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PD는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으면 "억울해서 미치겠다"라고 부당하게 당했던 이유를 유서로 밝히고 죽음으로 항거하기 위해 자살을 택했을까? '죽음을 준비하며 나날을 보내야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힘겹고 아팠을까'라는 생각에 내 마음도 어둡고 답답했다. 가슴 속에 돌을 얹은 듯 무거워졌다. 어디 그 뿐인가. 내 주위만 둘러봐도 온통 억울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세월호 304명이 그랬고 고 이한빛PD와 고 박환성-김광일 PD들이 그랬다. 구의역 김 군과 같은 지하철 노동자들의 죽음과 한국마사회의 부조리에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기수를 포함한 7명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재학 PD는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장시간을 밤낮없이 일하면서 라꾸라꾸(간이침대)라는 별명까지 생길정도로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 달 월급은 160만 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상황이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더 열악한 처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측에 자신과 동료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임금과 제작인력보강을 요구했다가 곧바로 해고됐다. CJB청주방송은 프리랜서가 감히 임금인상을 요구해서 괘씸죄를 적용한 걸까? 애착을 갖고 14년이나 일했던 방송국에서 사측의 갑질로 이재학PD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됐고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졌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요구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부당한 해고통지였다.
그래서 소송을 걸었다. 이재학 PD는 소송을 하면 당연히 있는 사실이기에 쉽게 끝날 줄 알았다고 했다. 청주지방법원에 근로자 지위소송을 제기했으나, 있는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측의 태도에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며 유령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재학 PD가 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는 동료들의 진술이 있었으나, 2명은 재판에 나오지 못했고 1명은 진술을 번복했다. 판사는 재판정에 나오지 못한 동료들의 진술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측에 유리한 출석하지 않은 이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이재학PD는 그 재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진술을 번복한 그 동료는 이재학 PD를 찾아와 사측의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사죄하고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누가 이 동료를 탓할 수 있겠는가. 힘의 논리는 위에서 아래로 가해지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약자인 그 동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않겠는가?
유족이 된다는 것
이재학 PD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꿈꾸던 38살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남긴 유서는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회사의 부조리를 밝혀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남겨놓은 피의 절규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그의 유족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사방팔방으로 사건해결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유족들의 바람은 죽음의 진상과 책임자 처벌에 머물지 않는다. 더 나아가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문제해결을 위한 법제도개선까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도 기가 막히게 억울하지만 남겨진 유가족들은 비참하기 그지없고 그야말로 억울함을 풀길이 없다. 자식 잃은 그 아픔, 가족을 잃은 그 아픔은 죽은 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무엇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
나 또한 아들의 사고가 용균이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했던 사측의 태도에 끝없는 분노가 일어났으며 가슴속에 불덩이가 들어있는 듯 했다. 분노는 저절로 미쳐서 널뛰듯 표출됐다. 애지중지 다 키워놓은 아들을 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보냈더니, 지난 8년 동안 12명의 사망자가 있었음에도 아무도 사고책임을 지지 않는 안전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처참하게 죽임당한 것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마음 같아선 용균이를 그렇게 만든 관련된 모든 놈들을 찾아내서 똑같이 컨베이어 벨트에 밀어 넣고 나도 생을 마감하고 싶을 정도로 분노는 나를 지옥에 떨어뜨렸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수많은 산재사망은 명백하게 예고된 죽음들이다. 이 모든 죽음들은 안전을 방치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이 만든 것이다. 기업과 정부는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을 구조적으로 많이 만들어놓고 최저임금만 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착취했다. 갑질과 부당한 처우에 목숨이 위태로워도 노동자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다. 왜냐면 사측 횡포의 두려움에 엄두조차 낼 수 없게 구조적 희생양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왜 이렇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까? 그리고 나처럼 남겨진 유가족들은 평생을 아픔으로 또 얼마나 괴로워하며 살아갈까? 아들의 사고 이전에는 일하다 발생하는 모든 사고들은 막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다 한 번 씩 보이는 TV 속 죽음들은 무엇이 잘못돼 생명을 빼앗겼는지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아들 사고는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용균이의 사망 후 1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세상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흐르고 있는 듯하다.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기업 운영과 시스템에 의해, 지금도 노동자들은 막을 수 있는 죽음에 떠밀려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자살은 나약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자살은 나약한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산재사고는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살자는 1년에 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고 산재사고 사망자는 2천명이 넘는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부당한 죽음들을 방지하고 해결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산재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대통령의 말씀은 진심이 들어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전국은 코로나 19로 난리가 난듯하다.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인명피해는 많은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고 잘못 관리하면 질책이 두려워 관료들이 앞장서서 나선다. 하지만 자살이나 산재사고는 수면위에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죽음들이고 어찌 보면 국가가 방치한 죽음이기에 지금처럼 방지도 대책도 미진한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살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생각이라도 해봤을까? 어떤 말을 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 벽 앞에 놓여 있는 그 심정. 갑자기 사고를 당한 용균이도, 서서히 피 말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고 이재학 PD도 모두 사회가 만든 죽음이다.
용균이처럼 또 누군가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처럼 누군가가 또 피눈물을 흘리지 않길 바랐다. 아쉽지만 그 죽음을 막지는 못했지만 억울함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승리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는 고 이재학 PD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이 말이 새겨 들어가길 기원하고 부정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워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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