에 대해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기고 가르치려 하고 위선적인 모습을 가졌다는 점에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는 똑같다. 낡은 보수는 낡은 진보가 있어주면 자기 개혁을 하지 않고도 때로는 집권할 수 있어 좋은 것이고, 낡은 진보도 낡은 보수가 개혁을 안 해주면 신 나게 삿대질하면서 그다음에 정권을 획득하면 되니까 좋은 것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걸림돌이 이 적대적인 공존구도이다.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 국정운영방식과 여당의 행태를 과거 틀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는데 지난 노무현 정부 때도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이런 적대적 공존구도를 바꾸지 못했다. 이 핵심적 문제의 기저에는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독점적 공천 구조가 깔려 있다. 영호남, 충청 지역 같은 경우에는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선거에서 이기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 통치 구조가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것도 이유가 된다. 당선이 되는 순간 국민과 다른 정당과의 대화를 통해 책임정치를 하기보다는 '역사의 평가'를 내세우며 우격다짐의 정치를 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좋은 정치를 위해서 어떤 자산을 남겨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난 노무현 정부는 많은 국민들에게 처음엔 의로운 정부로는 비춰졌다. 그랬던 노무현 정부도 보궐선거가 있을 때마다 '28대 0'이라는 계속되는 심판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노 대통령이 민심을 얻지 못해 지지도가 땅에 떨어지고 대선에서는 엄청난 표차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정치가 의로움에 더해서 정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를 이분법으로 매도하고 분열시키지 않기를 국민은 바랬다. 지난 정부는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야기했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개혁의 의지는 좋으나 그것이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되어 당시 여권 내부에도 엄청난 갈등과 분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정신을 차려 이전 정부보다 더욱 국민통합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역시 문제의식도 빈곤했고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밀어붙이기나 하고 더욱 권위적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국민에게 주었던 의로움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끼리끼리 인사, 부패 등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국민들의 응징의 심리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를 포함한 선거제도, 통치제도, 개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치가 가진 많은 문제점들을 모두 고쳐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전에 정치 행태부터 개혁해야 한다. 정치 행태의 개혁은 국회의원 개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공천에서 잘릴 각오를 하면 되는 것이다. 정치인 스스로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해바라기처럼 따라다니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청와대에서 호루라기를 불면 따라가는 정치, 몸싸움의 도구가 되는 정치 수준에서 넘어서야 한다. 문제 해결능력과 국민적 공감 능력을 키워 이것을 대의민주주의 과정속에서 녹여내고자 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솔직히 4년 동안 정치 행태 개혁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초선의원 김성식 개인으로서는,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어록을 빌려서 감히 말하자면, '할 만큼 했다. 조금 더 치열했으면 하는 반성도 있지만 지칠 만큼 했다'. 그런데 정치구조, 거기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대립은 고질적인 문제인데, 우리 정치의 문제해결능력을 어떻게 해야 키울 수 있다고 보나?

세 가지 문제를 예로 들자. 남북문제,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마지막으로 복지 부담을 늘리는 문제와 복지를 확대하는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는 어느 한 정당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먼저 남북문제를 보자. 정부가 햇볕정책을 할 때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은 개발했고, 두 차례의 서해교전(제2연평해전)을 통해 젊은이들이 죽었다. 현 정부의 고립정책에서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즉 남한 내부가 갈려져 있을 때는 어떤 정책도 북한변화나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북한이 남한을 갖고 놀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거다. '전쟁이냐, 평화냐'는 야당식 구분과 '퍼주기'라는 낡은 보수의 논리가 모두 선동적인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만 커지고 있다. 미래의 북한 동포들이 중국을 선택하느냐 대한민국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깔렸다고 보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가 적어도 남북문제에 관한 한 합의된 로드맵과 정치적 방향을 만들어야 북한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국민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북한 동포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내고 동시에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각한다.

다음으로, 양극화 문제 중의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이다.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는 대기업 강성 노조의 기득권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모 자동차 노조는 아들을 정규직으로 취업시키는 것을 단체 협약에 넣으라고 요구했다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그것이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동차 조립라인을 세울 때 사실상 노동조합이 결재권을 쥐고 있는데 그것은 경영의 영역이다. 이러한 행태는 결국 비정규직과 차별적인 하도급 구조의 만연으로 이어지는 한 요인이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양보와 타협과 이해의 조화를 전제로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만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도 문제이지만, 표만 의식하여 비정규직 철폐와 보호만을 이야기하면서 정규직의 양보에 대해 말하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차별시정은 당장 시작해야 한다. 기업주는 노동유연성과 차별적인 저임금을 동시에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사회보험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실업 후에는 고용보험 정도는 탈 수 있도록 하고, 노후에 국민연금 정도는 탈 수 있고 건강보험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정도부터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0만 명의 고용보험 사각지대와 650만 명의 국민연금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놔둔 상태로 무상시리즈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국민들의 살림이 어려워 불안에 빠져 있는데 골고루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시장경제 논리만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 또한 사회적 합의와 양보를 통해서 밖에 해결할 수 없는데 이것을 어느 한 정당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적 합의를 추구하는 연립정부식 운영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복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복지를 늘리는 문제에는 부담이 느는 문제와 우선순위 문제가 있다. 여기에 정치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선 국민이 힘들어 죽겠는데 4대강 예산에 돈을 쏟아 붓는 현 정부에 대해 열 받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보편적으로 할 것은 보편적으로 하고 맞춤형으로 할 것은 맞춤형으로 하면 될 것을 가지고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논쟁을 몰아가는 야당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왜 안 했나. 이 정부와 낡은 진보가 서로 얽매여서 삿대질하는 사이에 민생은 팍팍해지고 복지 사각지대는 더 커지면서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에 대해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 반값 등록금 이야기를 했고, 기초노령연금도 모든 노인 100%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국립대학교 등록금이 사립대학교에 비해서 너무 낮기 때문에 국립대학교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급식은 지방정부 사업으로 하자면서 일부 예산을 주며 책임을 전가했다. 그런데 여야가 입장이 바뀌고 나면,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무책임한 정치 때문에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이 체계적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여러 정당이 함께 어울려서 정치적 컨센서스(의견일치)를 이뤄내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자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제 정치는 아집과 독선을 넘어서서 타협의 능력과 문제 해결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조화로운 타협의 정치가 아니면 이제 정치는 망한다. 정치가 망하면 그 결과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정치 세력이 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의 피해, 국민의 피해로 귀결되는 거다. 여기에 정치 개혁의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 될 사람은 정치적 합의 도출을 중시해야 하고, 그러한 국정 시스템을 체계화해야 한다. 당론을 앞세우는 정당권력은 줄어들어야 하고 국회의 자율적인 심의와 토론의 영역이 더욱 커져야 한다.

최근 한 언론에서 "복지 논쟁과 관련하여 성장과 복지, 분배문제를 대립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바람직한 복지국가의 모델, 패러다임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프레시안(최형락)
고도 성장기에는 일자리와 장사의 기회가 확대되었기 때문에 복지 시스템을 강화하는 과제는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적게 내고 적게 복지를 하는 저부담·저복지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었고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복지 수요 또한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으면서 서민의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문제는 한 번에 고부담·고복지 국가로 가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복지제도라는 것은 지층과도 같아서 과거 복지제도의 정책적 결과물의 축적 위에 복지가 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 진보할 것 없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는 복지가 민생과 직결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국민들의 불안이 커져 있고, 일자리가 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도 나빠져 있는 상태이다. 과거와는 달리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라, 재산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져서 미래 격차로 이어져 있다. 또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대기업의 거대한 수익이 밑으로 내려오고 있지 않다. 이런 시기에는 경쟁력 강화와 복지 강화를 균형 잡힌 선순환 구조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때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구조조정 자체를 막겠다는 논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국제 경제 환경, 기술 환경에 따라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제대로 된 복지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유럽의 핀란드의 대표적인 휴대폰 기업인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뒤짐에 따라 망하기 일보 직전의 기업이 되었다. 작년에 노키아는 4300명의 핵심 인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1700명을 해고했다. 그런데 해고된 1700명이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했다는 얘기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 자신이 받던 봉급의 80% 이상을 실업수당으로 받고,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기한도 길고, 본인이 원하는 재취업 훈련도 받을 수 있어 다른 기업에 취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진보 또한 경제 활력을 키우기 위한 여러 노력과 병행하면서 복지를 말해야 한다. 사람들은 일 속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즉 기업이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투자 여건을 잘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자꾸 계급적 시각 혹은 신자유주의적 시각에 의해서 편협하게 재단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국민이 현재 던지고 있는 정치권의 무능에 대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와 진보는 자기성찰과 혁신 속에서 더 풍요로워지고 현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낡은 보수가 더 큰 문제이다. 민본21 정도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보수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이미 길이 아님이 검증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극심한 이념 대립과 지역 대립과 세대 대립을 극복하려는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자'가 설 땅은 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부딪히며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관건은 성찰과 공감의 능력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최근 들어 자유주의 논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신자유주의나 사회주의는 이미 미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냐, 사회민주주의냐' 하는 것은 의미 있는데 우선 나는 이 둘은 공존 가능한 것이고 경쟁해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우적인 전체주의나, 극좌적인 전체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기초로 해서 정치를 하고 싶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인문학적 사회·문화적 정치적 내공이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유럽 사민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타협이라든가, 배려라든가, 법치라든가 하는 사회적 자본들이 미흡하다. 또한, 자원이 많지도 않는 상황 속에 창의적인 경제 활력이 여전히 중요하다.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정의롭게 가꿔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정의, 시장의 공정 등을 확립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 합리적인 사회민주주의자와 대화할 수 있고 그쪽에서 제기되는 아젠다를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자의 길을 가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낡은 보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은 공정하지 않는 경쟁을 시장경제라고 우기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면서 이것을 시장경제라고 우기는 것, 인력과 기술을 탈취해가고 창의에 대해서는 보상도 해주지 않는 것, 정부로부터 10억 원짜리 조달을 받으면 5억 원은 챙겨놓고 5억 원으로 하청구조를 돌리면서 이것을 시장경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또한, 부모의 재산 격차가 엄연히 교육 격차와 미래 격차로 이어지는데 그저 대학 입시 원서를 낼 수 있는 자유를 기회의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낡은 보수이다.

낡은 진보는 결과의 평등에 집착을 해서 인간의 자유와 창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기실현과 이익의 추구가 사회발전의 동력일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즉 모든 것을 결과의 평등으로 해석하려 하고 서로 다름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진보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면 그 주장만 진리라고 주장하고 나머지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정치인 스스로에 대해서도 영혼을 건강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동정치는 쉽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정치는 어렵다. 좁은 길이지만, 나는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를 가꾸어갈 것이다.

"전 이미 당에서 나왔습니다. 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다른 정당에 기웃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죽더라도 새 정치의 싹이 피어난다면, 즉,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판 전체가 국민의 준엄한 요구대로 혁신된다면 족합니다"라는 글을 보며 참 멋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두렵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나 이러다가 정말 정치적으로 죽으면 어떻게 하나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도 있지 않나? 그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이미 두 번의 낙선 경험이 있다. 이것이 두려워하기보다는 나를 담담하게 해주는 밑천인 것 같다. 마음의 다스림은 오랜 독재정권 시절에 민주화를 해오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사실 민주화 이후 지난 참여정부에서 '민주화 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이 만들어져서 나보고도 신청해 돈을 타가라고 했지만 신청하지 않았다. 민주화가 됐고 특별 사면 복권됐으면 그만이지, 사지가 멀쩡한데 국민 세금으로 돈 받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약간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다. 같은 시기에 나와 민주화 운동 함께하다가 죽거나 정신병에 걸린 선후배도 있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의 미래와 별개로 우리 정치가 진화하기를 바란다. 반복적인 응징성 몰표로는 과거에 대한 심판은 가능하지만 정치적 진화를 축적할 수는 없다. 정치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인데 최종 종결자는 국민이다. 국민들께서 우리 정치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사람을 가려보는 흐름도 만들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나로서는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고 국회가 바로 서지 못한 모습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내가 했던 정치를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면서 총선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인터뷰 코너 제목이 자유인 인터뷰다. 김성식에게 자유란?

자유는 크게 세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또 하나는 공동체 안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나의 자유가 더불어 살아가는 타인의 행복과도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숙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대의권력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정치의 영역에서 그 권력을 견제하는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있다.

나에게 자유란 '쪽팔리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짓눌림이나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가는 것을 거부하고 개념 있고 당당한 것이 바로 자유이다. 국민들에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삶에 더 많은 행복과 기회를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1인 미디어 시대에 맞게 주권자의 목소리로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 2.0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엘리트가 공동체의 방향을 정해서 국민에게 떠먹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정보와 1인 미디어로 무장되어 있는 새로운 정치의 주역이 된 주권자들과 그 위임자들이 선순환 소통을 하는 자유 2.0이 필요하다.

청년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경제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트럭 운전을 했던 아버지는 일에 열심이셨고 순박하셨으나,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있으셨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에 어머니가 시장 좌판에서 옷가지를 파시면서 책을 엄청나게 많이 사주셨다.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는데 경제학 교수가 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학생운동 하느라 경제학 공부 제대로 못 했다. 미시·거시 경제학 교과서도 나중에 감옥 안에서 겨우 읽었다.(웃음)

정치인 김성식이 아니라 인간 김성식으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나는 아내와 잘살고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나에게 사랑이란 '눈이 머는 것'이다. 분석하고 비교해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고1 때 여학생도 있는 써클에 가보자는 선배의 꾐에 넘어가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기능공으로 일했고 나는 운이 좋게 서울대에 합격해서 서로의 길이 달라졌지만, 그 우정이 변치를 않았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집사람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나는 감옥에 갈지도 모르며, 돈은 제대로 벌지도 못할 거다. 그래도 받아들여 줄래?"라고 프로포즈 했다. 지금도 집사람이 그 얘기를 하면서 "그것을 프로포즈라고 했느냐"고 하면서 "사람이 착한 것 같아 봐주는 심정으로 수락했지 당신 말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웃음) 그간 힘들었던 우여곡절을 다 참고 견뎌주었고 정치하는 과정에서 더 크게 나를 보듬어 주는 아내가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내가 바쁜 의정 활동으로 밤에 늦게 들어와 라면 끓여달라고 칭얼대는 것, 그것을 타박하면서도 끓여주는 아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제일 행복하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이다. 눈이 멀어야 사랑이 가능하지 따지면 사랑이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인간 김성식이 가장 뜨겁게 눈물 흘렸던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

비밀이다.(웃음) 요즘은 유행가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 속에 많이 들어온다. 심수봉 노래를 원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노래,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준 단 한 사람...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하는 가사가 좋아지는 요즘이다. 우리 국민들도 서러움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럴 자격이 있느냐를 떠나서 때로는 서럽다. 급변하는 세대를 살아서 세대별로 경험도 다르고 서러움의 포지션도 다 다르다. 이 서러움의 공감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꿈이다.

나중에 조금 더 힘을 가진 정치인이 된다면 광화문 사거리에 익명의 조각상을 만들고 싶다. 유명인사 형상이 아니라 6.25 때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지금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는 참전용사,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새끼를 두고 중동에 가서 열심히 노동판에 일한 가장, 밤새 공장에서 미싱을 돌렸던 여공, IMF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극복한 기업가, 영세상인, 젊은 세대 등등의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안에 긍정의 역사가 품어져 있다. 지금 찜질방에 누워 계시는 펑퍼짐한 50대 아주머니들도 자기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공단으로 갔던 분들이다. 그 내면의 자부심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조각상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서 화해하고 또 다른 세계와 계층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웠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정말로 대단한 나라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나라 중에서 이만큼 발전한 나라가 없다. 현재 우리 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다 한반도 위기다 해서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 국민이 부지런하고 열정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치만 개혁하면 된다. 정치가 서러움을 이해하고 국민들을 짓밟지 않으면 된다.

이제는 대립의 정치를 극복하고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자기 성찰 속에서 거듭나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정치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정치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우리 국민은 행복해질 권리와 자격을 갖고 있다. 이것을 위해 내일 끝날지라도 열심히 정치를 할 거다.

마지막으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베끼지 말고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라. 베끼는 것은 쪽 팔리는 것이다. RT(retweet, 전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멘션(mention, 답)할 수 있는 인생이 될 때 RT도 의미가 있다는 거다. 당장은 베끼고 스펙을 쌓는 것이 계책이 될지 몰라도 나는 확신한다. 미래는 창의와 어울림의 능력으로 결정된다고 말이다. 좋은 스펙보다도 이 두 가지 자질이 우리 젊은 사람들의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청년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 그리고 현실적인 장벽들은 김성식이 국회의원 빼지를 달고 있는 한 조금이라도 깨도록 노력을 해 보겠다.

(인터뷰 및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임지은, 손어진 연구원)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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