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갑신년 원숭이해를 맞아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 완역본이 나왔다. 서유기의 저자는 중국 명나라 때 불우한 선비 오승은의 지은 것으로 1500년대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일종의 구전 집체 작품이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완역본은 지난해 중반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에서 번역가 임홍빈씨가 우리말로 옮긴 <서유기> 완역판이 처음일 정도로 귀하다. 임홍빈씨의 번역은 한문에 정통한 번역자의 노작이라면, 이달 완간 예정으로 서울대학교 서유기 번역 연구회가 옮긴 <서유기>(솔 출판사 간)는 '신세대 판타지 소설'이라는 스타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일단 5권을 먼저 출간한 이번 <서유기> 번역자들은 30대 중반을 전후한 서울대 중문과 박사과정 출신 5명(홍상훈.신주리.이소영.최형섭.홍주연)으로 젊은 중국 고전문학 전공자들이 집단으로 참여해, 의미의 전달을 넘어서 문학성과 정확성에 충실하면서도 감각적인 완역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번역자들은 "서유기는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서양의 판타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서유기는 서양 판타지처럼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구도에 한쪽을 파괴시키는 결말이 아니라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 도교 사상에 온갖 설화. 민담. 신화가 담긴 이야기 속에 선악의 주체들이 대립과 갈등, 상생 등을 펼쳐나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판타지 소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 손오공
이들의 <서유기>에서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스타일에 맞게 번역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우선 불교나 도교와 관련된 어려운 한자말들이 많이 등장하는 점을 감안해 요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자말을 최대한 우리말로 쉽게 풀어냈다. 가령 손오공이 처음 얻은 칭호인 '미후왕'(美猴王)을 '멋진 원숭이 왕'으로 번역하는 식이다.
또 원래 이야기꾼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라는 공연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했어요", "~했지요" 등의 말투를 채용했다. 또 수없이 등장하는 시사 詩詞는 운문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 했고 원문을 같이 붙여놓았다.
조관희 상명여대 중국어문학부 교수는 이번 <서유기>에 대해 "한자어에 토씨만 붙인 고리타분한 문체가 아니라 쉬운 구어체의 문장으로 풀어낸 본문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한 역주는 그 자체로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이것이 단순히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진 치기의 소산이 아님을 보여준다"면서 "앞으로 갈 길이 먼 우리 중국학 연구에 또 하나의 든든한 징검돌이 놓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경호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도 "번역은 원전에 담긴 분위기를 옮기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번에 번역된 서유기는 그래서 이전의 번역과는 달리 원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리기 위해 노력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서유기 번역 연구회가 원본으로 삼은 판본은 명나라 때 유교의 고루함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학자인 이탁오가 정리한 '이탁오비평본'이다. 이 판본은 다른 판본들이 삼장법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때로는 스승 삼장을 조롱하기도 하는 손오공에 초점을 맞췄다.
잘 알려진 몇 가지 이야기 대목을 간추려 보았다.
***운잔동에서 저팔계를 거둬 들이다**
<사진>삼장법사
삼장법사가 말했지요.
"오공아, 어떻게 그 자를 잡아서 나한테 인사를 시키는 게냐?"
그때서야 손오공은 귀를 잡았던 손을 놓고서 쇠스랑 자루를 들고 요괴를 한 대 치면서 소리쳤어요.
"멍청아, 네가 말씀드려라!"
요괴가 관음보살이 착한 일을 하라고 권한 일을 자세히 풀어놓자, 삼장법사가 매우 기뻐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어요.
"고 어르신, 긴 책상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고씨 영감이 책상을 들고 나오자, 삼장법사는 손을 깨끗이 씻고 향을 피워 남쪽을 향해 절하며 말했지요.
"보살님의 성스러운 은혜를 입었나이다!"
절을 마치자 삼장법사는 안채의 높다란 자리에 앉아 손오공에게 요괴를 풀어주라고 시켰어요. 요괴는 다시 삼장법사에게 세 번 절을 올리며 서역으로 같이 가리를 바랐지요. 또 손오공에게도 절하며 먼저 온 자가 형님이 되니까 손오공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어요. 삼장법사가 말했어요.
"네가 나를 따르며 좋은 업을 쌓고 내 제자가 되겠다고 하니, 아침저녁으로 부르기 좋게 네게 법명을 지어주마."
저오능이 말했지요.
"사부님, 저는 관음보살님께 계를 받고나서, 큰 마늘.달래.무릇.김장파.세파의 오훈과 기러기, 개. 뱀장어의 삼염을 끊었으며, 장인어른 댁에서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며 매운 것들을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오늘 사부님을 뵈었으니 이제 그건 지키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니 된다! 안돼! 네가 이미 오훈과 삼염을 먹지 않았으니, 내가 네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마. 너를 이제 팔계八戒로 부르겠다"
<사진>저팔계
그 멍텅구리는 기뻐서 헤헤 웃으면서 말했지요.
"사부님의 명을 잘 따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는 저팔계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저팔계는 고 노인 앞으로 가서 말했지요.
"장인어른, 제가 마누라를 데리고 나와 장인,장모님께 절을 올려도 될까요?"
손오공이 웃으며 말했지요.
"아우야, 네가 이미 사문에 들어와 중이 되었으니 지금부터 다시는 '마누라'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아라. 세상이 부인 있는 도사는 있지만, 부인 있는 중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리 와 앉아 공양이나 들고 서둘러 서천으로 떠나자."
***목차의 도움으로 사오정을 거두다**
멋진 저팔계! 그는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으쓱으쓱 기운을 내더니만, 양손에 쇠스랑을 쥐고 강가로 가서 물길을 열어 저번처럼 강바닥의 요괴 소굴까지 내려갔어요. 그때 요괴는 자다가 막 깨어난 참이었는데, 물을 젓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고개를 돌려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니, 저팔계가 쇠스라을 쥐고 오는 거였어요. 요괴는 펄쩍 뛰어나가 앞을 가로 막으며 호통을 쳤어요.
"꼼짝 마라! 꼼짝 마! 지팡이를 받아라!"
저팔계가 쇠스랑을 들어 막으며 말했어요.
"무슨 말라비틀어진 '상주 지팡이'[哭喪杖]를 들고 난리야? 네 할아비한테나 보라고 그러시지!"
이번 판엔 주거니 받거니 서른 합이 넘도록 싸웠건만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저팔계가 또다시 진 체하며 쇠스랑을 끌고 도망쳤어요. 요괴가 뒤를 쫓아 밀려오는 물결을 헤치고 언덕까지 따라오자 저팔계가 욕을 퍼부었지요.
"이 못된 괴물놈! 어디 올라와 바! 이 정도 높은 곳이면 땅을 딛고 싸우기에 딱 좋구나!"
요괴도 맞받아 욕을 했지요.
"네 이놈, 날 유인해 끌고가 또 그 놈에게 넘겨주려고? 네가 내려와보시지! 물 속에서 더 붙어보자!"
그 요괴 원래 약은 놈인지라 더 이상 언덕에 오르려 하지 않고 강가에서 저팔계와 입씨름을 벌일 뿐이었어요.
<사진>사오정
손오공은 즉시 근두운을 타고 곧장 남해로 향했어요. 아! 반 시간도 안되어 금방 보타산 경관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순식간에 근두운에서 내려 자죽림에 도착하니, 스물네 하늘의 신들이 나와 맞이하며 말했어요.
"제천대성, 어쩐 일이시오?"
그 때 관음보살은 봉주용녀와 보련지 못가에서 난간에 의지하여 꽃구경을 하고 있다가, 전갈을 받자 운암雲巖을 돌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라 했어요.
"이 원숭이 녀서! 또 저만 믿고 우쭐대느라 당나라 스님을 모시고 간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구나?"
관음보살이 즉시 목차 혜안을 불러 소매에서 붉은 조롱박을 하나 꺼내주면서 분부했어요.
"이 조롱박을 가지고 손오공화 함께 유사하에 가서 '오정아'하고 부르기만 해도 금방 나올 게다."
목차는 조롱박을 받쳐들고 구름과 안개를 타고 유사하 수면에 이르자, 매서운 목소리로 외쳤어요.
"오정아!오정아! 경전을 가지러 가는 분들이 여기 오신 지 오래되었구나! 네 어찌하여 아직도 귀의하지 않느냐?"
사오정이 그제야 항요장을 거두고 누런 비단 승복을 단정히 하고 언덕으로 뛰어올라, 삼장법사에게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말했어요.
"사부님, 제자 눈이 있어도 눈동자는 없다고, 사부님의 존안을 알아보지 못하고 많은 실수를 범했으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홍해아가 삼장법사를 납치하다**
사오정이 이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온 몸이 마비되었어요.
"형님들, 도대체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전생에 죄를 지었는데 고맙게도 관세음보살의 권면과 교화를 받아 마수정계를 받고 법명을 얻어 불문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을 호위하고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구하는 공덕을 쌓아 죗값을 치르기로 한 거잖아요? 그런데 오늘 이곳까지 와서 하루아침에 모든 걸 포기하고 각자의 길을 찾아가자는 말씀이십니까? 그것은 관음보살의 선과를 어기고, 우리 자신의 덕행을 망치고, 우리가 시작만하고 끝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손오공이 말했어요.
"동생,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사부님이 남의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쩌겠어? 이 몸의 새빨간 눈의 금빛 눈동자는 좋고 나쁜 것을 알아볼 수 있단 말이야. 조금 전의 그 바람도 나무 위에 매달려 있던 어린애가 일으킨 것이었어. 나는 그 놈이 요괴라는 것을 알았는데, 너희들도 사부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양갓집 아이라고 생각해서 날더로 그 놈을 업고 가라고 했잖아?"
이 몸이 그를 처치할 생각을 하자 그 놈은 벌써 알아채고 바로 중신법을 써서 나를 누르더군. 내가 그 놈을 내동댕이쳐 가루로 만들자, 그 놈은 다시 형체만 남기고 원신은 빠져나가는 해시법을 쓰고 회외리바람을 일으켜 사부님을 납치해간 것이야. 이렇게 요괴에게 걸려들면서도 매번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내가 맥이 빠져 각자 흩어지자고 말했던 거야. 그런데 동생이 그런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이 몸은 진퇴양난이군."
"그 요괴 얘기를 하면 아마 제천대성께서도 아실 겁니다. 그 자는 우마왕의 아들로 나찰녀가 키웠습니다. 화염산에서 삼백 년간 수행하여 '삼매진화'를 단련했고, 신통력도 대단합니다. 우마왕이 그에게 호산을 지키도록 했는데, 어릴 적 이름이 홍해아이고, 호는 성영대왕이라고 합니다."
손오공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토지신과 산신들을 물러가게 하고, 본래 모습으로 변해 봉우리를 뛰어내려와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말했어요.
"이 몸이 오백년 전 하늘 궁전에서 소란을 피울 때 천하의 이름난 산들을 두루 유람하며 사방의 호걸들을 찾아다녔는데, 그 우마왕은 이 몸과 의형제를 맺은 적이 있다. 엇비슷한 대여섯 명의 마왕 중에서 이 몸만이 작고 깜찍하게 생겨 우마왕을 큰 형님이라고 불렀지. 그 요괴가 우마왕의 아들이라면 내가 그의 아버지와 형제간이니, 따져보면 그의 숙부인 셈이지. 그러니 그가 어떻게 우리 사부님을 해치겠어? 우리 빨리 가보자고."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어요.
"형님, '삼년 동안 찾지 않으면 친척도 친척이 아니다'는 말이 있어요. 형님이 그와 헤어진 지 오륙백년이 지났고, 술잔을 주고받은 적도 없으며, 예를 갖춰 초청한 적도 없는데, 그가 어디 형님을 친척으로 생각하겠습니까?"
"너는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느냐? 속담에도 '떠도는 부평초 한 잎도 큰 바다로 흘러들어가니, 사람이 살다보면 어디선들 만나지 않으랴' 하지 않더냐? 그 놈이 친척으로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우리 사부님을 해치지는 않을 거야. 그 놈이 술자리를 마련해 머무르라고 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갇혀 계신 사부님은 반드시 돌려보낼 거야."
***관음보살이 홍해아를 거둬들이다**
"오공아, 너는 금선존자를 이끌고 서방으로 경전을 가지러 가지 않고, 무슨 일로 여길 찾아왔느냐?"
"보살님, 제가 삼장법사를 보호하여 길을 가고 있는데 호산의 고송간 화운동이란 곳에서 홍해아란 요괴가 성영대왕이라 자처하며 사부님을 잡아갔습니다. 저와 저팔계가 동굴 문 앞까지 찾아가 싸움을 했습니다만 홍해아가 삼매진화를 내뿜는 통에 이길 수가 없어서 사부님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급히 동쪽 큰 바라로 가 사해 용왕에게 비를 내려달라 청했지만, 역시 그 불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희들 모두 까맣게 그을려 하마터면 다 타죽을 뻔 했습니다."
"삼매진화라면 신통력이 대단한데, 어찌 용왕을 청하고 난 청하지 않았느냐?"
"원래 모셔가려고 했는데, 제가 연기에 그을려 구름을 몰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저팔계더러 보살님을 청해오라 했습니다."
"저팔계는 온 적이 없는데?"
"맞습니다. 여기에 닿기 전에, 요괴가 보살님으로 둔갑하여 저팔계를 속여가지고 또 동굴로 끌고 갔으니까요."
관음보살이 그 말을 듣더니 크게 노하여 말했어요.
"못된 요괴놈이 감히 내 모습으로 변하다니!"
관음보살은 노한 음성으로 한 마디 내뱉더니 손에 들고 있던 보주와 정병(淨甁)을 바다에 풍덩 던져버렸어요.
"저 보살님, 불 같은 성질은 여전하시네. 이 몸의 말이 비위에 거슬리고 자기 덕행을 망가뜨렸다고 정병을 잘도 내던지시는군."
"평소에 이것은 빈 병이다. 하지만 지금 바다에 던졌기 때문에, 순식간에 세 강과 다섯 호수, 여덟 바다와 네 저수지 , 시내와 못의 근원지를 모두 돌아 바닷물을 몽땅 그 안에 담았다."
관음보살이 앞으로 걸어나와 오른손으로 가볍게 정병을 들어 왼손 손바닥 위에 놓았어요.
그러자 관음보살이
유유자적 기꺼이 보련대 내려와
구름 같은 걸음, 향기 흩날리며 돌 벼랑 오르네.
오로지 성승이 재난을 만났기에
요괴를 항복시키고 그를 구해내기 위해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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