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는 매년 전년 대비 수만 명의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현상을 보고 한국을 '집단자살 사회'로 지칭했다. 한국이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극한적 상황이 아님에도 매년 전년보다 1만~5만 명씩이나 덜 태어나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저출산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집단자살 사회의 자화상을 심각하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과 정치권부터 시민 개개인까지 이런 사태를 성찰하고 함께 나서 대책 수립을 공론화해야 한다.
1985년 합계출산율 1.66, 이때부터 계속 저출산 상태
합계출산율은 출산력 수준을 나타내는 국제 지표로 가임여성(15~49세)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다. 이것이 2.1이라야 인구가 현상 유지된다. 그 이하라면 인구가 줄어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합계출산율 1.7 이하를 저출산으로 본다. OECD가 합계출산율 1.7을 저출산의 기준선으로 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 사회에서 인구의 완만한 감소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경제·사회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인데, 합계출산율 1.7 정도라면 경제·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OECD 35개 회원 국가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68이다. 그런데 한국은 1985년 합계출산율이 1.66이었다. 이미 한국은 35년 전부터 합계출산율이 OECD의 저출산 기준선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다. 심지어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합계출산율은 매년 1.3미만이었다. OECD는 합계출산율 1.3을 심각한 인구위기를 의미하는 '초저출산'의 기준선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은 지난 18년 동안 초저출산 상태였다. 역사상 이런 나라는 없었다.
심지어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까지 추락했고, 지난해는 더 떨어졌을 것으로 전망된다. 놀라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1959년부터 1972년까지 14년 동안 매년 100만 명 넘게 출생했다. 그런데 2018년엔 32만7000명만 출생했고, 지난해 출생아는 30만 명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니까 작년 출생아 수는 그들의 50년 선배의 30%에 불과했다. 이런 추세라면 30년 후 한국 인구는 지금보다 30%나 줄어든다. 게다가 한국은 지속적인 초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의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경제·사회적 지속 가능성은?
향후 한국은 경제·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할까? 2002년 이후 지속되는 초저출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이대로라면 한국의 지속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집단자살 사회에서 태어나지 못한 세대는 회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못한 세대로 인해 장차 노동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든다. 향후 10년만 전망해 보더라도 매년 평균 35만 명씩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2025년엔 43만 명이나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 2030년이 되면, 생산연령인구는 지금보다 350만 명 감소한다.
이는 국가 대재앙이다. 장차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빠른 속도로 활력을 잃게 된다. 정부의 재정과 복지 지출을 떠받치는 세금은 갈수록 줄어든다. 게다가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의 백분율인 노년부양인구비는 급증하게 된다. 2030년이 되면, 노인인구 비율은 25%가 되고 노년부양인구비는 38.2%가 된다. 2050년엔 노인인구 비율 40%와 노년부양인구비 77.6%, 2070년이면 노인인구 비율 46.5%와 노년부양인구비 102.4%가 될 전망이다.
결국, 미래 세대는 노인 부양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세대 간 갈등을 심각하게 겪을 개연성이 크다. 사회안전망은 총체적으로 부실해질 것이고, 국민연금과 국가 재정의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위기의식은 크지 않다. 어떤 특단의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놀랍고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와 일본의 인구위기 대응에서 배우자
사실상 인구위기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정치권 등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프랑스는 1990년대 중반 합계출산율 1.79일 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일본은 2010년대 중반 합계출산율 1.42일 때 인구위기를 총괄할 인구 전담 장관(1억총활약상)을 신설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선까지 추락했다. 인류 역사에서 전무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비상한 대책도 제출되지 않고 있다. 대책 마련을 위한 국민적 공론을 불러일으키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구조를 정상화함으로써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진보나 보수 또는 큰 정부(좌파)나 작은 정부(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보수와 좌·우파는 공히 초저출산의 인구위기 인식이 결여돼 있다. 특히 보수 세력에게 더 많은 성찰이 요구된다. 저출산과 인구 문제는 사회의 안정적 유지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핵심적인 과제이므로 '보수의 가치'에 더 밀접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복지 체제의 거대한 개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해왔다.
물론 역대 정부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합계출산율 1.08을 기록했던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고, 대통령 소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2006년부터 5년 주기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추진했다. 하지만 세계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했다. 참담한 실패다. 결국, 기존의 관성적 사업 방식으로는 안 된다. 패러다임 대전환의 새로운 노력이 요구된다.
국가 인구위기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초저출산과 인구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고 국가 차원의 거대한 공론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인구위기를 공식적으로 선포할 필요가 있다.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최악의 초저출산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이 불행하고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최악의 초저출산에 대한 근원적 처방을 내놓고, 정치·사회적 공론을 형성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저출산 해법은 양질의 일자리, 지속적 경제성장, 보육·교육, 일·가정 양립, 임신·출산, 가족·여성, 주거, 의료·요양 등의 제도적 보장을 포함한다. 즉, 이들 업무는 정부의 모든 부처에 걸쳐 있다. 그러므로 부처 간의 칸막이를 넘나들며 통합적 실천을 해야 하고, 소득 불평등 해소와 함께 성 평등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결국 스웨덴의 경험에서 보듯이 성장 엔진을 탑재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초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 가임기 청·장년들이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구위기의 대재앙을 극복하겠다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다. 그래야 청·장년들이 행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초저출산 인구위기 극복의 구심점 역할은 바로 '인구 대통령'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일을 실무적으로 총괄할 '인구 장관'이 필요하다. 프랑스와 일본의 사례에서 배울 일이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라는 또 하나의 위기
한국의 인구위기에는 두 가지가 겹쳐있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속적인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다. 지방의 인구 감소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 결과다.
먼저, 2018년 지역별 인구의 자연증가(출생아-사망자) 현황부터 살펴보자. 17개 시·도 지역 중 8곳에서 인구가 자연감소했다. 가장 크게 감소한 곳은 경북이고, 전남, 전북, 강원, 부산, 경남, 충남, 충북 순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부산만 제외)에서는 모두 인구가 자연증가했다.
대도시를 향한 경제·사회적 인구 이동이 계속되면 지역은 소멸한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 현황’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수도권 인구는 비수도권 인구를 1737명 차이로 앞섰다. 서울·경기·인천 거주자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던 것이다.
1970년 28.3%이던 수도권 인구 비중은 1980년 35.5%, 1990년 42.8%, 2000년 46.3%, 2010년 49.2%로 상승했다. 노무현 정부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수도권 인구의 비중 상승폭이 0.22%포인트에 그쳤지만, 후속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서 마침내 50%를 넘어섰던 것이다. 수도권 인구의 자연증가(지방은 자연감소) 영향도 미세하게 있겠지만 대부분은 경제·사회적 인구 이동 때문이다.
수도권은 지방 최대 거점인 부산·울산·경남 벨트의 인구마저 급속히 빨아들였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쇠락은 가속화할 것이다. 지방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강화됐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존재하는 교육·복지·정보·문화의 격차도 중요한 이유다. 이렇게 지방 인구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 지방과 지역은 후퇴하고, 이는 다시 인구의 유출로 이어진다. 지방(지역)의 소멸로 가는 악순환이다. 머지않아 한국은 인구의 자연 감소(초저출산)와 수도권 집중(인구 이동)이라는 거대한 인구위기로 인해 지속 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인구위기 사태를 선포해서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국민행복의 복지국가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지방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면 된다. '지역이 행복한 역동적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이는 정부와 정치의 역할이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는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환골탈태의 개혁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방과 지역이 활성화하는 국민행복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가 차원의 기획 속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 요구된다. 이는 인구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정치의 책무이자 깨어있는 시민의 요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복지대타협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인구위기를 돌파해야 할 적절한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지금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업무를 전달하는 데 역량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그 결과, 지역 경제 발전,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역 밀착형 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지방정부 본연의 업무를 자율성·책임성·공공성의 원칙하에 제대로 추진하는 데 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지방정부가 매력적이고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데 실패하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수도권과 거점 대도시로 이동한다. 지방과 지역이 살기 좋은 곳이 돼야 한다. 유능하고 책임성 강한 지방정부가 이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공론화와 함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복지국가 대타협'이 절실하다.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복지국가 대타협
대타협의 조건으로 첫째, 한국이 국민행복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을 현재의 10.5%에서 OECD 평균인 22%까지 선제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력적 노력으로 일자리를 중심으로 경제와 복지를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의 경제·복지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중앙정부는 보편적 소득보장을 위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회수당의 내실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수당인 아동수당·장애인연금·기초연금의 소요 재정 전부를 중앙정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 확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넷째, 중앙정부는 4대 사회서비스(보육·교육·의료·요양)의 실질적 보편주의를 확립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계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소요 재정의 전부를 중앙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지역성과 현장성이 강한 주거급여와 교육급여는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한다.
다섯째, 지방정부는 지역성과 현장 밀착성을 기반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복지 사업을 펼치되 사회서비스 제공 체계를 획기적으로 확충한다. 즉 지방정부는 일자리 중심으로 경제·복지가 통합된 포용적 발전 모델(지역 혁신경제, 고용 투자, 사회적 경제, 사회서비스, 커뮤니티 케어 등)을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결국, 이런 노력을 통해 지방과 지역의 경제와 복지가 살아나야 궁극적으로 인구위기를 극복될 수 있다. 지금은 인구위기와 관련해 이런 내용들을 정치·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때다.
※ 이 칼럼은 필자가 쓴 다음의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1. 이상이. [이상이 칼럼]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국제신문. 1월 16일자
2. 이상이. 세계 최악의 초저출산, '국가 인구 위기 사태' 선포하라! 신용경제 커버스토리.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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