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와 이경환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27일 전북대에서 열린 비판사회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스마트 통치의 등장: 삼성경제연구소의 등장과 영향력 강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특히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힘이 노무현 정부 시절 크게 강화된 상황에도 주목했다. 다음 진보 정권에서도 이와 같은 현실이 반복될 수 있다고 논문은 전망했다.
"'국민소득 2만불' 목표, SERI 작품"
이들은 논문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공공 연구 개입이 이미 90년대부터 이뤄졌다고 밝혔다. 논문을 보면, 90년대 초 독립법인이 된 삼성경제연구소는 1994년 서울시 시정개혁 프로젝트 진행을 시작으로 공공 정책 연구 능력을 크게 강화시켰다. 이미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정책연구센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와 같은 노력이 "1997~1998년 외환위기(IMF 체제) 이후 보다 강화되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지향점은 스스로 밝힌 임무에서도 드러난다고 논문은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주요 임무로 "풍요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범국가적 의제 설정(Agenda Setting)"이라고 규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으로 논문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담론이었던 '국민소득 2만불' 담론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꼽았다. 이전 삼성그룹에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 역시 노무현 정부의 국정 과제 설립에 삼성경제연구소가 깊숙이 관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논문은 '국민소득 2만불'의 등장 시기를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6월 5일로 꼽았다. 이날은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 10주년을 맞이해 '제2기 신경영지침'을 발표한 날이다. 이날 이 회장은 "'마의 1만 달러 장벽', '2만 달러론'을 언급"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그리고 어느새 노무현 정부의 주요 국정 아젠다에 '국민소득 2만불' 담론이 급작스럽게 올랐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실제 2003년 6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 개막연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정책기획위원회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구체화할 것을 지시했다. 같은 해 7월 1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방향과 8.15 경축사를 거치면서 '국민소득 2만불' 담론은 노무현 정부의 확고한 국정 목표로 자리 잡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최대 경제연구소다. ⓒ영 삼성 홈페이지에서 스크린 캡처. |
한미 FTA 추진해 '서비스업' 성장… 과실은 누가?
이후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은 지속됐다고 논문은 전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는 여러 정부 출연 연구소들과 함께 노무현 정부의 경제운용계획 입안에 참여"했으며, 그 실례로 "'2003년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은 국민소득 2만불 달성을 위한 다섯 가지 실행계획을 담았다"고 전했다.
그 다섯 가지 항목은 △하이테크 신제품 선정 △공기업 민영화 △정리해고 체제의 안착 △정규직 노동자 과잉보호 축소 △자유무역지대 설치다. 아울러 논문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서비스산업 중심론' 등은 삼성경제연구소가 2005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토론회에서 제기한 '매력한국론'과 동일한 지향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서비스산업 중심론은 교육과 의료부문을 개방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책과제의 상당 부분은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좋지 않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인식되고 있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금도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양산한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한미 FTA 체결 과정에서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다고 논문은 전했다. 논문은 주요 사례로 지난 2004년 이광재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주도한 '의정연구모임'을 꼽는다. 이 모임은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했고, 당시 도출한 결과가 '국민소득 2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경제 강국과의 FTA였다는 게 논문의 내용이다.
재벌 이해가 국가 이해와 동일시
한미 FTA를 비롯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안한 정책의 상당 부분은 대형 재벌 자본에 이익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비스 시장 개방과 의료산업 개방 등으로 대표되는 한미 FTA의 경우, 이미 국내 최대 보험사와 고급 의료시설을 가진 삼성그룹의 이해와 일치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연구 주제를 잡음으로써 삼성경제연구소는 다른 재벌 산하 연구소는 물론, 국책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대형 연구소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논문은 분석했다.
문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연구 아젠다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을 누리고 "이익집단의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 목적에 부응"해야 하는 '싱크탱크(Think Tank)'가 가져야 할 덕목을 갖지 못했다는 데 있다.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와 같이 취약한 공공성이 국가 비전 수립 과정에 개입하면서, 특정 자본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와 동일시되는 문제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논문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성장은 경쟁국가의 특성을 구성하는 몇 가지 계기가 중첩되어 나타난 것"으로 해석 가능한 동시에 "발전국가의 특성으로 지목된 '배태된 자율성' 혹은 '통제된 상호의존성'이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경쟁국가와 발전국가란 1987년 민주화 체제 이전과 이후 달라진 한국의 상황을 대입하면 이해가 쉽다. 이전 독재 국가 체제에서는 경제 성장이 '국가의 과제'였다. 이를 두고 논문은 발전국가라 칭했다. 경쟁국가는 민주화 이후 시장주의를 받아들여 상호 경쟁 체제를 인정한 상황을 통칭한다.
즉, 삼성경제연구소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원인은 "지식 기반 경제로의 이행, 국가 기능의 외주와 공사 협치(공공과 사익의 상호 협조)의 대두"라는 경쟁국가 체제의 특성과 "이전의 전면적인 정경유착이 변모하면서 지식생산과 정책실행이라는 분야까지 정경분업이 이뤄"진 발전국가의 진화 모형이 동시에 드러난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과거 정경유착의 배경 아래에서 민주화 이후 강화된 힘까지 지님으로써, 특정 자본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등치시킬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됐다는 뜻이다.
논문은 특히 이른바 '진보 세력'으로 분류된 노무현 정부 시절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이 겉으로 크게 드러난 상황에 주목했다.
그 이유로 논문은 "지배적 자본인 삼성-재벌 주도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관료-국내 재벌과 관계가 원만하진 못했던 집권 세력의 이해 합치"를 꼽았다. 지배력이 취약했던 노무현 정부가 관료를 통해 삼성과 손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논문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두고도 "그것이 구조적 강제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본으로부터의 지지가 취약했던 노무현 정부의 선택"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논문은 "이러한 상황은 소위 '진보개혁세력'이 언젠가 (다시) 집권했을 때 또 다시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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