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농사를 짓기 한창 바쁠 시기인 1일. 경남 밀양시 내일동 밀양관아 앞 광장에 농민 40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인 주민들은 "핵발전소 반대, 송전탑 반대"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주민들은 "우리는 쫓겨나면 굶어죽는다"며 "송전탑이 들어와 죽느니 차라리 내 논에서 싸우다 죽겠다"고 말했다.
3대에 걸쳐 밀양에서 농사를 짓는 안홍일(71) 씨는 "송전탑이 생기면 전자파 때문에 벌과 나비가 꿀을 못 찾아가고, 소도 번식이 안 된다"며 "100미터나 되는 송전탑이 논을 가려 그늘을 만들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 씨는 "그런데 한국전력공사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땅을 내버리고 무조건 나가라고만 한다"며 가슴을 쳤다.
또 다른 주민 박상순(67) 씨는 "한전이 제시한 보상가가 원래 땅 가격의 1/3도 채 안 된다"며 "논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 해도 헐값에라도 살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박 씨는 "송전탑이 생길 예정인 땅은 은행에서 담보 대출도 안 해준다"며 "노숙자가 되느니 생명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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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려나…"
밀양 지역주민들이 한국전력공사와 본격적으로 갈등한 계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전이 지난 2008년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이어지는 765kV 송전탑 161개 중에 43%에 달하는 69개 송전탑을 밀양에 만들기로 하면서다.
주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70~80대 할머니들은 매일 아침마다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인 산에 기어 올라갔다. 할머니들은 한전의 하청업체 직원들이 나무를 벨 수 없도록 나무를 끌어안고 "나를 먼저 죽이라"고 말하며 버텼다. 그밖에도 주민들은 단식, 천막농성, 상경노숙투쟁 등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전은 용역업체 직원을 들여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급기야는 주민 이치우(74) 씨가 지난 16일 분신 자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건장한 용역업체 직원 50여 명에 막혀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자신의 논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 씨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려나"라는 말을 읊조렸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 말을 실행했다. (☞관련 기사 : 초고압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70대 노인 분신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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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빼앗고 손해배상청구?"
주민들은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 없이 정부와 한전이 공사를 강행한 것이 참사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김응록 밀양 송전선로 건설 반대 산외면 주민대책위원장은 "정부가 한전을 앞세워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는다"며 "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지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김 대책위원장은 "한전은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지난 50년 동안 똑같은 수법을 써먹었다"며 "무조건 농촌으로 가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빼앗은 뒤, 여기에 저항하면 공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주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결과 밀양에서도 주민 130여 명이 소송을 당했고, 고(故) 이치우 씨도 소송을 당한 주민 중에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유재산 강제 수용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근거가 또 있다"면서 "조경태 의원이 한전 측에 왜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한전에서 '(손배소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인데 그러면 무장해제하란 말이냐'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책위원장은 "일본에서는 토지 수용 문제가 있을 때 10년이 걸리든 15년이 걸리든, 사전에 계획을 완벽하게 공개하고 주민과 합의한다"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반대하는 사람이 없도록 설득하고 계획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면에 우리는 말만 주민설명회지 졸속으로 전혀 관련 없는 주민 몇 명만 앉혀 놓고 사인 받고 끝냈다"며 "주민의 민원을 파악해 실질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기사 : "수도권 전기 공급하느라 지방 사람은 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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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반대 여론 높은데…"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밀양시민사회단체 등 전국의 90여 개 단체는 1일 밀양관아 앞 광장에서 '765kv 송전탑 반대 고(故) 이치우 열사 분신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반대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대책위원장은 "한전 측이 '신고리원전 5,6호기가 안 생기면 기존 송전탑으로도 충분히 송전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며 "지금이라도 송전탑 설치를 백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고리원전 5,6호기는 각각 2018년, 2019년에 완공될 예정인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책위원회는 또한 송전탑 대신에 '초전도 케이블'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초전도케이블은 환경 파괴나 전자파 피해가 적고 많은 전력을 멀리 보내도 전력손실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알려진 케이블이다. 한전과 LS전선은 지난해 3월 초전도 케이블 개발을 끝냈고 2016년 상용화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초전도 케이블의 공사비는 송전탑의 2~3배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 보상을 현실화했을 때 보상액수는 초전도케이블 설치비보다 비싸다"며 "충분히 가능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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