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 의원이 설화(舌禍)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가 얼마 전 문 대통령의 20대 남성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언급하며 한 발언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 전체의 공격을 받고 있다. 설 의원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민주당이 20대 청년 남성들을 비하했다는 것에 있다. 국민을 개, 돼지로 비하했던 전 정권 관료 발언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직전 수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이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일이라 굳이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설훈 의원 발언은 20대가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한 이명박근혜 정부를 문제 삼은 것이다. 물론 그 교육을 받은 현 20대에 대한 평가가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설 의원의 발언을 특정 세대에 대한 비하문제로만 끌고 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정치인들이 표를 먹고 사는 이들이라 20대 남성들을 분리하여 분노하도록 자극하는 것이, 특히 객관적 지표 상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이들이라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자신들 쪽으로 견인해야 한다는 셈법을 동원하는 것이란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설 의원의 발언이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수권정당이 그 책임을 정책 주체인 자신들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의 발언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실은 20대 비하라기보다 그와 그가 속한 정당, 그리고 그 정당이 받치고 있는 현 정부의 교육관이다. 그가 '20대' 이야기도 했지만 ‘교육' 이야기도 했는데 다들 ‘20대' 문제만 잡고 늘어지고 아무도 그가 한 ‘교육' 문제에는 관심도 없고 말하는 이도 없다.
교육에 관한 한 이명박근혜 정부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촛불로 세워진 정부이기에 전반적으로 기대가 높지만 특히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교육정책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에 설 의원이 교육문제를 정치적 사고나 행동과 연결시켜 발언하는 것만으로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현재의 20대가 이명박근혜 시절 교육을 받은 건 맞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극단의 신자유주의 교육을 밀어붙이고 국정교과서와 같은 수구적 교육을 추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교육을 문제 삼는 설훈 의원은 박정희 치하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유신 이전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학교에서 종아리 맞으며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일등부터 꼴찌까지 등수를 교실 칠판 옆에 붙이고, 체벌과 촌지가 공공연했던 교육이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말하는 설 의원의 발언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박정희나 전두환 치하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받았다는 말은 정말 금시초문이다.
이명박근혜 시절 개인주의와 경쟁이 가속화되고 남북 긴장관계가 심화됨으로써 '그 시절 교육적 환경'이 결코 좋지 않았다는 것, 한편에서는 시장주의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반통일적대의식이 강요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교육적 환경 면에서 결코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더 나았다고 얘기할 수 없음도 자명한 일이다. 권위주의, 군사주의가 교육은 물론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 전반의 절차적 민주화가 확대되며 군사독재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을 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교육과 관련해 말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른 질적 변화와 발전이 일어났다고 할 수 없다. 단지 김대중 정부에서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 외에 교육의 내외적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다. 학교가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곳이기 보다 입시선발을 위한 부역기관이어야 한다는 사회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져 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주 최근까지 학교나 교육계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거론하는 것은 공교육 책무가 아닌 특정 정파나 이념을 주장하는 것으로 왜곡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나마 진보교육감이 등장하고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근혜 시절이다. 박근혜의 국정교과서를 막아낸 것도 진보교육감을 세운 것도 혁신학교와 혁신교육의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역대 어느 정부 정책이 아니라 교육현장 주체들이 힘겹게 투쟁하고 실천한 결과였다. 현 여당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다소간의 환경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에 경쟁과 효율 논리를 본격화 한 교원평가(2005년 시작)나 교원성과급(2002년 시작) 등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들이 노무현정부 시절 본격 시작되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군사주의나 권위적 관료주의만이 아니다. 노골적이지 않아서 더 알아채기 어렵지만 능력과 효율성, 경쟁을 앞세우는 천박한 시장주의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 있다. 거기엔 상호존중이나 차이와 다양성 인정,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이것들이 없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실현하려는 민주주의가 오직 절차적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 기계적 공정성은 아니지 않은가.
교육철학의 부재, 정치적 유·불리로만 보는 나쁜 습관
교육이 성장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사람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제일 큰 부분이 교육'이라는 설훈 의원의 말은 일면 타당하다.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면 교육을 통해 어떤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갖추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앞서 말한 것처럼 자유한국당 전신이 집권했을 때나 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집권했을 때나 교육과 관련해 본질적인 차이가 없었다. 하물며 이명박근혜 시절 교육과 비교하며 박정희 시절 교육을 민주주의교육이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도 촛불정부를 지탱한다는 정당 출신 의원에게서. 설 의원의 말을 얼핏 보면 지지율 하락이라는 정치적 현상의 원인을 교육에서 찾고 있으니 교육이 정치의 토대이고 원인이라 말하는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실은 교육을 정치의 결과로만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가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교육은 정치적 철학과 신념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독자의 영역과 의의가 있다. 경제정책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과 경제이론 및 실물경제에 관한 독자적 전문성이 필요한 것처럼 교육도 그렇다.
교육은, 특히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정당이나 정부에 대한 지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귀결되어서도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은 공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이고 정당이나 정부의 정책을 잘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지난 역대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은 20대 남성들만이 아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세대가 그렇다. 그나마 진보교육감 등장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혁신교육 세례를 직접 받은 이들이 현 20대다.
이런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면 단지 지금 20대들이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사실로부터 바로 그들의 문 대통령 지지율이 저조한 원인을 도출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왜 이리 생각이 얕고 즉자적일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설훈 의원이 꼰대식 발언을 했다거나 정부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설훈 의원의 말은 교육이 정치에 철저히 종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이명박근혜면 교육도 보나마나 잘못된 것이고 정부가 노무현이나 문재인이면 교육도 제대로 된 것일 거라는 잘못된 등식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
교육과 정치는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육도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정부를 구성하는 이들이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교육의 내용과 방향,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정부의 교체에 부응하는 교육의 변화가 가능해진다. 한 마디로 정부의 교육철학이 관건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명박근혜 정부는 완전 잘못된 방향이었지만 적어도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역대 민주당 정부보다 더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사고, 특목고를 확대하고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 지는 이미 오래다. 이는 전 국민 대부분이 최소 12년의 공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간 동안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사회 구성원의 민주시민성 정도를 결정하며,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지수를 결정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교육이 갖는 이런 중요성을 현 정부 핵심들과 여당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교육'이라고 쓰고 '교육환경'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 정치의 단순 종속변수로 이해되고 그런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교육정책이 교육철학이나 교육이념에 입각해 나오는 게 아니라 득표 전략에 따라 나오는 것 역시 당연할 수밖에 없다.
집권 1/3이 훌쩍 넘어 가는 지금까지의 현 정부 교육정책을 보면 이런 판단이 결코 근거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교육부 권한 축소와 이양, 혁신학교 확대, 민주시민교육 등이 발표되었고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구체적 진전은 없이 지지부진한 채 여전히 문서상 공약에서 더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기껏해야 일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란 게 사립유치원 문제처럼 정책의지와 목적 하에 추진되기보다 현안으로 터져 나오니 상황에 끌려 대책을 마련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여전히 교육적폐를 해소해야 할 정부, 새로운 100년의 교육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촛불로 세워진 정부의 교육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설훈 의원은 19대 때는 국회 교문위원장이었고 20대 국회에서도 교문위 위원을 했던 4선 국회의원이다. 설 의원의 교육에 대한 인식은 결코 의원 개인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 현 정부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라 보인다. 그래서 염려가 된다. 20대를 끌어안기 위한 청년미래기획단을 꾸리는 것도 필요하고 20대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설훈 의원의 발언이 20대 폄하로 공격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처가 20대에 대한 대처로 국한되는 것은 또 다른 오류가 될 수 있다. 여론과 표심만을 의식하여 1년 여 만에 교육부장관을 교체하고 원칙과 철학도 없이 입시 제도를 결정하는 식으로 구태가 반복되는 교육정책이 지속되는 한 문재인 정부 하에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배우며 자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발표한 사과와 대책조차 표심에 좌우되는 진정성 없는 정책으로 끝날 수 있다.
독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성숙한 민주시민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국민의 민주시민성을 형성시키는 중요한 제도이며 정당의 당리당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국민행복과 사회발전에 대한 비전을 갖고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정부 핵심 구성원들에게는 경제나 남북관계만큼이나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요구된다. 그 이전에 제발 교육이 갖는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했으면 좋겠다.
설훈 의원 말대로 교육이 문제다. 그런데 더 이상 '교육'이라고 쓰고 '교육환경'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교육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에 지난 시절 정권이 바뀌었어도 교육은 제대로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교육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점을 현 정부와 여당은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필요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정부와 여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라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설훈 의원 식 표현을 빌어본다면 당장의 표심은 일자리나 세금정책으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10년, 20년 후 표심은 교육이 잡게 한다. 그러니 제발 눈앞의 표계산에만 집중하지 말고 조금 멀리, 그리고 길게 보길 바란다. 현 여당이 교육을 바로세운다면 그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한 여당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역대 정권들이 교육을 정치 부속물로 인식하여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해 온 뿌리 깊은 악습을 끊어야 한다. 그게 교육개혁의 출발점이며, 설훈 의원이 그리도 문제라고 느끼는 이명박근혜 교육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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