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날 저녁 푸틴이 승리를 확정짓는 연설을 할 때 보인 눈물도 화젯거리다. 평소 마초 이미지를 과시해왔던 푸틴은 이날 눈물을 보이며 연설을 잠시 중단해 지지자들의 연호를 이끌어내는 등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반대 진영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해외 통신원 루크 하딩은 5일 칼럼에서 푸틴의 눈물에서 느낀 5가지 단상을 적었다. 눈물이 진심이었다면, 푸틴이 최근 자신을 향해 고조된 비판 여론이 자신의 3선을 위협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물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의 성형의혹 등을 풍자하는 갖가지 조롱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넘쳐나고 있는 현상은 푸틴이 과거 보여준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오랜 정치풍자 문화가 다시 시작됨을 보여준다.
눈물 퍼포먼스의 진심 여부를 떠나 푸틴이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면서 떠맡을 과제는 과거와는 사뭇 다를 전망이다. 권위주의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여전하고, 과거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 경쟁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푸틴이 보인 눈물은 험난했던 대선 과정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마주할 험난한 예정을 향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원문 보기)
▲ 4일 현지시간 대선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AP=연합뉴스 |
푸틴은 왜 슬퍼했을까?
1. 최근 반푸틴 시위에 겁을 먹었다
푸틴이 공식석상에서 이렇게 감정을 표출하리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붉은광장의 무대에서 승리 연설을 할 때 그는 눈물을 보였을 뿐 아니라 몇 차례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중압감을 느끼고 있던 그의 감정이 몇 마디 단어에 배어 나오기 전 말을 멈추기도 하면서 그의 목소리에서 지친 기색을 느낄 수 있다.
푸틴을 연설에서 어둠의 힘이 그에게 대항해 음모를 짜고 있다고 믿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과거 그는 모스크바 등을 뒤흔든 대규모 거리 시위의 배후에는 서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누구도!"라고 소리쳤다. 그는 시위대의 궁극적 목적이 "국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찬탈"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 서방의 꼭두각시라는 푸틴의 판타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시위대는 단지 푸틴 정권이 보여줬던 부패, 그리고 러시아 유권자들이 원하건 원하진 않건 그가 오래 전부터 자신이 크렘린궁에서 3번째 임기를 보내도록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과 은밀히 합의했다는 사실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시위대들의 요구는 사실 간단하다. 선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12월 하원선거를 다시 치르라는 것,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 신뢰를 저버린 선거관리위원장을 파면할 것. 그들의 분위기가 혁명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다원적인 정치 시스템과 공정한 선거를 원할 뿐이다. 푸틴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디서든 권좌에 너무 오래 머무른 자가 보여주는 고질적인 문제다.
2. 크렘린궁의 홍보전문가들은 모든 것을 해명한다
푸틴이 사람들 앞에서 울던 몇 분에 대해 그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기발한 해명을 내놓았다. 바람이 불었다는 것이다. 그는 푸틴의 눈물 퍼포먼스는 불안한 감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차가운 바람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모스크바의 바람이 차갑긴 하다. 기온도 영하로 잘 떨어진다. 그러나 그런 해명은 분명 믿기 힘들다. 페스코프의 말은 "당신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 알고 있다. 나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 알고 있다. 이봐, 하지만 이건 게임이야"라는 의미다.
러시아 정치권에는 명확한 진실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복잡한 설명을 하는 풍토가 있다. 푸틴의 눈물 사건처럼 가끔씩 재미있기도 하지만 달리보면 해롭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인권활동가들과 언론인들이 총아 맞아 쓰러질 때마다 푸틴은 크렘린궁의 적들을 탓했고, 살인자들이 러시아 정부를 중상모략하려는 반대파에 의해 사주됐다고 주장했다. 이 놀랍고도 음흉한 논리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에 상당수 반영되어 있다.
3. 푸틴의 최근 성형수술이 성공하지 못했다.
푸틴이 지난해 대통령 복귀를 위한 준비를 마쳤을 때 추측이 일었다. 푸틴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의 눈 밑의 살과 주름이 사라진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의 광대뼈는 이상하게도 매끄러워졌다. 지난해 자유주의 성향 매체 <뉴타임스>는 "푸틴의 얼굴에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반푸틴 진영의 블로거들은 푸틴을 언급하는 글의 해시태그로 '보톡스'(#botox)를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메드베데프의 해시태그는 '한심해'(#pathetic)였다.)
4일 무대 위에 선 푸틴의 얼굴은 성형수술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해 줬다. 그의 눈은 <해티포터>에서 나온 누군가가 불운을 부르는 부적으로 공격한 것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러나 나이든 푸틴은 더 괜찮게 보였다. 우락부락한 인상의 푸틴이 화산을 등반하고, 북극곰과 대결을 하고, 비좁은 잠수함을 타고 시베리아 호수의 바닥까지 두려움 없이 내려가던 시절의 노스텔지어적 향수를 느끼게 해줬다.
4. 정치 풍자가 돌아왔다.
푸틴의 울먹거림은 무수한 농담을 낳았다. 트위터는 푸틴의 눈물을 조롱하는 글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축농증이 있다, 양파가 눈을 맵게 만들었다, 심지어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가 푸틴의 눈 속에 눈물을 내는 꽃을 심어놓았다는 가설까지 나왔다. 그의 연설이 진행되던 몇 분 동안 러시아인들은 1980년 제작된 소련 영화로 시골 소녀 3명이 모스크바로 오는 이야기를 담은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를 인용하고 있었다. 5일 푸시킨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뿌려진 전단지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쓰였다. 심지어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도 농담 대열에 합류해 트위터에 "푸틴에게, 놀라워! 놀라워! 당신이 이겼어. 러시아 국민들도 함께 울고 있어!"라고 썼다.
이러한 유머의 부활은 최근의 현상이다. 비록 러시아가 다채로운 정치풍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푸틴의 심각한 표정을 한 관료주의 정부에서는 발현되기 힘들었다. 과거 대통령 시절 정치 풍자에 대한 푸틴의 반응 중 하나는 러시아에서 인기 프로그램 <쿠클리>(꼭두각시라는 뜻)를 중단시킨 것이었다. <쿠클리>는 독일의 문호 E.T.A 호프만의 작품에서 사용된 오래된 농담을 차용해 푸틴을 공격했는데, 못생긴 난장이가 요정이 건 주문으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아름답게 비춰진다는 내용이다.
대선 전 선보인 풍자 영상은 푸틴을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의 늙은 구두쇠 몽고메리 번스로 묘사한다. 또 다른 풍자영상은 선거를 100미터 경주로 묘사하는데 푸틴은 먼저 출발해 다른 주자들을 총으로 쏘고 결승선으로 조깅하듯 들어온다. 러시아의 선거관리위원장 블라디미르 추로프는 결승선 테이프를 푸틴 앞으로 당겨준다.
5. 시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푸틴의 눈물 연설은 그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시위대들을 분노케 했다. 푸틴은 이번 대선이 "깨끗하고 정직하게" 치러졌다고 밝혔다. 유권자 버스 운송을 포함해 광범위한 선거부정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푸틴은 이미 지난해 12월 하원 선거를 재실시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고, 선거부정 의혹을 조사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안들은 시위대들의 핵심 요구사항이다. 그는 투표조작 없이도 대선에서 이겼을 것 같지만 정치 시스템이 그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의문들은 무의미하다.
분노한 시위대들은 푸틴의 눈물이 다른 공식석상에서 보여준 그의 헤아리기 어렵고, 심지어 냉담하기까지 한 인상과 대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4년 베슬란시에서 벌어진 학교 인질 사건에서 아이들이 희생당했을 때 눈물을 보이는데 실패했다. 쿠르스크 핵잠수함 침몰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가 왜 그날 밤에는 눈물을 흘렸을까? 한 가지 이론은 그가 자신의 편집증에 사로잡혀 진정으로 자신의 승리가 예상된 결과가 아니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좀 더 우아한 설명은 KGB의 터프가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감성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블라디미르 레닌이 잔인한 면만큼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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