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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세금', 정의의 무기로 쓰려면…"

[복지국가SOCIETY] "누진적 이자 소득세를 도입하자"

과거엔 불경스러운 일이었지만, 역사가 흐르면서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으로 돼 있는 것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8시간 노동'이라든가 '여성 투표권'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인류는 같은 인류를 상대로 길고 지루한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우리가 지금 지극히 당연한 상식으로 생각하는 '소득세' 역시 역사적인 투쟁의 산물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소득세의 기본정신이 지금은 극히 당연한 상식이지만,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인류의 상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대적 소득세의 기원은 영국이다. 1799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정부재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자 당시 영국의 수상이던 윌리엄 피트가 '소득'을 세원으로 하는 새로운 세금을 창설했다. 당시 납세자들은 소득의 크기에 따라 누진율을 적용하는 국가의 만행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인들은 이를 악마 같은 세금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소득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폐지되었다.

소득세가 공평이념에 바탕을 두고 제대로 부활한 것은 1894년 미국에서였다.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전제로 태어난 이 세금은 그러나 1년 만에 없어지고 말았다.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서 소득세를 폐지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대법원이 소득세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소득세 폐지는 법원에 의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무너진 소득세를 다시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20년이나 지난 뒤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13년 소득세를 부활하고 이전처럼 위헌판결을 받지 않도록 이번에는 아예 헌법까지 개정했다. 이로써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소득세 도입이야말로 미국 민주당이 역사에 공헌한 매우 중요한 업적이다.

소득세는 소득에 따른 납세를 구현하기 위해 수평적 공평과 수직적 공평을 큰 원칙으로 한다. 수평적 공평은 같은 소득을 올린 사람끼리는 똑같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상도에서 올린 소득이건 전라도에서 올린 소득이건 모든 소득은 똑같이 대우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수직적 공평은 소득이 다른 사람은 다르게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많이 버는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적게 버는 사람에게는 적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원칙이다.

▲ 서울시내 한 세무서 풍경.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무행정은 복지국가의 전제 조건이다. ⓒ뉴시스

이러한 소득세의 기본정신 때문에 현행 소득세법이 갖고 있는 기본원칙이 바로 '종합과세'의 원칙이다. 종합과세란 1년 동안 자신이 번 모든 소득을 하나로 합쳐 놓고, 이를 기준으로 적용받을 세율을 정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번 돈이건 상관없이 즉, 소득의 원천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순증가한 경제력 전체를 똑같이 비교해야 공평하다는 것이 종합과세의 원칙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종합소득의 기본정신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소득의 원천을 구분해 그에 맞춰서 서로 다른 세율상의 차별대우를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소득의 원천에 대한 구분 없이 일단 늘어난 모든 재산에 대해 똑같이 과세해야 한다는 원칙이 얼핏 보면 평등이념에 맞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될 경우 조세제도가 인간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불로소득이건 근로소득이건 같은 처분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되도록 불로소득을 추구할 것이다. 즉, '각 개인이 어떤 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사회적 추천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럼 소득의 원천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모든 소득을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아는 근로소득이다. 이는 자기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이다. 둘째는 자산소득이다. 별로 하는 일이 없지만 어떤 소유권을 근거로 가만히 앉아서 올리는 불로소득을 흔히 자산소득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자소득일 것이다. 셋째는 혁신소득이다. 어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투자를 감행하고 혁신의 대가로 소득이 형성되었을 경우, 단순한 불로소득과 다른 대우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소득을 그 원천에 따라 근로소득, 자산소득(=불로소득), 그리고 혁신소득으로 구분하는 소득 3분법을 추구하게 된다면, 각 소득의 원천별로 세법상의 다른 처분을 설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혁신소득은 소득발생 초기에 조세부담을 낮게 하되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소득에 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근로소득은 현행 4단계인 누진구간을 더 쪼개고 고소득 구간을 새로 창설하는 등 여러 단계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산소득은 힘들이지 않고 번 돈이므로 전체적으로 고율의 누진구간을 편성해야 한다.

현행 세제는 겉으로는 종합과세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이런 취지를 상당부분 반영하고 있다. 단지 종합과세라는 외형상의 원칙을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근로소득은 다양한 공제를 통해 매우 많은 세제상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종합과세라는 원칙에 묶여 있지만 실제 내용상으로는 근로소득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양도소득에 대한 예외적인 높은 세율 등도 소득의 원천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도 그렇다. 이 역시 근본적 취지 자체는 이자소득 같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즉, 이미 우리 세법은 알게 모르게 소득의 원천을 차별대우 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종합과세'의 원칙을 제공한 순자산증가설의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날 필요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자 소득세다. 현행세법은 종합과세라는 기본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이자, 배당 소득 등에 대해서는 14%의 원천징수로 모든 것을 끝내는 분리과세를 실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징세의 편리 때문이다.

종합과세를 하려면 1년 단위로 납세자의 모든 소득을 집계해야 한다. 근로소득자들이 연말정산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은행이 이자 소득세를 공제하면서, 해당자의 연간 종합소득까지를 고려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은행은 예금주들에게 이자를 지급할 때 그냥 천편일률적으로 14%의 세금을 빼는 것으로, 모든 세금 문제를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2009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이렇게 걷어 들이는 이자소득 세수가(소득세의 경우) 3조 원이 넘는다. 문제는 법인이 받아가는 이자소득이다. 1년에 7조 원 정도의 법인세 원천징수분이 있는데, 이의 상당부분이 법인이 부담하는 이자소득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특히 기업의 호황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즘에도 대기업들은 수출이 잘되어 은행에 수천억 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17조 원 (2009년)에 달하고, 현금성 자산은 47조 원에 이른다. 이는 당연히 큰 이자소득을 생성시키는데, 이에 대한 징세는 14%의 비교적 낮은 단일 세율에 그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행 세제는 겉으로는 종합과세의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중요한 부분은 분리과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 때문에 결국 이자소득으로 대표되는 불로소득의 한 갈래는 소득세 시스템의 기본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우리가 형식에 치우친 종합과세 원칙을 포기하는 대신 소득의 원천을 구분해서 근로소득과 불로소득과 혁신소득을 각각 분리과세 하는 쪽으로 조세제도의 기본철학을 전면 교체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도적인 차원에서 불로소득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차별대우를 설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현재 14%라는 단일세율이 적용중인 이자소득에 대해 여러 단계의 누진구간을 만들어 곧바로 적용시킬 수 있다. 근로소득처럼 소득구간에 따라 높은 세율을 적용받도록 해서 은행이 이자 지급시기에 해당 구간에 맞는 누진적인 세금을 직접 공제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억 원 이상의 고액 이자소득에 대해서 양도세 특수구간처럼 고율의 누진율을 적용하게 되면 국가는 큰 규모의 세수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세한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걷히고 있는 이자 소득세의 규모를 고려해 볼 때, 경우에 따라서는 수조 원 규모의 새로운 세수증가 요인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제가 간편해지는 효과도 있다. 이자소득에 대해 단독 누진율을 설계하여 적용하면 굳이 복잡한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를 운용할 필요도 없다.

경제위기라고 하지만 대기업을 비롯한 수출 중심 기업들은 벌써 몇 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수익은 쌓이는데 투자처를 찾지 못해 사내유보금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이 누리고 있는 이자소득에 대해 고율의 누진세를 창설하면 법인이 돈을 은행에 쌓아둘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법인이 본래의 업무에서 벗어나 자산소득에 관심을 갖는 문제를 방지하고 투자를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이자 소득은 대부분 지급하는 은행에서 곧바로 공제하므로 징세 절차도 간단하다.

최근 통일세 주장에서 보듯이 정부는 새로운 증세 명분과 세원 발굴에 혈안이 되어있다. 정부의 통일세 창설 움직임에 대해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위한 일종의 우회 전략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우파 정부라 해도 일단 집권하게 되면 자기 권력의 확대를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고 정부는 확장된다. 결국 정부는 감세 명분과 증세 요청 사이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특히 이자소득에 대한 누진율 적용에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정부의 속 깊은 고민을 해결해 줄 대안이 될 것이며, 동시에 공정사회로 가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소득세 시스템 도입을 위해 길고 지루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득세 체제의 완성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공정한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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