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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할아버지가 죽어서도 하겠다던 그것은…"

[인터뷰] 오영선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본부 집행위원장

12일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 6명이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안'을 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5분 만에 무력으로 통과시켰다.

진영 복지부 장관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회동해 대화의 물꼬가 트인 상황에서 '날치기 통과'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진주의료원 직원들과 시민들은 '도의회의 폭거'라고 항의했다. 공은 오는 18일 조례안이 최종 상정될 예정인 경상도의회 본회의로 넘어갔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을 누구보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본부' 회원들이다. 성남시는 최초로 '주민 발의'를 통해 공공 병원을 설립하기로 한 바 있다. 진주의료원과 마찬가지로 한진그룹이 '적자' 논리로 인하병원을 폐업하면서 성남시에 생긴 의료 공백이 계기가 됐다. 폐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공공 병원 설립에 대한 염원으로 바뀌었다.

시립 병원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은 눈물겨웠다. 말기 암을 선고 받은 노인과 장애 아이를 둔 아버지가 공공 병원을 짓기 위해 발로 뛰었다. 성남 유권자 10만 명이 '공공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서명했다. 주민들의 열망에 시 의회는 번번이 어깃장을 놨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수차례의 좌절 끝에 공공 병원 설립 조례가 통과됐다. 성남시 의료원은 2017년 개원을 앞두고 있다.

12일 오영선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만나 성남시 의료원 설립 과정에 대한 설명과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오 집행위원장은 "보건소나 공원, 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돈을 '적자' 논리로 보지 않듯이 공공 병원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며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성남 주민 10만 명의 염원, 공공 병원 설립

프레시안 : 성남시 의료원(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은 어떻게 시작됐나.

오영선 : 2003년 이대엽 전 성남시장이 시립 병원을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당시 성남 구 시가지에는 성남병원, 인하병원, 성남중앙병원 이렇게 3개 종합 병원이 있었다. 그런데 이대엽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성남병원이 사라지고 분당 야탑동으로 이전했다. 이어 한진그룹이 인하병원을 폐업했다. 이대엽 전 시장은 민간 종합병원 3곳이 있는 상태에서도 시립 병원을 만들어서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를 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2곳이 사라지면서 의료 공백이 커졌다.

나는 인하병원에서 10년간 근무했다. 마지막에는 노조 사무국장이었다. 인하병원이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 때 병원 관계자들은 "폐업 안 한다, 헛소문이다"라고 직원들을 안심시켰지만, 직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폐업을 선언했다. 홍준표가 그랬듯이.

처음에는 폐업 반대 서명 운동을 했다. 한 달 만에 성남시민 1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이대엽 시장에게 공약을 지켜달라고 서명을 전달하면서 시립 병원 설립 운동이 본격화됐다. 시가 한진그룹으로부터 인하병원을 인수해서 시립 병원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한진그룹은 시에서 인하병원을 인수하면 의료 장비를 기부하겠다고 했지만, 2003년 6월 시가 인하병원 인수를 거부했다.

그러다 주민자지치법을 통해 시의원뿐 아니라 주민들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03년 12월에 시립 병원을 지어달라는 조례를 청구했다. 주민 조례 청구 여건을 충족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성남시 유권자(만 19세 이상) 1만1000명의 발의가 필요했다. 주민들이 조례안에 자기 주민번호를 적고, 거주지 적고, 도장까지 찍어야 했다. 서명만으로는 안 되고 주민들이 직접 집에서 도장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모을 수가 없었다. 서명 운동을 하면서 다음에 도장을 가지고 와 달라고 하면, 집에서 일부러 도장을 가지고 와서 서명하신 분들이 모였다.

서명 운동을 할 때 주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내가 할 일을 해주니까 고맙다"는 분들이 많았다. 겨울에는 따뜻한 음료수를 뽑아주는 분들도 있었다. 그만큼 의료 공백 해소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컸다. 놀랍게도 1차 주민 조례안을 발의하면서 주민 2만 명의 도장이 모였다.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그런데 시의회는 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았다. 상임위에서 폐기해 버렸다.

2004년에 2차 조례안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시의원들이 직접 발의하겠다고 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었다. 성남시 의원 41명 가운데 21명이 시립 병원 건립 조례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막상 표결에 부치자 13명만 찬성했다. 무기명 투표를 하면서 2차 의원 발의도 실패했다.

폐기될 뻔한 '공공 병원 설립' 주민 조례

프레시안 : 의원 발의가 실패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됐나.

오영선 : 2005년 2차 주민 발의를 위해 새롭게 서명을 받았다. 1만8000명 정도 모였다. 주민 발의가 두 번이나 성공했다는 것만 봐도 공공 병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4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 컸는지 이번에는 시의회가 논의도 안 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우리는 시의회 의장, 지역구 의원 등 '시립 병원 설립 반대 5적'을 모아서 1인 시위를 했었다. 실제로 시립 병원 설립에 반대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선거에서 떨어졌다.

2006년에 가까스로 시립 병원을 만들자는 조례가 통과됐다. 산 넘어 산이었다. 조례를 통과했으면 예산을 세워야 하는데, 시의회가 예산을 2년 동안 세우지 않았다. 2008년에야 84억 원을 통과시켰는데 시가 집행하지 않아서 2년 뒤에 '불용 예산'으로 반납됐다. 안 되겠다 싶어서 이번엔 시장을 바꿔보자고 했다. 이재명 시장이 당시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본부 1기 집행위원장이었다. 2011년 이재명 시장이 시립 병원 건립을 제1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밖에서는 시립 병원 설립에 찬성한다고 하고, 안에서 자꾸 부결했다. 예산을 안 세워주는 시의원들을 대상으로 1인 시위와 집회를 하니까 압박을 못 이겨 시 예산 143억 원을 통과시켰다. 모든 행정적인 절차를 걸쳐서 지금은 조달청에 입찰만 남겨놓고 있다. 10월 안에 착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본부는 2011년 7월 21일 성남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 발의 조례 폐지안을 가결한 성남시의회의 사망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공공 병원 위탁 운영하면 부작용 많다

프레시안 : 2011년 통과된 조례안에 성남시 의료원을 대학 병원에 위탁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겨서 말이 많았다.

오영선 : 주민 조례를 발의했을 당시에는 지방의료원법상 "시장이 위탁할 수도 있고, 직영할 수도 있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시의회가 "위탁할 수 있다"는 문구를 "위탁해야 한다"로 바꿔버렸다. 성남시 조례가 상위법인 지방의료원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랬더니 국회에서 신상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방의료원법을 싹 바꿔서 날치기 통과시켜버렸다. 지방의료원법을 보면 '위탁해야 한다'고 돼 있다. 나쁜 법이다.

프레시안 : 위탁하면 어떤 점이 나쁜가?

오영선 : 대학 병원이나 민간 병원에 위탁하면 이익을 남겨야 한다. 과잉 진료도 더하고 진료비도 올라갈 것이다. 공공 의료로서 기능을 못한다. 우리는 의료의 질은 대학 병원에 버금가지만 비용은 저렴한 병원을 만들려고 했다. 대학병원 진료비가 24만 원이라면, 공공 병원 진료비는 10만 원 정도다.

보라매병원도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공공 의료 기관으로서 기능이 약하다. 취약 계층 진료도 약하고, 진료비도 다른 민간 병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천의료원도 고려대병원이 위탁 운영했었다. 지금은 철수했지만, 고려대병원이 위탁 운영할 당시만 해도 원장이 실적만 따졌다. 게다가 위탁하면 본원이 위탁 기관을 '유배지 개념'으로 여기기도 한다. 찍힌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다. 부작용이 많다.

우리는 응급 환자를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해주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 성남에는 일용직 노동자, 서민들이 많다. 일반 병상도 4인실을 기준으로 만들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의료 체계 기준이 4인실이다. 4인실과 6인실의 차이가 크다. 보호자들 지내기도 그렇고 의료의 질이 다르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사업도 하려고 한다. 민간 기관이 이런 사업들을 하려고 하겠나? 내년에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위탁할지 직영할지 다시 결정했으면 한다.

죽어서도 공공 병원 운동하겠다던 환자들

프레시안 : 시립 병원을 건립하려는 시민들의 열망이 뜨거웠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시민들이 있나?

오영선 : 장애가 있는 자제를 둔 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오토바이에 '시립 병원 설립 운동 오토바이입니다'라고 적고, 전구 달고 불 켜고 다녔다. 그분 자제분이 인하병원에 다녔다. 인하병원이 폐업하면서 다른 병원에 가라니까, 분당에 있는 병원까지 버스 타고 40분씩 더 가야 했다. 불편함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자제분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고, 일주일에 두 번 투석도 받아야 했다. 돈 벌어서 한 달 진료비 내기도 빠듯했다. 그 시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한 분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 말기 암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실 날을 받아놓은 분이었는데, 죽어서도 운동하겠다고 하셨다.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다들 많이 울었다.

프레시안 : 인하병원이 폐업할 때도 진주의료원에서처럼 환자들이 퇴원을 종용받았나?

오영선 : 그랬다. 안 나간다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가족한테 전화해서 빨리 나가라고 했다. 의료법상 환자가 남으면 끝까지 진료해야 하는데도 그랬다. 당시 인하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350명 정도 됐는데, 나가라고 하니 다 못 이기고 나가서 폐업 공고가 붙을 때는 30-40명 정도 남았다. 그분들이 두 달 정도 끝까지 버텼다.

프레시안 : 최초의 주민 발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성공한 배경과 의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오영선 : 시민들은 빨리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 번씩 아파보고, 멀리 분당까지 가본 사람들은 불편한 걸 알기 때문이다. 분당까지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택시 타고 분당까지 가야 한다면 어떻겠나. 게다가 분당에 있는 종합 병원 응급실에 가보면 병상이 포화 상태다. 저녁에 가면 병상이 없어서 보호자 대기 의자에 환자를 눕혀 놓는다. 50만 명이나 사는 도시에 응급 의료센터가 없다. 특히 이곳에는 서민들이 많이 산다는 점에서 공공 병원은 더 절실하다.

공공 병원이 적자? 보건소·어린이집도 적자 나면 문 닫나?

프레시안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의 부채가 300억 원에 달한다는 이유로 폐업을 강행했다. 반면 성남시는 2000억 원을 들여 시립병원을 짓기로 했다. 적자를 이유로 공공 병원을 폐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프레시안(김윤나영)
오영선 : 분당에 중앙공원 유지비가 1년에 100억 원이 들어간다. 그러면 공원 유지비도 적자인데, 공원을 폐쇄해야 하나?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성남 아트센터에도 1년에 170억 원이 들어간다. 이 비용도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 시에서 충당하는데, 아픈 사람들 위해 투자하는 것은 왜 적자인지 이해가 안 된다.

공원 유지, 운동장 관리, 청소, 시내버스 지원 모두 공공 비용이다. 각 보건소도 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한다. 성남도 중원보건소에 70억 원, 분당보건소에 100억 원을 지원한다. 보건소 지원한다고 적자로 안 보는데, 의료원도 지원해주면 좀 어떠냐. 공공 병원은 당연히 적자가 나야 한다. 병원비가 10만 원 나왔는데 5만 원만 내게 하면 시가 주민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다.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나 장급 되시는 분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경상도에서 진주의료원에 연간 10억 원을 투자하는데, 경상도 1년 예산이 12조 원이다. 10억 원 줄인다고 티 나겠나. 반면 성남시 예산이 1년에 2조 원인데 성남시는 10분의 1을 투자해서 공공 병원을 만들려고 한다. 공공 병원이 적자라면, 공공 어린이집 등 공공 기관은 적자면 다 문 닫아야겠느냐고 이재명 시장이 트위터에 올리더라. 경상남도도 1조 원 넘게 적자 내니까 경남도청도 문 닫아야 하나?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 달라.

오영선 : 시립 병원을 빨리 착공해서 시민들이 10년 동안 울고 웃으며 염원했던 것들이 이뤄졌으면 한다. 공공 의료란 무엇인지 성남에서 보여주고 싶다. 여러 지방의료원이 어렵다는데, 같이 살길을 모색해서 의료 복지를 체계화할 방안을 찾고 싶다. 보건소와 연계해서 예방과 치료가 선순환하는 의료 체계를 만들겠다. 그래야 공공 의료가 확실히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공공 의료를 없애겠다는 말이 안 나오게끔 우리나라에서 선도적인 공공 의료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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