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올 해는 청산리·봉오동 전투 100주년이고, 6·25전쟁 70주년이자 4·19혁명 6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보훈의 역사는 '공동체를 위한 헌신'이라는 가치와 이를 통해 시민적, 평화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의미를 짚어보고자 <프레시안>은 보훈교육연구원과 함께 기획연재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보훈의 역사, 사회적 의의, 평화지향성 등을 사회적으로 함께 생각해 보고 방향을 정립해 보는 기회의 장을 갖고자 합니다. 편집자.
신뢰할 만한 한 연구기관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이 건강과 수명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진은 1970년 이후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55개국을 비교했다. 민주주의로 이행한 국가들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15살 인구의 기대여명이 그렇지 않은 국가들보다 3% 길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민주주의로 이행한 국가들은 심혈관 질환, 교통사고 부상, 비전염성 질병 발생률도 낮아졌다. 이런 결과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진전 자체가 시민들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유의 확대가 사회적 압력 증가로 이어져 정부가 적극적 보건정책을 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로 유추해 볼 때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민주주의가 우리 삶에 있어 여러모로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건강과 수명에도 중요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정과 상황에 따라서 각지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을 것은 자명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두 가지 장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민주주의의 시발점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사례를 보자.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가져온 정치가로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B.C. 429)를 들 수 있겠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연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발생한 첫 번째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연설에서 중요한 말을 한다.
페리클레스는 "우리 헌정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권력이 소수에 있지 않고 전체 국민에게 있으며, 사적이익을 둘러싸고 다투는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고 정의로우며, 공적 직책을 맡게 되는 기준은 시민들의 사회적 지위나 공적생활의 위치 또는 사회적 계급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입니다"라며 아테네 민주주의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한 전사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지하에 묻히고 만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언행 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이 전몰자들과 그 유족에게 나라가 주는 승리의 관으로서 그들의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를 아테네가 국고를 통해 줄 것을 오늘부터 보증합니다. 덕행에 지상의 명예를 주는 나라야말로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희생과 이에 대한 보답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장면에 이어 또 다른 한 장면을 살펴보자. 페리클레스의 이 연설과 더불어 민주주의에 대한 묘사로 가장 유명한 연설이 바로 링컨(Lincoln)의 연설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미국 게티스버그(Gettysburg)의 남북전쟁 전몰자묘지 봉헌식에 참석하여 2~3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연설을 한다. 이 추모연설에서 링컨은 “용감한 이들이 조국을 위해 여기서 수행한 일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으로 남겨진 일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유명한 두 장면을 보면서 각자 나름의 의미를 찾겠지만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장면들이 공통적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의 장례식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보답 행위를 우리는 보훈이라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진전의 중대한 사건으로 알려진 이들 연설이 모두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추모연설이었다는 점은 보훈과 민주주의는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작점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보훈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이 유지·보장되도록 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과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포함한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우리사회는 보훈의 직접적 대상을 독립, 호국, 민주화유공자 등으로 자세히 규정해 주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 우리사회가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공헌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 국가유공자들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위기를 맞은 이 땅의 자주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가장 소중한 것마저 희생하며 보듬어 안은 이들이다. 그리고 보훈은 이들을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고, 이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게 하는 것이다. 즉, 보훈은 자주와 평화와 민주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훈은 자주, 평화, 민주의 보루(堡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유공자들이 희생으로써 지켜온 이 땅의 자주, 평화, 민주를 더욱 발전시키는 일은 살아 있는 지금의 우리들이 배우고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필자 서운석 박사(행정학)은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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