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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정한 우체국…"식구라며 신발 갖고 차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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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매정한 우체국…"식구라며 신발 갖고 차별하나"

['신분 사회' 우체국 ②] 일 시킬 땐 한 식구, 책임질 일 생기면 남?

기상 관측 이래 104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11년 7월, 한 집배원이 폭우 속에 떠내려가면서 동료에게 우편물을 건네주다 순직했다. 동료들은 그가 우편물을 버리고 두 손으로 버텼다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의 죽음은 '우체국 미담'이 됐다.

집배원들이 순직할 때마다 언론에는 '고마운 집배원'의 기사가 소개된다. 죽지 않더라도 미담은 많다. 화재를 진압한 집배원, 남몰래 선행한 집배원, 위급한 환자를 구한 집배원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우체국 집배원들은 고질적인 열악한 처우와 인력 부족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현실은 좀 더 암울하다. 우편물 분류, 택배, 우편물 배달 등 거의 모든 우체국 업무에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이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 노동자들은 우체국을 '철저한 신분 사회'라고 말한다. 신분제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과 위험만 떠안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은 정규직부터 비정규직까지 다양한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우체국의 현실에 대해 물어봤다. <편집자>

'신분 사회' 우체국
"우체국, 입원 환자에게도 일 시킬 땐 언제고…"

"힘든데 할 수 있겠어요?"

우체국 택배원인 최명석(가명·43) 씨는 거듭 물었다. 걷기라면 자신 있었다. 오랜 설득 끝에 그는 동행을 승낙했다. 15일 오전 수도권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그를 만났다. 빨간 우체국 제비 마크가 찍힌 1톤짜리 화물차가 세워져 있었다. 차 안에는 크고 작은 택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요즘이 비수기"라고 설명했다.

택배를 수레에 실은 최 씨를 따라 아파트 안으로 갔다. 두 집 걸러 한 집은 부재중이었다. 사람이 없을 때마다 그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화는 자주 끊겼다. 그가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고객이 전화를 안 받으면 같은 곳에 두 번씩 와야 하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의 걸음이 바쁘다.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작은 탄식이 나왔다.

최 씨는 7년차 우체국 택배원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8시까지 일한다. 새벽에 우체국으로 출근해 동료 택배원들과 택배 3400여 개를 분류한다. 전산 작업을 마치고 택배를 차에 싣는다. 이른바 '상하차 작업'이 끝나면 9시에 배달을 나간다. 그에게 떨어지는 물량은 평균 150개. 그는 배달지 중 80여 곳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10분마다 한 번씩 그는 고객에게 전화했다.

고층 아파트를 한 바퀴 돌고, 저층 주택으로 들어갔다. 10kg짜리 감 한 박스의 배달지가 4층이었다. 들고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최 씨는 "추석 때 15kg, 20kg짜리 쌀, 김치를 들고 하루 종일 몇 층씩 오르내리면 다리가 쭉 풀린다"고 말했다. 택배 무게와 상관없이 택배원이 받는 '수수료'는 건당 970원이다.

택배원이 개인 돈 들여 도색한 '우체국 빨간 제비 마크'

공공 기관인 우체국이라고 해서 택배원들의 처우가 나은 것은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전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1999년 '우체국 택배 제도'를 도입하면서 모든 인력을 외주 위탁으로 돌린 탓이다. 우체국은 물류 회사를 끼고 택배원을 사용한다. 일하는 사람은 그대로 일하고 물류 회사는 2년마다 한 번씩 바뀌거나 계약을 갱신한다.

최 씨가 타고 다니는 제비 마크가 찍힌 우체국 택배 차량도 우체국이 준 차량이 아니다. 그는 이 차량을 6년 전에 1600만 원을 주고 샀다. '빨간 제비 마크'는 33만 원을 주고 공장에 직접 맡겨서 도색했다. 그래서인지 우체국 택배 차량마다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는 "우체국이 몇 년 전 디자인을 바꿔서 차마다 모양이 다르다"며 "우체국이 홍보 비용을 택배원 개인에게 떠넘긴 것인데 누가 자기 돈을 들여 차량 도색을 새로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우체국 택배 차량 ⓒ프레시안(김윤나영)

우체국에서 일하려면 물류 회사에 1200만 원을 주고 소위 '넘버값(번호판 비용)'을 낸 뒤, 화물차를 사야 한다. 차량 비용까지 합치면 2800만 원이 든다. 그는 물류 회사에서 차를 살 때도 바가지를 쓸 뿐더러, 그렇게 산 차도 온전히 자기 차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개인이 돈 주고 산 차량이라도 물류 회사 번호판을 달았기 때문에 회사가 부도나면 차가 경매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밖에 차가 없는 경우 물류 회사에 월 12만 원씩 지입료도 내야 한다.

"전부 개인이 돈 투자해서 하는 거예요. 누가 해주는 게 아니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입도 넉넉하지 않다. 택배 한 개당 최 씨가 받는 수수료는 970원이다. 한 달에 3000개를 나른다고 가정하면 291만 원이 나온다. 여기에 기름값 30-40만 원, 차 할부금 30만 원, 지입료 12만 원, 보험료 월 10만 원, 통신비(우체국이 4만5000원은 지원) 등을 빼면 월 소득이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최 씨는 "물류 회사에서 돈을 너무 많이 빼간다"고 비판했다.

최근 발생한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에 그가 동조한 이유다. 그는 "단가, 수수료, 회사가 요구하는 페널티 등이 너무 불합리하니까 살기 위해 파업했을 것"이라며 "수지가 너무 안 맞으면 도저히 먹고살 수 없으니 파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배원과 택배원 구분 짓는 우체국"

오전에 아파트를 돌고 오후에는 주택가를 돌았다. 차량에 담긴 택배 물품들은 아무리 배달해도 줄지 않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서는 한 번 내린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던 것과는 달리, 주택가로 들어서자 택배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높은 화물차에 내렸다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자 피로가 밀려왔다.

최 씨는 택배 배달이 숙련 노동이라고 했다. 자신이 맡은 지역을 잘 알아야 빠르고 정확히 배달한다는 것이다. 오래 일한 사람은 배달지 고객들의 얼굴을 거의 다 외운다. 심지어 주택가인 경우 입구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모두 외우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일러주고 "문 앞에 두고 가라"는 고객이 많은 탓이다. 그는 "같은 물량이어도 베테랑이 10시간 만에 끝내면 초짜들은 12시간, 13시간씩 걸린다"고 했다.

주택가에 들어서자 집배원, 다른 민간 회사 택배원과 마주쳤다. 배달하는 동안에도 같은 구역을 담당하는 집배원과 마주치면 최 씨는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일터에서 늘 보니 집배원과 택배원은 친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우체국이 정규직 집배원과 택배원을 자꾸 구분 지으려고 할 때"마다 서럽다고 했다. (☞ 관련 기사 : "자식뻘 되는 아이들마저 택배원은 인간 말종이라며…")

"집배원은 편지와 소형 택배를, 택배원은 주로 모든 택배를 다 다루거든요. 택배 물량이 너무 많으면 택배원이 집배원이 하는 소형 택배 일을 해주기도 합니다. 집배원이 휴가를 써서 공백이 생기면 택배원이 일을 메워줘야 하지만, 그 반대는 우체국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너희한테 내려간 물건이니 너희가 해결하라는 거예요.

심지어 같은 위탁인데도 차별받을 때도 있어요. 집배원들에겐 신발이 나오는데 위탁 택배원에겐 신발이 안 나왔어요. 하다못해 같은 위탁인 재택 집배원에게는 신발을 줬습니다. 언제는 택배원도 우체국의 한 식구라고 하다가, 우리 신발 사줄 예산은 없다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전부 다 안 줬다면 서운하지라도 않지."


▲ 정부가 발급한 우체국 택배원들의 위탁 배달원증(신분증).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이 논란이 되자, 현재는 발급되지 않는다. ⓒ프레시안(자료 사진)

최 씨는 "우체국 성과가 우체국만 잘해서 나온 게 아니다. 위탁 택배원들이 전체 택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택배원들은 일하다 아파서 그만둬도 위로금 하나 없다"고 말했다.

최 씨는 "우체국은 택배원이 개인 사업자라고 하면서도 우리한테 공공 기관 규정을 따르라고 한다"며 "만약 규정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민원을 제기하면 그 책임은 또 우리한테 온다"고 말했다. 책임만 있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체국이 물류 회사를 앞세워 우리를 간접 고용하는 이유는 이런저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서"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정규직이 되리라고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소박했다.

"물류 회사는 일을 많이 시키면서 수수료는 적게 주려고 하거든요. 우리는 근로자가 될 수 없으니까, 우체국이나 물류 회사와 협상력이라도 높이도록 노력해야죠. 우리가 일한 만큼 권리도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특수고용직 '노동자성' 인정하는 판결 나왔지만…

최 씨는 "정규직이 되리라고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최근 들어 특수고용직 종사자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하나둘씩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법원은 재능교육 해고자들이 낸 소송에서 특수고용직인 학습지 교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7일에는 대법원이 특정 회사의 지휘·감독 아래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고 일했다면 '지입차주'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 계약인지 도급 계약인지보다 근로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2006년 말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지표를 현실에 맞게 조금 바꿨다"며 "예를 들어 지휘·감독 여부도 '구체적, 개별적 지휘·감독'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바꾸었으며, 임금도 꼭 고정급을 받아야만 임금인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법률원장은 "최근 대법원이 차량과 같은 다소 고가의 생산 수단을 소유했더라도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이는 차량 소유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실질을 봐준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레미콘 등 다른 지입기사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판결은 그때그때 다르게 나오므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일일이 판례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며 "결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행정 처리를 해야 하지만, 이를 방치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편, 민주통합당 김경협·이목희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은 지난해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산재법, 노조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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