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도지사 말처럼 "제소 감"이 안 돼서, 다시 말해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가 공익에 위배되지 않거나 법에 저촉되지 않아서 제소할 수 없다고 했다면 차라리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진 장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복지부 스스로 재의 요청 공문을 통해 경남도가 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한 탓이다. (☞ 관련 기사 : 홍준표,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공포…국조 불참)
복지부 "경남도, 의료법·보조금관리법 위반" 적시
복지부가 경남도에 보낸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 재의 요청' 공문을 보자. 복지부는 조례안 통과가 두 가지 실정법을 위반하고 공익에 어긋난다고 적었다.
공문을 통해 복지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진주의료원의 정상화를 요청했으나, (경상남도가) '합리적 이유' 없이 폐업을 강행했다"면서 이는 "의료법 제59조 1항에 따른 보건복지부의 지도 명령을 위반한 것이고, 의료법 규정 및 묵시적 법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진주의료원을 해산하고 "잔여 재산은 경상남도에 귀속한다"는 조례안 부칙에 대해서도 "국고 보조금을 투입한 진주의료원을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산하고 그 잔여 재산을 경상남도로 귀속하도록 한 것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35조 위반"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료원을 설립할 수는 있어도, 일방적으로 해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복지부가 "진주의료원에 국고 137억 원을 투입"했고, "국고 보조금을 지원해 온 국가의 정책 방향과 보조금 지급 목적 등을 고려해 합목적적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병원은 경남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부는 "진주의료원의 해산은 전체 지방의료원 및 공공 의료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주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사항"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경남도가 해산을 강행해 "기존 입원 환자뿐 아니라 주민의 보건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공공 의료 확충 방향과도 배치되어 공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복지를 축소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공익에 위배되므로 재의 요청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3일 오전 열린 국회 공공 의료 국정조사 특위 전체 회의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및 공공 의료 대책에 대한 기관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환자들 강제 퇴원당할 때 복지부는 어디 있었나?
진주의료원 해산을 강행한 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던 진영 장관은 명령을 거부한 홍 도지사에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패소하면 "복지부의 권위만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복지부 스스로 언급한 "주민의 건강권, 공공 의료 확충, 공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복지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하다.
장관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재의 요구 자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의혹을 낳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홍준표 지사가 휴업을 강행했을 때, 진영 장관은 왜 의료법 제59조 2항에 따른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야당 의원들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자 진 장관은 "자꾸 업무 개시 명령을 안 내리냐고 지적하는데, 업무를 정상화하라는 것은 당연히 업무 개시를 명령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경남도에 보낸 '재의 요청 공문'에는 의료법 제59조 1항(지도 명령)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제59조 2항에 대한 얘기가 없다.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명령이 없으니 그 명령을 위반했다고 지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도, 환자들이 퇴원을 강요받고 잇따라 숨질 때 복지부는 어디에 있었나? 경남도 공무원들이 퇴원을 종용하고 쫓겨난 환자 24명이 잇따라 사망했지만, 복지부는 제대로 지도 감독하지 않았다. 환자에게 강제로 퇴원을 종용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다. 참다못한 환자들이 인권위에 피해 구제를 신청했는데도, '해산 조례'가 통과될 때까지 사태를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제2의 진주의료원 사태 생겨도 "안타깝다"고만 할 건가?
민주당 김성주 의원이 3일 공공 의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홍준표 도지사가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 맞느냐"고 질문하자, 진 장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법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느냐는 질책에 진 장관은 "지금 국회에서 적법한 국정조사에 대해서 출석하라고 해도 (홍 지사가) '지방 고유 사무'라고 해서 출석을 안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공공 의료 확충'이라는 박근혜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 진 장관이 내놓은 대답은, 정리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 의료를 확충하고 싶지만, 홍 도지사 때문에 상황이 "안타깝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지방정부가 공공 의료를 포기하면 그 책임은 복지부 장관이 질 수밖에 없다"며 "전직 여당 대표가 지방자치단체장인데, '쟤 무서워서 때리면 질 것 같으니까 잘 얘기해볼래'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인 '신 포도' 논리"라고 비판했다.
참고로 진주의료원을 포함해 지난해 전국의 34개 지방의료원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한 번 선례가 생기면 앞으로도 제2의 진주의료원 사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만에 하나 폐업 도미노 현상이라도 일어나면 진 장관은 그때 가서 또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철 지난 유행어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각하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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