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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에 오르면 영웅인가'라고 하면 영웅인가?

[마음은 굴뚝같지만] '프랑스 혁명' 때와 같은 쇠스랑을 보고 싶은가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에게

혹시 닉 하나우어(Nick Hanauer)라는 이름 들어 보셨습니까? 테드(TED) 강연을 보다가 이 사람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마련하는, 이른바 '글로벌 특강'이라고 불리는 강연 말입니다. 한글 자막이 있는 강연은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인데, 닉 하나우어의 강연은 좀 다르게 와 닿았습니다.

그는, 당신도 아마 잘 알고 계실, 아마존 최초 투자자이고, 30개가 넘는 기업을 설립·투자했으며, aQuantive라는 기업을 공동 설립해 마이크로소프트에 64억 달러에 판 경력이 있는, 흔히 말하는 1퍼센트 부유층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똑똑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한 그는, 그래도 자기가 잘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닥쳐올 위험을 곧잘 감지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미래에 대한 직관이야말로 기업가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꼭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겠지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고 대처하는 것만큼 21세기 기업가에게 필요한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21세기 SIGN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당신에게 소중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감히 그의 말을 전합니다. 위험을 감지하고, 날카로운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그가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피치포크(pitchfork)"

영어라고 해봤자 서바이벌 수준인 제 귀에도 명확하게 들리는 단어였습니다. 우리말로는 '쇠스랑', '갈퀴' 정도로 해석이 되는 말이지요. 그는 누군가 자기에게 미래에 대해 무엇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쇠스랑이 보인다고 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쇠스랑을 든 화난 사람들이 보인다고요. 역사적으로 보건대, '자유롭고 열린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한 이 문제는 기업가를 포함한 모두를 자멸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쇠스랑이 보인다는 닉 하나우어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오랫동안 당신의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지난해 12월 29일 파인텍 노동자들과 2차 교섭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먹튀', '최장기 굴뚝 농성', '75미터의 굴뚝', '차광호·홍기탁·박준호' 등은 '스타플렉스'와 '김세권' 이름 뒤에 따라오는 단어들입니다. '먹고 튄다'는, 그다지 우아하지 않는 저 말이 계속 따라붙는 이유를, 저는 지구 반 바퀴 가리만큼 떨어진 이곳, 독일에서 듣고 있습니다. 1995년 차광호와 홍기탁은 경북 구미시 국가산업단지에 있던 한국합섬 2공장에 취업합니다. 문제는 한국합섬이 스타플렉스라는 회사에 인수되면서 시작되었지요. 2006년 한국합섬이 파산하고, 2010년 7월 당신이 한국합섬을 인수해 스타케미칼(스타플렉스 자회사)로 바꾸고 공장 재가동에 들어갑니다. 한국합섬 노동자 100여 명을 고용 승계하겠다는 조건이었지만, 스타케미칼은 1년 7개월 만에 경영난을 이유로 폐업하지요.

그러니까 2010년 기존 한국합섬 인수과정에서 당시 빈 공장을 지키며 5년을 싸워오던 노동자 100여 명의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등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870억 원에 이르는 회사를 339억 원에 인수하고는 2년이 채 안 돼 위장폐업을 한 겁니다. 당신이 돈을 먹고 튀었다고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차광호는 스타케미칼 공장 45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입니다.

408일이라는, 그 오랜 시간이 흐른 2015년 7월 8일. '고공농성이 결실을 보는 것인가?' 하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이들의 고용을 승계하고 노조와 단체협약을 하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그렇게 이들은 2016년 1월부터 스타플렉스가 만든 새로운 회사인 파인텍으로 복직해 일을 시작합니다. '먹튀'라는 불명예를 떨쳐버릴 기회였는데, 이상하게도 당신은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멀리 차버립니다.

당신은 파인텍에 복직한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짓밟았습니다. 그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 작업량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지요.(2018년 12월 18일 자 <오마이뉴스> '김세권씨를 찾습니다, 이 한 사람 때문에') 당신이 약속한 정상운영과는 한참 달라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다시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쉽지 않은 400일이 넘은 고공농성을 두 번째 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에 따르면 홍기탁의 몸무게는 59킬로그램, 박준호의 몸무게는 49킬로그램입니다. 두 사람 다 뼈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료진의 이야기가 저는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인가?"

지난해 12월 29일 파인텍 노조와 사측의 두 번째 교섭이 있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는 노조 측의 이야기에 당신은 내년에 다시 만나자며 미뤘습니다. 진전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사람이 저 위 75미터 높은 굴뚝 위에 있는데, 그렇게 누군가의 목숨이 달린 일을, 정말 시간이 촉박한 일을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미뤘습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불법을 저지르고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

당신이 말한 불법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1년 넘는 시간을 75미터 굴뚝 위에서 지낸, 이제 뼈밖에 남지 않은 두 사람에게 영웅이란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신의 말을 들으며, 저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진짜 쇠스랑을 들었습니다. 사실 프랑스뿐만이 아니지요. 1퍼센트의 사람들이 99퍼센트의 사람들을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 세계 곳곳에서는 늘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 쇠스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경제나 경영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굳이 닉 하나우어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쫒아오고" 있으니까 "중국 회사들보다 약간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 연구 개발, 해외 영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겠다, 연구개발비를 아끼지 않겠다는 당신이 그것들보다 먼저 앞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과제가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2016년 1월 21일 자 <문화일보> '김세권 스타플렉스 사장 "中, R&D·영업 등 성장… 무서운 속도로 추격"') 노동자들과의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회사에게, 그렇게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회사에게 자기 회사의 이미지를 좌지우지할 광고를 맡길 회사가 세상에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저는 친하게 지내는 독일인 친구들을 만나 송년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같이 차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면서 때론 농담을, 때론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어느 순간 눈물을 울컥 쏟을 뻔했습니다. 그 아늑한 평온함이, 그 조용한 평화가 너무 미안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영하의 날씨에 두꺼운 벽 하나 없는 하늘에서 또 밤을 지낼 그들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는 지인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더듬어간다는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감지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묻게 될 때도 있습니다. (중략) 그러다 문득,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미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들이, 내 손이 어루만질 얼굴들이 나의 인생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상한 체험도 아니고 떠들썩하게 소문내거나 정색을 하고 심각하게 만들 사건들도 아닙니다. 그냥 눈이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오듯, 어린아이처럼 눈밭에서 장난을 하듯, 인생의 가장 작은 모서리에서부터 회의와 체념이 희망에 물들어가고 생기로 치유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 기억과 함께 '지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최대환 지음, 파람북 펴냄)

당신이 더 늦기 전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손이 어루만져야 할 수많은 얼굴을 말입니다.

그럼 이만.

▲ 두 번째 408일, '아직 이곳에 사람이 있다' ⓒ연합뉴스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12월 24일, 이 기록은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다시 굴뚝 위에서 맞이하게 할 순 없습니다. 이들이 어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노동자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하며, 파인텍 5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릴레이 연재를 이어갑니다.

법적으론 문제없단 말 들었을 때..."아 문제가 많구나"

"그 굴뚝 앞에 서보면 안다"

파인텍 410일, 착취 아닌 착즙의 시대

굴뚝농성 411일…내가 연대 단식한 이유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덕질'하다

파인텍 굴뚝과, 아버지의 꿈

스타플렉스 김세권, 떨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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