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레시안> 기사에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성주, 김천 주민들은 사드가 없는 상태에서 필요를 먼저 따지고, 필요하다면 환경영향평가도 '일반'이 아닌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기사 : 사드 2년, 소성리는 봄에서 겨울로 간다)
이는 주민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애당초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누구는 이게 공식적으로 발표한 공약은 아니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공식이냐 아니냐의 형식성이 중요한가?
대통령 본인이 사드에 대해서 '적폐 정권의 비정상적인 절차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약속했으면, 거기 '전략'이란 단어가 안 들어갔다고 해서 그런 공약은 한 적 없다고 오리발 내밀 수 있는 일인가?
상식적이고 객관적으로, '정상'은 전략적환경영향평가뿐이다. 말한 대통령도, 들은 주민들도 박근혜 정권 말기였던 당시에는 모두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젠 말하기도 지치지만, 여전히 사드가 뭔지 제대로 얘기조차 못 들어본 국민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라는 성주 소성리, 김천 주민들을 비난한다.
새삼스러운 얘기를 복기해보자면, 사드는 북핵 미사일을 막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애당초 수도권은 성주 사드기지 사정권 밖인 데다가, 북한이 한반도 남쪽을 공격한다 해도 굳이 고각발사를 해야만 사드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온다.
북한이 휴전선에 집중 배치돼 있다는 장사정포나 단거리 미사일을 놔두고, 그 비싼 중장거리 미사일을, 정확도도 떨어지고 발사하기도 까다로운 고각(수직)발사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드 미사일은 북핵에 대한 한반도 방어용으로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그저 미국이 중국 내륙까지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기 위한 레이더를 조금이라도 중국 가까이 갖다놓을 필요가 있을 뿐이다. (오키나와의 사드 레이더로는 중국 내륙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만에 하나 미중 간에 핵전쟁 상황을 가정한다면 양국간 핵억지력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기운다는 의미다. 중국도 한반도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레이다가 있지 않으냐고도 한다. 하지만 중국을 공격하는 핵미사일은 미국에 있지 한국에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실시간으로 미국에 파악된다. 핵억지력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이는 즉 중국 입장에서는 국가적인 명운이 걸린 문제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한국 내 사드 기지에 대한 중국의 반발은 내정간섭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사드를 들여오는 사정을 주체적 '내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가 의문이지만.)
둘째로, 미국의 전략적 정찰자산과 연계된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한국은 결과적으로 미국-일본의 아시아 MD체제에 하위 편입되어지고, 유사시 반대 블럭으로부터 가장 먼저 직접적 무력 공격을 받게 된다. 그 대가는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과 물질적 피해이다.
사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장식품이 아니다. 미국은 왜 그렇게 모든 상식과 합리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가. 북한 핵을 핑계로 들여온 사드가 정작 북한 핵위기가 해소되는 국면에서 오히려 상식적 합리적 절차를 무시하고 고정 배치가 강행되는 이 모순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마디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한민족의 운명을 볼모로 내주는 것이 사드이다.
박근혜 정권 때는 언론이 망가져서 이런 사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면, 지금 언론은 새로운 뉴스가 없다고 역시 보도를 외면한다.
국민들은 여전히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를 전혀 알지 못하고, 대통령은 북미대화의 판을 깨지 말아야 한다는 데만 매달려 미국의 강요에 비위 맞추기만 급급하면서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볼모로 내주는 일이 최선이라고 믿어달라고만 하는데...
40년 전 모든 국민들의 무지와 비난 속에서 외롭게 고립된 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광주처럼, 지금 21세기 한반도와 남북한 한민족의 평화,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것은 오직 소성리와 김천의 일부 주민들, 종교적 성지(聖地)를 지키려는 원불교 신자들…. 그리고 일부 연대하는 시민단체들뿐이다.
지난 3년여를 그렇게 싸워오면서, 법보다 먼 폭력적 강제배치를 몸으로 막아내면서, 수많은 주민과 활동가들이 다치고, 기소되고, 벌금 폭탄을 맞았다.
더 황당한 일이 있다. 최근 3.1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정부는 소위 7대 시국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 사면 복권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7대 시국사건이란 즉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비롯해 밀양 송전탑 반대시위,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투쟁, 한일 위안부 야합 반대운동, 쌍용차 파업, 그리고 사드 배치 반대시위를 말한다.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주변의 지인으로부터조차도, 사드나 기타 시국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사면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난감하다.
7대 사건 운운하며 정부가 사면복권한 것은 실제로 그 관련자들 중 일부일 뿐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별했는지조차 알 수도 없게, 아직도 많은 관련자들이 복권은커녕 여전히 벌금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공교롭게도 오는 4월 27일은 한반도 평화의 새 가능성을 열어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지 딱 1년째인 날이자, 그 바로 1년 전(2017년)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이 자기 이름을 걸고, 한참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던 와중에 새 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던 사드 배치를 갑작스럽게 강행한 날이기도 하다.
그날 수많은 소성리와 성주, 김천 주민들, 원불교 성직자와 신자들을 비롯한 개신교, 가톨릭, 불교 성직자들 및 연대활동가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무력으로 강제 진압하고 경찰은 사드 장비를 소성리 골프장으로 진입시켰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정권이 바뀌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겠다던 이 정부 하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정부는 경찰력을 앞세워 저지하는 주민과 활동가들을 진압하고 역시 사드 장비들을 추가 배치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해, 이게 최선이니 믿어달라고 했다. 약속을 어긴 데 대한 사과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왜 최선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 정부는 그동안 그래도 '임시 배치'라고 강변하던 사드를 역시 단 한 마디 해명이나 언급도 없이 고정배치하는 조치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입만 열면 주민과 대화를 통해 동의를 얻겠다던 이 정부는 정작 주민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동의도 없이 (전략적 평가가 아닌)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전략적 평가란 말 그대로 사드가 배치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사드 배치의 필요성부터 정식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객관성을 검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일반환경영향평가는 단순히 사드가 환경적으로 미치는 영향만을 형식적으로 평가할 뿐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사드의 환경적 영향이 최소한 수년은 지나야 나타날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는데도 고작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것도 지금 이미 사드가 들어와서 확인이 불가할 만큼 환경에 영향을 미친 상태에서, 말하자면 이걸 기준으로 삼아 이후 예상되는 영향을 평가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이게 과연 정말 최선이냐고. 확실하냐고.
오는 4월 27일은 대부분의 민주진보진영 단체와 시민들이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하여 전국적으로 임진각에 모여 기념집회를 열고 DMZ 인간띠잇기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이 행사가 결정되기 이전부터 이미 성주 김천 소성리에서는 사드 강제배치 2년째를 맞아 대규모 집회를 예정하고 있었다. 더욱이 올해 들어 사드 고정배치가 가시화되면서 현장에서는 다시금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 달 중부터 사드기지 보강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전략적이든 일반이든 환경영향평가는 허울이고, 강행배치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집회 날짜가 중복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소성리로 오시지는 못하겠지만, 몸은 함께 못 해도 최대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평화를,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벌금 폭탄을 맞았던 주민들 및 활동가들에 대한 법률지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20일(토요일) '사드배치 반대 평화활동 법률지원기금과 투쟁기금 모금을 위한 후원주점'이 서울에서 열린다.
소성리로 오지 못하는 마음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사드투쟁 후원주점에 마음과 뜻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린다.
우리 모두는 소성리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빚 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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