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MD,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2>: 일본의 경거망동 막은 DJ, 경거망동 부추긴 MB
2012년 6월 14일 발표된 한미 외교·국방 (2+2) 장관회의 공동성명의 핵심 요지는 사실상의(de facto) 한-미-일 3각 동맹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한미동맹의 공식 문서로는 이례적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의 강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양측 장관들은 지역 평화 및 안정을 위해 일본과의 3자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양측 장관들은 인도주의적 지원, 재난구호, 해양안보, 항행의 자유,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을 포함하여 한‧미‧일 3자 협력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양측 장관들은 한·미·일 안보토의를 포함하여 3자 안보협력·협조를 위한 메커니즘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또한 "한국은 미국이 아시아로의 관심과 기여를 증대하는 것을 환영하며, 미국은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 지역 및 세계 평화·안보에 대해 역할을 강화시켜 나감을 환영한다"고 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아시아 귀환 전략의 핵심은 부상하는 중국에 맞선 '재균형', 즉 미국 주도의 군사패권 체제의 유지·강화에 있다. 그런데 한국이 공식 문서를 통해 이를 환영하고, 또한 미국은 한국의 지역적·세계적 역할 확대를 환영한다고 함으로써 한국은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급속도로 빨려 들어갈 우려가 커졌다.
더구나 "양측 장관들은 인도의 '동방정책'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도와의 대화, 협력 및 교류를 증진할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인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공을 들여온 미국은 인도의 동방정책을 적극 지지·지원해왔는데, 이는 대중국 포위·봉쇄 전략의 일환이다. 공동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은 남중국해의 평화, 안정 및 안보 증진을 위한 ASEAN-중국간 당사국 행동규약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역시 한미동맹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심지어 "양측 장관들은 정부·군사·상업 분야 보안정책 조율에 기여할 유관 정부부처와 기관들이 참여하는 사이버안보 협의체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의 맥락에서 나왔을 공산이 크다. 이는 2009년 7월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 회의에서 나온 한국측 수석대표 김상기 국방부 정책실장의 발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일 미국대사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김상기는 3개국 정부가 곧 사이버 사령부를 창설할 것"이라며 "사이버 안보를 내년도 DTT의 의제로 삼자고 공식 제안"했고, "3개국 대표단도 모두 그 제안을 지지했다."
급기야 한-미-일 3국은 사상 최초로 3자 해상 훈련에 돌입했다. 6월 21∼22일 제주 남방 해역에서 실시된 한미일 연합해상훈련과 관련해 미 국방부는 "본 훈련은 미래 재난 구호와 해양 안보 임무를 합동으로 촉진하기 위해 참가국들 해군 사이의 상호운용성과 통신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임기 막바지에 한-미-일 군사협력을 공식화하고 합동 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는 데에는 미일 양국이 MB 임기 내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미국은 정상회담을 제외하곤 최고위급 회의체라고 할 수 있는 '2+2 회의'에 한-미-일 군사 협력을 명문화함으로써 차기 한국 정부를 설득·압박할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또한 군사훈련은 점증주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올해 한-미-일 합동훈련을 시작하면 앞으로도 추진하기가 훨씬 용이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일 3각 동맹 움직임이 최근 나온 것이 아니라 MB 정부 초기 때부터 깊숙이 논의되어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MB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가 임기 초부터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다만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티내지 말고 하자'는 것이 MB 정부의 기본 노선이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전문을 중심으로 'MB 5년'의 과정을 추적해보자.
▲ 지난 14일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김관진 국방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왼쪽부터). ⓒAP=연합뉴스 |
이명박, "노무현은 반일, 한나라당 집권 후 한일관계 개선하자"
한-미-일 3각 동맹을 희구했던 미국에게 노무현 정부 임기는 '잃어버린 5년'이었다. 한-미-일 3자 안보협력 강화를 설득하기 위해 노 대통령을 만났던 미국 고위 관료들은 오히려 노 대통령으로부터 독도 문제 등 한일관계에 관한 특강을 들어야 했다. 미국의 좌절감(!)은 2006년 4월 25일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 전문에 잘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한일관계의 냉각의) 두 주인공인 노무현 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총리 중 한 명이 퇴임하기 이전까지는 한일관계 개선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냉랭한 관계의 지속은 한-미-일 3자 협력의 확대 가능성을 낮추고, 고위급 3자 협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정적) 입장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이명박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하자 큰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한국 대선 13개월 전인 2006년 11월 20일자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명박 후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기술한다.
"이명박은 (한국의) 대선 이전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게 너무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경우 열린우리당 후보가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은 아베 총리에게 노무현 정부가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한일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2008년 한나라당이 집권한 후에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자고 요청했다."
MB의 노무현 비난 및 한일관계 개선 다짐은 시장 시절부터 나왔다.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2006년 3월 7일 주한 미국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와의 대화 내용을 보자. MB는 버시바우가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일본은 한국의 외교정책의 중요도에 있어서 미국 다음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무현과 고이즈미는 국내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리더십 부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정치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7년 12월 19일에 작성된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 전문도 주목을 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이명박의 외교정책 참모이며 외무장관을 지낸 유종하는 미국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하등의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사관측에 반복적으로 말해왔다"며, "이명박이 중국과 일본에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이고, 한-미-일 3각 동맹은 향상되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는 MB의 친형인 이상득이 2008년 5월 버시바우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출범 직후부터 MB 정부는 미일동맹의 기대에 부흥하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의 사과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취임 후 첫 정상회담 상대로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2008년 3월 11일 외교부는 업무 보고를 통해 "한-미-일 3자 협의를 통해서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뿐만 아니라 범세계적 문제를 협의하는 체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미간의 협의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MB 정부 출범 이후 첫 안보정책구상(SPI) 회의 내용을 기록한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 전문에 따르면, 양측은 3각 동맹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 4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이 회의에 미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데이비드 세드니는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함께 하는 3자 안보협의를 열성적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제국 국방부 정책실장은 "안보 위협이 더욱 복잡해지고 초국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더 강력한 3자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다만 그는 "너무 눈에 띠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 3자 안보협력 강화에 따른) 인지된 위협에 대처하고자 중-러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한-미-일 결속이 중-러 결속을 야기해 동북아 신냉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 것이다.
MB 정부의 적극적 태도에 고무된 탓인지, 미국은 다음 SPI 회의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2008년 9월 8일 서울에서 열린 SPI 회의에서 미국측은 한미 공동 MD 기구와 함께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2008년 11월 4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성한 외교 전문에 따르면, 한국측은 독도 문제를 들어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9월 22일 전제국 정책실장이 제임스 신 국방부 차관보에게 서한을 보내 2008년 11월에 (워싱턴에서) 열리는 3자 대화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미-일의 강경 대응으로 초래된 한반도 정세의 위기는 한-미-일 3각 동맹 강화를 위한 '변곡점'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재빨리 한-미-일 비공식 회의를 도쿄(東京)에서 열어 한일간의 입장 차이 조유를 시도했다. 2009년 4월 13일 회의 결과를 기록한 주일 미국대사관 외교 전문에 따르면, 일본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 작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일본 외무성의 미일안보조약 담당 부국장인 아베 노리아키는 "한반도 유사시에 대한 한일 정부간 대화의 부족은 일본 자위대를 이용해 한국 내 일본인 소개 작전을 펼치려는 노력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일본 자위대의 항공기와 함정의 한국 내 진입을 허용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서, 한-미-일 3자 대화가 이를 위한 "유용한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미자와 노부시게 방위성 국방정책국 국장은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한일 간의 군사협력 강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재난 구호 및 유엔평화유지 활동 등을 통해 한일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 문제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의 일본측 의도가 결국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태진 참사관은 한-미-일 3자 협력 강화 필요성에는 동감하면서도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삼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국 정부가 2008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국방회담에 참석한 것은 미국 정부의 강한 압력 때문이었다"며, 한국 정부 내에는 이 사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외교통상부의 시각에서 볼 때, 3자 안보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희망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한일 관계의 특성상 일본이 양국 현안을 푸는데 더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 참사관의 발언 가운데 눈에 띠는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강력한 한-미-일 3자 안보 협력을 희망하고 있지만, 취약해진 정치적 입지로 인해 공개적으로 이를 드러내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한-미-일 3각 동맹을 추진하면서도 국내 여론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MB 정부의 기류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국 "6년만에 가장 생산적인 대화"
2009년 4월 북한의 로켓 발사와 5월 핵실험으로 조성된 대북 강경 분위기를 한-미-일 3각 동맹 추진의 절회의 기회로 인식한 미국은 5월말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로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주목해야 할 회의체가 있다.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차관보급 한-미-일 3자 국방회담(U.S.-Japan-ROK Defense Trilateral Talks, DTT)가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첫해인 2008년 11월에 시작된 이 회담을 두고 한-미-일 3국은 DTT가 3자간의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콘트롤 타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 전문에 따르면, 한-미-일 안보대화는 DTT, 한-미-일 3자 합참 전략기회 전략대화(Trilateral J-5 Strategy Talks), 반민반관 형식의 트랙 1.5 협의 등 세 축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 가운데 DTT는 "지침을 정하고 정책급 감독을 제공하는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철저하게 '로우키(low key)'를 유지하는 형태로 진행되어왔다.
특히 북한의 로켓 발사 및 핵실험 직후인 2009년 7월 16~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DTT 회의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담겼다. 주일 미국대사관의 외교 전문에 따르면, 한-미-일 MD 협력 강화, 한미·미일 군사훈련에 한일 참관단 참여,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미일 양국은 이 회의에서 미일 양국은 "DTT가 북한 문제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3자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 각국 정부의 능력과 전문성을 결합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이를 위해 미국측은 "진전"을 위한 세 가지 과제로 3국 군 수뇌부의 비디오 회의, 3국 정부간 협력 세미나, 한일 군부의 군사훈련 상호 참관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한미간의 사전 회의에서 화상 회의와 정부 관료 협력 세미나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미일 합동군사훈련이 한국군이 참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독도 문제 등 한일간의 문제를 들어 즉답을 피하면서 한국에 돌아간 이후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결국 한일 양국은 2010년 천안함 침몰로 조성된 안보 위기 국면을 틈타 상호참관을 시작했고, 올해에는 미국과 합동군사훈련까지 실시했다.
대북정책도 대화 분위기 조성보다는 급변사태 대비에 치우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 정책기획국장인 장혁은 3자 회담에서 "북한 위협의 근본적인 해결 필요성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북한 권력 승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3자 공동의 '대북 전략(강조는 필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3자간 정보 공유 및 전략 대화 시스템이라고도 덧붙였다.
타카하시 유이치 방위성 정보통신 담장 수석부국장은 "일본 정부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지속할 경우의 이익과 그것의 위험에 대한 단순한 비교에 입각해, 갑작스러운 정권 붕괴 위험과 결합된 교착 상태의 지속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국이 북한의 핵 개발 저지, 대응 행동 조율, 억제를 위한 확고한 방위 태세 확립 등과 함께 "특히 정권 붕괴와 같은 급변 사태에 대비해 동원할 수 있는 조치들의 도구함(toolbox of measures)을 갖추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DTT 지속,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 이행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 미래 시나리오 공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협력 확대 등을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코지 토미타 외무성 북미국장은 "중국은 국경이나 지역에서 불안정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할 때, 행동에 나설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한-미-일 3국은 북한에 대해 심각하고도 단호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중국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정일의 건강 악화와 북한 내 불안정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정권 붕괴에 관한 3자 협의를 심화시킬 시기"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일 양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 및 급변사태 대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자 미국은 큰 만족감을 표했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한반도 유사 사태를 비롯한 국방 문제를 한일간의 협의하는 것에 대해 한국 참가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한일 관리들의 소통이 잘 이뤄져 지난 6년 사이에 3국 정부의 국방안보 회의에서 가장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미-일 3각 동맹 '사실상의' 공식화
이처럼 밀실에서 논의되던 한-미-일 3각 동맹 움직임은 2011년 들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은 <2011년 국가군사전략> 보고서에서 "우리는 일본과 한국 사이의 안보 관계를 증대하고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지역적 안정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양자 동맹관계를 3자 동맹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또한 2011년 6월 하순 워싱턴에서 열린 일본과의 외교+국방장관 회담(2+2 회담)에서 "호주 및 한국과 3자 안보·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일 양국이 '2+2' 회담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 3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국방부의 아태 담당 차관보인 피터 라보이(Peter Lavoy)는 "미국, 한국, 일본 3자 협력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증진하는데 점차 중요한 틀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3자 방위 협력 분야로 정기적인 고위급 정책 협의, 해양 훈련 및 다자간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재난 구조, 해양 안보 구상을 강화하기 위한 정보 공유 등을 적시했다.
미국이 말한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MD라는 점도 중요하다. 미 국방부 핵·미사일방어 정책 담당 부차관보인 브래들리 로버츠는 2012년 3월 12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은 일본·호주 및 일본·한국과 3자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MD는 이들 대화에서 다뤄지고 있는 주제다. 이러한 3자 대화는 국제적인 MD 협력을 확대하고 지역 안보를 강화하며 동맹국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보름 후 매들린 크리던 국방부 글로벌 전략담당 차관보도 '유럽 MD'와 흡사한 지역 MD 시스템을 아시아와 중동에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는 한-미-일과 미-일본-호주 두 축으로 3자 대화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한-미-일 3각 동맹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데에는 이것이 목표인 동시에 MB 정부 5년간 상당 부분 진전되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6월 중순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담(2+2) 공동성명에 이를 명문화함으로써 쐐기를 박고자 하는 의도도 드러냈다. 이로써 한일 협정을 통해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려고 했던 미일동맹의 숙원은 50년 만에 풀릴 기회를 맞이했지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50년 전으로 뒷걸음질 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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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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