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라는 허명

이 글은 고인(故人)이 된 건축인 김수근의 윤리문제나 과오 실책에 대한 문제 제기 차원을 넘어서, 그가 정작 '건축가'인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묻는 글이다. 까닭 없이 그를 깎아내릴 뜻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의 실체를 잘 모르고 긴 시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떠받들고 대우하는 한국의 사회 문화적 태도, 특히 건축계의 '김수근 신화화' 미신(迷信)에는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분명하게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인권도시' 광주에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

얼마 전에 '인권도시' 광주를 다녀왔다. 광주시는 5.18민주화항쟁을 문화적으로 기리고자 시 재정을 기금으로 출연하여 '광주문화재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신축된 문화재단 건물 바로 옆, 시 문화재단이 관리하는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라는 명칭으로 큰 간판을 내건 건물의 이름에서 '김수근'이란 이름 석자가 과연 5.18 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인권도시 광주'에 합당한 것인가? 바로 즉답을 하자면, 나는 말한다. '크게 틀렸다, 이건 아니다'라고.

▲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 ⓒ김상수

김수근의 정체를 모른다

이는 광주시 공무원이나 광주문화재단 직원들, 그리고 광주시민들은 물론이고, '김수근'이란 건축인 이름을 들어본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도 건축인 김수근의 실체나 정체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초래된 사례다. 그러기에 나의 의문인 '김수근 아트 스페이스 명명 배경'에 대해 광주문화재단 측도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적인 1세대 건축가로 건축가로서의 사명감,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통과 현대에 대한 고민 등 한국 건축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산증인으로 빛고을 시민문화회관 별관(구 전남도체육회관)은 광주시에 유일한 '김수근' 작품인 관계로 건축물 보존 및 재활용 가치를 제고하고 문화관광의 명소로 만들어 줄 것으로 크게 기대하고 '김수근' 명칭 사용 필요하다고 판단"이라고 문서로 명명배경 설명을 내게 보내왔다.

반인권 독재정권의 사고(思考)를 건축으로 구현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는 김수근에 대해서 알되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건축인 김수근이야말로 철저하게 반민주주의 반인권의 독재정권에 협력하면서 독재자의 사고를 건축에 구현하여 그의 건축적 성과물을 이룬 건축인이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88올림픽 주경기장, 훨씬 이전인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 부장을 만나 지은 워커힐 호텔의 힐탑바, 서울 남산의 반공연맹(현 한국자유총영맹)의 본부인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육사 교훈 탑,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국립부여박물관, 세계 박람회(엑스포) 한국관, 청계천 3.1고가도로, 국립청주박물관, 서울의 종합문예회관(현 아르코 공연장 및 미술관), 세운상가, 이란 엑바탄 주거단지, 국민투자금융 본사, 주 인도한국대사관, 주한미국대사관,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 주미 한국대사관저, 대법원 종합청사, 치안본부청사 등, 그가 설계 건축한 대형건축과 공사흔적들은 곳곳에 있다.

▲ 서울 잠실에 위치한 88올림픽주경기장

개발독재 시대 전횡(專橫)의 건축인

군, 경찰, 민간, 정부 부서할 것 없이 건축주가 두루 넓은 것이 김수근 건축의 특징인데, 특히 개발시대 독재 정권이 발주한 대형건축물 위주로 설계하면서 급기야는 대규모 국가 건설기획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개발독재정권의 '한국기술개발공사'의 대표이사까지 맡아 여의도 개발, 한강개발, 남산개발, 서울 도심개발 등 무수한 개발공사를 하게 된 것은, 독재정권과의 유착으로 개발독재시대 대표 건축인으로 그가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던 것을 뜻한다.

▲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대공분실 건물. 대공분실 7층짜리 건물을 외부에서 보자면, 취조 고문실이 칸 독방으로 있는 5층만 유독 창문이 아주 작게 좁은 직사각형의 창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김상수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인

여기에 결정적인 반인권 반문명의 건축인으로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 건축이 바로 서울 용산구 갈월동 88번지,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건물이다.

1976년 당시 김치열 내무부장관의 이름으로 공사가 발주됐고 전두환 말기에 경찰로부터 그곳에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죽임을 당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1987년 1월 14일 사망, 당시 23세) 열사의 사망 현장, 김근태 민주당 고문이 1985년 이곳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곳, 숱한 민주인사들이 고문받던 장소로 사용된 곳. 이 장소에서의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당시 고문타살을 은폐하려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종말에 기폭제가 됐다.

▲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 열사의 고문사망 현장은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입구를 유리창으로 막아 전시 중이다. ⓒ김상수

5.18민주항쟁과 독재정권의 고문전용 건물을 설계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오늘날, "부당한 국가 권력이 국민의 존엄성을 유린하고 인간의 권리를 짓밟을 때, 그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반인권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5.18광주 민주화항쟁이다.(국가인권위원회 안종철 박사)

'김수근' 이름을 내세워 "문화관광의 명소로 만들어 줄 것으로 크게 기대"한 광주시는 당장 건물의 이름을 고쳐야 한다. 남긴 건축물을 부술 필요는 없겠지만, 설계한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과 반독재 반인권 건축인의 이름을 기념하는 것이 과연 '인권도시 광주'에 합당한가, 그 여부는 따졌어야 옳았다. 광주가 어떤 도시인가? 민주주의를 지켜내고자 피를 흘린 도시다. 군부독재의 반인권 고문전용 건물을 설계 건축한 이의 이름 '김수근'을 광주에서 기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두환 군부쿠데타 실세를 미국대사에게 소개

81년 7월, 당시 주한 미국대사 워크를 서울 인사동 기생집 '동원'에서 전두환 쿠데타 실세 허화평, 허삼수에게 소개한 이도 김수근이다. 군부독재집단과의 내밀한 연관을 본다.

건축은 정신의 반영이다

건축계에서는 필자의 이런 '김수근 문제' 지적에, "건축설계자와 건축용도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이 사용하게 될 것을 알았다 해도 나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 않았겠느냐", "건물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비난받을 사항이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건축가의 설계를 실무자가 변경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등의 분분한 의견과 주장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서울 용산 남영동 대공분실 내외부 설계와 구조를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건축에 있어서 건축가의 역할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기초이해나 인식, 기본성찰을 결(缺)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폭력의 구조를 설계한 건축

대공분실 7층짜리 건물을 외부에서 보자면, 취조 고문실이 칸 독방으로 있는 5층만 유독 창문이 아주 작게 좁은 직사각형의 창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5층을 제외한 다른 층의 창 크기는 실내에서 외부를 자연스럽게 내다볼 수 있을 만큼 가로세로 큰 비례로 창의 크기를 냈지만, 5층은 고문 취조의 은폐와 엄폐를 미리 설계 때부터 염두에 둔 비정상적인 창의 크기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는 건축 설계 때부터 건물의 쓰임새가 정상적인 건물이 아닌 비정상적인 용도에 사용될 것이란 사실을 건축설계자가 미리 계산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설계다. 따라서 "건축가의 설계를 실무자가 변경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건축계의 가설은 성립 자체가 어렵다.

김수근 건축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건축설계는 벽돌 하나 창문 하나하나의 배치까지 설계자가 직접 관여했던 사실은 건축계에서는 익히 아는 알려진 사실이다.

▲ 대공분실 창문. 김수근 건축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건축설계는 벽돌하나 창문 하나하나의 배치까지 설계자가 직접 관여했던 사실은 건축계에서는 익히 아는 알려진 사실이다. ⓒ김상수

공포의 공간을 극대화한 설계

누구든지 취조 고문을 당하기 위해 건물에 강제로 끌려온 이들이 건물 공간으로 들어서면, 양팔을 포박당하거나 억센 손아귀에 이끌려 철제 계단을 오르거나 층 표시가 없는 승강기에 갇혀 5층으로 올라가면, 길고 어두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어긋나게 배열된 철문들을 지나 칸칸 독방 철문으로 끌려들어 갔다. 문들의 어긋난 배치는 혹시나 문이 열렸을 때 피의자들이 서로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배제하기 위한 처리였으며 동시에 고문이란 예측할 수 없는 정서적 돌연성을 엇각의 벽으로 마감해 공포의 공간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명이 복도에 공명으로 울린다.

▲ 대공분실 복도와 철제 계단, 철문들이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다. ⓒ김상수

고문의 용도로 공간처리와 분할

철문 안쪽으로 들어서면 실내는 약 3평 남짓 원룸인데, 취조실 내부는 철망으로 채워진 전구와 형광등, 지면에 단단하게 박혀있는 수입 철제 가구들과 침대가 바닥에 붙박이로 설치되어 있는 실내구성이다. 감시와 취조, 고문이 목적인 이 공간에는 전기 콘센트와 욕조가 고문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성인의 머리도 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좁은 직사각형의 창은 마치 갤러리 건물이나 고급 호텔건물처럼 보이게 해 건물의 용도를 밖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 1980년대 당시의 건물 용도를 연상하게 하는 담벼락의 철망이 현재도 그대로 있다. 당시 건물 용도를 연상하게 하는 육중한 철제 바리케이드도 출입문 안켠에 있다. ⓒ김상수

▲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금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꼈다. 출입구 전경 ⓒ김상수

남영전철역 플랫폼 너머엔 지옥이 있었다

건물 외벽에서 불과 6,7미터 떨어진 남영전철역 승강대에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전철을 타기 위해 승강대에 머물지만, 철로 너머 바로 앞에 쥐색 건물 안에서는 인간이 짐승처럼 취급당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지옥을 넘나드는 세상이란, 그 어떤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 1980년대 전두환 시절,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취조방식으로 강제적인 고문 취조를 받기위해 민주주의 투쟁인사들이 버스에 실려 구치소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왔다. 80년대 자료사진으로 대공분실 너머 시민들이 전철을 기다리는 남영전철역 플래폼이 희미하게 보인다. ⓒ김상수

고문자와 고문당하는 자의 처지를 설계한 건축

이 건물, '남영동 대공분실'은 고문실이 배열되어 있었던 철문의 배치, 5층 취조고문실 복도의 동선분할, 대낮에 불을 켜도 어둡게 빛을 투사하는 작은 창문, 이 건축인은 공간의 정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섬세하게 잘 알고 있는 빼어난 재능의 건축인이었다. 더구나 용도에 맞는 꼼꼼한 공간설계가 탁월했던 김수근은, 인간이 공간에서 느끼는 마음의 태도나 심리, 이런 것들을 치밀하게 계산한 건축인이었다.

그가 설계하고 지은 치안본부 대공 분실은 심문과 취조, 그리고 고문의 효과를 고문하는 자와 고문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처리했음을 건축설계가 바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 전체가 이미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무너져 내릴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폭력적인 건물구조 설계다.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어둡고 침침한 철문 안 실내와 대비되는 밝고 화사한 햇살이 실내 가득하게 들어오게 설계된 창에서 근무하는 고문기술근무자들에 대한 배려.

건물을 공간적으로 분석해보자면 건축가의 의도가 충분히 건축물에 반영되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건물이야말로 건축인 김수근의 건축목적과 의도가 분명하게 설계된 건물이다.

건축계 시비(是非)에 대하여

김수근은 한국건축계 거대한 권력 체계 중심에 있었다. 개발독재 권력과 결탁한 그의 무소불위는 건축계는 물론이고 6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문화계 전반의 권력이었다. 오늘날 그의 후배와 제자들 상당수가 그의 과거 권력에 빚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계속해서 '김수근 신화'를 만들어내야 만 그들의 건축현실도 영위된다.

여기에 건축계 주장처럼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경찰이 사용하게 될 것을 알았다 해도 나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 않았겠느냐", "건물 안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이 비난받을 사항이지 건물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라는 식의 주장은 건축 설계 실재의 구현인 현장을 크게 간과한 틀린 얘기이며, 건물의 용도를 설계 이전에 사전인지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치밀한 공간 분할과 배치를 할 수 있었는지,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이것부터 먼저 답해야만 한다.

서울 도심을 파괴한 김수근

조선왕조의 사직(社稷)을 모신 종묘(宗廟) 앞에 세운상가라는 건물이 있었다. 이 세운상가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스위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의 집합주택(Unite d'Habitation)의 개념을 김수근이 차용한 건축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김수근이 설계 건축한 세운상가는 도시 재개발의 전형으로 세웠지만, 르 꼬르뷔제의 건축이념이나 철학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르 꼬르뷔제는 전통문화와 자연을 건축설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요소로 파악했다. 건축가가 미래 도심의 녹지로 전환이 가능한 공간을 파괴하여 거대한 콘크리트로 도심 한복판을 구획한 폭력적 구조물이란 르 꼬르뷔제 건축에는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문화를 존중하는 르 꼬르뷔제가 500년 조선사직을 정면에서 틀어막는 식의 반문화적 콘크리트 건축이란 상상할 수 없는 건축이다. 도심 한복판을 동서와 남북으로 무지막지하게 틀어막은 세운상가는 김수근 개발독재 건설 전횡의 상징적인 증거다.

▲ 서울시 종로구 세운상가 ⓒ<네이버> 카페, 2009 도시경관기록보존프로젝트

모방과 창의성

김수근 건축의 비판은, 그가 창의적인 건축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들을 차용했다는 여러 설은 조만간 풍문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양식 있는 건축비평가들에 의해서 실증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가령 김수근의 국회의사당 당선 설계안이 바로 르 꼬르뷔제 건축을, 종로구 평창동 산 중턱 물 흐르는 계곡 바위 위에 얹혀 지은 '창암장'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Wroyd Wright)의 '낙수장'을 그대로 베꼈다는 설, 그 이외에도 수많은 김수근 건축이 어떻게 유명 건축가의 영향이나 응용이 아닌, 직접적인 모방인가는 살펴야 한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김수근 의 창의성'은 좀 더 분별 되어 판단돼야 한다.

김수근의 심층에 자리 잡은 왜색(倭色)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그의 나이 불과 서른일곱 살 때 지은 부여박물관이 당시 건립 과정에서부터 왜색이라 하여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지붕 꼭대기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만나는 지붕 선이 만들어내는 형태였다. 이 지붕 디자인 형상은 일본 고유의 신들을 기린다는 신사(神社) 건물을 바로 연상시켰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일본 신사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였다. 남산 자유센터 건물의 콘크리트 처마 처리도 한국의 건축선(線)과는 하등 관계없는 낯설고 기이하게 보인다. 이 또한 일본의 전통건축선에서나 볼 수 있는 '라인'이다. 이처럼 왜색으로 시비가 있는 김수근 건축설계 건물들이 정말 한국의 정조(情調)에 기반을 둔 것인지, 이도 이제는 제대로 다시 봐야 한다.

▲ 김수근 설계 건축의 남산 반공센터(현 자유센터)의 처마 처리의 라인은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사진 왼쪽) 1964년 자유센터(당시 반공센터)를 설계 건축한 김수근은 서울성곽의 성벽의 산 능선을 강제로 깎아내어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성벽을 해체하여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오른쪽) ⓒ김상수

▲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을 엿본다. ⓒ김상수

문화재를 뜯어 건축 석재로

더하여 나는, 그가 제정신을 가진 '건축가'였는지도 의심한다. 그가 지은 서울 남산,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자유센터' 도로변 긴 석축(石築)의 석재는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성벽을 뜯어다가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했다. 2007년 10월 문화재청은 서울 타워호텔 부지 내 서울성곽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한 사실이 있다. 1964년 자유센터(당시 반공센터)를 설계 건축한 김수근은 서울성곽의 성벽의 산 능선을 강제로 깎아내어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성벽을 해체하여 축대의 석축으로 사용한 것이다. 자신의 건축적 성취를 위해서는 문화재도 단순히 석재로 보일 만큼 폭력적인 사고였음을 엿본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5년(1396) 1차 도성 축조 당시 경상도민이 축조한 구간인데, 김수근이 자유센터 축대에 사용된 석재 중에 인근 '경주시(慶州始)'와 '강자 육백 척(崗字 六百尺)'의 각자(刻字)가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건축가' 이전에 지식인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그가 독재권력과 결탁, 뛰어난 추진력으로 인상적인 건축을 남긴 건 인정하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일수는 없다.

* 이 글은 필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쓰고 있는 <한겨레> '문화 칼럼' 중에, 5일자 '건축인 김수근의 정체성'이란 글을 조금 더 풀어서 쓴 글이다.

(☞바로 가기 : www.kimsangs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